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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옥수수빵, 콘브레드

Nitro |2017.07.12 11:52
조회 57,440 |추천 269

 

영어 단어가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 그 뜻이 미묘하게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잠시 언급한 바 있는 믹서(한국: 칼날로 음식물을 갈아주는 도구, 미국:반죽기)와 핫도그(한국:소시지를 막대기에 꽂아 반죽을 묻혀 튀긴 음식, 미국: 길쭉한 빵 사이에 소시지를 끼운 음식)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유입된 단어 중에 이런 식으로 의미가 변한 것이 있으니, 바로 '소울푸드'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 영혼의 음식 =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는 정겨운 음식'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만

이런 의미로 쓰이는 단어로는 컴포트 푸드(Comfort food)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소울 푸드는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문화에 소울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유행하면서 생긴 단어인지라 한국 사람이 쓰기엔 조금 애매한 감이 있습니다.

남부의 흑인들이 북부로 올라와서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가던 와중에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던 게 바로 소울푸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라이드 치킨은 내가 좋아하는 소울푸드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김치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소울푸드에는 프라이드 치킨 외에도 검보 수프나 잠발라야 등 다양한 음식들이 포함되는데, 그 중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메뉴가 있으니 그게 바로 콘브레드입니다.

발효가 필요없는 퀵브레드이면서 옥수수가루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약간은 거칠지만 그 투박한 맛이 매력인 빵이라고나 할까요.


 

먼저 액체류를 모두 섞어줍니다. 

버터 1/4컵은 녹여서 붓고, 여기에 우유 한 컵과 달걀 한 개를 풀어서 거품기로 잘 저으면 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옥수수 식빵은 밀가루 비율이 높고 효모를 써서 발효시키는 '옥수수 가루가 섞인 식빵'인 반면,

콘브레드는 베이킹파우더를 써서 부풀리고 옥수수 가루가 많이 들어가는지라 세세한 레시피에서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다음으로는 가루 재료들을 섞어서 부어줍니다.

밀가루, 설탕, 소금은 제과제빵에서 항상 쓰이는 재료들이지만 옥수수가루와 베이킹파우더는 콘브레드 만들 때 아니면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충대충 섞어서 큰 멍울만 안 보일 정도가 되도록 합니다.

너무 잘 섞어버리면 콘브레드 특유의 거친 느낌이 다 죽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가장 흔한 레시피대로 만들기는 하는데, 콘브레드는 남부 흑인들의 대표 가정식 답게 레시피도 천차만별입니다.

밀가루나 설탕을 넣지 않고 콘밀로만 만드는 레시피가 있는가 하면, 옥수수 가루의 색깔도 노란색, 흰색, 파란색 중의 한 가지 색깔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엔 무쇠팬에 베이컨을 굽고 나서 그 기름에 반죽을 올리고 구워야만 진정한 콘브레드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농사 짓던 괭이(Hoe)를 모닥불에 달구고 콘브레드 반죽을 구워서 만드는 괭이케이크(Hoecake)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야말로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음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깊이가 있는 오븐용 사각팬에 베이킹 시트지를 깔고 반죽을 채웁니다.

베이킹 시트지가 없을 경우에는 버터나 식용유 등을 발라서 들러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쪽 표면을 주걱이나 스페츌라로 펴 바른 후 200도(화씨 400도) 오븐에서 25분가량 구워줍니다.

더 정확한 방법으로는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면 이쑤시개 등으로 가운데 부분을 찔러서 반죽이 안 묻어나올 때까지 구워주면 됩니다.


 

콘브레드를 굽노라면 고소한 옥수수빵 냄새가 집안 가득히 퍼집니다.

나무 젓가락으로 가운데를 한 번 쿡 찔러보고, 꺼내서 식힙니다.

콘브레드는 뜨거울 때 먹는 것보다 완전히 식혀서 먹는게 더 맛있는 빵이니까요.

다 식으면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먹기 시작합니다.


 

고소하면서, 살짝 단 맛이 돌고, 촉촉하면서도 입자가 거칠어서 빵만 먹다보면 목이 메이는 콘브레드입니다.

빵만 먹다보면 몇 조각 안 먹고 질리는데, 우유라도 한 컵 옆에 놓고 함께 먹으면 끝없이 들어가는 불가사의한 빵이지요.

머핀 형태로 만드는 '콘머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네모나게 잘라서 먹는 것이 더 맛있는 기분입니다.


 

먹다보면 왠지 남부 흑인 억양으로 "디스 이스 마 솔 뿌드!" 외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음식입니다.

물론 예전에도 옥수수빵은 여러 번 먹었었지만 , 콘브레드가 미국 흑인들의 음식이라는 사실을 뇌리에 인상깊게 박아넣었던 것은 "글로리(국내명 영광의 깃발, 1989년작)"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덴젤 워싱턴과 모건 프리먼, 그리고 라이온킹의 심바 목소리로 유명한 매튜 브로데릭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인데

남북전쟁 당시 자유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흑인 병사들이 겪게 되는 고난과 시련을 잘 묘사한 명작입니다.


하지만 어떤 소설을 읽건, 무슨 영화를 보건간에 음식 이야기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뇌 구조를 갖고있는지라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인종간의 갈등이나 처절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콘브레드 이야기였지요.

북부군 내에서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고, 그 결과 흑인 병사들은 군화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해 피투성이가 된 발을 끌고 훈련을 받는 상황.

트립(덴젤 워싱턴 분)은 주변 농장에 신발을 얻으러 가기로 마음먹고 다른 병사들을 꼬십니다.


"내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멀지 않은 곳에 농장이 있대. 그런데 농장 주인이 음식을 대접해 줬다는 거야.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오면 또 준다고 했대. 거기 가면 신발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레이비(Gravy sauce: 고깃국물 소스), 콜라드 그린(Collard greens: 푸른 잎채소 볶음)에 콘브레드까지!"


음식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단지 대사 뿐인데도 탈영과 총살을 감수하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인 음식들.

동료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는 부분에서는 고소하면서 까끌까끌한 콘브레드 생각에 저절로 침이 넘어갔습니다.

당시 이 영화를 봤던 이유가 미국의 인종 갈등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학습 자료로 봤던 거고, 강사가 추가적으로 남부 흑인들의 소울푸드에 대해 설명했건만 기억에 남는 거라곤 콘브레드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 목록 뿐이네요. 


 

영화에서도 언급했듯이 콘브레드의 진가는 스프나 소스 등 걸쭉한 국물을 함께 먹을 때 발휘됩니다.

콘브레드를 한 입 물고 뻑뻑한 입 안에 뜨거운 야채 스프를 흘려 넣을 때의 만족감.

아니면 빵을 반으로 잘라 국물을 듬뿍 찍어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하는 그 고소하고 부드러운 반죽을 먹을 때의 느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흩어진 빵 부스러기를 머금고 한층 더 걸쭉해진 스프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고 난 후의 포만감까지.


애초에 콘브레드는 미국 남부에서 많이 기르던 옥수수를 흑인 노예들이 갈아서 빵을 구워 먹으면서 시작된 요리이고,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흑인 음식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고향과 인종을 막론하고 순수한 그 맛 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인 듯 합니다.


추천수269
반대수15
베플맘모스|2017.07.12 15:44
아 진짜 고소하겠어요 퍽퍽한 빵에 스프라니! 제대로 먹어본적도없는 음식인데 상상하면 크~하는 소리가 나는 이유는 뭘까요 ㅋㅋㅋㅋㅋㅋ요새는 이것저것 크림이나 필링을 채운 빵들이 많아서.. 저렇게 담백한 빵이 또 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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