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1일 사랑하는 셋째 아들 신율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태어난 지 24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21일은 신율이로 인해 행복한 꿈을 꾼 날이고, 지난 3일은 정말 꿈이길 바랐던 날들이었습니다.
2016년 11월 9일
처음에는 화가 났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한**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습니다. 37.8도 미열로 입원했는데 응급실에서 경기와 동공이 풀리면서 바로 중환자실로 입원했습니다. 미열로 응급실에 갔는데 방금까지도 잘 울고, 잘 먹던 아이에게 경기의 징후가 보인다면서 응급실로 입원시키는 젊은 의사선생님이 미덥지 않았고, 별일 아닌 것 같은데 각종 동의서를 쓰고 아이를 검사한다는 병원이 그냥 화가 났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밴드에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셋째 신율이가 열이 오르고 경기가 있어서 한** 병원 소아 중환자실에 입원 했습니다 ㅠㅠ 별일 없이 퇴원 하도록 기도해주세요 ㅠㅠ” 그리고 내일이면 열도 내리고 일반 병실로 옮겨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점점 힘이 없어지고, 심박도 빨라지고, 동공도 풀리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났던 마음이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신생아들에게 자주 보이는 징후라는 말을 듣고 안심하면서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2016년 11월 10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다니엘 3:18)
응급실에서 하루 지낸 후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는 아들의 상태를 보면서 “하나님 우리 아들 건강하게 회복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면회를 가면 아들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자가 호흡이 안 돼서 기도에 호흡기를 삽입하고, 염증 수치는 높아지고, 심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되어서 오른쪽 뇌에는 뇌경색이 왔습니다. 기도와는 반대로 상태가 악화되는 아들을 보면서 ‘나의 기도가 완전히 내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 제목이 아버지의 주권과 뜻을 구하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아내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아내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 건강하게 회복되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그러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우리 내외의 바람과 다른 응답이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믿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해줄게요”라는 말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상태가 볼 때마다 안 좋아져서 마음이 안 좋은데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었습니다. 아들의 상태가 위험했는데도 불구하고 걱정하시는 분들은 “병원을 더 큰 병원으로 옮겨봐라.”라고 말해주셨고, 어떤 분들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건강해 질 거야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 거야.”라고 위로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우리 아이도 신율이랑 똑같이 아팠는데 회복 되었어.”라고 위로해주시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마다 지금 아들의 위독한 상황을 설명하고 내 입으로 아들이 죽어간다고 말하는 것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물론 모두 목사인 제가 심방 가서 했던 위로의 말들이었습니다. 그런 말로 위로가 될 거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기도해 줄게요.”라는 말만큼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도해 주세요.
2016년 11월 11일
“아빠”
병원에 입원한지 이틀째 되는 날 저녁에 면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병원에서 ‘빨리 와 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유턴해서 돌아가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의사와의 면담에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의 준비 하세요.” 의사 선생님은 우리 내외를 배려해서 말씀해주셨지만 생각만 하고 듣고 싶지는 않았던 이야기였습니다. 아들은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심장도 약물과 제세동기에 의존해서 뛰고 있었습니다. 밤새 병원에서 혹시 전화가 올지 몰라서 한 잠도 못 잤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긴장이 되어서 눈으로 심장 박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은 40년 넘게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을 새고 아내와 새벽기도에 가서 어떻게 기도할지 몰라서 하나님께 어린아이처럼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그냥 아이를 위한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와 “아들이 더 아프지 않게 보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은혜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있는데 병원에서 와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에 병원으로 가면서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와 면담을 하는데 지금 약도 최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산소 호흡기나 약물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회복되지는 못하고, 아이에게 고통만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심장 마사지인 제세 동기는 보통 아이들에게는 60을 넘지 않는데 신율이는 90을 해야 돌아온다고 하면서 ‘제세동기 시용 중지 요청서’에 서명을 하면 아이가 더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새벽에 기도 후에 아내와 나눈 은혜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용중지 요청서에 서명을 하고 사인을 하고 ‘관계’라는 란에 “아빠”라고 적는데 그 두 글자를 적기가 너무 힘들고 아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고쳐주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경기하는 아들을 오랫동안 보고 쓰다듬어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신율이가 너무 잘생기고, 내 아들로 태어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아주지 못해서 아빠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아내도 같은 마음으로 한 동안 중환자실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신율이는 부족한 목사 아빠에게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아 죽어가는 것을 보셔야만 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게 하려고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아내도 같은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서 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들로 아빠에게 안겨주고, 웃어주고 옹알이 해주고, 눈 맞춰주면서 평생 부모님께 할 효도를 다 한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신율아 정말 사랑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은 후로는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아들을 걱정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부 전화인데도 가슴이 철렁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보낼 준비가 된 것 같은데도 아들의 아파하는 얼굴을 보면 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녁에 아들을 보고 온 후에 금요 기도회에 가서 기도회 시작 전에 “하나님 우리 신율이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안아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에서 빨리 와달라고 해요.” 아내의 전화를 받고 기도를 멈추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입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끝도 없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신율이의 심장이 약물 없이는 전혀 뛰지 않으니 그만 보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아내와 그렇게 기도하기도 했고, 마음의 준비로 열심히 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줄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준비가 되지 않는 것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기를 하며 마지막으로 고통스럽게 숨을 쉬는 아들을 보면서 한 없이 울었습니다. 멋진 아들로 태어나 준 것이 고맙고,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호흡기가 달려있어서 안아주고 싶어도 마지막까지 못 안아 보는 것이 너무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아내와 아들이 조리원에서 나오면 ‘밤마다 아들이 울면 어쩌나?’라고 걱정했었는데 혼수상태의 아들을 보면서 한번 크게 울어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를 내 보내고 아들에게 투여되던 약물을 끊고 사랑하는 신율이는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안으로 아내와 저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2016년 11월 12일
괜찮아? 괜찮아.
큰 아들이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신율이 검사 결과 나왔어?”라고 물어봅니다. 아마 처음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검사했던 결과들이 토요일에 나온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는 토요일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큰아들은 항상 기도하면서 “토요일에 신율이 나올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했었는데 아마도 토요일 검사결과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아내가 눈빛을 보냅니다. “당신이 얘기해 주세요.”라는 뜻입니다. 큰 아들을 가슴에 안고 “신율이 천국 갔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앉아서 통곡을 합니다. 간신히 달래고 진정시키면서 동생의 죽음을 듣고 아파하는 형아들의 모습을 보는 고통도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참 울던 큰아들이 아빠에게 “나는 괜찮은데, 아빠는 괜찮지 않잖아?”라고 물어봅니다. 당연히 괜찮지 않죠. 그러나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어른들이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심장에 박힌 화살처럼 꺼낼 때마다 미안해서 아프고, 보고 싶어 그리워서 아프고, 아직 사랑해서 너무 아픕니다. 전에 스스럼없이 하던 말들이 있었습니다. 밥을 잘 먹지 않아서 가끔 먹여줘야 하는 둘째 아들에게 “이제 형아가 됐는데 혼자 먹어야지.”라는 말도 못하고, 말썽꾸러기 아들 둘을 보면서 “이제 아들이 셋인데 어쩌냐?”라는 농담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신율이의 이름이나 말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잊어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더 잘 알죠. 다만 아파서 꺼내는 것을 피합니다.
아내가 문득 “우리도 아이를 보면 이렇게 아픈데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면 아파하시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여섯 살짜리 둘째 아들은 신율이 천국 갔다는 말을 듣고 “예~”하고 기뻐합니다. 감사를 넘어 기뻐할 수 있는 둘째 아들의 믿음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신율이를 위해 사둔 용품들을 보더니 “신율이 다시 꺼내 달라고 투정을 부리네요.” 둘째 아들 때문에 웃다가 울다가 합니다. 아픈 손가락이 있는가 하면 기쁨이 되는 손가락도 있는 법이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손가락이 되도록 열심히 기도해야겠습니다.
만약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신율이를 보내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유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고, 책임을 물으려고 원망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들을 보낸 슬픔과 함께 우리 부부의 상처는 더욱 컸겠죠. 지금은 당연히 괜찮지 않을 만큼 슬프지만 누구의 책임도, 누구의 잘 못도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신율이를 보내신 이유와 신율이가 이 땅에 우리 아들로 온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있어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부모의 믿음으로 태어난 아들이기에 천국에서 영생의 복을 누릴 것을 압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이 영원히 사는 곳은 천국만이 아니라. 아빠의 가슴 속에도 살고 있음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2016년 11월 13일
꿈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자다가 새벽에 눈을 뜨게 되면 보통 알람 울릴 때까지 더 잠을 청했는데 사랑하는 신율이를 보내고 나서는 ‘방금 꾼 꿈이 뭐지?’라고 한참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꿈에서라도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깨서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작은 아들이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작은 아들은 꿈속에서 동생을 만났나 봅니다. 어제 밤에 교회에서 설교 준비를 하고 늦게 집에 들어왔더니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바로 작은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동생이 보고 싶다고 우는 바람에 온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답니다. 그래서인지 작은 아들은 새벽에 자면서도 훌쩍 거리고 웁니다. 혹시 잠에서 깬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 분명히 자고 있는데 꽤 오랜 시간을 훌쩍 거리네요. 그렇게 보고 싶은 동생을 꿈에서라도 오래 만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큰 아들은 잠들기 전에 “아빠가 신율이 돌아온다고 했잖아.”라고 책망합니다. 동생을 책임지지 못한 아빠를 원망 하는 것이겠죠. 그렇게 원망은 아빠에게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아들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아내가 건강한 두 아들을 보면서 “두 아들의 건강함을 감사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감사한 줄 몰랐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목을 찾아 감사하는 사랑하는 아내 덕분에 더욱 감사하고 평안합니다.
두려움
중 3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로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항상 기다려지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로 가는 발걸음은 많이 두렵습니다.
나보다 먼저 울어주는 사랑하는 교우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나를 아껴주고 위로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두렵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은데 위로하시는 분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내 자신이 두렵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고, 평소처럼 인사해주면 좋을 것을 다가와서 오랜 시간 팔을 잡아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눈물을 참는 것이 두렵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교회가 우울해 지는 것 같아서 두렵고, 아직 아들의 소식은 듣지 못하시고, 병원에 입원 한 사실만 아시는 분들이 물어보시는 아들의 안부에 내 입으로 아들의 죽음을 다시 한 번 꺼내야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오늘 우리 청년회 모임에서 청년들의 위로의 눈을 보면서 설교를 끝까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그래서 혀를 물어보고 하나님께 담대함을 구하는 기도를 여러 번하고 설교단에 섰지만 결국 울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보낸 다른 주일과 많이 달라서 어색합니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예배 시간 바로 직전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사무실로 피했습니다. 위로받으면 눈물이 나서 피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교우들의 마음과 그 사랑을 알기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고, 은혜 주시길 기도합니다.
......
한** 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3일간 아들을 눕혀놓고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장례식장의 태도였습니다. 처음 아들을 보내고 상담을 할 때, “화장장까지 가는 운구차를 가장 저렴한 스타렉스로 하면 35만원에 해주고, 운전기사 분께 직접 드리면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우리 교회에 장례 사업을 잘 아시는 집사님이 더 좋은 리무진도 25만원이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냥 누구도 마음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냥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례식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운구차 비용은 기사님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저에게 직접 주시면 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처음 말씀하신 것과 다르다.”고 말씀드렸더니 직원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럼 취소해 주세요. 아시는 분이 있어서 그 쪽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럼 내일 상주님께 직접 전달해 드려야 하니 영안실로 오셔서 직접 들고 가세요.”라고 합니다.
마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토라져서 투정부리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슬픔은 보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주는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주고, 웃는 사람들과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목사가 되기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2016년 11월 14일
너는 정말 아름다운 보석이야
어제 저녁에 담임 목사님과 전체 교역자님들이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집으로 오셔서 위로 예배를 드려주셨습니다. 그 때 담임 목사님께서 탈무드의 한 이야기를 예화로 들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보석을 하나님께서 도로 달라고 하시면 내어줘야 합니다. 신율이는 너무 귀한 보석이라 하나님께서 일찍 찾아 가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4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들 신율이는 세상 어느 보석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아들이었음을 보증합니다.
어제 저녁에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내외에게 하나님께서 큰 평안을 주셨음을 느꼈습니다. 아내가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마음이 평안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내일이 두려워요.”라고 했습니다. 나도 오늘이 두렵습니다.
11월 14일 아침 7시면 사랑하는 아들이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9시에 화장을 들어가면 한 줌의 재로 변해서 다시 아빠 품으로 돌아오겠죠. 하나님께서 이 평안을 끊임없이 주시도록, 그리고 아들을 담대하게 보내 줄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지난 토요일 점심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냉장고에 있던 목살을 구워주었습니다. 우리 두 아들은 식성이 정 반대입니다. 큰 아들은 완전히 한식 입맛이고, 작은 아들은 양식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바로 고기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기를 굽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우리 신율이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보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아빠지만 사랑하는 신율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는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잘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알지 못하는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다 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 사실로 위로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신율아. 너는 엄마랑 아빠에게 아주 짧게 맡겨진 하나님의 귀한 보물이란다. 엄마 아빠는 24일 동안 아주 잠시 맡아두었던 하나님의 청지기였어. 너를 안을 수 있어서 기뻤고, 너에게 분유를 먹여줄 수 있어서 감사했고, 네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었어.
안녕, 아들... 아빠가 정말 사랑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 전날 아내는 38.2도까지 열이 오르고 오한이 나는 젖몸살로 많이 아팠습니다. 신율이가 먹어야 하는 엄마의 모유가 먹어줄 아들이 없어서 아내를 아프게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내의 이마를 짚어봤는데 다행이 열은 떨어지고, 회복되었습니다. 아들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어서 힘을 낸 것 같습니다.
아들이 누워있는 영안실로 일직 가야해서 새벽기도는 가지 못했는데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평소 새벽기도 가려고 일어나는 시간에 잠을 깼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차가워집니다. 마치 아들을 처음 보내던 그 날처럼 긴장이 됩니다. 갑자기 눈물이 나서 화장실에서 울었습니다. 어제 예배 시간에 장례식 장에서 두 번의 부제 중 전화가 왔었습니다. 영구차 대금 관련 전화였는데, 내용을 알지 못했던 나는 장례식장으로 전화를 하면서 ‘혹시 아들이 다시 살아나서 장례식장에서 전화를 했나?’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아직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들은 이미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있는데 아빠는 아직 아들을 보내줄 준비가 덜 되었나봅니다. 새벽기도는 가지 못하지만 시간에 맞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들 잘 보내도록 용기를 주시고, 평안으로 덮어주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6시 1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매일 운전하던 내 차인데도 백미러 펴는 버튼 위치를 잊어버리고, 사이드 브레이크 푸는 법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을 했습니다. 그렇게 장례식장에 도착한 시간이 6시 35분, 지하 영안실로 갔더니 직원의 언성이 높습니다. 제가 늦었다는 이유였습니다. 6시 30분에 나가기로 하고 10분이나 늦었다고 기도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지만 뒤에 차가 밀려서 시간 없으니 기도는 하지 마세요.”랍니다. 1분만 부탁해서 겨우 기도만 하고 출발합니다. 아들을 영구차에 올릴 때 마음은 슬펐지만 직원의 행동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는 아빠의 눈물을 말려버렸습니다. 신율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금요일 밤에,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분명히 7시에 교회에서 기도만 하고 출발하겠다고 말씀 드렸었습니다. 그랬더니 “유족들을 최대한 배려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던 태도와 정반대입니다. 물론 그 때 상담했던 직원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만난 직원은 어제 “영구차 대금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던 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구차를 개인적으로 섭외하겠다고 했더니 “그럼 내일 6시 30분까지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7시에 출발하려면 미리 오라는 뜻’이라고 이해하고 추운데 오래 기다리는 것이 몸조리 중의 아내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약간 늦게 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어제 한 말이 우리가 정해 둔 시간을 직원의 마음대로 바꾼다는 뜻일 줄은 몰랐었습니다. 다행히 함께 섬기는 동역자들이 30분이나 일직 와줘서 기도만 겨우 받고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을 위로하러 왔던 사랑하는 친구들과 우리 청년들과 교인들은 아무도 못 만나고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운전을 해서 ‘수원 연화장 승화원’으로 이동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갔습니다. 수원 연화장은 상을 당한 교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주 갔었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길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보내는 마지막 길이 정말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내의 손을 잡아봅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손이 왜 이렇게 차냐고 합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봅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느낌의 긴장감이었습니다.
교역자들에게 미리 부탁드렸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원 화장장에는 우리 가족끼리만 가겠다는 부탁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함께 하고 싶어 하셨지만 거듭 부탁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랑하는 아들 신율이 앞에서 목사이기보다 아들을 보내는 아빠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들을 보내면서 감정을 숨기거나, 눈물을 참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한 사람이 들기도 가벼운 작은 나무 상자에 들어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아빠의 손으로 화장 아궁이로 들어가는 차에 올려줬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는 것도, 우리 아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알지만 아빠의 마음은 살아있는 아들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것처럼 아픕니다. 아내와 수원 연화장을 돌아보면서 가을 단풍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아내가 “우리 신율이 여기에 뿌려도 좋을 것 같아.”라고 합니다. 처음에 내가 그렇게 제안했을 때는 아내가 반대했었습니다. 아내는 화장터가 무섭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었나봅니다. 그런데 직접 와본 연화장은 가을 단풍으로 곱고, 깨끗하고,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아들을 이곳에 뿌려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들이 작아서 그런지 1시간 만에 화장이 완료되고 한 줌도 되지 않는 가루로 아빠 품에 다시 안겼습니다. 아들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속상하고, 너무 작은 분골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그곳에 아들을 뿌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지난 5일 동안 긴장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사무소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사망 신고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서둘렀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사망 신고서’를 보는 순간 또 눈이 뜨거워져서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앉아서 사망 신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사망한 사람과의 관계를 물어보기에 “아빠요.”라고 대답했더니 분위기가 가라앉네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빠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것 같아서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신율이의 출생신고는 40분이나 걸렸는데 사망신고는 10분 만에 끝났습니다. 사망 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 진짜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또 바보처럼 눈물이 납니다.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눈에 밟힌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아들이 중환자실에서 경기하며 숨을 헐떡이던 모습이 떠오르고, 눈을 뜨면 건강하게 아빠와 눈을 맞추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마 이제 다시 볼 수 없어서 더 눈에 밟히나 봅니다. 신율이를 통해서 ‘사랑’이란 것을 다시 배우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도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던 수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원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을 알게 해준 아들에게 고맙고, 아들을 통해서 사랑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신율이의 장례를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그동안 저희 가정과 아내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신율아 아빠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아들은 아빠, 엄마의 가슴과 기억 속에 영원히 함께 있을 거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