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야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왠지 그 단어만으로도 빛이 번쩍거리는 고급스러운 식당이 연상되지만, 사실 그 시작은 상당히 서민적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1765년 경, 불랑제(Boulanger)라는 사람이 파리에 새로운 음식점을 차리면서 "우리 식당은 기운을 돋구워주는 회복제 (프랑스어로 restaurant, 영어로는 restorative)를 팝니다"라고 광고한 것이 유명해지면서 오늘날 식당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매김 했기 때문이죠.
이 당시에 불랑제가 팔았던 것이 바로 고기를 우려낸 국물 요리, 즉 수프였습니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수프라기보다는 육수에 가까웠고 그래서 식당 이름도 부용(bouillon: 고기나 채소를 끓여 만든 육수)였지만요.
흔히들 (먼나라이웃나라 만화책의 영향을 받아) 수프는 적은 재료에 물을 부어 양을 늘려 먹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달리 보면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은 꽤나 서민적인 수프 전문 식당이었던 거지죠.
서민적인 요리라고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양파입니다.
이전 포스팅(http://40075km.tistory.com/63)에서 서민들의 식재료 취급을 받던 토마토 이야기도 잠깐 하긴 했지만 양파는 그 역사와 규모 면에서 토마토나 기타 작물들이 범접하기 힘든 서민 음식의 대표주자입니다.
일단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노동자들에게 식량으로 양파를 지급한 기록이 나올 정도니까요.
워낙 기르기 쉽고 수확량이 많아 흔한 식재료인 만큼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식량으로 활용되곤 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저렴한 식재료가 그렇듯이 별로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지만요.
그리고 이 저렴한 재료와 서민적인 조리법이 합쳐지면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됩니다.
재료는 양파와 버터 약간, 마늘, 파슬리, 후추, 소금, 화이트와인, 치즈, 그리고 먹다 남아서 딱딱해진 바게트빵입니다.
우선은 마늘빵부터 만들어 줍니다.
버터를 실온에 두고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 마늘을 다져넣고 파슬리를 뿌려 마늘 버터를 만듭니다.
딱딱해진 바게트를 자르고 마늘버터를 발라 오븐에 구워주면 끝.
서양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고깃국물이나 스튜에 빵을 찍어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러다보니 국물 요리에 빵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요.
수프라는 말도 국물요리를 찍어 먹던 빵조각(sop)에서 파생된 단어니까요.
양파는 4등분 한 다음 한 겹씩 까서 안쪽의 얇은 막을 벗겨줍니다.
양파가 쉽게 타는 것을 막고 골고루 익히기 위한 작업이긴 한데, 말 그대로 눈물나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껍질 벗긴 양파는 균일한 크기로 잘라줍니다. 크기가 들쭉날쭉하면 어떤 건 타고, 어떤 건 덜 익는 불상사가 발생할수도 있습니다.
버터를 살짝 두른 팬에 중간불 정도로 볶아줍니다.
원래 캐러멜화 시킬 때는 양파가 갈색이 되면서 거의 쪼그라든다 싶을 정도로 볶아주는 것이 정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럴 경우 단맛이 너무 강해져서 수프로 만들어 먹기보다는 다른 요리에 토핑으로 써먹기 좋더라구요.
그냥 골든 브라운 색깔이 날 때까지만 볶아줍니다.
양파의 수분을 다 날리면 화이트 와인 약간을 뿌리고 버터 약간을 추가해 풍미를 더합니다.
물을 여러 번에 걸쳐 나눠서 넣어주며 끓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육수를 많이 쓰지만, 이번에는 마늘빵을 올리고 치즈를 듬뿍 넣을거라 그냥 물만 넣어서 끓여줍니다.
마지막엔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합니다.
양파 수프를 그릇에 담고 마늘빵을 곁들이면 양식조리기능사 실기 메뉴 12번,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완성됩니다.
참고로 실기 과정에서의 요구사항은 "양파는 5cm 길이로 일정하게 써시오. 바게트빵에 마늘버터를 발라 구워서 사용하시오. 완성된 스프의 양은 200ml 정도로 하시오"라고 하네요.
뭐랄까,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만든다기보다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이용해서 기본적인 조리 실력(칼질, 불질, 계량)을 본다는 느낌이 강한 요구사항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리기능사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므로 그라탕 스타일로 만듭니다.
마늘빵을 수프 위에 동동 띄우고 그 위에 치즈를 잔뜩 갈아 올립니다.
원래는 그뤼에르 치즈를 써야 하지만 없는 관계로 파마산 치즈와 모짜렐라 치즈를 섞어서 뿌려줍니다.
오븐에 넣고 굽기(broil) 모드로 구워서 치즈를 녹여주면 완성입니다.
딱딱했던 빵이 양파 수프를 빨아들여서 부드럽고, 위의 치즈는 주욱 늘어납니다.
그 아래쪽에는 따뜻한 양파 수프가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지요.
국물을 한 스푼 떠서 먹어보면 달달하면서도 왠지 감칠맛이 도는 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양파 맛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대로 만든 양파 수프라면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 양파를 재료로 썼다는 것을 모를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저렴한 재료를 저렴한 방식으로 요리한 결과물이라고 해서 그 맛까지도 저렴하라는 법은 없다는 증거물입니다.
필요한 것은 오랜 시간동안 양파가 타지 않도록 끈기를 가지고 볶아주는 노력 뿐이지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왠지 "집안도 가난하고 머리도 나빠서 교과서만 갖고 끈질기게 공부했다"는 서울대 합격생 수기가 떠오르는 메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