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록
끝
|2017.06.22 04:14
조회 922 |추천 1
아내의 장례식을 치루고,
어릴때 부모님은 돈을 벌기 위해 나를 할머니 집에 맡기셨다. 할머니는 나를 17년이라는 세월동안 키우면서 이런말을 하셨었다.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내가 해야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성공한다' 라고 하셨었다.
어느날 부모님은 시작했던 사업이 대 성공 하셨고, 흙수저 축에도 못끼던 나는 순식간에 금수저가 되었다. 부모님의 사업의 성공은 지금 살아온 내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 했던, 할머니와의 이별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기 직전에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똥깡아지 이제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가라고... 이 할매는 죽여도 여한이 없다고' 할머니와 하루 하루를 정말 힘들게 살았었던 나는 할머니와 같이 가자고 했었다.
- 하지만 할머니는 나와 같이 가지 않았다. 좀 불안하다 나도 가지 말까?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지 팔 일째 되는 날, 굉장히 넓고 복잡한 도시에서 생활하게 된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날에 할머니는 돌아 가셨다.
내가 앞으로 돈 때문에 전전긍긍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감... 행복감을 누리고 있을때, 할머니는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돌아 가셨다.
그 전화를 받고 난 이후 부터 지금까지 약 4개월의 시간동안 내 머리속에는 이 말이 맴 돌고 있다. ' 할매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 ... 그리고 할머니의 심장이 멎어가는 동안 그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 내가 있었다면 .... 할머니는 돌아가지 않으셨을 텐데...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뒤에 아버지는 나를 불러 술을 한잔 하시면서 나에게 ' 이제 고생길은 끝 났다고, 더 이상 돈떄문에 무언가를 포기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하고 싶은일, 가지고 싶은 것 무엇이든 사라며 카드와 자동차 열쇠를 주시며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라고 하셨다.
- 나는 이런 선물 받을 자격 없는데 ....
그렇게 슬퍼하고 있는동안 대학교는 개강을 하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등록금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동안 등록금때문에 학기중에 하던 알바는 그만 두게 되었고, 참여하지 않던 과 생활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 동안 돈에 치여 살던 나에게 보이지 않던 것 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과 생활을 하면서, 많은 후배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 후배들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형, 오빠, 너는 그 동안 왜 이렇게 과 행사, 모임에 참석 안했냐고.... 도대체 참석 안했던 이유가 뭐 냐고 하는 물음에 나는 내가 너무 가난해서 형편이 안되었다고 이야기 했지만, 다들 농담인 줄 알고 재밌다고 깔깔 거리면서 웃는다.
- 정말 가난해서 참여 못 했던 건데...
이런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건 점점 잊혀져 가고, 긁어도 긁어도 끝이 없는 카드의 한도는 내 자신을 점점 이상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남들처럼 옷도 사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먹고 싶은거, 사고 싶은 거 모두 하던 나는 정말 행복 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듯이 아버지의 카드는 나를 좀처럼 갉아 먹으며, 조금씩 조금씩 병들게 만들었다.
- 이게 돈 맛이구나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와 함께 살 당시에 나와 같은 처지로 할머니에게 맡겨 졌지만, 부모님과는 연락도 안되고, 할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셔서, 나와 함께 지냈었던....같은 지역으로 대학을 오게된 한명밖에 없는 친구랑 밖에서 만나서 이야기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어릴때 부터 같이 자라오면서 때로는 누나처럼, 가족처럼 모든 일을 같이 하고, 잠도 같이자고 밥도 항상 같이 먹었던 가족 같은 친구다. 사실은 내가 짝사랑 하지만 말이다. 어쩌다 보니 같은 지붕아래서 같이 살던 그 친구는 정말 힘든 표정으로 나에게 '지금은 행복하니?' 라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답변 할 수 없었다. 항상 내가 존경하고 동경하고 항상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살아 가던 그 친구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는 기댈 사람도 없고 혼자여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여자로서 혼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게 너무 힘들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토닥여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눈물이 멈추고 기분 전환도 할겸 술집에가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모텔 이었다. 이런식으로는 안되는데, 미쳤었나 보다. 내가 혼란스럽게 있을때, 그 친구도 일어났다... 눈이 마주쳤다. 그 친구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단 우리는 옷을 입고 어색하게 해장국을 먹으러 갔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살면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술을 먹었던 건 처음이었고 해장국을 먹으면서 정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많지만 ... 차마 하지 못 했다. 일단 집에 같이 들어 갔다.
- 혼란스럽다. 무슨일들이 있었던 거지?
얼마 뒤에 나는 결국 고백을 했다. 차였다. 안그래도 어색했는데, 더 어색해 졌다.
- 이불킥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뒤에 우리는 다시 이야기 하기 시작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와 이야기 할때마다 친구가 안절부절하면서 뭔가 숨기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물어 봤지만 말해주지 않았다.
-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 건지 정말 궁금하지만, 기다려야겠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 우리는 각자의 일과를 끝내고 밖에서 만난 날이 있었다. 날이 너무 무더웠던 탓에 얇은 티를 입고 나왔던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워낙 작고 마른체형인 그녀의 배가 조금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 했다. 그 날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 대충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에게 사흘 뒤에 어디 갈데 있으니깐, 역대급으로 준비하고 오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내 마음은 아팠다. 그동안 혼자 마음 고생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 이번에는 저번처럼 떨지 않고 고백 할거야, 그리고 미안해
사흘 뒤 나는 평소와 다른걸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줬던 차키로 차를 운전하고 나왔다.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자 마자 기둥에 긁혔다. 역시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그녀는 약속장소에 나왔고 역대급으로 꾸미고 나왔다. 너무 눈부셨다. 비록 평소와 다른걸 하지는 못 했지만 같이 영화보고 밥먹고 카페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고백을 했다. 하자마자 그녀가 울면서 떄렸다. 그리고 말했다. '넌 정말 병신이라고, 나쁜놈이라고, 고백을 했다가 혼자 결말 짓는 놈이 어딨냐고' 할말이 없었다. 나도 같이 울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임신 시키고 안절부절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경찰이 왔다... 누가 경찰에 신고 했다고 한다. 어떤 남자가 여자 성폭행 한다고 ... 세상일은 역시 드라마 같지 않다.
- 나는 더 맞아야 한다
그 뒤로 부모님께 말하고, 혼인 신고를 했다. 정말 좋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 어떻게 먹여 살리지
나는 졸업을 하게 되었고 임신 6개월쯤 되었을때, 임용고시에 합격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먹여 살릴 수는 있구나 싶으면서도, 교사로써 자격이 있나 싶다.
- 열심히 먹여 살릴게
발령이 나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다가 운이 좋게 발령이 나서 출근을 하게 되었다.
- 열심히 살자
정말 슬픈 날이다. 아내가 유산을 했다. 몇날 며칠을 울었다. 아내는 울지도 않고, 멍떄리고 만 있다.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듯 하더니 아내의 정서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고, 잠도 자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며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옆에 같이 있기로 했다.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거 참 없는거 같다.
아내가 자살을 했다 내가 잠깐 집을 비운틈에 자살을 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 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살았을텐데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자리를 비우면 안되었는데 또 같은 실수를 반복 하게 되었네 이 모든게 너무나 야속하고 답답하다. 내 삶의 동력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