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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오리지널 체리 쥬빌레

Nitro |2017.01.04 17:16
조회 79,299 |추천 432

간혹 가다가 내가 지금까지 상식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이 실제로는 잘못된 정보였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과자인 줄 알았던 빼빼로가 사실은 일본 과자인 포키의 카피 제품이었다거나

우리말인줄 알고 있었던 호랑이가 알고보니 한자어였고, 순우리말은 범이라거나

감자칩인 줄 알았던 프링글스가 법적으로는 감자칩이 아니라거나 하는 것 말이죠.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휩싸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경험입니다.

체리 쥬빌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

베스킨라빈스에서 개발한 제품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사인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 1846~1935)가 만든 레시피였다는 거지요.


가장 먼저 오렌지 주스를 만들어 줍니다.

시중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를 구입해서 만들어도 되긴 하는데, 이 경우에는 진짜 오렌지 주스인지를 확인하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오렌지 향만 입힌 설탕물도 많고, 100% 오렌지 주스라고 광고하는 제품들도 농축액에 물 탄 경우가 많거든요.

운반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오렌지 과즙에 열을 가해 졸여서 농축한 다음, 지역 공장에서 물을 타서 포장하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맛이나 향이나 영양소의 손실이 오지요.

NFC(Not From Concentrate) 제품을 구입하거나 아예 속 편하게 오렌지를 직접 짜먹는 게 좋습니다.


체리 아이스크림인 만큼, 당연히 체리도 준비해야 합니다.

체리 씨를 제거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빨대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일반 빨대는 너무 얇아서 힘들고, 좀 두껍고 단단한 빨대를 이용해서 꼭지 부분을 통해 씨앗 있는 부분까지 뚫어 준 다음

반대편 끝에서 다시 빨대를 꽂아 밀어내면 씨앗이 빠져나옵니다.

그나마 체리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씨를 뺄 수 있지요.


버터 약간을 팬에 녹이고 설탕과 오렌지 주스, 오렌지 껍질을 갈아 만든 제스트, 그리고 체리를 넣고 끓여줍니다.

체리가 안쪽까지 뜨겁게 다 요리되고 소스가 졸아들 때까지 가열합니다.

좀 더 걸쭉한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 옥수수 전분(Cornstarch)를 넣기도 합니다.


소스가 거의 다 완성되면 불을 줄이고 체리술(키르쉬)를 붓고 불을 붙여서 플람베합니다.

요리하면서 불을 붙이는 게 인기가 많은 퍼포먼스이다보니 레스토랑에서는 아예 이동식 버너를 이용해서

웨이터가 테이블 사이드 서비스를 해 주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https://youtu.be/Pf0smT1MoT4).

일부러 불길도 좀 높이 올리고, 시나몬 가루를 슬슬 뿌려서 불꽃놀이도 해 주는 게 두둑한 팁을 받는 방법이지요.

가스 스토브였다면 그냥 팬을 살짝 기울이는 것 만으로도 불을 붙일 수 있는데,

전기 스토브라 토치나 성냥을 써서 따로 불을 붙여야 한다는 게 조금 번거롭기는 합니다.

그래도 플람베를 해 주면 재료들의 맛이 한데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왠지 더 깊은 맛이 나기 때문에 빼 놓을 수 없는 과정입니다.

다만, 알콜을 이용해서 불 쇼를 하는것이니만큼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병 채로 술을 들이부으며 불을 붙이고 자기도 한 모금 마시고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초보자가 집에서 그렇게 따라하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요.

샷 글라스에 부어서 팬에 술을 두르고 살짝 끓여서 알콜이 증발하기 시작하면 그 알콜 증기에 불을 붙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폭발하듯 불길이 치솟아 올라와도 놀라지 않는 게 중요하지요.

재료에 바로 부어버리면 술이 재료에 스며들어서 알콜 맛이 날 수도 있으니 요리 재료를 피해 팬에 부어서 불을 붙여줍니다. 

요리에 맞는 술을 이용해서 플람베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예를 들어 디저트 종류를 플람베 할 때는 과일 브랜디를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전에 만들어 두었던 아이스크림(http://40075km.tistory.com/71)을 한 스쿱 넉넉하게 떠서 유리잔에 올린 다음 완성된 소스를 부어줍니다.

아이스크림 위에 체리 소스밖에 없어서 좀 허전해 보이기는 하는데, 따로 장식을 하지 않는게 전통적인 요리법인 모양이더군요.

평소에 먹던 베스킨라빈스 버전에 비하면 소스와 아이스크림이 좀 따로 노는 느낌인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이 있습니다.

플람베를 통해 우려낸 체리 소스에서 나오는 깊은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거든요.

뜨거운 소스와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섞이는 걸 보니 왠지 카페 아포가토가 떠오르기도 하는 메뉴입니다.


1887년 당시 에스코피에는 파리를 떠나 런던에서 주방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마침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50주년이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에스코피에는 여왕이 즐겨 먹는 체리를 이용해서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게 되지요.

그래서 붙은 이름이 체리 쥬빌레(Jubilee: 기념제).

처음 레시피에는 아이스크림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먹는 것이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베스킨라빈스에서 그 이름을 따서 메뉴를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에스코피에의 명성에 묻어가려는 것처럼 보여서 좀 얌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레시피에는 애초에 저작권이라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고생해서 개발한 새로운 요리법을 남들이 다 따라해도 돈 한 푼 받을 수 없다는게 어찌 보면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만

의외로 많은 요리사들이 요리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자신의 레시피를 아낌없이 공개합니다.

여기에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손님의 입 속에서 사라지는 자신의 작품을 길이 남기고자 하는 열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술이나 음악과는 달리 개인의 미각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펼쳐지는 일회성 예술이기에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좀 더 오랜 기간동안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욕구가 요리법을 공유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닥 어려울 것 없는 간단한 과정만으로도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체리 쥬빌레 역시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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