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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프랑스식 치즈감자떡, 라 트뤼파드

Nitro |2017.01.31 23:31
조회 132,000 |추천 464

 

식빵을 구웠는데 뭘 곁들여 먹을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블로그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던 트뤼파드(La truffade)를 만들기로 합니다.

재료는 감자, 양파, 베이컨, 치즈의 단촐한 구성. 

여기에 후추와 소금 및 입맛에 맞는 허브 약간이 추가됩니다.

베이컨은 피터 루거에서 만든 제품, 그것도 두껍게 썰어놓은 게 마트에 들어와 있길래 낼름 구입했네요.


 

양파와 베이컨, 감자를 썰어서 준비합니다.

베이컨을 먼저 볶고, 기름이 나오면 양파를 함께 볶아줍니다. 

오리지널 레시피대로 하자면 거위나 오리 기름을 넣고 볶아야 하지만, 그런 건 거위 간을 주구장창 먹는 프랑스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미국에서 거주중인지라 구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나름 가격이 있는 기름인지라 트뤼파드 같은 걸 해먹기엔 가성비가 떨어지지요. 

나중에 한 병 사서 콩피(기름에 절인 고기요리) 해먹으려고 벼르는 중입니다.


불을 줄이고 감자를 투입. 급한 마음에 불을 키우면 홀라당 타버릴 수도 있으니 중간 화력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주는 게 좋습니다. 

감자를 오래 굽다보면 가장자리부터 부스러지기 시작하는데, 

트뤼파드는 원래 그렇게 부스러질 정도로 구운 감자로 만드는 거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트뤼파드와 비슷한 요리인 알리고(Aligot)의 경우에는 아예 으깬 감자를 사용하기도 하지요.


 

트뤼파드 같은 가정식 요리는 레시피마다 재료의 비율이 천차만별입니다.

미국쪽 레시피는 감자의 비율이 높아서 완성품을 보면 거의 감자 팬케이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프랑스쪽 레시피는 치즈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치즈감자떡이라고 부를 만한 비주얼이 됩니다.

프랑스 산악 지대인 오베르뉴 지역의 명물 요리인 만큼, 오베르뉴 관광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치즈 비율이 높은 레시피를 따라합니다.

감자 2kg 기준에 치즈가 800g 정도 들어가는데, 불을 아주 약하게 하거나 끈 다음 치즈를 잘게 잘라서 위에 얹어 녹입니다.

너무 강한 불에 조리하다가 치즈의 변성이 일어나서 딱딱해지기 시작하면 치즈 장인이 와도 못 살리니까요.


 

약불에 올려놓고 끈기있게 기다리다가 절반 이상 녹았다 싶으면 휘휘 저어서 마저 녹여줍니다.

나무 주걱으로 뜨면 치즈가 주우욱 따라 올라오는 비주얼이 나와줘야 '트뤼파드 먹는구나' 싶은 기분이 듭니다.

뭐, 솔직히 말하면 치즈를 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진짜 프랑스식 트뤼파드라고 봐주긴 살짝 애매한 요리이긴 하지만요.


오베르뉴 지역에서는 주로 톰 프레시 치즈를 써서 만들고, 그게 없을 경우에는 껑딸(Cantal)이나 생 넥떼르(Saint-Nectaire) 치즈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톰 프레시는 정말 구하기 힘들고, 껑딸이나 생 넥떼르도 멀리 떨어진 치즈 전문점에나 가야 구할 수 있습니다. 듣기로는 미국 사람들 입맛에 프랑스 치즈보다 스위스나 이탈리아 치즈가 더 맞는다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마트 치즈코너에 가면 프랑스 치즈는 없어도 에멘탈이나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는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뤼에르와 에멘탈을 사용해서 만들기는 했는데 둘 다 스위스 치즈. 

치즈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왠지 일본 된장으로 한국식 된장찌개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에멘탈 치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멍 뽕뽕 뚫린 스위스 치즈의 대명사라서 그런지 프랑스 요리 만들기에는 좀 애매하지요. 

그래도 북쪽 동네 수령 동지는 이렇게 만든 트뤼파드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위스 유학 시절 치즈의 맛에 빠져서 북한으로 돌아온 뒤에는 에멘탈 치즈 만들어 내라고 닥달하고, 

그 맛이 안 나니까 어쩔 수 없이 수입해서 먹는데 하도 많이 먹어서 건강에 이상이 올 정도라고도 하니까요.


 

비록 프랑스 치즈는 못 구했지만 스위스 치즈(Swiss cheese)가 아니라 스위스 치즈(Made in Swiss)를 썼다는 데 위안을 삼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미국에서는 스위스 치즈가 진짜 스위스 치즈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치즈는 우유(혹은 다른 동물의 젖)에 효소를 첨가해서 응고시키고, 이를 압축해서 숙성시켜 만드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데 숙성시키는데 시간이 워낙 많이 소모되니까 기간을 단축시키려고 여러 종류의 치즈를 섞고 조미료와 식용색소를 넣어서 만든 게 가공 치즈(processed cheese)지요.

흔히 먹는 낱개 비닐포장된 얇은 슬라이스 치즈들이 다 가공치즈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 사람들이 스위스에서 만든 에멘탈 치즈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이래저래 가공을 해서 에멘탈 치즈 비슷한 맛과 향이 나는 가공 치즈를 만들고 여기에 스위스 치즈라는 이름을 붙여버렸지요.

더 웃긴 건, 영국산 체다 치즈와 비슷한 맛을 내는 가공 치즈도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아메리칸 치즈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거지요.


 

치즈가 워낙 많이 들어있는지라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습니다.

갓 구운 식빵에 트뤼파드를 듬뿍 얹어서 샐러드와 함께 먹어주는 거지요.

감자 그라탕(http://blog.naver.com/40075km/220905360235)만 해도 치즈의 양이 적은데다가 모짜렐라가 워낙 얌전한 맛인지라 감자가 주인공이고 치즈는 조연이라는 느낌이 확실한데

트뤼파드는 감자 그라탕과 비슷한 요리라고 하기엔 치즈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강렬합니다. 

그러다보니 오래 전에 서래마을의 프랑스 가정식을 파는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만든 트뤼파드를 먹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그 때도 '이게 감자야, 치즈 퐁듀야'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다시 먹어도 비슷한 생각이 드네요.


사실 세세한 부분에서는 맛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치즈가 다르니까요.

프랑스 중부 산동네의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뜨거운 감자에 녹은 치즈를 얹어 먹던 오베르뉴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사람들이 요들송을 부르기 시작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인심좋은 프랑스 레시피에는 껑딸 치즈가 없을 경우 그뤼에르를 대체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차가운 날씨에 몸을 녹이며 트뤼파드 먹는 분위기를 내기엔 부족하지 않을 듯 합니다.

추천수464
반대수12
베플아로아|2017.02.01 16:54
요리하시분인가요?? 판에올라오는글 꾸준히정독하고있습니다 재료나음식의유래라던가 굉장히해박한지식도있으시고 설명또한 귀에쏙들어오게 잘하시네요 조리과정과 완성된음식 사진 정말 무엇하나 뺄수없이 볼때마다감동입니다
베플에휴|2017.02.01 17:07
와 요리에 대해 견해가 장난 아니셔요 눈이 즐겁네요 ^ㅡ^
베플ㅇㅇ|2017.02.01 22:45
이분 글은 이런 고퀄글을 올리는 곳이 겨우 판이라는 게 내가 다 죄송할 정도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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