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엄청 긴 이야기가 될 거예요. 읽어주시면 감사하고 중간에 나가셔도 괜찮고 안 읽어주셔도 되요. 판은 캡쳐짤로 SNS에 돌아다니는 글들 몇번 읽은게 전부라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상하게 쓰더라도 그냥 저와 저희 엄마의 하소연좀 들어주세요. 누가 들어줄진 모르겠지만.
먼저 제 이야기 부터 해볼게요.
저는 18살 고등학생이에요.
뭐 어느 집이던 가정사가 있듯이 저도 가정사가 있어요. 저희 엄마는 두 번째 결혼이었고 아빠는 노총각이다가 마흔이 다 되어서 결혼했어요. 엄마한테는 딸이 셋이 있었기 때문에 저를 낳을 생각이 없었지만, 저희 친할머니가 손자 한 명은 낳아야 한다고 하셔서 저를 낳게 되었대요. 그런데 결혼 하고 얼마 안 지나서 아빠가 도박에 빠졌어요. 그러다 회사가 넘어가고 집이 넘어가고 그렇게 아빠는 순식간에 빚쟁이가 되버렸죠. 그래도 그 인간 도박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어요. 저를 도박장에 데려가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저만 할머니집에 맡기고 언니들 셋만 데리고 아빠와 헤어졌어요. 혼인신고도 안 하고 결혼식만 올린 결혼이라 이혼소송 같은 것도 필요없이. 저는 어릴 때 엄마랑 아빠와 함께 있었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정말 기억해보려고 해도 생각이 안 나요. 그냥 어릴 때 기억은 웨딩사진을 부시고 있던 아빠모습 정도... 할머니 집에 처음 맡겨졌을 때는 5살이었어요. 일곱 밤만 자면 온다던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엄마는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울면서 전화를 하면 항상 받아줬고 자주 만나주고 유치원 학예회를 해도 와주고... 딸 셋을 키워야 해서 밤이고 낮이고 일을 하면서 사달라는 걸 다 사주셨어요. 찢어질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던 엄마를 그 땐 어려서 엄마가 돈이 많나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그냥 그렇게 13년을 컸어요. 6살인가 7살 때에는 엄마가 보고싶다고 무작정 집도 나가보고 엄마한테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서 울다가 아빠가 마지못해 데려다줄 때엔 눈치도 보면서... 전철이나 지하철은 빨리 배웠어요. 엄마를 만나고 싶어서, 아빠 눈치 안 보고 엄마를 보고 싶어서.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아빠는 저를 혼냈어요. " 난 네가 나이 먹으면 엄마 집에 안 갈줄 알았다. " 라면서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조용히 울었어요. 아빠는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밥 그릇도 던진 적 있거든요. 아빠 얘기를 많이 하니까 아빠 얼굴을 많이 보는 줄 아실 거 같은데 아니에요. 일 년에 한 두번 정도 봐요. 보고 싶지도 않지만 지방에서 막일 하시 거든요. 제가 쓰는 비용은 생필품이나 핸드폰 요금은 엄마가 학비등등은 할머니가 주세요. 아빠는 아주 가끔씩 돈을 보내주고 며칠 뒤에 다시 가져가요. 할머니랑 저의 생활비는 큰아빠랑 고모한테서 20만원씩 받는 거랑 할머니 국민연금으로 한 달에 60만원으로 살아요. 중학교까진 학비가 무료였지만 고등학교부턴 아니여서 작년엔 돈을 지원 받았지만 올 해는 못받았어요... 그래서 닭갈비집에서 알바를 뛰기도 하고 그랬네요... 친한 친구들한테 저희 집 이야기를 하면 애들이 다 놀라요. 이혼한 가정 + 도박하는 아빠 + 가난한 집 + 이복자매들 ... 친구들은 그런 삼류드라마 같은 가정 속에서도 밝고 정상적이게 자란 네가 신기하다고 해요. 근데 아니에요. 저 안 밝아요... 외로움을 많이 느껴서 친구들 만나고 집 가는 길이 외로워서 가꿈 울기도 하고, 초등학교 땐 우울증 상담을 받고, 학교에서 하는 심리테스트를 보면 항상 자살군으로 나와서 상담도 받아요. 정말 죽고싶을 때가 많고 초등학교 때는 뭣도 모르고 감기약을 여러 알 먹으려고 해본 적도 있고 창문에서 떨어지려 한 적도 있어요. 근데 그럴 때마다 엄마를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서 열 여덟살이 됐네요. 어릴 때는 당연히 엄마를 원망했지만 커 가면서 다 이해하고 저는 엄마를 사랑해요. 언니들도 사랑하고 할머니도 사랑해요. 아빠는 잘 모르겠어요..금요일이 제 생일이었어요. 친구들한테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가족들한테는 축하 못받았어요.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진 않지만 그냥 그 날은 많이 서러웠어요. 시험 삼일 전이라 생일에도 야자를 하고 있는 내가, 석식 신청하는 돈이 아까워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 내가, 미역국은 커녕 가족에게 생일 축하를 받지 못하는 내가 너무 서러워서 야자하다 소리도 못내고 울기도 했어요. 그래도 하루 지나서 토요일 아침에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얘기도 듣고 축하도 받아서 다 떨쳐냈어요.
그런데 오늘 새벽 12시 반쯤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요. 술을 안 드시는 분인데 술에 취해서 자니? 물어보시길래 안 잔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엄마가 펑펑 울면서 너무 속상해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냐 했더니. 엄마가 대형마트에서 일하시 거든요. 그런데 마트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랑 싸우셨다고, 원래있던 마트보다 50만원을 더 줘서 옮긴 거였는데 거기 아주머니들이 텃세가 심하셨어요... 근데 1년 반 정도 보내다가 터진 거죠... 무슨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말하기론 서로 욕심 때문에 싸우게 됐다고 했어요. 근데 싸운 아주머니가 저희 엄마한테 ' 미친년 ' , ' 똘아이년' 해서 엄마가 화가 폭발하신 거죠. 그래서 엄마가 아주 밟아주고 왔다고 그런데 내가 왜 미친년 소리까지 들으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아줌마는 도와줄 남편이 있지만 나는 없다 하면서 엄청 울어서 저는 소리도 못내고 같이 울었어요. 엄마가 우는 거 외할머니 돌아가실 때 처음보고 두 번째 거든요. 그 때부터 저한테 엄마가 처음으로 하소연을 하셨어요.
엄마의 하소연을 제가 감히 대신 해봐요...
저희 엄마는 9살때 까지만 학교를 다니시고 외할머니가 바로 남의 집 식모로 보냈대요. 식모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보니까 동생이 넷이나 더 있었다고. 그래서 10대 후반부터는 일을 다니셨대요. 동생들 학교 보내려고. 엄마는 가난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저의 언니들의 아버지와 결혼 했어요. 단지 부잣집이어서 결혼 했대요. 외갓집을 좀 도와줄까 싶어서... 그런데 엄마는 참 복도 없어서 첫남편은 알콜중독자 였어요. 그래서 엄마랑 언니들이 매일 맞고 살았다고 해요. 엄마의 꿈은 그냥 결혼해서 집에서 가정을 돌보는 거였는데... 그래서 헤어지고 만난게 하필 또 저희 아빠였던 거죠. 원래는 저도 낳을 생각이 없었대요. 그런데 할머니가 손자는 낳아야 한다고 해서 낳으려는데 임신 중독증이 와서 온 몸이 부어 중환자실에 입원했었대요. 엄마는 전화로 울면서 " 나는 너희 아빠가 너무 미워. 아무것도 모르는 날 척박한 서울에 데려와놓곤 " 이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경상도 사람이셔서 가족도 다 경상도에 친구도 경상도에 있어서 저희 아빠랑 헤어지고 나선 아무도 없는 서울에 자리를 잡아야 했거든요. 근데 딸린 자식은 딸 넷이니 밤낮으로 일하느라 가장 어린 날 돌볼 수가 없어 할머니집으로 보냈다고 그래서 너는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어요. 7밤만 자고 데리러 올게 하고 나갈 때 할머니 집앞 대문에서 정말 한참을 울었었다고 ... 그 얘기 듣고 미친듯이 울었네요. 제 할아버지께선 제가 7살 때 돌아가셨는데 엄마는 너무 힘들 때마다 할아버지한테 하소연을 했대요.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께선 " 애미야 정말 미안하다. " 2년밖에 같이 못살았지만 저희 할아버지 정말 자애로우시고 따뜻한 분이시 거든요.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장례식장에 왔었어요. 그 때 저희 할머니가 집에 다시 들어오라고 했는데 저희 언니들은 두고 엄마만 집에 들어오라고 했었대요. 그런데 엄마는 애들을 절대 버릴 수가 없었다고. 솔직히 이게 당연한 거지만 힘든 일이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서울바닥에서 촌에서 올라온 여자 혼자 아이 셋을 감당하기가... 그래도 끝까지 키워내셨습니다. 엄마는 얘기를 하시다가 저한테 " 못된 엄마라 미안해. 널 두고가서 미안해 " 하시는데 나 이제 정말 괜찮다고 말하는데 어찌나 목이 메이던지... 술을 드셔서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시는데 엄마만 후련하다면 100번을 들어도 좋았어요. 엄마가 나도 마음 여린 여자야 하시는데 너무 슬펐어요. 엄마이기 전에 여자고, 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돈 버느라 한글 맡춤법도 잘 몰라 나이 50이 넘어서 밤마다 자기전에 한글연습을 하는 엄마가... 엄마는 전화를 끊기 전에 " ○○야, 엄마가 없어도 항상 씩씩하게 살아. 기죽지말고 씩씩하게 살아. 엄마가 경상도 여자라 표현을 못하지만 정말 많이 사랑해. " 하는데 요즘 백세시대라 오래살 거라고 장난으로 받아쳤지만 엄마가 혹시모르잖아... 이러는데 상상만해도 가슴이 철렁거려요. 나도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세상이 무섭고 짐이 되는 내가 싫으면서도 내 처지도 너무 슬퍼요. 그래서 새벽에 힘을 빌려서... 익명의 힘을 빌려서 긴 글을 썼어요.
쓴 김에 엄마한테 하고싶은 말도 적어볼게요.
낮이 되면 엄마한테 못 말할 것 같아서.
엄마, 나는 당신을 다 이해해요.
죽을만큼 힘들면서도 자식들 포기 안 하고 키워낸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그런 엄마가 나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나의 기둥이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엄마가 열 달 동안 날 품으면서 임신 중독증까지 걸려 고생하면서까지 날 지켜줘서 고마워요. 그 덕에 난 세상에 나왔고 세상은 살아가기 힘들지만 엄마 얼굴을 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요.
항상 강한 줄 알았던 엄마가 엄청 여리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그 때부터 난 엄마만 보면 목이 메어와요. 내 삶도 기구하지만 더 기구한 삶을 사는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얼른 자라서 내가 엄마를 지켜주고 고향에서 살게 해주고 싶어요. 이모들과 엄마 친구들이 있는 곳에.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이 되고싶어요. 내 욕심이지만 다음 생에도 나의 엄마가 되주세요. 정말 사랑해요
두서없이 쓴 글이라 어떻게 썼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글이 길어서 다 읽으신 분이 계실까 싶지만... 아무도 제 글을 보지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디에라도 말한 것 같아 속이 시원하거든요.
저는 이제 자야겠어요.. 기말고사가 하루 전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