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파이몬.”
내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쥐었다.
“전부 진실이니까요.”
“예?”
파이몬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칼자루를 잡아 파이몬의 목덜미에 힘껏 찔러넣었다.
붉은 피가 공중에 흩날렸다.
순간, 파이몬이 비명을 토해냈다. 그것과 동시에 내 몸을 껴안은 파이몬의 손길에도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하나하나. 열 개의 손가락 전부가 등줄기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파이몬이 미약하게 신음했다.
“단, 탈리안……?”
나는 단검을 휘둘러서 파이몬의 등에 꽂았다. 칼날이 파이몬의 몸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하윽, 하고 파이몬이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그녀의 속에서 분출된 핏물이 내 손장갑을 축축하게 적셨다.
평범한 단검이 아니었다. 치명적인 맹독이 묻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파이몬의 뒷목에 칼날을 쑤셔넣었다. 그러자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서 있었던 파이몬이 힘을 잃고 허물어졌다.
그녀의 무너지는 몸을 내가 왼팔로 지탱했다. 파이몬은 아주 서서히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내 왼팔에 안긴 채 망연자실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으……흐크읍, 프흑…….”
파이몬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녀의 말은 목에서 쉴 새 없이 뿜어지는 핏물에 가로막혀서 미처 발언되지 못했다. 그저 하염없이 피거품을 토해낼 따름이었다.
“노예제는 전면적으로 폐지될 것입니다. 마족도, 인간종도, 어떠한 예외도 없이. 바르바토스가 노예제 폐지에 동의하는 대가로 요구한 것이 바로 당신의 목숨입니다.”
“흑, 하프흐읍……커흑…….”
“만인의 해방보다 저 한 명을 더 소중히 여긴 시점에서, 파이몬.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내가 파이몬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전에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회였어요, 파이몬.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제는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단탈, 리안……흐끄으윽……단, 탈리안…….”
“그러니 제가 당신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날밤에 약속한 것처럼. 영원히.”
파이몬이 천천히 오른팔을 들었다.
그녀는 내 뺨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피가 묻은 파이몬의 손바닥은 평소보다 더 뜨거웠다. 그녀의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사랑, 해요…….”
“…….”
“사랑해요……울지, 마세요……단탈리안…….”
그리고 파이몬의 손이 스르르 아래로 떨어졌다.
내 뺨에 길게 피의 붉은 궤적을 그리면서, 한없이 낙하했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내 품안에서 느껴지던 무게도, 고동도, 감촉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곳에 남은 것은 더 이상 파이몬이 아니라 그녀가 남긴 일종의 여진과도 같은 떨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