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품이의 Qt ^ ^
{마가복음 1:1 ~ 8}
[구약의 메시야가 진정 오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 마가복음을 다시 처움 나누고자 합니다. 좀더 업그레이드하기도 할 것이며 이 설교는 제가 섬기는 청년회 설교에도 활용을 할 계획입니다. 저의 묵상과 각종 관주와 주석등을 참조 정리하여 올립니다. 시간이 된다면 원어 연구를 추가해서 넣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격려와 이해 바라며 주님 안에 서로 큰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 ^
마가복음의 첫 시작은 바로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나타내며 그 나라의 시작임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구약의 예언대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유념해야 할 것은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즉, 인성과 신성을 가진분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분으로서 인간이 온전히 표현 가능한 이름이 아니고 히브리어 자음 4개만 있어 가장 가까운 해석일 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은 인간들이 가지는 이름처럼 뜻(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러 오심)을 가진 이름을 가지셨으며 성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으로서 성자 하나님으로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합니다.
이는 이미 구약에 예언된 사건입니다.
<겔36: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는 분으로 지금은 계십니다. 사탄이 준 선악과를 먹으므로 죄악의 본성을 지닌 인간이 타락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그 악한 본성을 이기어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케 하시는 성령님을 주님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저를 비롯하여 절대 하나님을 믿지 않을거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성령이 내리면 목숨을 걸고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영생의 성령을 모두가 사모하시길 원합니다.
*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는 것이지 자신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태론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 조심하시어야 합니다. 육체를 가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찌 임하겠습니까 주님은 성령 보혜사를 보내사 예수님의 원하시는 도움을 행하기에 자신이 마치 우리에게 임하고 함께 한다 표현 한 것입니다. 잘 구분하셔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겸손하게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합니다. 그는 독신에 집도 제대로 없고 옷도 누추하며 메뚜기와 거리의 꿀을 찾아 먹습니다. 이는 이사야 구약의 예언대로 응한 것으로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을 참 메시야이심을 그는 또 증거합니다. 그의 겸손은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을 줍니다. 흔들리는 갈대가 아닌 즉 심령이 굳어 목이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며 광야의 힘든 생활을 통해 사치하지 않아 남들의 큰 덕이 되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리더가 되기 위해선 모든 이의 종이 되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의 리더쉽은 주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한 분입니다. 많은 이가 이것은 이상이라고 하지만 장기려 박사 한경직 목사님등 모든 부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서도 모든 것을 내어주어 실천하시는 분들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는 하늘에서 영원히 그들의 쇠하지 않는 부로 남을 것이며 그 이름이 영원히 하늘과 세상에서 빛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세례를 통해 신랑되신 예수님과 백성의 만남이 있기 전 중재자와 같이 신부와 같은 성도들의 몸과 마음의 성결을 통해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합니다.
거기에는 훗날 예수님을 못 박게한 유대와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에도 그들이 호산나를 외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예수님 부인은 바리새인의 선동정치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거대한 소련이 공산화 된 것도 단 몇만명의 공산당의 선동정치에 의한 것이라 하며 북한 또한 김일성의 우상화가 몇천정도 내외의 공산당원의 소행이라 합니다. 자신의 줏대 없이 대중심리에 휘말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을 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성경중심의 신학을 가져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그의 검소함의 겸손 외에 또 본 받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언행입니다. 나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을 못한다 합니다. 당시 노예는 손님의 신을 풀어 발을 씻기었다 합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신을 풀어 발을 씻길 자격도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 앞에 노예보다 못하다는 지극한 겸손을 말합니다. 그의 삶 언행 그는 정말 겸손히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진정한 선지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시대의 모든 평신도와 사역자들의 큰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신정정치의 교훈은 세상에 부분적으로 나타 날뿐 온전한 정착이 세상에 이뤄지기는 힘든 것을 봅니다. 뉴스를 보면 서로를 어떻게 하면 잡아 먹지 못해 안달이고 더 세금을 축 내지 못해 안달이고 더 내가 높아지지 못해 분을 참지 못하는 리더들의 현실을 봅니다. 믿음은 있건 없건 선악과의 본성이 아직도 남아 있고 우둔한 인간이라 실수가 쌓여 어리석음을 누구나 드러내고 맙니다. 성령의 시대로서 옅게 나마 주님의 통치를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삽니다만 예수님의 재림과 주님께서 종말에 세상의 왕이 되었을 때 참된 인류가 꿈 꾸는 세상은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해야 할 것은 교회를 통해 천년왕국이 이미 임한다는 무천년설입니다. 완전한 주님의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천년왕국의 통치는 예수님의 의해서 자연스레 주님이 임하는 것입니다. 교회 성도나 교황이 그리고 루터와 칼빈이 개혁하지 못한 무천년설은 세계대재앙의 원초인 제국주의적 선교관을 유지 시키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무천년설을 배운자들이 십자군 전쟁 제2의 제국주의 선교관을 가지고 제2의 히틀러 제2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그의 발언중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카로릭 선교사에게 조선 팔도에 성당을 세운다함)를 만들지 모릅니다.
다만 성령님 안에서 우리는 육의 싸움이 아닌 그 날을 힘써 사랑과 복음으로 깨어 준비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우리 모두는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 합니다.
사역자는 예수님을 준비하기 위해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사 우리와 함께 영원히 있게 하십니다. 받은 성령의 임재는 영원히 떠나지 않으며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앞에 순종할 때 더욱 충만하여 집니다. 예수님께서 명하시고 함께하시는 성령님과의 동행을 천성을 향한 순례의 여행을 마가복음을 묵상하며 우리 함께 해요 ^ ^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례요한같이 주님의 길을 걸림없이 예비하는 검소함과 겸손함을 갖추어서 많은 이들이 주께 돌아오게 하소서,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매일을 함께하며 주님의 뜻대로 우리의 형상을 만드소서 소란스러운은 인간의 통치로 우리 맘이 병듭니다. 그들과 우리를 다스려 주셔서 평안한 가운데 주님을 맞이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주님과 세례요한의 겸손을 알고 실천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