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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불타는 아이스크림 커피, 플람베 아포가토

Nitro |2017.04.13 01:49
조회 23,590 |추천 70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커피는 카페인 섭취수단이라기보다는 여유를 즐기며 새로운 맛을 접하는 모험의 도구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커피에 빠지게 되면 원두의 원산지나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에 몰두하는데

호기심을 땔감 삼아 움직이는 증기기관차의 입장에서는 아예 다른 방식의 커피 제조법에 손을 대는 것을 즐기곤 했지요.

기본적으로 많이 활용되는 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 만들기는 물론이고, 최초의 커피인 이브리크, 베트남 카페핀, 프렌치 프레스, 이탈리아 모카포트, 퍼콜레이터, 워터드립(더치커피), 사이펀 커피에 이르기까지.

아마 커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만들어진 거의 모든 방법을 다 해봤을 겁니다.


그러던 것이 미국 유학오면서 대다수의 짐을 놓고 오게 되고, 커피를 여가 활용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 필수품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집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아침마다 "I need a cup of coffee to do this (이 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커피가 필요해)"라며 

마감기간에 쫓기는 만화가나 프로그래머들이 에너지 드링크 달고 살듯 커피를 마셔대거든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한국에 있을 때처럼 유유자적하게 물 끓여서 온도 맞춰가며 커피를 내리는 대신, 

전기포트에 물 끓여서 프레스에 커피가루 대충 담고 꾹꾹 눌러서 먹기가 십상이었지요.


그런데 사람 입맛이라는 건 참 간사해서, 맛있는 걸 계속 먹다보면 예전에는 잘 먹던 것도 맛없어서 못 먹게 되곤 합니다.

집에서 원두 볶아서 만들어 먹다가 마트에서 뭘로 만들었는지 모를 커피 가루를 사먹다보니 도저히 못 참겠더라구요.

시간은 없는데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에스프레소 머신을 장만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에스프레소(espresso)라는 단어부터가 "신속하게, 재빨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 외에도 증기를 내뿜는 모습이 급행열차와 같다고 해서, 혹은 원두에서 엑기스를 짜낸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건 새로운, 아주 새로운 것이에요."  

미후엘이 한사발 다 마시자 게이트라위드가 말했다. 

"이것은 감각을 즐겁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마시는 음료랍니다.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아침식사때 이걸 마시고, 저녁에는 더 오래 깨어있기 위해 이걸 마시죠." 

게이트라위드의 얼굴은 시내 광장의 임시 설교단에서 사람들을 비난하는 칼뱅파 전도사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 데이비드 리스,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 중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은 크게 수동, 반자동, 자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커피를 직접 갈아서 끼우면 물만 내려주는 반자동 머신을 사용했었는데 카페인 섭취가 목적이 되다 보니 재빨리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자동 머신을 찾게 되더군요.

원두를 자동으로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완전 자동 머신은 너무 비싸고, 그 대신 캡슐 머신으로 선회합니다.

캡슐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게 단점인데, 정기 구매 할인 옵션이 있어서 꽤나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지요.

그냥 캡슐을 하나 뜯어서 꽂고 버튼 하나 누르면 땡.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카페 부럽지 않은 퀄리티가 나온다는 게, 기술의 발전이 무섭다는 걸 실감하게 합니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 타서 아메리카노 만들어 먹기도 질릴 때면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커피를 부어먹곤 합니다.

아이스크림 기계가 있으면 (http://blog.naver.com/40075km/220913186344) 집에 아이스크림 마를 날은 없지요.

다만 주의할 점이라면, 커피 얹어 먹는 용도로 사용하는 아이스크림은 반드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과일맛 아이스크림은 커피와는 잘 어울리지가 않겠지요.

예외로 초코 아이스크림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모카 커피가 커피에 초코 시럽 넣어서 만드는 베리에이션이니까요.


재밌는 점은 커피를 만들 때 "모카"는 초콜렛을 의미하는데 제과제빵에서 "모카"는 커피를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원래 모카는 중동지방의 항구 이름입니다. 

오늘날 두바이 항구에서 출발하는 석유를 두바이유라고 하듯, 모카항에서 수출되는 아라비아산 커피는 모카 커피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중동지방에서 수입한 질 좋은 모카 커피에서는 초콜렛 향이 난다."는 말이 퍼지면서 커피에 초코 시럽을 넣는 메뉴를 모카 커피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한 다리 건너 제과제빵에서는 굳이 초콜렛향 나는 고급 커피를 쓸 필요가 없기에 모카라는 단어가 커피를 의미하지만요.


 

아이스크림은 듬뿍 떠서 컵에 담고, 그 위에 갓 뽑은 에스프레소를 부어주면 아포가토 완성입니다.

이탈리아어로 "Affogato: 물에 빠진"이라는 뜻이지요.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먹는 것에 매력이 있기 때문에 커피 부어서 재빨리 마시는 메뉴이기도 합니다.

시간 끌며 천천히 마시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지근한 바닐라 커피를 보게 되니까요.

그래서 커피를 아예 차갑게 식힌 후 아이스 메뉴로 마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간혹 기분내고 싶을 때는 그랑 마르니에를 붓고 불을 붙여주곤 합니다.

오렌지 술을 이야기 할 때 가장 고급으로 간주되는 것이 그랑 마르니에인데, 다른 오렌지 술들이 알콜(주정)에 오렌지를 섞은 반면

그랑 마르니에는 꼬냑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입니다.

달콤한 오렌지향이 매력적인데 비해, 막상 마셔보면 도수는 40도나 되는 물건인지라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닙니다.

칵테일로 만들어서 마시다 보면 달달하고 맛있어서 홀짝홀짝 먹다가 일어날 때 한 번에 훅 가는 술이지요.

플람베를 하려면 컵 등에 담아 뜨겁게 데워야 불이 잘 붙습니다. 

알콜도수 40도짜리 술을 가열하는 것이니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요. 

어떤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유리컵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스파크라도 튀면 대형참사...

개인적으로는 스테인레스 저그에 담아 토치로 데워주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아이스크림을 유리잔에 담고, 차갑게 식힌 커피를 부어준 다음, 저그에 담긴 그랑 마르니에에 불을 붙여 부어줍니다.

다른 메뉴들과는 달리 아포가토는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커피가 전부인지라 불꽃이 오래 살아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퍼포먼스 용도로 플람베를 한다면 관객(?)이 보는 앞에서 불을 붙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달달한 오렌지 술과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의 맛이 어우러져...

B-52가 됩니다 (응?)

B-52는 커피 리큐르인 깔루아, 크림 리큐르인 베일리스, 그리고 그랑 마니에르를 1/3씩 쌓아서 만드는 칵테일입니다.

알콜 도수도 높고 워낙 강렬한 맛이라 폭격기인 B-52의 이름을 따왔는데, 칵테일 바에 가면 여기에 불 붙여서 빨대로 단숨에 마시기도 하지요.

그런데 에스프레소와 아이스크림이 깔루아와 베일리스 역할을 하면서 알콜도수 엄청 낮은 B-52를 마시는 느낌입니다.

그냥 아포가토를 마실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음료를 즐길 수 있지요.


만드는 과정 및 불쇼를 동영상으로도 만들어 봤습니다. 재밌네요.

http://tv.naver.com/v/1594113


추천수70
반대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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