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와이프를 무시하는 본가에 앞으로 명절땐 안 가려 합니다.

ripcity882 |2017.01.30 01:48
조회 8,106 |추천 25

(본가, 고부갈등 관련 글인데 남자라서 결혼/친정/시댁 카테고리 선택이 안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 3년차 31세 유부남입니다.

 

오늘부로 본가에서 앞으로 오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네요.

 

 

 

저는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자랐고, 그 분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며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학창시절에 이혼하셔서 친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습니다.

 

친할머니는 제게 부모님 이상의 존재였으며 항상 저를 위해 희생하며 사셨죠.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들 또한 부모처럼 저를 보살펴주신 덕에 부모님이 안계심으로써 오는

 

결핍감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유대는 제가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붕괴되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와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들은 남들 처럼 학원도 다니지 않고 서울의 중상위권 4년제, 초봉 4500이 넘는

 

대기업에 들어간 저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래서인지 제 여자친구(현 와이프)를

 

무시하는 언행을 종종 던지고 깔보는 태도도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너희 결혼 반대한다.',

 

'결혼이 너네 둘이 하는 건줄 아냐'는 둥 심지어 와이프한테 '우리 입장에서는 니가 순진한 우리

 

oo이(제 이름)가 어리고(와이프는 저보다 2살 연상입니다) 4년제 나오고 굴지의 대기업 

 

다닌다고 홀려서 결혼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둥 상식을 넘어서는 비하 발언도 망설임

 

없이 하셨죠. 제 와이프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서 문과대학을 나와 비정규직일을 해왔지만,

 

단 한번도 부끄럽다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만나고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법, 꼼꼼하고 몇 수 앞을 그리는 사고방식, 당당함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그녀를 정말 사랑하고 존경해요.

 

저희 본가 어른들의 행태는 누가보면 제가 무슨 국회의원 아들이라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저는 등신같은 효자였기에 그런 막말들로부터 와이프를 제대로 보호해주지도 못하고

 

그저 둘이 있을 때 와이프를 위로하면서 '미안해', '좀만 힘내자', '앞으로 좋아질거야'라는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였지요. 그러면서 할머니와 친척들에게 'xx이(제 와이프)한테 그런 말

 

제발 하지 마라', 'xx이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쁘게 좀 봐줘라', '내 사촌 여동생들이 시집

 

갔는데 시댁에서 그런 소리하면 기분 좋겠냐' 등등 '소심한 저항'을 하면, 그 분들은 '에이~

 

우린 xx이가 이쁘고 장차 우리 식구 되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다' 등 제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언행이 불일치한 모습만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지요.

 

1. 와이프가 다니는 직장은 특성 상 주말과 명절이 가장 바쁩니다. 그래서 설이나 추석 때 휴가를

 

내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직원들 중 절반 정도는 명절 당일에 일을 해야 하는데 누구나 명절때는

 

쉬고 싶기 때문이죠. 작년 설에는 도저히 휴가를 낼 수 없고 저도 발전소 교대근무 때문에 저희 둘

 

다 본가에 가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는 '니가 고생이 많다. 밥 잘 챙겨먹어라' 하시면서

 

와이프에게는 '넌 아무리 바빠도 시댁에 와서 큰어머니랑 나를 도와 일을 해야 하지 않냐?

 

친정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냐', '큰어머니가 내색은 안했는데 많이 섭섭해 한 것 같더라'는 등의

 

말을 하셨습니다. 노느라 못 간 것도 아닐 뿐더러, 제 와이프도 장인, 장모님의 귀한 장녀인데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요?

 

2. 항상 와이프가 친정에 가거나 연락하는 걸 중요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직장 때문에 

 

명절 연휴를 다 쉬지 못해서 본가와 처가에서 짧게 짧게 있다 집에 내려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할머니와 큰아버지는 종종 처가댁은 명절 전주나 다음주에 가라고 하십니다. 할머니는

 

'여자는 시집가면 친정을 잊고 시댁의 한 가족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시네요.

 

너무 슬프고 화가 났지요. 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와 친척들이 사실은

 

저를 철저히 무시한다는 것 때문에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무시하고 인격에

 

상처를 주니까요.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도 생각했어요. 저희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으셔서 명절 때마다 본가에 와 있으셨으면 할머니나 친척들이 그런 언행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아들이 나중에 결혼한다면, 본인 아들의 와이프에겐 그렇게

 

모욕적인 언행을 할까? 라구요.

 

3. 이번 설에 본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집에서 본가까지 거리가 멀고 길도 많이 막혀서 6~7을

 

달려 밤 8시쯤 본가에 도착했지요. 솔직히 어른들 앞에서 내색은

 

안하려고 했지만 매우 피곤하더라구요. 그런데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가자마자 음식을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얼른 먹고 설거지랑 청소 등은 저희가 모두 맡아서 하기로 했죠. 그때

 

큰어머니가 저희에게 부침개를 먹으라고 하셨어요. 와이프가 감사하다고 했는데 큰어머니가

 

정색하시며 '너가 갖다먹어'라고 하시더라구요. 순간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국

 

또 와이프를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큰 어머니가 와이프한테 계속 무언가를

 

시키시더라구요. 처음엔 그냥 일을 가르쳐 주느라 그런줄 알았지요. 저는 옆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구요. 그런데 자꾸 할머니가 설거지는 제 와이프한테 마무리하라고 하고 거실에

 

앉아서 쉬라고 하시는 겁니다. 큰아버지도 계속 저한테 이리 와서 티비나 보라는 제스쳐를

 

하시더라구요. 아니 부부가 일을 같이 해야지 누구는 쉬고 누구한테만 일하라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웃긴건 사지 멀쩡한 20살 넘은 사촌 동생은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차례가 끝나고 아침을 먹자마자 본가에서 나왔습니다. 와이프는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았습니다만 애써 참고 있는게 보였어요. 면전에서 날아오는 모욕적인 말들을

 

남편이란게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해서 달달한 것도 사주고 오락실에 가서

 

힘 쓰는 게임들도 같이 하면서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어주었지요. 그럼에도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고 참 이렇게 무능력한 놈이 결혼은 왜 하자고 해서 이 고생을 시키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무기력해지더군요. 그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고 처가댁으로 갔어요. 여느 때와 같이

 

장모님과 처제는 진수성찬을 대접해주셨습니다. 장인 어른도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지요.

 

정말 본인의 딸이 시댁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아실런지.... 장인, 장모님께 항상 면목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 본가가 와이프한테 하는 행동들이 너무 비상식적이고

 

시대 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하고 고작 만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와이프는

 

상처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하물며, 지난 2년 동안에도 그랬는데 향후 수 십년 동안은

 

도대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많은 어머님들이 겪었던 것처럼 그저 여자니까,

 

며느리니까 무조건 참고 지내야 하나요?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가댁 갔다가

 

잘 내려갔다. 큰아버지네는 잘 가셨냐 등등 안부를 먼저 물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하게

 

본론을 꺼냈어요. 할머니와 친척 어른들이 와이프한테 하는 말과 행동들이 와이프한테

 

상처를 준다. 와이프가 상처를 받으면 내가 상처를 받는다. 본가 사람들이 와이프를 하인처럼

 

생각하는게 너무 화가 난다. 차라리 그럴거면 왜 명절에 오라고 하냐. 그냥 나 혼자 오고

 

식모를 쓰는게 나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예.. 뭐 말하다 보니 저도 많이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격분하셨습니다. 너네가 맨날 일 때문에 늦게 와서 큰어머니가 음식 다 만든다. 너네는

 

늦게 와서 설거지 꼴랑 그거 하는게 전부 아니냐? 큰어머니가 xx(제 와이프)한테 일 잘 배우라고

 

가르쳐 주는게 뭐가 갈구는 거냐? 그러면 xx이는 시댁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밥만 먹고 가냐?

 

여기가 무슨 여관이냐?... 새로 안 사실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설거지 하려고 고무장갑을 갖고

 

온게 상당히 마음에 안 드셨던 것 같습니다. 대식구도 아니고 7~8명 밖에 안되는 인원수

 

밥 먹은거 설거지하는데 무슨 고무장갑까지 갖고 오냐? 맨손으로 설거지 하면 큰일나냐?

 

(그깟 설거지 하는데 유세부린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아니면 와이프가 자기한테 일시킨다고

 

시위하는 거라고 생각하셨던 걸까요?)고 하시네요.. 또 하나 더 말씀 하시더라구요.

 

제가 너무 피곤해 보였는지 할머니가 저보고 자러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저녁 10시 10분

 

쯤이었어요. 그래서 와이프한테 자자고 하고 인사 드리고 자러 들어갔죠. 그런데 저희가 자러

 

들어가니 갑자기 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보니까 만두를 만드는 것 같더라구요.

 

오밤중에 갑자기 왠 만두일까라고 생각이 들었지요. 와이프는 누워있다가 저에게 나가서

 

도와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저는 그냥 자자고 했어요. 어른들이 봤을 때 제가

 

참 눈치 없는 행동을 했나 하고 잠깐 생각하고 잤어요. 할머니는 역시 전화로 그 때 저희 행동을

 

크게 나무라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제가 자더라도 제 와이프는 눈치가 있으면 나와서 일을 도와야

 

하는게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그럴거면 자러 들어가라 하지 말고 만두 만들고 자라고 하던가요.

 

무슨 군대도 아니고 알아서 기라는 겁니까? 또 할머니한테 말씀 드렸지요. 이렇게 큰어머니나

 

할머니나 와이프나 다 고생하고 서로 감정 상하고 그럴 바에 차라리 제사 음식을 각자 나눠서

 

사자구요. 굳이 이렇게 집에서 대량으로 만들면서 서로 스트레스 받고 그래야 하는게 명절이라면

 

당사자들 편하게 바꿔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요. 할머니는 또 그러시네요. 음식을 준비하는건

 

제사도 목적이지만 추석이나 설 당일 이후에 고모들이 오면 그 음식들을 나눠주는 것에도

 

의의가 있는데 산 음식은 맛이 없다. 맛 없는 음식을 줄 수는 없으니 직접 해야 한다구요.

 

통화 마지막에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내가 너를 참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속이 좁아

 

터졌는지는 몰랐다. 니가 그렇게 명절 때 오기 불편하면 앞으로 오지 마라. 안 기다리겠다.

 

너희가 최소한의 도리도 안 지키고 그냥 놀다만 가려한다면 그냥 처가댁에만 가라.'고 하셨어요.

 

참 답답했습니다. 저희가 왜 도리를 안지키려 할 것이며 저희가 왜 일을 안하려고 하겠습니까?

 

본가 식구들이 와이프를 따뜻하게는 아니라도 최소한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해줬다면,

 

와이프도 남의 집 귀한 딸이다 정도만 생각했다면 저나 와이프가 무슨 큰 불만을 가졌겠습니까?

 

하지만 통화할 때는 애석하게도 할머니한테 그 말은 제대로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제 와이프를

 

생각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아예 고착화돼서 그 어떤 말로도 할머니의 맘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7~80여년간 살아오시면서 쌓아가신 유교사상, 남존여비, 남아 선호사항

 

등을 어떻게 깨부실 수 있겠어요. 할머니한테 얘기했습니다. 더이상 와이프가 고통 받는걸

 

지켜보기 힘들다. 난 이제 한 집안의 가장이고 와이프는 내가 보호해야 할 식구다. 그런데

 

본가 사람들은 내 식구를 모욕한다. 그건 가장에 대한 모욕이다. 할머니와 친척 식구들을

 

사랑하고 그동안 아껴준게 고마운건 변치 않는다. 하지만 와이프한테 한 행동과 말들은

 

정말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앞으로 명절 때 와이프가 올라가는 일은 없을 거다. 라구요.

 

할머니도 격노하시면서 앞으로 저도 오지 마라 하시네요. 연락도 하지 말고 기다리지도

 

않을 거라 하시면서요. 저는 알겠다고 하고 통화는 그렇게 끝났어요.

 

그게 몇 시간 전 일이었습니다.

 

하... 여러가지 감정이 머릿속에서 헤엄치네요. 지금껏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린 마음에 감정 컨트롤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와이프와 저의 편향적인 생각만

 

할머니한테 배설했나? 내가 미친놈인가? 부드럽게 고부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내가 다 망쳐버렸나? 모기 물린데에 버물리를 바르지 않고 살을 다 도려낸 격인가?

 

다른 집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그런데 그렇게 막연한 상황에서도 저희 본가의

 

행동은 옳지 못하며 이대로 세월이 흐륵수록 저와 와이프의 관계와 서로의 내면만

 

황폐화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혹시 와이프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언젠가는 마딱뜨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을까요? 김수영 시인 말마따나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 것일까요? 어쨌든 와이프에게 앞으로 상처를 덜 줄 것 같아 다행인 것 같습니다.

 

아마 내일 쯤에는 큰아버지, 고모 등등 으로부터 비난 전화가 쇄도할 것 같네요.

 

할머니한테 드렸던 말씀을 모두에게 똑같이 드릴 생각입니다. 최대한 침착하게요.

 

그리고 나중에 본가 식구들과 화해를 하더라도 명절 때 와이프는 데리고 가지 않고 싶네요.

 

 

 

만약 여기까지 길고 두서 없는 하소연 글을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딱히 조언을 구하는 글은 아니에요. 그냥 답답하고...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고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싶었어요. 벌써 새벽이네요.

 

설 연휴 즐겁게 보내셨는지, 혹은 갈등을 더 키우셨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밤은 좋은 꿈 꾸시기 바랍니다. 내일 출근하시는 분들은 명절 후유증 잘 이겨내시구요.

 

(저도 출근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굿밤하세요!

추천수25
반대수3
베플엥즐일싸모|2017.01.30 10:13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고민을 오랫동안 하신 게 잘 보입니다. 친부모님이 안계셔서 상황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두분 다 본가에 가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않으시다면 지금 결정이 그리 나빠보이진 않아요.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지나가던 26살 처자인데.. 쓰니같은 남편이라면 결혼 고려해볼만 하네요ㅎㅎ
베플ㅁㅁ|2017.01.30 13:33
참 힘드시겠어요.이건 아내분이 노력해서 될부분이 아닌것 같아요.남편분도 중간역활을 아무리 잘해도 갈등을 풀긴 힘들것 같고요.본가에서 아내분이 그냥 미운거예요
베플안녕|2017.01.30 02:35
와이프입장에서 내편이 있어서 행복할것 같네요.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