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의 너
더바
|2016.12.22 01:06
조회 1,867 |추천 19
내 친구의 친구였지만 급식실에서 두 번 본게 전부였던 너. 그런 너와 고3 같은 반배정을 받고 난 작년 같은 반 친구들과 지낼 생각만 했을 뿐 너는 관심 밖이었어.
반에 친구가 없던 너는 너의 친구이자 내 친구인 그 아이에게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잖아. 그 말을 듣고 바보같단 생각에 웃음이 나왔고, 그렇게 너와 난 조금씩, 조금씩 친해졌어. 친구도 친구지만 그때의 난 수능이 일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오로지 공부만 해야겠단 생각으로 고3이 되었지만, 나는 공부가 아니라 너에게 빠지고 말았어.너는 반에서 나말고 다른 친구를 사귀려고 하지 않았어. 친구 사귈 맘이 없다나 뭐라나. 난 그런 너가 그저 좋았어. 넌 고3생활이 다 끝나가는 마당엔 많은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난 상관없었어.그래도 넌 어딜가든 항상 내 옆에 있었으니까.그 당시엔 난 몰랐는데 너가 전 남자친구를 못 잊고 그리워하는 걸 알게되면서 처음엔 다 들어주면서 맞장구도 쳐줬는데 내 마음이 커가면서 공감하는 척하는 것도 점점 마음대로 안 되더라.
난 주말에 학원을 가서 평일엔 거의 매일 야자를 했고 넌 미술학원 때문에 수요일만 했잖아. 석식을 먹지 않는 너가 배고플까봐 수요일마다 간식거리 챙겨다 주면 세상 해맑게 먹던 널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더라. 야자하기 전에 꼭 한시간씩 자던 날 깨우는 건 너의 몫이었고, 잠결에 듣는 너의 목소리에 취해 더 깊고 행복한 꿈을 꿨던 날 너는 알까. 야자시간에 배고프다고 찡찡댈 때 학교 앞 편의점에 데려가 라면 사줬던 날, 그 때 너와 나눈 소소한 얘기들,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너의 뒷모습, 더운 여름날 저녁 학교 벤치에 앉아 내 무릎에 누운 너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재잘거리던 널 바라볼 때. 순간 세상에 너와 나 둘만 남겨진 공간같았고 그 날이 처음으로 좋아한단 말이 툭 튀어나올 뻔했던 날이었어. 너와 함께하는 매 순간순간이 나한텐 가장 소중해서 정말 작은 일도 기억에 남기려고 애썼어. 가끔 민낯일 때 강아지같은 너의 눈, 필기할 때 펜을 꼭 쥔 하얗고 가는 손마디, 통화할때 그 목소리, 너한테서만 나는 특유의 향기, 내가 짜증낼 때마다 삐죽거리던 입술, 유독 나한테만 보이던 애교. 이 모든 것들이 충분히 날 착각하게 만들었지만, 결국엔 다 부질없더라. 서서히 일방적인 내 마음에 내가 지치기 시작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못난 마음은 항상 널 향해 있었어.
집에와 피곤에 쩔어 침대에 누웠을 때마저 너가 보고싶어서 전화를 걸었고, 밤에 들은 너의 목소리는 내가 지금껏 들은 목소리 중에 가장 예뻤어.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에도 나는 너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어. 마음 접기로 한 결심만 열 번 넘게 했을거야. 하루는 너가 집에 빨리 간다해서 딱 교문까지만 데려다줬잖아. 혹여나 가다가 넘어지지 않을까, 애 녹는 마음에 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보고있었어. 그 때 느꼈는데 난 항상 너의 뒷모습만 보고있더라. 차마 옆에 서지 못하는 바보. 병신.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야자실가는 내내 울었어. 그렇게 9개월동안 난 항상 너의 곁에 있었는데 넌 모르더라 내 마음을. 너한테 난 그저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널 보는 시간을 공부하는 데 더 쏟았으면 이렇게 수능을 망치진 않았을거야. 그렇다고 이제와서 널 원망하진 않아. 넌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줬거든. 그걸로 충분해. 생각해보면 작은 추억들이 많은데, 이 추억들은 내 기억속에만 있을거야. 지금 넌 남자친구를 사겼고, 난 축복을 빌고있어. 너의 남자친구가 널 울리지 않길. 내가 해주고 싶던 모든 것들을 너에게 해주길. 너가 세상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길. 고마웠어. 이렇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줘서.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9개월동안의 고3짝사랑 얘기에요. 요즘 그 아인 바빠요. 실기 준비하느라, 남자친구 만나느라.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진 밤이 되면 그 아이만 생각나네요. 언젠간 잊힐 수도 있는 내 이야기를 어디에라도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는데 그저 좋게 봐주셨음 좋겠어요. 그럼 모두 좋은 밤 되세요.
날이 따뜻해서 너와 함께 거닌 산책이 좋았고, 날이 찌는 듯해서 너와 함께 먹은 아이스크림이 좋았고, 날이 서늘해서 널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 좋았고, 날이 쌀쌀해서 너의 곁에 그 사람이 든든해서 좋아. 널 좋아했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