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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 30살(16)

리드미온 |2004.01.27 15:26
조회 19,116 |추천 0

연예가중계는 극도의 초조,불안,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나와는 달리 아주 유쾌하게 시작했다.

남녀 진행자의 화사한 옷차림과 밝은 표정, 그리고 그 옆의 게스트들.....

일주일에 한번 연예인들의 뉴스거리를 모아주는 이런 프로그램은 사실을 보여주는 취재기법으로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오락꺼리로 보여주고 있어서인지 사람들에게 인기는 많다. 왜들 그렇게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물론 이런 나도 텔레비전을 볼 때 이런 프로가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채널을 고정시키고 본다.

시작하면서 진행자들의 인사말이 시작되고 벌써 난 조급한 마음에 다시 지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도대체 뭘 보라는 거야?"

 

"얼마나 봤는데...?"

 

"막 시작해서 어쩌구하는데 이걸 50분 동안 보고 있어야 해?"

 

"아냐. 10분 정도 그 왜 이번에 2집 냈다는 엠시더맥스 얘기 다음에 나올거야."

 

그래....10분이면.....지선이가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있으리라...그 정도쯤이야....

지선의 말대로 MCtheMax가 2집을 내고 바로 1위가 된 것이 화제라는 내용이 지나갔다.

 

"자, 이번에는 지난 토요일에 생일을 맞아  전격 결혼발표를 했던 김미나양의  남자친구를 공개했다고 합니다. 허수원씨가 직접 만나고 오셨다고요?"

 

김미나? 아니...김연실?

맞다...1월 1일에 편의점 잡지에서 보았던 기사...그때까지만 해도 결혼 상대자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었다.

 

"김미나씨는 얼마전 '모닝 커피는 당신과 함께'란 영화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사랑에 푹빠져 있었나보네요."

 

리포터는 그렇게 말을 꺼내고 화면은 어느 호텔의 연회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화면의 이동을 따라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서.민.준.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지난 주 토요일이라면 어머니의 생신이라던 날이었는데...그래서 나와 런던에 가는 약속도 미루었었는데...

 

화면은 이제 아주 근사한 생일 파티 장면을 보여주었다. 촛불이 가득 밝혀진 화려한 케잌과 촛불끄기 그 와중에 다른 연예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장면전환.....

 

왼쪽에 리포터가 보이고 그 옆에 김미나 그리고.........다정하게 앉아 있는......

서.민.준이다!!!!!!!!!!!!

 

이럴 땐 눈을 의심한다고 해야 하나? 아님 '말도 안돼'라고 소리지르면 모두가 없어지는 환상인 것일까?

아니다, 민준과 닮은 사람일 수도 있다.

아무리 부정해보려고 해도 부정이 안되는 현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김미나씨, 이렇게 생일을 맞아 남자 친구를 공개하셨는데요. 두분 어떻게 만나셨나요?"

 

재잘재잘...김미나는 떠들고 있는데 서민준으로 보이는 사람은 말이 없었다.

나는 차라리 얼른 그 서민준과 닮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얼굴은 똑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목소리가 다르면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제가 미국에 화보촬영갔을 때였는데요. 현지에서 통역해주는 사람으로 민준씨가 왔었어요."

헉.헉.헉......

김미나가 '민준씨'라고 불렀다.

나의 의혹과 부정이 더 이상 현실을 이길 힘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그럼...정말....저 사람이 서민준이고.....김미나와 결혼할 사이?

 

"처음엔 그냥 말 수 없고 착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 이상하게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람에게 빛이 보는 거요....정말 그 빛때문인지 민준씨 때문인지....한동안 밥도 못먹고 일도 못먹고...."

김미나의 말은 점점 더 나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대고 있었다.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그 동안 모든 것이 꿈이었나? 책상위엔 인천-히스루 라고 찍혀 있는 비행기 티켓이 뒹굴고 있는데....

 

"그럼, 서민준씨는 김미나씨 어디가 맘에 들었어요?"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민준이 말을 하게 되는 차례였다.

혹시 연예인들은 다 가식적이라는데 그냥 한바탕의 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반인은 민준에게는 어떤 빈틈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처음엔 그냥 저는 학교다니는 통역아르바이트생이고 대 스타니까 말도 못부칠 정도였죠. 너무 떨려서요."

 

떨린다? 여자 앞에서...?

민준은 내 앞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하하하하....전 좋은 사람이면 그런 거 상관 안했는데 민준씨가 의식을 했나봐요."

 

민준의 대답이 어설펐다고 생각되는지 민준의 대답을 짜르고 김미나가 끼어들었다.

학교 다닐 때 악명은 높았지만 저런 것 보면 역시 센스는 있는 여자란 생각이 들었지만 나를 더욱더 분노에 불타오르게 하고 있었다.

 

"연예인답지 않은 평범한 여자다움이 좋았어요."

 

민준은 미리 준비한 대답인듯 어색하게 짧게 말했다.

평범한 여자다움? 이라고?

민준은 나를 대할 땐 대단하다고....왕비같다고.....그러지 않았나?

평범한 여자를 좋아했었다고?

오...이건 정말 김미나와 매스컴이 벌이는 사기극임에 틀림 없습니다.

민준은 하나도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는.....

 

"그런데요. 저도 그냥 평범한 학생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국제변호사가 되려고 로스쿨에 지원했고 붙었다는 거에요."

 

김미나가 매스컴에 어색해하는 민준을 덮어주기 위해서인지 또 말을 꺼냈다.

 

"그리고요....잭팟에 맞는 행운까지요....."

이젠 김미나는 더 악착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남들에게 많은 말로 떠들어야 하는 걸까....

그러나....

이제...난 어떻게 해야 하나.....어떻게....어떻게.....

 

"그럼 두 분 즐거운 데이트하시고요...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리포트의 마무리 멘트가 반가울 정도로 나에겐 아주 길고 긴 인터뷰였다.

 

난 자리에서 딱딱히 온몸이 굳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더 굳어서 동상이라도 되어버리고 싶었다.

이런 나를 '남친의 배신에 열받아 죽은 동상'이라 이름붙이고 앞으로 대대손손 배신하는 남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그런 존재라도 된다면 이 한몸바치고 싶었다.

그러나....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사람들이 보는 사무실에서 이래선 안되지....

동상이 눈물 흘리는 거 봤어?

안돼....안돼....

 

"한팀장!"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땐 지선이 내 흐릿한 시야에 서 잇었다.

 

"저 이번 PR건 때문에 할 말이 있는데 나랑 잠시 옥상으로 가자."

지선의 배려는 더 울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이 열받고 가슴아프고 당황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날 빼주려는 깊고 깊은 우정....

 

"안그래도 너 패닉상태일 것 같아서 일부러 네 자리로 갔다."

 

그래...고맙다는 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의 패닉 상태야....

 

"이제 넌 왕자와 춤추고 나서 12시가 넘은 거야. 마차도 호박으로 변하고, 네 드레스도 없어졌다구...알았어?"

 

나를 아까 그 상황에서 구해준 건 고맙지만 이건 또 너무 급하게 현실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내 사랑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까의 그 화면들은 그저...연예인들의 연출인 거고, 민준이 김미나의 이미지업에 매수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다른 스캔들을 숨기기 위해 평범한 유학생 하나 매수해서...이미지 땜빵하기...

이 상황에서도 내 합리화를 위해 너무 복잡한 상상을 하는 걸까...

 

"잭팟맞고, 로스쿨에 미래 창창하겠다. 거기다 아내는 유명 영화배우....그런 사람이다. 우리같은 사람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지...오히려 잠깐 널 만나준 걸 고마워해야 하는 걸거다..."

 

잔인하다...지선아...너무 잔인해....

 

"아냐...그래도 한번 만나봐야겠어. 이대로 정리할 순 없어....남녀관계는 둘만 아는 진실이잖아...'

 

그렇다 민준이 나에게 한 행동은 분명 사랑하는 여자에게 하는 행동이었다.

사랑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마음으로 또 온몸으로....그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는데....

 

"암튼 잘 알아서 정리하고....너무 자리비운 거 같다. 돌아가자...나도 연실이 걔...정말 싫다...하지만 이제 너하곤 게임이 안되는 상대가 되버렸다. 차라리 학교 때라면 선생님이 누굴 이뻐할지는 뻔한 일이지만...민준이 선생은 아니잖니...남자일 뿐이지...욕심많고 이기적이고 예쁜 여자 좋아하는 남자....'

 

도저히 추스릴 수 없는 마음을 안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민준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아는 거라곤 리츠칼튼 호텔 1207호 묵고 있다는 것 뿐...

그럼 거기다라도 전화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아니면 그의 연락을 기다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갈팡질팡.....하는 사이 또 하나의 사건이 보인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 은수가 보이지 않는다.

사랑도 일도 중요하다....은수는 말 없이 이렇게 늦게 나온 적이 없었다..적어도 내가 같이 일하는 1년동안은...

 

"김대리, 은수씨에게 연락 좀 해봐."

 

"저 안그래도 연락 왔었는데 오늘 좀 몸이 안좋아서 휴가 좀 쓰겠다고..."

 

나는 잠시 김대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도대체 저 두 사람은 어떻게 된 거지?

만약 은수가 차인 거라면?

은수도 나와 같은 실연의 동반자인 건가?

그럼.....김대리와 민준은 우리의 공공의 적이.....되는 건가?

나는 김대리에게 은수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김대리'

'네.'

'은수씨 요즘 이상한 거 같지 않아?

'아뇨. 모르겠는데요. 거기다 전 일주일동안 휴가 였잖아요.'

 

김대리도 나름대로 입이 무거운 건가....은수에 대해서 전혀...모르는 척이다....

이럴 땐 나도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겠지....

그러나....몇가지 확인사살을 하고 싶어졌다.

 

'혹시 은수씨, 남자친구 있어?'

'글세요...팀장님보다 제가 은수씨를 더 아는 게 없을 것 같은데요....'

 

좋다...이만 물러난다.

김대리가 은수를 거절했을지라도 이렇게 여자를 지켜주는 거라면 내 호기심 정도는 참아주지...

그러나 아직 확인 사살 거리는 하나 더 있다.

 

'지난 주에 취소해달라던 뮤지컬 표, 누구랑 보러 가려고 했었어?'

'ㅎㅎㅎㅎ'

'왜 웃어?'

'팀장님이요. 평소에 뮤지컬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런던에 가서 보고 싶다고 했는데 제가 뭐 런던까지 갈 주제는 안되고...'

'생일날 내가 왜 김대리랑 데이트를 하나...'

'뭐 애인도 없으신 거 같고...30살 생일인데....그냥 상사에 대한 예의죠.'

 

상사에 대한 예의? 예의치고는 과한 거 아닌가?

그건 그렇고, 은수가 예매한 표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하고 보러가지...이왕 예매한 거...'

'다리가 아파서 못간건데요. 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그럼 은수와 볼 생각이 있었다는?

김대리와 은수의 관계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모를 일 같았다.

어쨌든 은수의 결근이 김대리와 무관한 진짜 몸이 아픈 일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김대리와 대화를 마무리하고 민준에게 전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또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가벼운 확인사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예가중계 봤다. 결혼한다며? 축하해....'

 

이렇게 말해서

 

'그래'

 

라고 한다면 깨끗이 정리하는 거고, 내가 '남친의 배신에 열받은 동상'이 되든말든....

 

'아니..그건 오해야...'

 

라고 하면 희망이 있는 건 아닐까....

 

온통 민준에 대한 일로 노심초사 중인데.....

'메신저에 minjoon@nate.com 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라고 뜨는 것이 아닌가?

또....떨린다....

오늘 도대체 몇번이나 이렇게 마우스를 붙잡고 떨고 있어야 하는 걸까....

민준이 보낸 것은 그냥 메일이 아니라 카드메일이었다.

 

 

생일 축하해...지우야....

지금 막 호텔에 돌아와서 메일 보내는 거야...

런던에 있는 동안 생일축하한단 말을 못해줘서....이렇게 전한다.

30분을 생일 축하 카드를 골랐는데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나 좀 자고 이따가 연락할게

좋은 하루 보내길....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민준의 메일이었다.

그냥 평범한 연인에게 보내는 생일 축하 인사와 일상의 안부를 겸한 메일......

 

나................

정말...........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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