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품이 큐티 ^ ^
{마가복음 1:35 ~ 39}
[쉬지 않고 이 복음을 전하리!]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지역어 해석
Galilaiva(1056, 갈릴라이아)
갈릴리 Galilee
주전 734년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앗수르 군대를 위해 대로를 건설하였고(왕하 15:29) 많은 거민을 포로로 잡아갔다. 사 9:1(ASV 난외)에서 갈릴리는 "열방의 지역"으로 지칭되어 있다. 마케베오일서 5:15은 갈릴리를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부름으로써 이 지역의 이방인들과의 혼합성을 지적하였다. 일부 유대인들은 포로에서 돌아와 갈릴리에 정착하였다.
갈릴리 지역의 정확한 경계는 시대마다 다르다. 그리스도 시대에 갈릴리는 잘 구획된 로마 속주였다. 이 지역은 상부 갈릴리와 하부 갈릴리로 구분되었으며, 하부 갈릴리는 에스들론 평원 일부와 요단강, 갈릴리 바다를 포함하며 보다 낮고 평평하다. 상부 갈릴리는 봉우리가 2000~4000피트에 이르는 산과 산악 고원 지대였다(마 28:16). 나사렛은 이곳의 중심에 위치하였으며, 예수님으로 하여금 방대한 범위의 지리적 환경을 접할 수 있게 하였다. 강에 의해 물을 풍부하게 공급 받는 갈릴리는 매우 비옥하였다. 골짜기마다 풍성한 곡물과 목초지가 있었고 향료, 올리브 및 고산지대에서 나는 다른 열매들이 많이 산출되었다. 갈릴리 지역은 도로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구약성경의 "바다의 길"(사 9:1)은 하부 갈릴리를 통과하였다. 애굽과 아라비아와 시리아 상인들이 대상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이 길은 오늘날에도 따라갈 수 있는데, 나중에 이 길 위에 로마 도로가 포장되었다.
그리스도 시대에 갈릴리인들의 생활을 특징짓는 물질적 풍요와 넓은 시계는 예수님의 비유에 반영되어 있다(마 20:1-8 마 21:33 마 25:14 막 4:3 마 13:34 눅 13:6-9).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바스가 통치하였다(B.C. 4 - A.D. 39)(눅 23:5-7). 헤롯 안티바스는 분봉왕으로 임명된 후에 락카드(Rakkath) 지역 근처에 수도를 세우고 왕에게 입은 은택을 기념하여 디베랴로 명명하였다
2. 갈릴리 바다
갈릴리 바다는 북팔레스타인에 있는 심장 모양의 담수호. 요단강 수로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성경에서 여러 이름으로 나타난다. 신약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마 4:18, 마 15:29 막 1:16 막 7:31 요 6:1); 디베랴 바다(요 6:1 요 21:1); 게네사렛 호수(눅 5:1); 4회는 "호수"(눅 5:2 눅 8:22 이하; 눅 8:33); 몇 회는 "바다"(요 6:16-25)라고 언급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호수는 "긴네렛(하프) 바다"(민 34:11 수 13:27) 혹은 "긴네롯"(수 12:3)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호수의 길이는 약 13마일, 너비는 8마일이고 표준 해수면 아래 680피트에 있다. 가장 깊은 곳의 깊이는 약 200피트에 이른다. 호수의 동쪽에는 2,000피트 높이의 산맥이 연안에서부터 솟아 있는 반면 서쪽 산맥은 비교적 덜 가파르다.
북쪽 방향으로는 북서쪽의 비옥한 게네사렛 초목 평야와 북동쪽의 엘 바딜라(티 Batila) 초목 지대가 완만하게 펼쳐진다. 요단강은 꼭대기가 눈으로 덮여 있는 헬몬산과 레바논에서 물을 공급 받아 이 호수로 흘러 들어 간다. 플리니(Pliny)는 이 바다가 "활기에 찬 마을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고 함으로써 신약성경이 이 호수에 대해 제공하는 인상을 확증한다.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는 마을 가운데 가버나움(마 4:13 요 6:17); 벳세다(막 6:45); 고라신(눅 10:13); 막달라(눅 5:39); 가다라(막 5:1)가 있다.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예수님 당시에 번성했던 마을 가운데 시나브리스(Sinnabris)와 트리케아([Tarichaea] 문자적으로 절이는 마을[Pickle town])가 있다. 이 마을에서 생선을 염장하고 말리고 보존하여 스페인(Spain)과 같이 먼 곳의 시장에 까지 배로 운송했다.
아마도 팔레스타인 경제사에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산업도시 중의 하나일 것이다.
디베랴 교외에서 솟아나는 유황 온천은 몇 세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의학적 가치를 인정 받게 되었다. 헤롯은 이 유익한 물이 솟는 곳 근처에 왕국을 지었다. 이곳은 이러한 치료용의 목욕과 해수면 아래 위치한 이 호수의 열대성 기후로 인해 건강을 위한 유흥지로 각광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치료의 손길을 얻기 위해 이 호숫가에 몰려든 수 많은 병자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막 1:32이하; 막 6:53-56).
배는 고기를 잡거나 호수가 마을들 사이의 교통 수단이 되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배를 만드는 목수였기 때문에 거주지를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옮겼을 것이다. 예수님은 바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배(막 4:38)나 항해(막 4:35), 그리고 고기잡이(요 21:6)와 친숙해 있었다. 호수 주변 바로 가까이에 있는 육지와 멀리 호수 위로 솟아 있는 산맥과 고원 지대 사이의 기온차로 인해 호수에는 사나운 폭풍이 자주 발생한다(마 8:24). 바람은 연안에 인접한 산맥 때문에 호수 가장 자리로부터 몰아치다가 호수 중심에서 약해지고, 종종 맞은편 연안에서 사나워진다. 보다 덜 막혀 있는 북쪽 변두리가 폭풍을 자주 만난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거라사로 가는 도중에(마 8:23 막 4:37 눅 8:23 눅 8:26), 그리고 벳세다에서 가버나움으로 가는 도중에(마 14:24 막 6:48 요 6:17이하) 폭풍을 만났다.
오늘날의 성지 순례자들은 갈릴리 바다와 그 성스러운 기슭을 방문하였을 때 받은 영적 감동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전 힘을 얻으시기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기도하시는데 우리는 얼마나 위대하길래 무대포로 하루를 시작하지는 않는지요 저를 먼저 뒤돌아 봅니다. 눈을 뜨면 마음 속으로라도 하루의 문제를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는 귀한 시간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새벽 기도는 여러분 교회의 새벽 예배에 함께 함이 좋습니다. 혼자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 합심하여 하는 것이 우리들에겐 좋으리라 봅니다.
한번 산에서 기도하러 새벽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산아래 쌈지마당에서 여자들이 야외에서 새벽에어로빅을 큰소리로 음악을 틀어 놓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집으로 내려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심하여 형제 자매들이 큰소리로 찬양하고 주님께 예배하고 기도한다면 마귀들이 얼마나 싫어 할까입니다. 함께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한다면 더 큰 힘이 되어지리라 여겨집니다.
새벽예배의 기도시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획의 권능을 깨우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성부 하나님은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성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대속의 일을 행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이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일을 합니다. 인간도 계획과 창조 역사 하는 인간 활동을 통해 모든 일을 이루어 갑니다. 그 중 일의 시작 계획은 3분지 1의 가치를 두는 중요한 일입니다. 새벽예배는 오늘 이루어질 하루의 모든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인 것입니다.
하루의 일을 아무 생각없이 시작하게 되면 깜박하게 되어 여러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아침에 어떤 일을 기도하며 그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상기 및 각인 시키고 일을 시작 하였다면 그런 실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큰기업에서 많은 돈을 들여 회사를 발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어떤 학자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경영학을 공부하신 분 같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5분씩 오늘 해야 할 일을 작은 쪽지에 적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회사의 실적이 올랐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을 점검하고 계획하고 상기하여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은 사람의 중요 권능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먼저 하나님께 맡기면 모든 것을 더 하실 것입니다.
다음은 철야 예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밤새 철야로 기도하신 것처럼 오늘날의 철야예배도 시험을 만날 때 신앙에 참 힘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 이 귀한 예배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20년전 우리 집 주위에는 금요일 저녁만되면 온 골짜기가 기도 소리가 진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출석한뒤 저도 철야 후 산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어두운 높은 산에 올라가면 주여! 주여! 큰 소리를 지르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번쩍 번쩍 번개가 눈앞에 치는 거 같고 정신을 차립니다. 골짜기 꼭대기는 의외로 바람이 등성이를 타고 많이 붑니다. 큰소리로 기도하고 있으면 다른 골짜기에서도 저와 같이 소리 지르며 다른 분이 메아리처럼 기도합니다.
또 다음날 토요일날 출근하면 1시까지 기도한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눈이 벌개가지고 직장 동료 크리스찬은 밤새 기도하고 나옵니다. 금요철야부터 아침까지 교회에서 기도하고 직장에 출근을 한겁니다 그 때가 제가 입대하기 전 20년 전 쯤의 이야기입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절정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시대가 어두울 때 참빛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 이었나요? 대중매체가 발전하기 전 주님과 교회 밖에는 바라볼게 없는 순수한 신앙의 때 였기 때문인가요? 참 귀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배가 사라지고 기도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저녁예배와 철야, 주일학교 오후 예배등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즐거움은 더 커져보이고 잠식되어져 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더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같이 모여 함께 하는 예배는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 드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저녁 예배도 주일학교 오후 예배도 사라졌습니다. 더 교회가 흔들릴 때 더욱 지키고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은 우리들 자신들 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인간에게만 더 향하는 저의 연악함을 보기도 합니다 저부터 먼저 분발해아할 처지 같습니다.
다음, 본문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보러 왔는데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안주하시고 인기를 독차지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더 기적을 하셔서 자신을 알리고 영광을 누리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왕같이 대접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섭력하여 권력체를 구성하실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자신의 영화로움을 자랑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안주하시지 않으시고 아무도 모르는 곳을 향한 외로운 전도를 시작하십니다. 영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하시고 또 낮아지심의 고난의 길을 가십니다.
우리는 작은 능력을 자랑하고 인기 속에 도취하고 있지는 않는 지요 나는 있고 주님은 없는 인기의 자리 속에 기뻐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나는 살고 주님은 그 자리에 없는 모습은 아닌지요 내가 인기를 누릴 때 그 자리에 주님은 없습니다. 내 인기의 기운을 모두 하나님께 기도하며 알게 모르게 드릴 때 나의 인기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 나의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인기 도둑의 예배가 아닌지 뒤 돌아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외로운 길을 도전하시고 그 겸손의 길 만을 찾아 다니시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드릴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비우시기를 쉬지 않으시었습니다. 사이비는 한없이 사람의 영광을 도적하여 오지만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바 입니다.
외로움의 길을 가는 자는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의 알아줌이 아닌 하나님께서 알아주고 기뻐하는 바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알아주고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바는 최악이 현상입니다. 아예 사람이 안 알아 주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사람의 인기를 얻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쁨 되는 것이 최고인 것입니다. 나는 없고 주님이 계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인기는 없고 주님의 영광만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인기를 가지며 지인 앞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아무도 모르는 다른 곳에서도 전도하며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십니다. 크리스찬의 본분은 무엇인가요 가는 곳곳마다 주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 일을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본분은 생을 다할 때까지 나의 심장이 살아 있는 한 쉬지 않고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우리 모두의 평생본분입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덥고 나의 작은 신앙등이 흔들릴 때 잠시 저는 주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의 형편 모습에 상관없이 영생의 복음을 모두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참 평생본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가시는 곳곳마다 악령을 내어 쫓으시듯이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가 전하는 때에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며 새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일하는 직장에도 운행 할 때 항상 극동 기독교 방송과 ccm cd등 제 사비를 들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전달되어 사람을 살리고 마음의 모든 악한 영과 어두움을 몰아내고 참빛의 복음으로 참길을 얻도록 도우며 역사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하는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이 승리와 평안 형통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모든 식구, 크리스찬, 모든 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습 속에 내가 보여지는 것이 아닌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내가 사람들에게 기운을 받는 것이 아닌 나는 없이 주님께만 홀로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우리를 찾는 자가 아닌 주님의 좁을 길을 찾아 주님께만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그 모든 수고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다른 곳에서도 전하고 쉬지 않으시고 전하시고 승천하신 후 복음을 위해 기도하시며 일하시는 주님과 같이 천국복음을 우리 생 다하는 날까지 전하고 기도하게 예배하게 하여 주옵소서 형편에 낙망하지도 않고 매일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주위 식구 모든 사람도 이 나라가 더 기쁨의 일들로 변화가 쉬지 않케 하여 주옵소서 모든 이에게 평강을 더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