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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에 의미없는 의욕없는 나날에...

자우림-샤이닝 |2008.10.30 04:12
조회 228 |추천 0

어디부터 써야할까요..

 

어디부터 써야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요..

 

음... 나이는 22살입니다 ...

 

일단 지금 제 심정을 쓰는게 우선이겠네요.

모든게 무의미합니다..

왜 살아야하는지 

왜 사람은 감정을 느껴야하는지

왜 사람은 같은길을 걷지만 태어나서 죽음으로 같은길이라고 칭합니다 전; 

다른생각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지

생명이란건 왜 생겨난건지

생각은 왜하는지

난 왜 나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줬는지

왜 난 별것아닌거에 상처를 받는지

 

일단 제 도플갱어와도

같은 절 낳아준 사람

어릴때 5살때쯤 호프집에서 아줌마들이 술냄새 풍기면서

아줌마들이 먹여주던 복숭아.. 기억나네요 그 사람 손에 이끌려서 갔던곳.,

저보다 2살 어린동생은 집에서 응애 응애 울고 있었겠죠..

그 사람이 술먹은 밤은 동생과 전 방에서 벌벌 떨 수 밖에 없었어요

아버지와 그 사람이 싸우면 이것 저것 날아다니고

무력으로 아버지가 한수 위여서 매일 맞던 그사람..

술먹고 행패부리면 다음날 잘못했다고 빌고

하루하루가 지옥의 연속이였던거 같네요..

참다 참다 못해서 초등학교 3학년때쯤 강원도 둔내에 고모댁으로 가서

학교를 다녔고 몇달쯤 지나서 그 사람은 와서 또 빌고 빌어서

다시 성남으로 갔죠..

동네에선 그 사람은 항상 미친년이였죠..

술먹으면 사람이 180도 변하니.. 평소엔 천사입니다.. 네 천사에요

착하디 착하고 그렇게 여릴수가 없어요..

동생 생일날.. 이날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아침에 동생이 생일이라며 방글방글 웃으며 그 사람에게

친구들 불러온다고 웃으면서 그 사람도 웃으며 대려오라고 했죠

그날 집에가니 큰방에서 마른반찬 깔고 맥주병은 널려있고 바가지에 채워져있는 소변..

소리지르고 있던 그사람..

동생은 동생은 친구들을 대리고 왔었을탠데... 그랬을탠데,,,

그때 전 어땐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아, 이 일도 기억나네요

두분이 이혼하고나서 처음엔 그 사람밑에 있었는데

술먹고 행패부리는게 무서워서 이모에게 연락했고

이모와 외할머니께서 오셔서 그 사람을 끈으로 묶고

이모댁으로 가서 잠을 청했죠,,

놀란건 아침에 일어나니 그 사람이 이모댁 거실에서 자고 있더군요..

억지로 기억하기도 싫고 많은일이 있지만 이쯤 적어두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5학년때   .

두분은 이혼을 하셨고 저흰 일단 그 사람이 키우기로 했었죠

아버지가 한달에 50만원씩 주기로 했구요

그때 그 사람은 그 돈이 적다며 올려달라고 애걸복걸했고

아버지는 그럴 수 없다고 하셨죠...

나중에 알고보니 버스일 하셨는데 한달에 170정도 벌었던걸로 기억하네요..

결국 그사람이 포기하고 아버지가 저희를 키우시기로 했습니다..

끝이 아니였죠 술먹고 전화해서 아버지 바꾸라며

위자료 내놓으라며 소리지르고 안바꿔주니 쌍욕을 내뱉던 사람..

 

그 사람은 아버지가 다른여자에게 돈을 퍼주고 있다며 막내고모가 그 사람이라며

오해하던사람.. 1년전쯤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며 알았지만.

재혼은 맞지만 그전에 결혼했던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물론 지금 만나시는 아주머니는 계십니다 중2쯤 처음 뵜죠

반찬도 해주시고 맛있는것도 사주시며 아버지가 돈이 없을땐 돈도 꿔주시고..

그분 따님은 아버지 생일에 옷도 사주시고..

아드님은 버스일하며 고물까지 줍던 아버지를 도와서

고물 주울때 친구들 불러서 도와줬다고 하더군요..

제 동생 학교선배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친한 선생님도 계셔서

그 선생님이 동생한데 한번은 5만원이란 큰돈을 쥐어주시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

 

아무튼..

 

어쩔댄 그 사람이 찾아와서 소란도 피우고 동네사람이 시끄럽다며

경찰을 부르고 전 그냥 모르는 사람이라고 남인데

남에 집에와서 소란피운다고 했죠,...저도 참 나쁘네요..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고 제가 고2쯤 조용해졌어요..

 

그리곤 제가 21살되던해에 이모와 연락이 되었고

외할머니도 뵙고 어릴때 친하게 지내던 사촌도 만나고..

그 사람은 지금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중이라고 하네요..

 

아버지...어릴땐 엄격하고 매도 많이 드셨고..

밥먹을때 그 사람에게 물달라고 하면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면서 니가 가서 떠먹으라고 하시고

엄청 엄하셨던 아버지 였는데..

지금은 음식도 엄청 느셨고.. 음식이 맛있어질수록 아프네요...

어깨는 왜이리 좁아지셨는지.. 키는 왜이리 작아지셨는지..

주름은 왜이리 많아지고 깊어 지셨는지.. 머리는 왜이리 하얘지셨는지..

안쓰럽고 죄송하고 죄송한 마음이 너무너무 크지만..

미운 마음도 너무 크네요.. 솔직히 그 사람의 말 때문지

그 사람도 아버지도 믿을 수는 없네요.

그나마 키워주신정이있고 그동안 봐온 모습이 있고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힘드셨는지 알기에 ..

아버지가 너무 안쓰럽지만....

 

제 동생 내 동생 ..

얼마나 아팠을까.. 이생각만 하면 너무아픈..

세상 누구보다 아끼는 내동생...

지금은 너무너무 잘커서

자랑이지만 키도 작은편은 아니고 운동은 어찌나 잘하는지 ^^

뭐 공부는 지금 재수중이지만 수능이 얼마 안남았네요..

아침에 독서실로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고생하고 노력하고

넘 이쁘네요 생각도 사상도 너무 바르게 자라서 믿음직스럽고

친구들도 좋은녀석들만 있는거 같아서 ㅎㅎ..

원더걸스 소희가 좋다면서 자기폴더에 사진 모아논거보던 피식 웃곤하네요 

가끔 병원에서 그사람이 전화오지만 동생녀석 엄마라고 그립나봅니다..

하긴 어릴때 항상 우리 막둥이~ 우리막둥이~ 듣고 자라왔으니..

상처도 크면서 전화오면 엄마도 잘지내라면서 걱정스럽게 받더군요

전 음.. 쌍욕을하면서 당신이뭔데.. 등등..;;

요즘엔 제가 받으면 바로 끊어버리네요 ...하핫;

 

전 음.. 뭐 초등학생땐 잘지냈구요.

중학교올라가면서 참.. 적응못하더군요..

늘 외톨이였죠 .. 반에서 방과후에 뭐 조짜서 비빔밥 만들어 먹고

공기대회도 하고 물놀이도 하면 그시간이 얼마나 미웠는지.. 얼마나 싫었는지..

고등학교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고1 초기엔 괴롭힘도 당하고.. 그러다가

운이 좋았는지 그래도 친구도 생기고 그러니 괴롭히던 애가 괴롭히지도 않고

친구인 마냥 말걸던때...... 뭐 아무튼 고2때 후반에 좋은 친구녀석들도 생기고

고3은 즐겁게 지냈어요 뭐 여전히 모임활동은 정말 싫었지만...

반에서 꼭 찌질한 애들 있자나요 뭐 저도 그중 하나였죠..

눈치도 많이받고 그랬지만.. 그래도 뭐 .... 나쁘진 안았어요..

그래도 중학교 고등학교 전부 공학나와서 심한 괴롭힘이나

따돌림은 없었으니 여자애들하고 전혀 못어울려서 싫었지만

불생중 다행이였죠..;;

 

20살이 되면서 대학교 진학은 못하고 알바하고 흥정망청 쓰곤 했는데..

그때 항상 알바를 혼자 못해서 친구에게 애걸복걸하며 같이하고

친구 안하면 저도 따라 안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학 안간 애가 한명있었거든요

그렇게 제가 아는사람없는곳은 절대 안가게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제가 주걱턱이였는데.. 이것때문에 항상 땅만보고 다녔죠..

학교다닐때도 이게 너무 싫어서 집에와서 남몰래 울고 지금 생각하면 웃기네요 ㅎㅎ;

아무튼 20살 되면서 교정비 500정도에 수술비가 1500정도 였는데

아버지께서 큰맘먹고 감행하셨죠..

뭐 전부터 제가 울고불고 속을 상당히 썪였죠... 근데 이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교정을하고 1년정도 지나서 21살 겨울에 수술을 해서 전 턱이 들어갔어요..

근데 달라진건 없었어요 친구들은 완전 몰라 보겠다며 그러곤했는데..

전 그대로 였어요 ... 자신감이란건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조카 되는분에게 돈을 빌리는 수치수러운 짓도

하셨죠...큰고모 큰딸이 저희 아버지와 동갑이니.. 고모분들과 아버지와 나이차이가

좀 심하거든요.. 큰딸분이 잘 사셔서 빌려주신거아니고 큰딸분이 보증.? 비슷한걸

서주셔서 은행에서 빌려서 수술을 했죠...

제가 정신차리고 돈을 모았다면 충분히 마련할수있는 시간이 있었죠...

그렇게 22살 올해 9월에 회사를 퇴직하면서 퇴직금으로 수술비빚을 청산하셨어요..

아... 그리곤 고물하신다면서 차도 파시고 화물차마련하셔서 여기저기 터 알아보시고

이러고 계시네요...  

 

21살 수술하기 2달전부터 정신과에 다니면서 약도 타먹고 상담도 시작했었어요

군대 문제때문이기도 했죠 한심하죠... 누구나 다 가는 군대 ...인데....

아무튼 그전부터 문제가 있었기에 아버지의 권유와 제가 가고싶다고 해서

다니게 됬는데..... 약타면서 원장선생님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고

약도 먹으나 마나 잘 모르겠지만 기록에 남는건 약탄기록뿐이기에

꾸준이 타먹었죠 ...올해 1달전쯤에 공익 판정이나서 이의제기를하고

.... 중앙병무청에가서 제검을 받는게 좀 친절할줄알았더니..

수원병무청보다 더 심하게 기록보는둥 마는둥하더니 이걸론 면제는 어렵다며

말할 더 있냐고 하는데 그냥 가슴이 탁 막히는게 그냥 수긍하고 왔죠.

그리고 원장선생님께 원한담긴편지를 남기면서 약은 그만 타게 됬고

상담선생님에게도 이제 그만 다니겠다고 했죠.. 뭐 권유로 2주니 2회네요

2번 더 다니고 그만 다니게 됬습니다... 그나마 말할곳은 선생님 뿐이였는데..

계속 받아도 달라지는건 없을태고 별의미 없다고 판단하에 ...

지금은 편의점에서 알바를하는데 알바중에 맥주에 의존해서 근근히 이어가네요

 

내 도플갱어같은 어머니란 존재

저도 지금 똑같이 사람들이랑 못 어울리고 매일매일 술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원도 다녔었구요 제가 당신이였다면 진작에 죽었을겁니다..

구질구질하게 생을 이어가기싫어요 당신은 왜 살고 있는지

제 의문은 이거 하나네요...

 

 

더 많은 말이 하고 싶고 더 많을 글을 적고 싶지만..

지금 이렇게 적은글도 정리도 못하고 적으니.. 더 적어봐야 의미가 없겠네요..

이제 다 정리 하려고 합니다...

이종사촌.. 이모의 딸 이죠..

정말 어릴때부터 같이 놀며지내와서 친했었는데..

이모와 연락이 되면서 사촌과도 자주만나게 됬어요

운좋게 같은 동네 살고 있어서요

동갑네기와 동생이 있는데 제가 외롭다는 이유로

매번 귀찮게 했었네요.. 카페 대려가서 밤늦게 까지 붙잡고 있고..

아무튼 이모와 사촌과도 연락을 끊었고...

상담선생님....과도......이젠 연락 올일이 없고 얼굴도 볼 수 없느니...

걸리는건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상담선생님이 걸리네요..

아버지 이제 3년뒤면 환갑이신데... 동생녀석 이제 막 수능볼때인데..

마지막에 눈물보이시던 선생님....

아버지에게 빚만 남기고 간다는게...동생에게 허전함을 아픔을 남기는게 아프지만..

이대로 5년 10년이 지나면 동생에게 빌붙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제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 너무 늦었지만

더 이상 늦어지만 더욱더 큰짐에 되기에...

이제 정리해야하는데....

동생 수능보고 대학 붙는거만 보고 그리고 ... 그리고 나서 죽을려구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는데

이말을 들으면 수긍하며,, 편히 가라고 해줄사람이 없는거 같기에..

말할사람도 없기도 하지만 선생님께 말하고 나서 ,, 아니다 싶어서

다음주에 바로 뻥이라고 했지만 아버지에게 연락했더군요..

직접적으로 말한거 같진 않지만 아버지가 왜 상담그만두냐면서

무슨일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 무슨말을 한거같네요..

하.. 무슨일 있으면 말하라니 ...

말하면 노발대발 화댈거면서... 한심하다는듯 왜 그러냐면서

자기는 14살부터 혼자 커왔다고 너 나 없는면 개밥에 도토리라고 하실걸 알기에..

말하나 마나 인걸 아니까....왜 엄마랑 똑같이 구냐고 하실거란걸 아니까....

 

아무튼 인터넷 이란거 참 좋네요 익명성도 보장되니

제 성격상 리플보러 몇번이나 왔다 갔다 할탠데...

악플도 있을탠데.. 무섭지만 또 안보면 안되기에......

후회하겠지만.... 아프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말하고 싶어서요

너무 답답해서요...

이 글이 전부가 아니니.. 이 글을 읽고 판단하는건 ...

여러분들 자유니 제가 어쩔 수 없는거겠죠

... 그렇네요 ;;;

 

......전 뭘 바라고 있는걸까요......

전 저는. 그러니가 전 말이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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