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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라져간다..

공허 |2016.12.11 12:02
조회 225 |추천 1

여자를 사귀었다. 사귄다는 행위를 하는 것은 몇 년 만의 일이다. 나는 환희에 차있었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랑했다. 그러나 그러한 환희와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자 친구는 돌연 한 달 뒤 나에게 이별과 비슷한 무엇-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확실치 않다-을 건넸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가 물었다.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저 몇 년간의 공백을 깨고, 나만의 껍질을 깨고 이제 갓 빛을 보는 작은 아기 새와 같았다. 껍질을 깨고 나온 그 순간, 내 눈에 비치는 그 무엇이 되었든 나는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다른 여자여도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말했다. 그 전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실을 그녀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너였기에, 너이기에 좋아한다는 멍청한 말밖에 되풀이하지 않았다. 나는 어째서 그녀를 사랑하는가. 만난 지 1달도 안된, 사귄지 이제 한 달이 된 여자에게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왜 이토록 끌렸는가.

 

그녀는 내 어두운 일상 속에 들어온 태양과도 같았다. 여전히 반복되어가는 일상이지만, 태양이 일상을 비춤으로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행복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그러한 빛에, 고양감에 도취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태양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녀는 달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꺼진 빛에 나는 당황했다. 일상에 빛이 바랬다. 아니, 그녀가 달이된 것이 아니다. 달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해가지고 달이 뜨고...언젠가 다시 태양이 떠오르리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양은 희망이다. 다시 떠오르는 태양은 분명 같은 태양이지만 어제와는 다른 태양이다. 고도가 다르고 각도가 다르며 빛의 색도 다르다. 같은 태양이지만 확연히 다른 태양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과거의 태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와 처음 사귀기 시작 했을 때부터. 그녀라는 빛이 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갑작스럽게 내게서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진 빛을 나는 허공을 한없이 바라보며 되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며 스위치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허사다. 손은 허공을 가르고 입은 공허한 외침을 한없이 내뱉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태양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결코 전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당황하여 몸부림치고 있다. 그리고 더욱 겁이 나는 것은 다시 어두워진 나의 일상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적응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달을 통해 그 빛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달 또한 언젠가 사라지고 하늘에는 태양과 달 모두가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뒤덮을 것이다. 나는 다시 껍질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시 나를 껍질 안에 가두려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막이 내 마음을 감싸고 단단해지고, 마침내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껍질 밖으로 두 번 다시 나가지 못할 것이다. 태양을 잃어버릴 것을 알기에.

 

그녀는 나를 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밀어낼 건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는 밀려나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있다. 그러나 밀어내는 힘은 내가 감당하기엔 벅차다. 다리에 힘이 점점 풀리고 나는 언젠가 나가떨어져 완전히 그녀의 세상 밖으로 밀려나갈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한발자국 충실히 그녀의 세상과 멀어지고 있다. 버티는 나의 땀은 눈물이 되고 눈물은 나의 가슴에 떨어져 적신다. 그 눈물자국은 나의 힘을 점점 빼놓는다. 힘을 쓰면 쓸수록 나는 퇴화를 반복하여 결국에는 갓난아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갓난아기가 된 나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확실하게 떨어져 나가리라.

 

지친다. 점점 지쳐 포기하고 싶어진다. 다리에 더 이상 감각이 없다. 벽을 버티던 팔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사라져버린 팔 대신 몸통으로 내 다리를 지지하고 있다. 몸통이 스러져간다. 결국 나는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끝없이 끝없이 사라진다.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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