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할머니 제사였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제사상 차례상 다 제가 준비 했었는데(부모님이 어려서 이혼하신 관계로) 결혼하고 나서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언니와 남동생과 나눠서 준비하고 있어요.
결혼하기 전에 집안의 대소사를 제가 책임지고 있는걸 신랑은 이미 알고 있었고, 결혼했으니 친정 제사와 명절에 천천히 손을 떼어내는 연습 중인 상태입니다. (이거 생각보다 많이 속상하더라구요. 내 식구 일에 손 떼는게)
언니는 교대근무를 하는데 마침 제사있는 날 휴무라고 하여 저는 직장에 휴무를 쓰지않았고(연차 월차 개념이 없는 직장이라 평일 휴무 쓰기가 어려운 직장입니다) 언니와 아버지 둘이서 준비를 했죠.(남동생도 직장인)
퇴근하고 가보니 신랑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저 도착하고 한시간 이내에 남동생이 도착했고 아버지께서는 다음날 다들 출근이고 하니 일찍 제사를 지내자며 9시 쯤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 지내고 다같이 밥을 먹고 다들 잠시 포만감을 만끽하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아직 밥상 그대로 앉아있는 상태) 신랑이 저보고 가자고 하더라구요.
저는 한번도 시댁에서 먼저 집에 가자고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신랑이 가자고하면 오히려 좀더 있다가 가자고 한 경우는 있어도 먼저 가자고 이야기 한 적이 없는데 신랑은 그 말을 참 잘해요.
아버지 댁에서도 엄마 댁에서도 밥먹고 잠시 쉬고있으면 먼저 가자고 말을 해요.
사실 그것도 좀 늘 서운한데 하필 제사였고 언니랑 아버지 둘이서 음식 준비를 했는데 (간소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이며 탕이며 국, 생선, 산적 같은건 직접 하심) 결혼한 둘째딸 내외가 와서 제삿밥만 먹고 상도 안치운 상태에서 가자고 하길래 '아직 상 안치웠는데..음식 도와드리지도 못했는데 치우고는 가야지..'
라고 하니 언니가 드라마 한편만 보고 하면 안되겠느냐고 웃으며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신랑이 안된다고 그 드라마 끝나고 웃찾사 하는데 그럼 그것도 못본다며 가야한다는 거예요.
솔직히 기분 상했지만 가족들 다 있고 해서
그럼 우리 드라마 한편만 보고 치우는 동안 당신 웃찾사 보고있음 되겠다~ 하고 농담스레 말하니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하자는 겁니다.
거기서 제 인내심에 한계가 왔어요.
친정에서 신혼집까지 30분이면 가요.
결국 언니와 남동생이 슬금슬금 일어나 상을 치우기 시작했고 (아버지도) 신랑은 설거지를 하려는지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통 그릇을 만지작 거리는 거예요.
당장 빨리 치우고 가자는 듯한 신랑 행동에 너무 서운하고 화가났어요.
내가 할테니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는 설거지를 마쳤어요.
그동안 안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구요.
설거지 마치고 짐 챙기고 가자고 했더니 졸다가 일어나서는 니가 이렇게 화를 내고 가면 자기 기분이 어떻겠냐는 거예요.
내가 지금 당신 기분 생각할때인가 싶어 너무 어이없어서 말도 안나오더라구요.
결국 너무 화가난 상태에서 한마디도 안하고 집에 왔고 집에 도착한 신랑은 진통제 하나 꺼내서 먹는것 같더라구요.
아파서 빨리 집에 오고 싶었나봐요.
아니 그러면 친정집 방이 세개나 있는데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방 저방 활보하고 다니면서 왜 하필 그날만 방에 절 따로 불러서 몸이 안좋으니 빨리 정리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못하냐구요.
하필 왜 식구들 앞에서 굳이 웃찾사 핑계를 대며 가자고 했어야 하느냐구요.
신랑은 참 착하고 붙임성도 좋지만 말이 많아요. 참 너무 많아요. 했던말도 참~ 여러번 해요. 또 하고 또 하고.
말이 많아서 주변 사람들이 신랑 가벼워 보인다고도 해요.
어쩌다 한번 만난 친구도 '니 신랑 말 많더라' 라고 할 정도예요.
백번 천번 잘하고 수백번 선물공세 해놓고 말 한마디로 이 모든 수고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사람이예요.
문제는 아직도 제가 어느 대목에서 화가 나 있는지를 몰라요.
그 사람 말에 늘 상처받고 속상하고 창피하기까지 한 이 상황이 이젠 지겹고 이제는 왜 화가 났는지 다른 방법일 순 없었는지 설명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가 이상한가 싶어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남자인 사람도 웃더라구요. '그건 좀 그렇다~ 따로 말을 하지' 라고 하며..
여자인 사람들은 굳이 다른 방법으로 알릴 수 있었는데 식구들 있는데서 그렇게 말했느냐며 덩달아 어이없어 했구요.
신랑을 아는 어떤 사람들은 '니 신랑 말하는거 가끔 나도 좀 그래 나도 느껴' '말만 앞서고 말부터 내뱉고 결과는 없는 사람이더라 그래서 사람 기대하게 했다가 허망하게 느껴지게도 한다' '그래도 어쩌냐 니 남편인데' '니가 참아야지 못고친다' 라고 해요.
직장도 안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데 '짤릴지도 몰라' '팀장이 그만둔대 그럼 나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데' 라는 말을 쉽게 해요. (그 사람 입장에선 어려웠을 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그 팀장이라는 사람은 어느 직장에서나 하듯 열받으면 '아 때려쳐야지 이놈의 회사' 하는 걸로 들리는데..
결혼하고 일년새에 두번이나 회사를 옮겼는데 그런 말을 자꾸 들으니 저도 조마조마 하구요. 듬직하지 못하구요..
결혼하고 싸운 대부분의 이유가 신랑의 말 때문이였던 것 같네요..
근데 전 정말 너무 지쳐요. 그럴 때마다 조금씩 애정도 식어가고 있어서 큰일입니다.
너무너무 속상해서 여기에라도 털어놓고 싶었어요..
아직도 제가 왜 화가 나 있는지 모르는 저 남편이 정말 답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