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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바나나빵

Nitro |2017.09.02 05:06
조회 193,380 |추천 877

 

며칠 전 구입한 바나나가 너무 익어서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바나나빵을 만들어 먹기로 합니다.

간단히 먹으려면 갈아서 바나나 스무디라도 만들어 먹을 수도 있지만 마침 얼음이 똑 떨어진 관계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완전히 익어서 부드럽게 변한 껍질을 벗기고 바나나를 으깨고 있으려니 갑자기 얼마 전 카페에서 학과 프로젝트 팀 회의를 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커피 한 잔 들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커피 대신 바나나 한 개를 사오며 투덜거리더군요.

이 카페는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리고 커피 생산 농가들의 궁핍함과, 다국적 커피 기업들의 횡포를 생각하면 좀 비싸더라도 공정무역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들고 온 바나나를 가리키며 한 마디 했습니다.

"그럼 바나나는?"


 

미국 내에서 바나나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합니다.

당연히 대다수의 바바나는 온두라스나 과테말라같은, 바나나 벨트가 걸쳐있는 중남미 국가들에서 수입 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Dole을 비롯한 거대 다국적 과일회사들은 좀 더 많은 바나나를 좀 더 신속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바나나 농장 뿐 아니라 내륙 농장지대와 항구를 잇는 도로, 철도, 전기 시설등에 투자를 하게 되지요.

그 결과 가난한 중남미 국가들은 바나나 산업에 더 목을 매게 되고, 결국 국가 전체가 과일 회사의 손에 놓이게 됩니다.

심지어는 국민들이 가난하고 시민의식이 성장하지 않아야 저렴한 노동력을 착취하기 쉬우니 과일 회사들이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단어가 "바나나 공화국".

오 헨리가 온두라스에서 몇 개월 지내면서 썼던 단편인 "양배추와 임금님"에 처음으로 등장한 단어지요.

나중에는 특정 산업에 국가 전체가 매달리며 거대 기업에 경제가 완전히 종속된 국가들을 지칭하는 경제학 용어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또 달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기업이 국가 단위로 착취를 할 정도로 바나나의 인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통계만 봐도 바나나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과일입니다. 

판매량 2위인 사과와 3위인 오렌지를 합쳐도 바나나의 1인당 소비량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니까요.

그만큼 바나나를 이용한 요리도 많이 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바나나 빵입니다.


 

포크나 주걱, 혹은 비닐장갑 낀 손으로 완전히 으깬 바나나에 달걀 두 개, 녹인 후 미지근하게 식힌 버터 반 컵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가루 재료는 밀가루 2컵, 설탕 반 컵, 소금, 베이킹 파우더를 따로 준비합니다.

바나나에 가루 재료를 절반 정도 넣고 섞다가 어느 정도 섞이면 나머지 재료도 넣고 가루가 보이지 않게 잘 섞습니다.

거의 다 섞이면 호두를 한 웅큼 정도 넣고 마저 섞어줍니다.


 

반죽을 빵 틀이나 미트로프 틀에 붓고 표면을 고르게 펴 줍니다. 

마지막으로 호두를 한번 더 뿌리고 175도 (화씨 350도) 오븐에 한 시간동안 넣어둡니다.

4~50분 쯤 지나면 빵 굽는 고소한 냄새에 달달한 바나나 향기까지 섞이며 절로 침이 넘어가게 됩니다.

시간이 다 되면 이쑤시개로 빵 가운데 부분을 한 번 찔러서 반죽이 묻어나오지는 않는지 확인합니다.

반죽이 묻어나올 정도로 덜 익었으면 5분이나 10분 가량 더 구워야 하는데, 이 경우 위쪽 표면이 타지 않도록 알루미늄 호일이나 뚜껑 등을 덮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완성된 바나나 빵을 틀에서 빼낸 다음 식힘망에 올려서 식혀줍니다.

지금에야 맛으로 먹는 바나나빵이지만 정작 이 빵이 만들어진 계기는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경제 대공황이 미국을 직격하면서 자투리 식재료를 어떻게든 써먹어 보려는 시도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지요.

베이킹 소다 회사들은 이스트를 써서 오랜 시간을 들여 발효시켜야 하는 기존의 빵 대신, 베이킹 소다를 써서 곧바로 오븐에 구울 수 있는 이른바 "퀵 브레드"의 레시피를 대거 개발했습니다. (요즘은 청소용 세제로서의 활용성을 더 강조하는 것 같지만요)

그리고 그 중 하나인 바나나 브레드는 너무 익어서 버리기 직전인 바나나를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재활용할 수 있는 메뉴였습니다.

익어서 흐물거리는 바나나는 반죽하기에도 좋고, 당도가 높아지면서 설탕을 많이 쓰지 않아도 충분히 단 맛을 냈기 때문이지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바나나빵 레시피는 전국의 주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수많은 변형 레시피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고 보면 바나나빵 뿐만 아니라 

미트로프(http://blog.naver.com/40075km/220957075800)처럼 대공황이 만들어 낸 요리들이 여럿 있으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오래간만에 홍차도 한 잔 하면서 바나나빵을 맛봅니다.

퀵브레드 특유의 거칠거칠한 느낌이 많이 죽어서 마치 카스테라 먹는 것 같기도 합니다.

촉촉한 빵을 입에 넣고 씹으면 바나나 향기가 가득 느껴집니다. 군데군데 씹히는 호두는 밋밋할수도 있는 식감에 재미를 더해주지요.

따뜻할 때 먹어도 좋지만, 완전히 식혀서 먹어도 맛있는 빵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바나나 공화국의 국민들을 착취한 결과물이라며 바나나빵도 비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커피와 바나나 뿐 아니라 초콜렛, 고무, 설탕에서 청바지, 완구, 가구용 목재와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이미 우리 생활의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애써서 무시할 수밖에 없을겁니다.

물론 쓰레기를 하나라도 치우는 사람이 하나도 안 치우는 사람보다는 낫고, 한 품목이라도 공정무역 상품을 이용하며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의 뜻은 존중받아 마땅하지요.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부조리가 세상 모든 불평등을 대표하지는 않기에, 섣불리 남에게 권하기 전에 한번 더 주의깊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듯 합니다.

달달한 바나나빵을 포기하는 건 꽤나 큰 다짐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추천수877
반대수61
베플으잉|2017.09.04 18:37
님진짜 대단하신분같아요...그냥 이 판 이어지는 글 다 묶어서 요리한접시 이야기한잔 뭐 이런 제목으로 요리에세이 내시면 사인받으러 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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