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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연인 고려왕조 정리!! (스포ㅇ)

ㅇㅁㅇ |2016.10.18 07:31
조회 1,229 |추천 10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배경: 고려왕조 초기(태조~4대 광종까지 정리)
※주의1. pc버전은 보기 편하게 썼는데 모바일버전엔 적용이 안되서 보기에 불편하고 너무너무너무 길 수 있음 ㅠㅜ (앱은 괜찮으려나....ㅠㅠ)※주의2. 마지막 부분에 역사를 바탕으로한 스포가 있을 수 있음!! 
드라마 초반,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서 폭풍검색함ㅋㅋㅋ스스로 스포의 바다에 빠짐 ㅠㅠㅠㅠ이건 마치 네이버웹툰을 스토어에서 완결까지 결재한 기분이랄까ㅠㅠㅠㅠㅋㅋㅋㅋ모든 내용을 다 파악하고 드라마를 어떻게 전개시킬지 흥미진진하게 봤음하지만 오늘 결방되고 중국엔 방영됐고(…) 그래서 16회도 못본채 17회 예고편을 접하게됐고!드라마는 거의다 끝나가고있고 하니한번 올려봄가계도가 복잡하니 은근 찾기도힘들었는데 (나만 그런가ㅠ) 혹시나 또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올림.하지만 마지막부분에 스포주의★★★
일단 간단하게 복습
태조 왕건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의 장군이자 고려의 초대 국왕(재위기간 : 918년 7월 25일 - 943년 7월 4일)이다. 성은 왕(王), 휘는 건(建),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약천(若天),묘호는 태조(太祖), 연호는 천수(天授), 시호는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인용신성대왕(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仁勇神聖大王)이다.-좋은말은 다 갖다붙인듯..  이분은 여기까지만.. 이 다음부터 이런 재미없는 설명은 과감히 생략한다!이분이 29명의 부인을 둠으로써 대혼란이 시작됨가계도도 자세히보면 아빠가 결혼한 여자의 여동생(이모?)이 나의 부인이 되고 난리가남..ㄷㄷ 

2대 혜종
외가의 가세가 미약하여 지위의 위협을 받게 되자 태조 왕건은 고려 건국 직후 그를 바로 정윤으로 삼은 뒤에 정식으로 태자에 책봉재위 3년만에 사망하였으나 사망원인은 불명확하다. (드라마상에서 만든 독살은 픽션임)

3대 정종
혜종 사망 후(!) 왕규의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름
*왕규의 난 왕규는 고려 초기 광주(廣州)의 대호족으로, 왕규는 야심이 있어서 혜종에게 무고하기를 요(窯)와 소(昭)가 딴 마음을 품고 있다 하였으나 혜종은 거짓말임을 알고 더욱 동생들을 사랑하였다.점복(占卜)에 밝은 최지몽(崔知夢)이 하늘의 별을 보고 나라에 역적이 일어나겠다 하니 혜종은 왕규가 자기 동생들을 해치려는 징조로 짐작하고 소(昭)와 자기의 맏딸을 결혼시켜 집안을 튼튼히 해 주었다.  혜종이 세상을 떠나고 동생 요(堯)가 왕위에 오르니, 곧 정종(定宗)이다. 그러자 혜종을 살해하려다 실패했던 왕규는 정종이 즉위하자 반란을 일으켰다. 고하지만 왕요와 왕식렴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반란을 왕규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진압해 즉위한 정종도 오래 가지 못하고 외척들에게 쫓겨 동생 소에게 왕위를 넘기고 아들 경춘원군의 목숨을 유지케 하였다. 그러나 광종은 즉위후 경춘원군을 자신의 자리를 노린다는 이유로 전격 처형;;;
정종의 정비는 문공왕후문공왕후의 아버지는 드라마에 좌승으로 나오는 박영규(신라 태생이고, 후백제의 장군이며, 고려 전기의 장군)이며, 어머니는 견훤의 딸 국대부인이다.  그녀의 여동생도 정종의 왕비(문성왕후)가 되었다. 또한 그녀들은 시아버지 태조의 제17비인 동산원부인과도 친자매 사이이다.(응?)

4대 광종 두둥!

드라마에 집중하고싶다면! 본의아니게 스포를 당하기 싫다면!!!


지금 뒤로가기 ㄱㄱ
아래까지 읽으면 돌이킬수없음………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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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ㄱㄱ



정비는 대목왕후 황보씨(皇甫氏)로 태조와 신정왕후의 딸로 이복누이(연화 공주)후궁인 경화궁부인 임씨(慶和宮夫人)는 배다른 형 혜종의 딸이다.혜수(아이유)는 정비도, 후궁도 아님!!!! 역사에 기록이 없으뮤ㅠㅠㅠ그래서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궁금
광종은 동복 형 정종의 선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949년 광덕(光德), 960년 준풍(峻豊[2])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고, 중국 후주로부터 과거제도를 받아들여 처음 과거를 실시하였다. 노비안검법으로 부당하게 노비가 된 양민들을 석방하였고, 민생안정과 백성구휼에 힘을 썼다. 과거 시험으로 선발된 관료들과 후주에서 귀화한 관료들을 통해 호족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관복 제도를 새로 제정하여 조정의 기강을 바로 잡았다. 불교 장려에도 관심을 갖고 사찰의 중건과 중수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960년 평농서사(評農書史) 권신[3] 이 대상(大相) 준홍(俊弘) 등의 역모를 고변한 이후 이를 빌미로 호족들을 대량으로 숙청하였고, 이복형 혜종의 아들 흥화궁군, 동복형 정종의 아들 경춘원군, 태조의 서자인 이복동생 효은태자 등을 처형하였고 자신의 장남인 태자 주(胄) 역시 의심하였다. 
한줄 요약:왕권 강화, 백성을 위하고 나라 발전을 위한 현실적인 좋은 일을 많이 함.하지만 말년에 무죄한 사람을 많이 죽이고 끝이 좋지 않음
51세 여름 갑자기 병환이 나서 그해 5월에 몸져누웠고, 며칠 뒤 개경 황궁의 정침(正寢)에서 붕어하였다. 
 “아, 어찌 처음에는 선(善)하였으면서 뒤에는 선하지 못함이 이에 이르렀는가?”— 고려사 최승로 열전, 최승로의 광종에 대한 평
그리고 첫째아들(5대 경종)이 황위를 이음그후 사촌동생이며 매제이자 처남(...드라마에 안나오는 7황자의 아들, 8황자 연화공주랑 동복형제인데 드라마에 안나옴;)인 개령군 왕치(王治, 성종)에게 양위
끝마지막으로 최지몽에 관해,고려 초기 전남 영암군 출신 관료로 태조~성종조의 왕권 안정에 공을 세웠다. 또 고려 건국 전에는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것을 예지하였다.
혜종의 시해 음모를 예측하여 혜종을 암살의 위기에서 구했다고한다. 그러나 혜종 사후 극심한 권력 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과정에서, 왕건의 "공주강 이남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훈요십조가 있었음에도 중용된 것을 볼 때, 선왕 혜종을 배신하고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종의 추종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광종 말년에 왕권 강화책에 따라 벼슬에서 퇴출되었다가 980년(경종 5년)에 대광내의령 동래군후 식읍일천호 주국(大匡內議令東萊郡侯食邑一千戶柱國)에 봉해지고 복직되었다. 성종 6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태자태부로 증직되고 민휴(敏休)의 시호를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ㄷㄷ 난 혜종과 광종 추종세력인줄 알았는데 역사는 다르게 말하고 있음 뒤통수당한 느낌 ㅠㅠ
그롬 이만!내 기준에 너무 재밌어서 너무 많은 얘기를 올려 지루해졌을까봐 빠른 마침.

역사는 재밌어 ㅋㅋㅋ


근데10월 말에 달의연인 끝나면 이제 월요병을 뭘로 극복해야하나ㅠ


추천수10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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