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자판을 잡았다.
보더 타운이란 영화를 보다가 그랬다. border town. 그러니까 국경 지대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지. 영화의 내용은, 멕시코 국경의 마르....머시기 하는 마을에서
있는, 어떤 회사의 여직원들이 입는 피해에 대한 어느 취재기자의 취재일기다.
끝까지 보진 않았다. 너무나 구역질나는 미국의 위선적인 스토리 라인에
보다가 영화를 모조리 지워버렸다.
시작은 이렇다.
모모 회사가 멕시코 국경 근처의 마르 머시기 타운에 공장을 세웠고, 그들은
대체로 임금과 근로조건에 별다른 불평이 없는 여자들을 직원으로 썼다.
출퇴근 시간의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여성 공장노동자들에 대해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마침내 시카고의 저명한 언론사 기자가 그 지역에
파견되어 여성피해현황에 대한 기사를 쓰러 간다.
이 여기자는 매우 견고한 정의감과 사회정의를 위한 민주주의적
윤리로 무장해 있다. 한때 이와 함께 기자생활을 했던 디아즈는
이제 마르 머시기 하는 지역에서 발행하는 "엘 솔" 신문사의 편집장으로,
신문사가 문 닫지 않기만을 바라며 아무것도 희망하지 아니하는,
희망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평범한
신문쟁이다.
멕시코의 경찰은 정부와 한통속으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여성 폭행 및 살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멕시코에서 일어나는
살해사건이 멕시코 정부의 고고함을 해칠까 두려워, 그를
취재하는 기자를 살해하려고까지 한다.
미국에서 파견된 금발의 여기자는 이 사실을 낱낱이 고발하기 위해
백방으로 날고 뛰지만, 이미 엘 솔의 편집장으로서 멕시코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옛 파트너 디아즈와, 멕시코에서 여성인권운동을 하는
여자는 여기자의 이러한 활동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그들은 살해당하고,
겁간당하는 마르 머시기 지역의 멕시코 여성들의 실제적인 문제에
눈감으며, 자신들의 슬로건을 위해서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90년대 초반 세르비아-보스니아 내전에 한 치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미국이, 즈덜에겐 아무 이익도 없는 멕시코의 여성인권 문제를
위해, 그것도 영향력 있는 미국 신문사의 한 기자가 지랄병을 한다고?????
미국이 대체 세계 평화와, 인류의 존속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들은.
세계를 전란 속에 빠뜨릴 겸, 인류의 파멸을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며 어떻게 하면 이 위대한 자연을 인류라는 이름 아래
굴복시켜 1년을 더 연명할 지, 그것밖에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인류의 진정한 "종의 존속"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있을만큼의 지적 능력이 없는 까닭이다. 이
빌어먹을 "보더 타운"뿐 아니라. "스텔스"를 보아도 그렇다.
탤론 1 : 백인 남성.
탤론 2 : 백인 여성
탤론 3 : 흑인.
탤론 4 : 무인기.
이 기묘한 배치에서 느껴지는 바가 없는가?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3은 완전수이며 4는 신의 수라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 어떤 개념을 빌려왔는지,
3은 "버린 수"이며 4는 "남성과 결탁한 신"의 수이다. 본 사람은 알 거야.
지독스럽게 남성적이고, 또한 백인우월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탤론 3을 맡은 흑인은 탤론 4를 쫓다가 자기가 쏜 미사일에 멍청하게
죽어버린다. 탤론 2는 북한에 불시착하고, 그런 탤론 2-백인 여성을
구하기 위해 탤론 1-백인 남성은 탤론 4-인공지능 무인기와 합세하여,
탤론 4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남성이 신을 지배해..ㅡ ㅡ?????
대체~!!!!!!!!!!!!!!!!!!!!!!!!!!!!!!!!!!!!!!!!
이 영화에 평점 8점 이상을 부여한 얼빠진 개자식들은
뭘 처먹고 자라왔는지 알 수가 없다. 보더 타운이건
스텔스건 말이다.
미개한 미국 족속들에게 속지 말라. 절대로. 절대로 속지 말라.
,,,,,,,, 아...술먹었더니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