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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수비드 안심 스테이크

Nitro |2016.11.02 07:03
조회 144,230 |추천 477

서양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 중에 "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네가 먹는 것이다"라니 얼핏 들으면 무슨 식인종 주방에나 걸릴 표현같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어떤 것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Tell me what you eat, and I will tell you what you are.)"라는 말이 줄어서 생긴 격언이지요.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이라는 프랑스 법관이 했던 말인데, 유명한 판사이자 정치가이면서도 엄청난 미식가이기도 한 인물입니다.

어찌나 먹는 걸 좋아했는지 법률책은 안 쓰고 "미각의 생리학"이라는 책까지 저술할 정도였는데, 이 격언을 통해 사람들에게 식습관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반영하고, 또한 올바른 식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무얼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먹는 것들이 무엇을 먹는지 또한 중요합니다.

무농약, 유기농, 유전자 조작물질 무첨가. 

이런 단어들이 먹거리의 포장에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 자체가 그 증거랄까요.

 

그리고 이런 양상은 소고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소고기를  분류할 때 등심, 안심처럼 부위별로 나눠서 분류하고, 좀 더 따지는 사람들은 한우인지 젖소인지 품종과 나이까지 고려하지만 소가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도 맛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는 크게 "그레인페드(grain fed: 곡식을 먹고 자란 소)"와 "그래스페드(grass fed: 풀을 먹고 자란 소)"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외양간에 갇혀서 사료를 먹고 자란 소는 그레인페드, 풀밭에서 방목형으로 기른 소는 그래스페드라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자유롭게 초원을 거닐며 풀을 뜯어먹고 자란 소가 더 맛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래스페드는 우리나라에서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는 고기입니다.

집중적으로 살을 찌우는 그레인페드와는 달리, 방목형 소는 많이 돌아다니는 데다가 목표 중량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근육이 질긴데다가 기름기가 적어서 고소한 맛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풀 먹고 자란 소답게 고기에서도 풀냄새랄까 소고기 냄새랄까 특유의 풍미가 있는데, 여기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요.

그래서 최대한 부드럽게 조리해 보기로 합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인기인 수비드(Sous vide) 조리법을 사용해서 말이죠.

일단 그래스페드 안심, 그 중에서도 가장 부드러운 텐더로인 부분을 한 덩어리 준비합니다.

마늘가루, 로즈마리, 딜, 후추가루 등을 골고루 발라 양념해서 준비합니다.

질기기로 유명한 그래스페드 소고기이니 최대한 부드럽게 요리 해 봅니다.

진공포장기로 포장해야 하지만 아직 구입하지 않은 관계로, 일단 고온 가열이 가능한 지퍼백에 담아 물에 서서히 담그면서 공기를 빼고 입구를 닫아줍니다.

공기가 남아있으면 열전도율이 달라지면서 온도 변화에 민감한 수비드 조리법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각종 허브와 양념의 맛이 배어드는 데도 장애물이 되구요.

그래서 이 조리법에 수비드(Sous vide: 프랑스어로 진공 상태. 영어로는 Under vacuum.)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그런데 사실 진공 포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저온 조리입니다.

이론은 1799년 영국의 벤자민 톰슨 백작이 확립했지만, 미묘한 온도 조절을 장시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활용 가능한 조리법으로 완성된 것은 1971년 부르노 코소 박사가 연구를 마친 다음이었으니까요.

기본적인 원리는 간단합니다. 

고기에는 여러가지 단백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맛과 식감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백질이 세 가지 있습니다.

각각 미오신, 콜라겐, 엑틴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중 미오신과 콜라겐은 열을 받으면 부드럽게 변하고 엑틴은 질겨집니다.

"미오신과 콜라겐은 40도에서 50도 정도에 단백질 변성을 일으키고, 엑틴은 65도가 넘어가면 변하니 그 사이 온도에서 고기를 조리하면 부드럽고 맛있는 요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바로 수비드의 기본 이론인 거지요.

수많은 요리사들이 연구를 거듭하면서 고기의 종류별, 부위별로 최적의 온도와 시간대를 정리했는데 그 중 한 레시피 따르면 소고기 스테이크는 레어로 조리할 경우 54도에서, 미디움레어는 58도에서, 웰던은 70도에서 조리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가정용 수비드 기계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저는 반죽기 액세서리로 구입한 히팅 보울로 수비드를 합니다.

원래 물 끓이라고 만든 기계가 아니다보니 가열 설정 온도 수온의 차이가 좀 나네요. 그래서 일부러 목표 온도보다 10도 높게 설정해 둡니다. 

약 한시간 정도 온천욕을 하고 나온 고기의 모습.

고기의 부위와 목표로 하는 조리 정도에 따라서 길게는 하루에서 사흘까지도 조리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에는 한시간 정도면 적당합니다.

본격적으로 굽기 전에 6~7분 정도 쉬는 시간을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뜨거워진 상태에서 또 열을 받아서 너무 많이 조리될 수 있습니다.

당장 먹을 게 아니라면 수비드가 끝난 상태에서 진공포장 그대로 얼음물에 담가서 열을 식히고 세균 증식을 막기도 합니다.

수비드의 장점은 고기를 부드럽게 해줄 뿐 아니라 그대로 보관했다가 간단히 데워서 먹을 수 있다는 거지만, 저온으로 조리하다보니 그만큼 세균 증식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설프게 수비드한 고기를 보관했다가 먹으면 식중독 걸리기 십상이라는 거지요.

뭐, 이 경우에는 식사시간에 손님들 몰려드는 맛집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하는 수비드 스테이크인 만큼, 조리 끝나자마자 곧바로 먹어줍니다. 

온도가 떨어진 고기를 뜨겁게 달군 무쇠팬에 올려 표면만 구워줍니다. 

이 작업을 시어링(Searing: 강한 열로 표면을 태우기)라고 하는데,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불리는 단밴질의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서 고기가 갈색으로 변하고 표면이 바삭바삭해지면서 구운 고기 특유의 풍미가 나게 됩니다.

코팅팬은 시어링 할 정도로 가열하면 유독성 발암물질이 나오므로 반드시 무쇠팬에 구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무쇠팬과 코팅팬 포스팅에서 따로 언급하기로 합니다. 이것도 나름 긴 이야기거든요)  

시어링이 끝나면 다시 5분정도 기다리며 레스팅 작업을 합니다. 

이 잠깐의 여유를 주면 곳곳에 뭉쳐있던 육즙이 고기 전체로 골고루 퍼져나가서 더 맛있는 스테이크가 됩니다.

완성샷. 

칼로 썰어서 단면을 보는데, "으아... 변태같아."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보통 스테이크를 굽게 되면 표면은 살짝 타고, 가장자리는 회색으로 다 익었고, 그 속으로 핑크빛 미디움레어 층이 있고, 가장 핵심 부위는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 레어 상태가 겹겹이 쌓여있기 마련인데...

수비드 조리법을 이용한 스테이크는 몽땅 다 미디움레어입니다. 

가장자리부터 가장 안쪽까지 색깔이 다 똑같네요. 

고깃덩어리가 통채로 균등하게 조리된 모습을 보자니 왠지 부자연스러운 느낌입니다. 다리 여덟개 달린 치킨이나 몸의 대부분이 뱃살로 이루어진 돼지가 나타난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살짝 데친 아스파라거스와 어제 만들어뒀던 감자 샐러드를 곁들여 한 입 먹어봅니다.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소스는 생략.

육질이 확실히 부드럽네요. 

나름 비교해보겠다고 점심 때도 똑같은 고기로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는데 수비드 조리법을 거친 고기는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그냥 술술 넘어갑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는 고기인지에는 좀 의문이 갑니다.

왠지 포장마차에서 칵테일 시켜먹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스페드의 와일드한 풍미는 남아있는데 식감이 부드럽다보니 맛은 있는데 뭔가 매치가 되지 않는 기분입니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이렇게 먹어보니 그래스페드라면 역시 풀냄새 좀 나는 고기를 거칠게 구워서 무쇠팬에 올린 채로 칼질해서 질겅질겅 씹으며 카우보이 흉내 내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네요.

부드럽게 먹는 건 그레인페드로도 충분하니까요.

추천수477
반대수17
베플새벽4시|2016.11.02 09:28
와..수비드 조리법 이야기도 많이보고 했는데 역시 글솜씨나 사진솜씨가 후덜덜하십니다. 늘 항상 잘보고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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