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본인 장군이 있었다. 그는 높은 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병이 들어오면 일일이 부모를 찾아 뵙고 "귀한 자식을 맡겨주셨으니 끝까지 보살피겠습니다"라며 부모와 입대하는 자식 모두를 안심시켰고 형편이 어려운 가장이 입대하면 동사무소를 통해 생계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불안을 해소해 주었다.
또한 그는 평등주의에 철저하여 식사도 사병과 같은 것을 먹었다. 이건 그 당시 일본군 장군들로써는 굉장히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우리나라의 똥별이나 똥군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제시대 군대의 폐단의 원조가 그들이었음을 볼 때 그는 특이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한 예로 그는 부하들을 어찌나 사랑했는지 한 번이라도 다른 반찬이 나오면 병사들의 식단에도 그 반찬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는 만약 없을 경우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부하에 대한 배려가 깊어 사단장 시절에는 병사들과 부사관들의 건강과 가족사항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이름을 외웠고 부하인 부대장들에게도 병사들의 신상명세와 집안 사정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그 부하들 중에 부모가 위독하다거나 집안에 큰 우환이 있을 경우 사단장의 권한으로 전역증도 발급했다고 한다.
부대 훈련 때도 그는 군 생활이 병사들에겐 평생 남는 기억이 된다며 체력이나 전투 기술이 부족한 병사들에겐 핸디캡을 적용하여 훈련에 낙오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심지어 시골 출신 병사가 도시 출신보다 면역력이 약해 결핵에 걸리기 쉽다는 군의관의 조언을 듣고 결핵 검진을 위해 당시(1920년대)로선 최신 기술인 X선 장비를 즉석에서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야전 부대장 때는 물론이고 총리 재임 시절에도 관저의 임원들과 총리관저를 지키는 병사들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며 운동회와 보물찾기도 열었다고 한다
"병사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입대한다. 여러분은 이들을 아버지처럼 자애롭게 대하고, 나이가 많은 병사들에게는 형으로 대하도록 명령해야 한다. 그리고 입대하는 자의 가정환경, 본인의 직업, 능력을 모두 알아두어야 한다. 입대하는 그날까지 중대의 신병의 이름을 기억하라. 왜 그래야 하는가. 병사는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저승길을 갈 동료이기 때문이다." - 1929년 4월 제 1사단 보병 제 1연대장으로 부임한 후 부하들에게 훈시한 내용-
그의 이름은 도죠 히데키였다.
그는 일제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를 앞세운 만악의 근원으로 평가받고, 한국 침략의 주범 중 하나이자 한국사에 있어서도 한국을 침략하는데 선봉장으로 나선 악한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이름만 나와도 펄쩍 뛰게 만들고, 분노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장본인. 1992년부터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을 모이게 하여 지금의 수요집회를 만들게도 했다.
지원병 및 학도병으로 강제 징병되었거나 노역장으로 강제 징집된 노인들 입장에서도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게 만드는 장본인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부상한 인물이며,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