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후다닥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제작이랍시고 해 놓고는
원작자에게 상의도 하지않고 영상확인도 시켜주지않고 방송 해 버렸읍니다
시청률도 중요 하겠지만
이건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윤리에 관한 겁니다
해서 원작을 다시 올립니다
몹시길고 복잡합니다만
방송과는 천지차이라는걸 확인 하실 수 있읍니다.
여기저기 퍼 날라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나온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썼는데
두어분은 실명과 전번을 공개 해 버리라고 하시네요
다음이 본문 입니다
이 에피소드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두인간들 그리고 그 예편네 두년들과 얽힌 억울한 사연 정말 많습니다.
욱 해서 따귀도 치고 가볍게 몇 대 줘박은건 맞습니다.
그런데 진짜 폭력배는 이놈들입니다.
내가 텃세를 했다구요?
나는 그런거 할만치 한가하게 살지 않앗읍니다.
지금도 그래요.
늙었다고 아무일도않고 쳐자빠져 노는 저런 쓰레기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삶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살아 갑니다.
내 올해 65살이지만,
20대 젊은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삽니다
꿈꾸는 걸 포기하고 살은적 단 한 순간도 없읍니다
저자들은 애초에 나와는 상대가 안되는 인간들인데
내 손바닥에 쳐맞은걸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겁니다.
강아지들...
무서운이웃
그리고 또다른 여러 피해자들
1) 고 최억울씨-
이분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으로
수년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남.
소송같은일은 결코 해 보지않은
그냥 순박한 시골사람이었음
이고소와의 악연은
30년전 1987년 이 고소가 본 호담리에 호담 주유소를 지었고 ,
최억울씨는 호담주유소를 이고소로부터 임대하여
영업을 하는도중
약 400평이나되는 주유소 전체의 바닥레미콘 공사를 법규에 따라 하지않을 수 없었는데
이 공사를 세입자가 하게 되었고
이를 주유소 주인인 이고소가
지불을 거부하여
트러블이 시작되었고 거친말이 오가곤 했는데
이를 빌미로 이고소가 고 최억울씨를 형사 고소 하였고
고인인 최 억울씨는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며 ,
이에 이고소가 다시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을 하였으며.
법에 무지하여 대응을 제대로 하지못한(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앗다고함)
관계로 패소하였으며 , 도중에 병사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소송 상대가 세상을 떠나버리면
모든 송사는 취소함이 사람의 도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고소는 그 유가족의 동산등에 차압을 붙이는등 하여
그 미망인이 결국
5년전 750만원을 주고서야 합의 종결됨.(최억울씨부인이 인력센터에가서 일하고 벌어온 눈물나는 돈)
2) 유목수씨:
약 2년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현재까지 코마(식물인간) 상태라고함
이고소가 호담리 75번지(대지200평)에 집을 짖기시작한 것은 2013년도 겨울쯤으로 알고 있는데 ,
이고소가 그 땅의 원래주인인
최 농민씨에게 양심적인 건축업자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함.
그래서 일찍이 서당에서 한학을 익히고
인품이 젊쟎고 정직하여
최 농민씨가 신뢰해 마지않는 유 목수씨를 천거하여
인건비계약으로 이고소의 집을 지어 주기로 함.
소요자재는 모두 이고소가 조달하는 조건으로
총 59평에 평당 130만원에 계약하고(인건비만)
세부적인 사항은 이고소가 직접 작성하여
서로 서명 날인하여 복사하여 양인이 1부씩 가져감.
도급계약
명목상으로는 평당 130만원씩으로 하고
(계약서상에는 130만원씩 쓰고 내부적으로는 110만원씩으로 약조)작업범위를 세목별로 이 고소씨가 세세하게 적고
서로 도장찍고 계약 했다고 해요(삥땅이지요)
왜 계약서와 실질적인 내용이 다르냐 하면
그 부분에 설명이 또 필요 합니다.
올해로 68살인 이 고소씨가 과거에 무얼 햇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자칭 영화제작하고 감독하고 시나리오쓰고 했다는데
확인된바는 전혀 없고
인터넷 아무리 뒤져봐도 이고소라는 제작자나 영화감독은 전혀 찾지를 못했는데,
그 사람은, 고소장이든 진정서든 어떠한 제출서류에도 자신의 이력에다가 “ 영화제작자” “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라는 말을 꼭 쓰더군요.
-전형적으로 골빈 놈들이 겉만 번지레 대가리에 포마드기름 바르는식이지요-
한 2년전에 최농민씨가 인터넷상을 뒤적여 보았다가
그런 제작자나 감독같은건 전혀 못찾고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지나가는 말로
-포로노 감독이라도 했나? 왜 안 찾아져!-
했다가 그걸 전해들은 이 고소가 명예훼손으로 그 사람을 고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 동네에서만 3십여회이상 고소 고발 민원신고 한거 맞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 동네에서만 최근에 만도 3십여회이상 고소 고발 민원신고 한거 맞습니다.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때 선생님한테 고자질이나 하고 다니는 친구들 있쟎아요?
보통은 이런 친구들은 모두다 왕 따를 당하게 되죠.
이 사실을 아는지 이놈은 아예 마을사람들과 담을 쌓고 지냅니다
집들이 하라고 최농민씨가 떡을 두말 해다 줬는데 , 혼자 다 쳐먹은거 같더군요. 우리동네 최황당 이장님은 이놈이 이사오고 4년이 넘었는데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한 번 못 봤답니다
참 비열한 행동입니다. 눈만뜨면 마주칠 이웃을 밀고질 한다는게 상식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이고소에게는
90넘은 노모가 있었고 이고소놈은 재산이 없다고 들었으며
8남매중의 장남이라고 하였는데
이 노인이 노환으로 거동을 할 수 없는 형편인데다가
얼마 안 남은 여생을
장남에게 의탁하려고
쌈짓돈을 털어서 땅을 사게하고 집을 짓게끔 햇다 합니다
그리고 이고소 감독님은 아들이 두명 있는데 큰아들은 의사라고 했고 작은 아들은 변호사라고 들었습니다.
모두 본인의 입에서 나온 정보에 불과하고 어떠한 제3자도 확인한 사실은 없읍니다
하는 짓거리로 봐서 냄새는 나는데 그냥 그렇다고 대충 넘어 갑니다
그 새로지은 집은 큰아들 명의로 해놓았다고들었고
모친이 별세한(2015년) 다음 에는 8남매 사이에 상속분쟁도 있기는 한가본데
실질적인 집 주인은 이고소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계약서 상의 차액 20만원씩(합계 1180만원)을
이고소가 지에미로부터 챙길려고 했던상황이엇고요
(이런건 내 알바아님)
계약대로 집을 다 지어주고나서 인건비 정산 과정에서 250만원을 떨쿠고 안주길래 유씨가 달라고 재촉하고 그런 과정에서 감정이 조금 쌓이게 되엇고...
서로간에 계산이 차질이 나게 된 것은 ,
이고소놈은
단지 하루하루 작업인부들의 머릿수만 세어서 품수를 체크 했다고 하며 ,
노무자 유씨와 그 일꾼들은 ,
도급의 특성상 주로 시간외 작업을 많이 하면서 품수를 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계산이 서로 차이가 났던거 같습니다
싸우다 지친 나머지 유목수씨는
100만원만 받고 나머지150만원은 탕감해 주자고 생각하고 있던도중,
어느날갑자기 법원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약식판결문이라는게 송달되어와서 보니까,
1200만원을 이 고소놈에게 손해배상하라!
는 터무니없는 취지의 판결문....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여 알아보니
이고소놈은 원계약서의 130만을 볼펜으로 긋고
‘네고‘ 라고쓰고 110만이라고 써서 소송을 걸었던 것입니다.
(사문서변조에 해당하는 중범죄일텐데
참 미스테리 합니다.
또 다른 원본은 유**씨가 분명히 갖고 있었을텐데)
어쨌던 유 목수씨로서는
전혀 원치않는 지리한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으며
불행히도 재판중에 심한 뇌졸중으로
현재는 이미 몇 년째 코마상태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그 재판은 유씨의 자녀들이 이어 받게 되었고
쌍방이 변호사 선임하고 약 3년여에 걸친 소송은
이고소놈의 패소로 끝나고
항소하였으나 보기좋게 기각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지난 글에서 이어서 씁니다
사실 방송에 나온부분은 워낙 졸속으로 제작 되다보니
그 인과관계가 분명치도 않고
나로서는 터무니없이 억울한 점도 있었고 하여 ,
원 제보자의 설명이 반드시 필요 하다고 생각 합니다.
재미 없고 복잡하지만
인생은 모르는 겁니다.
누구라도 이런 일 당 할 수 있는 겁니다.
3)최농민씨:
호담리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토박이로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 이면서
상당한 토지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이고소놈에게 한 일이라고는
200평이라는 배산임수 명당자리를
저렴한 값에 좋은 마음으로 양도하였고
나름대로 신뢰 할 수 있는 유목수를 소개한 죄 밖에없습니다.
이분의 특징은
평생토록 어느 누구와도 큰 소리로 다투거나 하지를 않은 사람입니다.
나쁜놈들이 물로보기 딱 좋은 인상인데
사실은 양보 하는거지 마냥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고요
미스테리한 일이 또 하나 잇는데
처음 이고소는 최농민씨를 아우님 아우님 하면서 형제처럼 몇 달을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 대하는 태도가 얼음처럼 냉랭해지더니
급기야는 몇 차례인가 형사 고소를 하고
별 소득이 없이 기각이 되니까
이제는 약점을 찾아 혈안이 되어서는 자기 딴에는 치명상을 입히려는 의도로
면. 시. 도.는 물론 심지어는 감사원에 까지 민원을 넣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왜 이고소의 태도가 돌변하게 되었는가는, 따로 또 한 사람인 김불량품 이라는 사람이 절대적 작용을 합니다.
뒤에 설명 하겠지만,
이 김씨의 모사로 인하여 근 3년간의 고소고발 민원사건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읍니다
4) 정상품(이 글 작성자);
본인 정상품은
처와 세 자녀를 가진 가장으로
2007년부터 호담리 76번지에서 살아 오고 있으며 ,
그 전에는 양평 강상면에서 애완견과 염소 사육을
10년이상 하다가 철저하게 파산을 하고
2005년부터는
궁여지책으로 고물 모타등 중고기계들을
인터넷 중고나라등에 광고하여 판매하여 근근히 버티며 노년을 맞이 하였네요.
학벌도 재산도 배경도 없이 어느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
오로지 고리의 카드론이나 캐피탈등을 밑천으로 삼아서
아내와 둘이 정말 열심히 살면서
큰놈둘은 남들만큼 가르쳐 놨고
늦둥이 하나만 중학교에 다니고 있구요 ,
지금도 억대가넘는 담보가잇긴 하지만 집도 장만 하였습니다.
원래 우리 호담리 마을은 전체 100호가 넘는 아주 큰 마을인데 내가 살고있는 이 70번지 일대는
마을 외곽의 좀 동떨어진 곳입니다.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뒤에는 병풍같은 험산이 있어
풍광좋고 한적한 곳입니다.
지금은 다섯가구가 살고 있지만
2007년 여기에 컨테이너를 갖다놓고 우리가족만 살 적에는
길도 없었으며 전기도 간신히 들어올 정도로 ..
컨테이너에 살긴 하였지만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몇 년간 이었습니다. 그2년쯤후에 처형이 옆에다 집을 지어서 이주하여 와서 이 골짜기는 2가구가 되었고. 얼마후 처형네가 사정상 광주로 이사를 가고 그집에 김불량품 이라는 나와는 동갑인 사람이 5000만원 전세로 2011년도에 이사를 왔습니다.
그 당시 나는 한 은인의 배려(최농민씨)로 싼 자투리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짓고 잇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하천부지가 350평정도 딸려 왔으니
나처럼 없는사람이 활용하기에 안성맟춤이었고요,
가진게 없다보니
나와 아내 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일년여에 걸쳐 대충 얼개는 완성하여 내집을 짓고있었을 때
김씨부부가 옆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처형집)
한적하게 오래 살다가 갑장의 이웃이 오니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
. 아 ! 이 잔인하고 황당한 불량품으로 인하여
급기야 나정상품이는 일생일대의 치명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새끼한테 2년간 식사 대접을 받은횟수가
아마 50회에서 100회 가까이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얻어 먹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고
큰 돈이 들어갈적에는(4,50만원) 두어번 내가 계산한 기억도 납니다.
이 당시 지 마누라인 함가년은
서울에서 초고급 내의 장사를 하고 있는데
부라쟈 한 개가 최하 30에서 40만원 이라고 함
-사실은 그냥 쥐방울만한 메리야스 가게였음-
일주일에 두 번 집구석에 들어오는데
그사이 김불량품은 나하고 외식을 하거나
우리집에서 숟가락을 하나 더 얹어서 해결 했음
이부분 할말이 참 많지만 생략하기로 함
이 김가새끼가 처음 이사와서 하는 말이
자신은 안기부의 과장으로 퇴직하였으며(실질적인 장관과 수평레벨급이라고)
연금으로 월 400만원이상 수령 한다고 하엿습니다.
이곳 시골로 오게된 연유는
서울에 살 적에
친구들이 너무도 많다보니 사는게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급기야는 전화번호도 싹 바꾸고 도망치듯 잠적했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라는 것이 대개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서울역 노숙자들에 이르기 까지 각계각층
너무도 방대하여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안기부에 근무하게된 연유는 ,
강원도 모대학에 다닐적에 학군단에 지원하여 장교가 되었고 사격을 잘 하여 국가대표사격선수가 되어 국내메달은 싹쓸이를 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합니다
그래서 안기부에 발탁 되었고
평생을 근무 하게 되었고
몇 년전에 정년퇴직을 했다고 했습니다.
(차차 설명 하지만,
이 자식이 자신에 대하여 말 한 것들은
100프로 거짓이 아닌부분이 없습니다.
사실 이자식은 대학에 간 일도 없었고
장교도 그렇고
국가대표도
국정원과장
국정원후배
국회의원 장관친구들 장군친구들....
자신의 빵빵한 재력이라든가 기타 모든 것들 전부다
소설일 뿐이었습니다.
이 빌어먹을 새끼는
평생동안 직장에 다녀본적이 전혀 없으며
독자적으로 경제활동을 한적도 전무 합니다.
그저 지 예편네의 메리야스가게 일 등등을 뒤에서 거들며
일생을 보낸 , 불량품에 불과한 인간 이었던 게지요.
이 사실을 파악 하는데 몇 년이나 걸렸으니
나도참 한심하기 짝이 없었네요 )
그러면서 .
자신은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는데
무슨 사업을 하면 좋겟느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정상품사장님처럼 훌륭한 사람을 이런 궁벽한 곳에서 만날 수 잇엇다니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도 하였으며
이에 내가 답 하기를 고물계에 진출하면 어떠시겠습니까?
이게 보기보다 규모도 엄청나게 클 수 있고 ,
실패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봅니다 햇습니다.
그랬더니 이새끼,
그렇다면 당장 시작 합시다.
우선 국방부는 자신의 후배들이 안기부 요직에 쫙 깔려 있어서 영향력을 좀 가지고 있으니까
국방부 고철부터 알아 봅시다. 하더군요 .
그래서 내가 답 하기를 , 근데 김형.! 국방부 불하 고철은 전부 공매하는건데 그걸 경쟁입찰햬서 낙찰 된다한들 무슨 돈이 남겠소? 그리고 그나마도 낙찰을 어떻게 받는단 말잉교?
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 하기를 .
그런거는 아주 기초적인 문제요.
서류빼기라는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수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 서류들은 무슨 무슨 하자를 잡아서 다 빼버리고 우리서류만 접수시키는거지. 그런거모르고 내가 덤비겠습니까?
근데 정사장님! 이런이야기 특히 최농민씨 한테나 누구한테 하지마세요. 일 다 될 때 까지는 좀 더 두고 봅시다. 하더군요.
그러면서 대뜸 동업이야기를 하기 시작 하는데 , 사실 그 말대로 하다보면 나야말로 동업이랄 것도 없이 그냥 공짜 꽃가마를 타는셈이었겠죠.
이양반 말이 또 동업이라는 걸 할려면 둘이 나란히 집을짓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이론은 정말 생소하고 기이한건데 이사람이 말 하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나란히 집을 짓는 다는 말은
저의 집터가 일견하여 700평이 넘어 보이는데
기실 내 소유의땅은 200평인데 국유지사이사이의 자투리땅이 3필지를 합한거임.
그러니까 340평은 내가 점유해 놓은 하천부지인데 맨처음 구입한 땅이 47평이었거든요(용담리79번지) 이땅을 3500만원에 구입 하였는데 하천부지가 300평 넘게 끼워져있어서 그냥 보기에는 온전한 350평짜리 한필지로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김 **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79번지와 부속하천부지였던 것입니다.
이사람은 자기가 신통력이 있다고 하면서
지하수맥을 그냥 맨눈으로 정확히 읽으며
어떤사람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이 바로 읽힌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사기수법으로 나를 현혹 하면서 79번지를 넘겨달라는 식이엿지요. 결국 3500만원을 줄테니 79번지를 자기에게 넘겨주면 나란히 집을짓고 살면서 어마어마한 사업을 동업을 하자 그 79번지는 우리 53년생 계사생과는 합이 잘 맞는 좋은 숫자 라면서요(ㅎㅎㅎㅎㅎ.
지나고 보니 김불량품이 그토록 엄청난 거짓말로 저를 현혹하고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모든 공작들이 79번지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김씨가 이곳에 뿌리가 있는것도아니고 5000만원 전세입자일 뿐이니
싼값에 큰 집터하나 횡재하고 전세빼서 떠나버릴 심산이었던 겁니다
나로서는 이사람을 신뢰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
어떤날은 국방부나 육군본부를 가서 막강한 후배를 만나야 한다면서(예의 고철 불하건으로) ,
정장을 칼같이 차려입고는 콜택시를 불러서 10시쯤 나가서는 밤 늦게 들어오곤 했는데 ,
갔다 올 적마다 내게다가 진행상황을 상세하게도 브리핑 하곤 했습니다.
또 당시 숭실대 다니는 저의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편입시켜주겠다고 큰소리 땅땅 치면서
또 정장하고 콜택시타고 몇 번씩 어디론가 갔다오고...육군본부로 간다던가 국방부로 간다던가....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
이자가 나를 현혹하여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 수 많은 일화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생각나는대로 몇가지 적어보면
자기 막내동생이 소위 재계의 거물이라고 하면서(여동생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을정도로 정계의 거물이라고 했음)
독일계 세계적 다국적기업의 삼척지점을 설립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대표이사를 맡으라고도 했고 ,
대표이사에 걸맞는 싸인을 하나 다시 만들라고도 했습니다.
김씨 이 와중에도 번번히 사람 만나러 간다면서
정장하고 콜택시 불러서 나갔다가오고...
또 조만간에 나하고같이 독일에 CEO교육을 받으러 가야 되니까 . 우리늦둥이 학교등교는 어떻게 시킬 꺼냐며
빨리 나의 아내로 하여금 운전면허를 따라고 득달같이 채근하였고
결국 이 사람의 말을 믿기 시작한 나는 이사람 이사온 이래로 장사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그저 모아둔 물건들을 하나 둘씩 헐값에 처분 하여 2년 남짓 허송세월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또 자신의 조부가 일정때 강원도지사를 지낸 유명한 친일파 였다고 하며 자신이 상속받은 엄청난 재산(5남매의 장남이라고했음)등은 그 할애비가 가렴주구로 긁어모은 거라고도 했네요.
삼척고향에 수십만평의 산이 잇는데 ,
바다를 바라보고있는 명당자리라고 하였으며
거기에다가 재테프(중장비밋션을 만드는 세계적인독일계회사)코리아 삼척지점을 지어야 되겠다며
도지사를 만나러 간다고
쫙 빼서입고 콜택시를 불러서 하루종일 어딘가 가서는 어두워지면 돌아오기를 수십차례..
나보고는 대표이사를 시켜 준다하데요.
그래서 사인도 대표이사에 걸맞는걸로 바꾸라 해서 바꿧다네요.
김씨가 우여곡절 끝에 70번지를 사서 집을 짓고 마각이 드러나고난 이후
이사람과 나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소름끼치게 끔찍합니다.
이런저런 건강핑계를 대고 머리가 아프다는둥 어쩌고 하면서 내 접근을 막습니다.
대화라도 시도 하여 접근하면 112경찰신고를 한 것만 10여회.. 내 허실을 이**에게 알려서 밀고한게 10여회..
KBS제보자프로에나오는 그 미친 사이비목사와 다를바가 전혀 없습니다
현행법망만 피할 수 있다면, 자신의 이익에만 부합 할 수 있다면 이웃쯤은 그냥 짓밟아도 아무렇지않다는 타고난 냉혈한의 행태에 그 사이비목사가 클로즈업 됩니다.
그와 나는 이미 건널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되었고 이미 죽을때까지 서로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듯 합니다.
이사람 집짓고 4년이 넘는 동안에 그 부부가 우리집앞을 걸어서 지나간 횟수가 채 10번이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일년이상은 한번도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막다른 길이라 우리집을 지나지 않고는 다른 길이 없는데도... 이 사실 하나로 모든 것을 짐작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나 가란다고 지나가고 가지 말란다고 안 지나가는 겁니까?
방송에는 정말 너무나도 핵심을 비켜 엉뚱하게 나왔더군요. 길이란 만인이 다니는 길입니다. 그 길 옆에 우리집이 있다고 못 지나 가는 건 말이 안되지요.
이건 분명히 뭔가가 있기 때문에 못 지나가는 거겠지요. 죄 짖고는 못 산다는 말이 생각 나네요.
또 이런 동업제안을 나한테만 한 게 아니라 내 지인인 박모씨 한테도 하였다는데 . 그 박씨의 부인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앗다는 걸 듣고는
박씨에게 말 하기를 김씨의 막강한 배경을 동원하여 대형교회를 건축해 주겠다고 했고, 김씨스스로도 재력이 꽤 되니까 적당한 투자처 있으면 언제든지 말 하라고 했답니다. 또 한밤중에 전화가 와서는 , 지금 강원도 군 부대에 탱크 몇 대를 고철처분 한다는데 빨리 가 보자고도 했답니다.
그런 교회 지을 돈 있으면 우리 동네 호담교회에다가 기부좀 하지? 그 교회 요새 그 목사가족들만 삐쭉하니 예배 보고 있다카던데..장관 몇놈 오라카고 국회의원 서너놈 낯짝 디밀면 그냥 부흥 할판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 하기를 왜 저런 뻔 한일에 속았냐고 들 하는데. 사기 안 당해 봤을때는 나도 그렇게 말 하고 다녔습니다. 저런 불량품한테 당했다는게 나로서는 아마 평생토록 깊은 트라우마로 남겠지요.
더구나 이 사람이 차라리 멀리나 가서 살면 좀 나을만도 한데 하필 우리 골짜기 다섯가구중의 한 사람인데는,... 어쨌던 차를 타고서라도 우리 집앞을 지나 다니쟎아요
우리집과 김불량품이 2013년도에 신축한 집과는 200미터 떨어져있고 길이 막힌 외길이라 우리집을 지나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고군분투!
정말 나의 삶을 묘사하기에 이토록 적합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불량품김가를 만나기전 까지 수년간을,
나와 아내는
그 누구의 간섭도없는 자유천지에서 정말 개미처럼 일하고
하나 하나 쌓고 모은 물건들이 어느덧 8000여만원에 달하여
(당시 대학다니는 아들과 일일이 체크하여 계산한 것임),
이제 이것들을 정산하면 카드빛 돌려막기인생도 졸업이고
집도 거의 완성단계라 가까스로 환갑의 문턱에서야 한시름 놓겠구나 하던 시기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멀쩡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옆집에 이사와서는
왜 무엇 때문에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을 현혹하여
이지경에 이르렀는지.
또 이 넓고넓은 천지를 다 두고는 그 두꺼운 낯짝을 가지고 하필 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사는지.
그리고 왜 이고소라는 놈과 작당을하고 그놈을 펌프질해서 밀고질에 고소질에 또 고소질에 ...
아! 바로 이런 사람들이 사이비목사가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질곡에 빠트리는구나
....그리고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구나...
영원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사실은,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내가 타겟이 되었을까.
자식들기르면서 몸하나믿고 발버둥치는 우리 실정을 뻔히 알면서, 우리 막둥이를 그렇게도 끔찍하게 아껴주는 척 하더니 왜 ......
다시 사실관계로 돌아가서
아까 이고소의 태도가 집을 짓기 시작 하면서 갑자기 최농민씨를 냉랭하게 대하기 시작 하였고
더구나 철천지 원수에게 복수혈전을 시전하듯 수차례의 형사고소질과
상하 각 관청에 악의적 민원을 줄기차게 하고 있는가를 말 해 보겠습니다.
김불량품이 집을 완성 할 무렵에
그의 마각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고
( 이즈음 들어서 김씨는 노골적으로 나에게 배신행위와 언사들을 저질르기 시작함- 출구전략)
이에 , 나로서는 당연히 정식으로 대화를 나누어 보려고
그 집을 찾아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앗는데
그함가년은 안절부절 부들들 떨고 쩔 쩔 매고
김불량이놈은 낯짝이 하얗게 질려서 있더니
나와 아내가 아무 말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불량품이 이 갑자기 퍽! 하고 마룻바닥에 쓰러지면서 아이고! 아이고! 물.... 물.... 하고 쌩 쑈를 하는데
그러더니 그 아내인 함가년이 우리 부부에게다가 입에 담지못할 욕셜을 퍼부으면서 우리 부부에게 강아지 소새끼 하면서 지랄을 떨더니 119차를 불러 어디로 갔습니다
참 나도 어리석은 것이
이자식이 진짜로 잘못 되기라도 했는가 해서 최농민씨를 시켜 확인차 양평 길병원에 보냈더니
그냥 멀쩡 하더랍니다.. 강아지...
큰누님이 김불량의 집 뒤편에 400평정도의 집터를 구입하셨고 , 굴삭기한대를 임대하여
한 6개월간을 열심히 토목공사를 했었는데
내가 자주가서 일도 거들고 하니까
불량품이나 그 예편네 보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매우 불편 했었던지
산림법이 어쩌구 하면서 억지로 껀수를 만들어서 고발을 하여
이래저래 시끄러워 지니까
큰누님이 그만 그땅을 포기하시고 말았습니다.
우리 큰누님은
지금이나 그때나 김불량품 같은 거지새끼도 양아치도 아니었거든요
다음 2014년초 이던가.
이고소가 김불량과 우리집 사이에 위치한 자기땅에 집을짖기 시작하면서 ,
김불량은 최초에 나에게 했듯이
줄기차게 이고소에게 접근하기 시작 합니다.
밥도 수십번 수백번 샀을 것입니다.
둘이 아삼육처럼 붙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고소가 최농민씨를 멀리하기 시작 합니다.
이야긴즉은
김불량이 이고소에게 최 농민씨를 천하의 비열하고 나쁜 놈으로 성토하고 이고소를 세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씨와 절친한 나 정상품또한 미워하게끔 유도한 것입니다.
(김불량이 최농민에게 처음 집터를 구입 할적에 등기된 본땅은 100여평만 사고 그 옆에 국유농지도 그냥 점유권 넘겨주는 줄 알았답니다.
미친놈 ... 이일로 깊은 원한을 품었고 . 제놈 깐에는 최씨나 정씨나 모두다 만만한 홍어ㅈ으로 본 거겠지요)
참 무모한 놈들인게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나무라고 빼 나가라 한다더니
최농민이나 정상품이
얼마나 이곳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잇는가 하는 것은 전혀 감안 하지 못한
돌대가리 놈들 아니겠습니까?
같쟎은 놈들이 그따우 주제에
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나 봅니다
한편 김불량으로서는 충분히 그럴수 있는 처지인 것이
이고소를 포섭하지 않으면 당장 제놈이 왕따가 될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고 ,
또 그 고소왕을 활용할려면
선수를 쳐서 이고소의 주변을 정리해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잇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고소가 이 동네에서 저질은 일도 만만쟎은 전적도있고(최억울씨 건) ,
사람들과 전혀 어울릴 줄 모르는 천성을 가진데다가
(이고소라는 인간은 타인을 판단 하기를 법적 소송관계에 의한 손익계산서로만 생각함,
타인과 지구공동체에 대한 선의라고는 전혀 없는 인간임,
나처럼 가난하고 못사는 인간도 다섯명 온 가족이 오래전부터 적지만 매달 얼마씩 유니세프등에 기부를 하고 살고 있는데, 이놈은 내 단언컨대 그런거 전혀 없음)
사실 또 둘이 죽이 잘 맞았던 것이,
둘다 냉혈한이라는 동질성 때문이기도 했겠지요
김불량에게 잇어서 이고소야말로 딱 하늘이 내려준 여의봉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거기다 김불량의 처 함가년이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
얼른 봐서는 상당히 우아한 귀부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애교도 많고 선량해 보임
( 이고소의 처 박상년과는 일견 차원이 다른 것이
이고소놈이 보나마나 혹 했을 것임)
이렇게하여 이고소의 의식 속에는 최농민은 천하의 비열한에다가 온 주변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철면피에
이기적인 인간으로 각인 되었고
나 정상품또한 같은 부류로서
도저히 상종 해서는 안될 불가촉천민으로 인식 되었을 것이며
최농민의 소개를 받고 공사를 맡긴 유목수씨 역시
적대적요건을 충분히 갗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 작업한 번 해 보자
하고 대 들어 봤을 것입니다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잠자는 호랑이 ㅂㅈ털 뽑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는 미친놈들 ...)
이제 앞으로가 문제지요.
이제까지는 최농민도 정상품이도 꽤나 당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겁니다.
화해라는 건 도저히 말이 안됩니다.
그런거는 방송 연출에서나 가능 한 거지요
(실제로 연출 이었고 그것도 형편없는 찌질이 PDㅅㄲ들 로부터 나온 아이디어였을 뿐...)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이를 모두 확신 할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가을쯤 이고소의 고소로 검찰에서 조서를 받으러 갔을적에,
대기실에서 한 30분간 이고소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
뜬금없이 최농민씨를 이를갈아부치면서 끝없이 성토하였는데
그 말투며 내용이
과거에 김불량이 하던 그대로여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더군요.
내 마음속 꼬였던 의문의 퍼즐들이 좌르륵 하고 풀렸읍니다
다음 이고소의 정상품에 대한 고소고발 및 밀고질에 대하여 말씀 드립니다.
1) 2015년 봄
김불량이 자료를 제공하고
이고소는 각급 관청에 (면사무소. 시청. 도청. 감사원등등)
71번지로부터 79번지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악의적인 민원신고를 행함.
수많은 공무원들이 약 한달간 이 일대를 출근하다시피 하였음
2) 그 무렵 행정명령을 받은 나는
집앞 하천부지에 널려있는 컨테이너등등 물건들을 다른 장소로 옮기느라 정신이 없엇음.
연일을 죽을힘을 다해서 치우고 있는데
면 산업계장이 현장에 나타나더니
멀리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이고소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 민원신고를 했다 라고 말해줌.
그날저녁 7시경 이고소의 집으로 가서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누군데 남의 집에 왔느냐고 안면몰수하길래
뺨 두 대와 배쪽을 서너대 구타했음(전혀 다칠정도는 아니었음). 목적은 징벌이 아니라 결국은 화해를 하는 과정으로 생각했음
(당시는 나 역시도 동네 신참에 불과 하였었고 위치적으로 마을에 떨어져 살아온 내 정보부족에 의한 크나큰 오산이었음).
방송에서는 실신을 했다고 주장하나 하느님이 내려다 봅니다.
그거 전부다 쇼에 불과했어요.
고솟장에는 또 더 기가 막히게 썼더군요.
그 때 에 최농민씨도 이고소의 상태를 119요원들과 같이 목격했으며
이후 본 그대로 목격진술서(아무런 외상이나 출혈없고 외관상 건강하였음)를 작성하여 준 적이 있습니다-119보고서와 동일 -체온 맥박 혈압 심전도 기타등등 모두 멀쩡 외관 멀쩡...
3) 이고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김불량과 공모하여 교묘하게 허위목격진술서를 작성 하는등
(주둥이에서 피를 질질 흘렸다. 몸이 뒈진놈처럼 차가워서 이불을 덮어 주었다는 목격진술 )
112와 119를 호출하여 사건을 침소봉대 하였으며
진단은 2주가 나왔는데
치과에 가서 억지로 3주를 끊어 부풀렸으며
죄목은 야간주거침입, 폭행상해 였음.
다음날 그래도 화해할 요량으로 지나가는 이고소의 스타렉스차를 막아서서 대화를 시도 하였으나
다시 112신고하고 협박죄를 덧씌워서 또 고소를 함.
그때 까지도 나는 이놈이 일종의 인간(호모사피엔스)이라고 착각 하고 있었음
4) 또 어찌어찌하여 무고죄까지 뒤집어쓰고(복잡하니생략)
한꺼번에 총 4가지죄목을 뒤집어 쓰고
또 김불량이 추가 밀고한 산림법위반(이미원상복구해음에도)등 합하여 벌금 800만원의 검찰명령을 받음
5) 이고소의 처 박상년에게 집사람이 고소당함
사건 다음날 아내와 함께 카고크레인을 불러서 컨테이너를 상차하고 잇을적에 (민원신고처리하느라)
생전처음 보는 여자가 지나감.
별 다른 일 없이 그냥 지나갔는데 두어달후에 우리 집사람(은 귀재)을 경찰서에서 오라고 함
갔더니 박상년이라는 이고소의 처가
저의 집사람을 고소를 하였는데
그날 우리집사람이 박__을 망치로 내려 칠려고 햇고 온갖 쌍욕을 했다고 황당한 고소를 당함 (흉기위협. 폭언등).
집사람은 계속 결백을 주장 하였고
당시 박__이 타고온 택시기사의 진술과
카고크레인기사의 진술등
우리집사람의 결백이 검찰에서 충분히 입증 되엇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기소유예라는 매우 불쾌한 처분이 내림
정말로 억울하여 재심을 청구 하였더니 검찰에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헌법소원을 하라고 함
(이런일로 그런 웃기는 헌법소원할 사람이 누가잇을까요?)
5) 먼저 폭행건은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200만원의 공탁을 하였고 판결은 600만원벌금나옴
이때 이고소는 200만원을 홀랑 찾아서 썼음
6) 그이후 이고소는 또 민사소송을 걸어 왔는데
사악한 김불량의 엉터리 목격진술서와
박상년의 엉터리 고솟장,
또 판결문과 함께 이고소 노모의 가짜 목격진술서 등과함께
(아무도 없는 부엌겸 거실에서 있었던 일이라 목격자 있을수 없음, 방송에서 이고소는 지에미 보는 앞에서 내가 팼다고 주접을 떨음)
폭행등의 사건당시 이고소가 영화제작 중이었고 시나리오작업 중이었다면서
어디서 듣도보도못한 게약서 같은것들을 첨부하여
소름끼치는 고솟장과함께 2000만원이 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해 왔음
7) 이고소 솟장에
공탁금 인출사실이 전혀 적시되어 있지를 않아서
이를 이의신청하였는데, 조정이 신청되어(나는 재판부에서 결정한줄 알고 조정에 응하여 150만원에 도장을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고소가 신청했다고 함)
결국 150만원을 물어주기로 최종 판결됨 ,
황당하고 어이가없어서 재판장에게 이런 고소쟁이를 왜 비호하시냐고 항의하였고 방청석의 아내가 울면서 호소함
8) 또 이를 빌미로 이고소는 저의 집사람과 나를 폭언폭행(잇지도않은 사실) 및 명예훼손(말도안됨)으로 다시 형사고소를 해옴
이때에 또 구질구질한 전전묵은 모든 음해서류들을 한 보따리 첨부 하였음은 물론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저와 집사람을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고소를 하여와서는
경찰서에 두 부부가 나란히 앉아 몇 번인가 조서를 뱓았고
이고소의 고소와 진술내용이 제 아내와 너무 상반 됨으로 하여
원주 국립과학 수사본부에 가서
이고소와 저의아내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았답니다
결과는 물론 이씨는 거짓말반응
저의 아내는 진실반응 이었고요.
그런데 이고소의 작은아들이 현직 변호사거든요.
(그런데 이건 순전히 그놈 아가리에서 나온 구라빵일 뿐일겁니다.
아무도 확인 한 사람 없고 ,
그 아들놈들 5년동안 나타 난적도 없읍니다.
큰아들놈은 의사라 캤는데.
절대 그럴일 없겠지요?
그런 아들로 키울 애비라면
우째 없는사람들 피눈물나는 돈이나 빨아 쳐 먹을라고 허겁지겁 환장질일까요?
-최억울씨 돈 빨아 쳐묵는데 26년동안 씨름 씨름 ...
그 아주머니 혼자 살면서 인력센타 나가서 푼푼이 벌은거 잇다 소리듣고
차압딱지 붙이고 그돈 750을 쪽 빨아 쳐먹은 놈이예요.
억울씨부인 1년은 모은 돈일 겁니다.
이놈이 고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못사는 서민들이었거든요.
이놈 집 지어놓고 여기서 혼자서 삽니다.
가정이 있다한들 정상적이 아닐게 뻔 하고
며누리한테 주접싸다가 영원히 추방질 당했거나...
하여튼 이 자는 죄를 짓고도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갑니다.
법률지식이 많다보니 마구잡이로 고소고발을 남발 하는 것 같아도 결과는 꼭 피고측에 불리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이번에 나한테는 딱 걸렸네요
저번에는 검찰측에서 조정신청을 하엿는데
저와 아내는 출석을 하였는데
이 고소는 또 뭐 이상한 진정서를 내고 불출석함
그 진정서 내용이라는게 황당 하게도
유목수씨와의 민사소송에서 보기좋게 패소를 하였고
항소 하였으나 기각 당했다는데
그것이 우리 부부와 최농민 씨의 탓이라고 하였답니다.
그 소송으로 2500만원의 금전적인 손실을 입엇다고 하면서
결국 그 손실분을 우리보고 물어 내라는건지 뭔지..
내가 고소질 하라고 했습니까?
고소는 지가 시작해서 정의의 심판을 받은 주제에 말이지요.
처음에 유목수 씨에게 말도 안되는 재판을 이고소가 시작하였고 유목수씨가 정식재판청구를 하여와서
이고소는 이때부터 이미 패색이 짙었음
. 이때가 바로 2015년
이고소놈의 고소로 나는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는데
우리 국변께서 그래도 합의를 하
라고 권하길래
이고소에게 전화 햇더니
이 미친놈이 유목수건을 해결해 달라하는 겁니다.
(그걸 나보고 물어 달라는 거지요)
변호사님과 상담하였더니
그분의 조언으로 당시의 이고소와의 통화를 녹취하여 지금도 파일을 가지고 잇습니다
8) 지난 2016년 11월 말경 우리집으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법원에서 왔다고 하면서 동산을 경매 한다고 하면서
거실에 있는 TV와 피아노 등에 딱지를 붙이고 갔습니다.
이고소가 집구석의 난방비 기름값이 바닥이 났는지
민소건의 150만원과 1년치 이자인 10여만원을 받으려고
법원 집행관실에 집행료를 이미 납부했답니다.
옆엣집끼리 참 잘하는 짓이다 싶어서 그냥 놔두고 말앗는데요
9) 이 당시 나는 생존 자체가 난감한 실정이었던바
법원에 개인회생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그 150만원도 다른 수천만원의 채무와 함께
회생목록에 추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집행건은 금지명령 되었고 ,
법원에서 통보를 받은 이고소가 또 또 무슨법무법인 도장이 찍힌 서류를 개회법원에 제출 하였습니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들을 늘어 놓으면서 회생을방해 하려는 수작을 하였던 것입니다
나 또한 조목조목 빠짐없이 반박하여 이고소의 음해공작을 분쇄하려 노력했읍니다
10) 이에 열받은 이고소가 이제는 또 민원을 넣기 시작 합니다. 나를 상대로 3건의 민원을 제기 하여 왔길래
나도 이고소의 불법 행위들을 3건을 관청에다 고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산북면 산업계 담당직원(고**주무관)이 만나자고 하여 면소를 갔더니
-이웃끼리니까 잘 지내시는게 좋지 않습니까?
먼저 손을 내 밀어 보시지요_ 하고 권하여
정중하게 이고소에게 화해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정말 황당했습니다. 나도 당황하여 서너번의 문자를 더 보냈더니
또 경찰에 고소를 하여왔습니다.
방송에서는 이딴게 무슨 화해 문자냐고 지랄병 떨었고
그래서 고소까지 했는데 .
검찰은 머저리던가요? 왜 무혐의로 나왔겠어요.
-뭐 -정보통신법위반-을 했다고 하면서
구질구질한 전전묵은 서류들을 한 보따리 첨부 하여
고소를 거창 하게 해서 경찰조사 받고 왔었어요-
한편, 지난 3월16일에 정보통신법 고소건은 무혐의 처분 되었고
또 이고소놈이 제기한 제 아내 은순양에대한 고소건 2개(명예훼손, 폭행)또한 4월16일자로 동 지검 정모검사에의해 무혐의 처분 되었으며
동시에 이고소가 나 정상품에게 제기한 고소건은, 명예훼손은 무혐의
폭행에 대해서는 50만원 벌금예정이라고 합니다.
정말 폭행한적 없는데
(예의 민사소송 판결시에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라 폭행이라는 것은 불가능함)
나라에 세금 내는 거니까 . 먹고살기 바쁜 놈이 항소질하고 살겠읍닊?
무고건이 4건인데 (정확히 말하면 5건) 무고의 공소시효가 10년이라하니 적당한 시기에 한가할 때 고솟장 접수 하러 갈 것입니다.
제놈이 방송에서 정의를 실천 하는 짖꺼리라고 그랬다 하니 ,
나도 한 번 정의를 시전해 볼까 해요
이상 김불량과 이 고소와 관계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기술해 보앗습니다.
최대한 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려 했으나
당사자다보니 꼭 그럴수만은 없었네요.
내가 저질른 일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서도 안 되고 그러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또 법적인 처분 결과에 대하여 당연히 승복 합니다.
그러나 , 소위 엮어서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60평생 검찰청이나 재판소같은데는 구경도 한 번 가지 않았는데 몇 년사이 참 많이도 들락거리게 되는군요
도대체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법이라는 그물은 그토록 정밀 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습디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수 많은 사례들을 열람하여 보니 정말 억울하게 당한사람 많더군요.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동해안 해변에서
한 고등학생이 어떤 젊은여자가 바닷속에서 익사하게 된 것을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본인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기를 겪으면서 살려 놨더니 그 년은 되려 성추행으로 고소를 했다는 군요. 그리고 합의금을 왕창 요구 하더라네요 .
그리고 증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하다보니까 꽁지 빠지게 도망을 쳐더라나요.
이고소 김불량은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거나 그 이상의 인간들입니다.
여하튼 이런 인간들 없읍니다
이동네 다른 사람들이나 나하고만 그런게 아니라 평생 그지랄 하고 살았던 놈이 틀림 없읍니다
이놈이 법을 잘 아는 걸 보니 제깠놈 주제에 법대를 다녔을리 만무하고 아무래도 빵잽이생활을 오래오래 했던놈 아닐까 라고 어떤 사람이 말해 주더라고요.
어제 엠비시 리얼스토리 눈 이라는 프로에 우리 사연이 방영되어 전국방송을 타게 되었습니다.
내가 네이트판에다가 원고지 석장분량의 서문만 올렸더니 그 사연이 채택되어 방송까지 되었네요.
이슈화가 된 점은 통쾌하지만, 핵심은 전혀 건드려 보지도 않고 내용도 사실과는 너무 다르게 제작되어 정말 유감입니다.
일주일에 네 번을 방송하고 10퍼센트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프로다 보니까 촉박한 제작기간에 졸속제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방송자체의 인기에만 집착하는게 너무도 눈에 보이네요.
실제로 이프로그램이 3일만에 제작이 끝나고
다음날 바로 방영이 되엇습니다.
이프로의 졸속함에 대하여는 다른 평론가들 께서도 여러번 지적당한 걸로 알고 잇습니다.
이왕에 시작된 일이고
이미 나는 진창에 들어와 있는 지경이 되었으니
어차피 모든 실상이 밝혀 질 때 까지. 갈데까지 가 보렵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 합니다.
하여튼 고맙습니다. 여러분모두 승승장구 하시고 좋은일 많이많이 맞으십시오
여주시 들북면 호담리 76-3 정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