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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너희들에게

ㅁㅇ |2017.09.07 09:59
조회 370 |추천 3

안녕, 이라는 말도 할 수 없겠다.
너희때문에 나는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요즘 집단폭행 때문에 말이 많은 지금, 어제 부산 여중생의 소식을 듣고 보고싶지 않아도 보이는 페이스북 때문에 페이스북을 지우고, 분노하고 끙끙 앓으며 바닥을 치고 올라온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단지 이렇게 돌아오지 않는 외침밖에 없구나.


나는 있잖아. 이런지 햇수로만 8년이 넘었어.
너희들은 꿈에도 모르겠지?
그 8년이란 시간동안 발뻗고 잘잤겠지?
아니, 요즘의 사건들을 보며 떠올리고 있긴 할까?


8년 전 6월.
너희 7명은 나를 때렸어. 아주 많이.
학교에 가지 않았던 나를 불러냈고,평소처럼 잘 노는 듯 했어.


참 촉이 무서운게, 나는 그 날 너희들이 부를때부터 뭔가 불안했었어.
무언가 일이 생길것만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엄마한테 1시간만 나갔다온다고 하고 나갔었어.


집에 간다는 나를 끌고 오늘 집에 늦게들어갈거라며 데려간 아파트 놀이터에서 나는 생전처음 발길질을 당했어.
이유는 내 행동이 맘에 안들고, 내가 나댄다는 거였지.
그래. 나는 그때 너희랑 다니면서 방황했었어.
하지만 너희들에게 판단될 필요는 없었지. 이유야 어쨌건 그렇게 때리면 안되는거잖아?


그렇게 때리고나서 너희가 다니는 학원에 나를 데려가 직접 얼굴을 씻겨줬지.
멍가리라고 화장품 빌려주고 너무 많이 울면 눈이 붓는다고, 집에다 뭐라고 말할거냐면서, 웃긴영상도 보여주면서 이제 웃으라고 했어.
멍든걸 들키면 전봇대에 부딪혔다고 하랬어.


나는 1시간있다 들어가겠다고 해놓고 나는 거의 7시간을 넘어 집에 돌아갔어.
얼굴이 퉁퉁 붓고, 귀끝까지 피멍이 들었고 머리를 얼마나 때렸는지 그 날 밤 뒤척일때마다 아파 깨서 잠을 못잤어.


결국 금요일에 일어난 이 일들은 주말을 걸치면서 부모님이 알게 되셨고, 월요일에 너희를 대면하셨어. 아빠는 처벌을 원하지 않으셨어.
대신 이 일에 대한 보복 금지, 너희들이 다시는 몰려다니는 것을 못하도록 각서에 지장까지 찍게 하셨지. 몰려다니는 것을 발견하면 경찰서에 넘긴다고 말이야.


하지만 거의 한달 후, 아빠의 근무지 이전으로 상황은 달라졌어. 방학을 맞이했고, 전학을 가게 됐어. 각서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거지.


뒤늦게 내 소문이 퍼진 건 둘째치고, 너희들은 다시 몰려다니기 시작했고 아주 가벼운 처벌을 끝으로 그 일은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어.
한참 나중에야 깨닫게 됐어.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이 일은 누가 용서한거지?


내가 무엇보다도 후회가 됐던건 뭔지알아?
너희들을 처벌하지 못한게 아니라,
너희들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할때 ‘괜찮다’ 라고 말했던거야. 그게 죽도록 후회됐어.
내가 ‘괜찮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너희는 면죄부를 얻었을테니 말이야.


내가 너희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절망적이게도 난 한번에 알아봐서 멈췄는데 너희는 나를 못알아볼만큼 말이야-


그 일 이후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을 것 같니?
누군가 나에게 말했었어.
맞은 사람은 발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끝까지 발뻗고 못잘거라고.


아니, 그말을 믿은 내가 바보같더라.
너희는 여전히 그렇게 누군가를 때렸고, 함께 다녔으며, 너무나 잘지내고있었어.
나는 그저 몇년이 지나도록 손톱을 뜯으며 너희의 미니홈피와 페이스북을 들락거렸어.


20대가 된 너희 모습에 사람들이 예쁘다고 무슨 그런 말들을 지껄일때면 당장이라도 그 사람을 붙잡고 말하고 싶었어.
얘가 나를 그렇게 만든 애예요. 얘는 그런 못돼쳐 먹은 애예요-라고.


익명채팅같은 링크를 올리면 말을 걸어 한바가지 욕을 하는걸 바라지도 않았어.
그냥 이런 내가 여기있다고. 너희 때문에 이렇게 된 내가 여기 있다고 따지고 분노하고 싶었어.


나는 매년 6월 그날이 되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입을 막고 가슴을 치면서 울었어. 내가 이 일 때문에 힘들다고 말할때, 처음엔 다들 들어주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너가 자꾸 일부러 생각해서 그런거아냐?” 라고 했어.
고등학교에 계시던 상담선생님도 상담하다 그만두시거나 중간에 바뀌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저 이걸 속으로 삭히는 수밖에 없었어.


그 일 이후 많이 활발했었던 내 성격은 변했고, 그 때문에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절망하고 반추하며 자책했지.


‘내가 그때 병신처럼 가만히 맞고 있지만 않았으면’
‘도망이라도 쳐봤다면’
‘그 때 날 봤던 아줌마가 나를 구해줬더라면’
‘전날 핸드폰을 선생님께 뺏기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나를 구해줬었더라면’ ……


언젠가 그 장소에 혼자 가봤던적이 있어. 내 기억으로 아파트 놀이터지만 사방이 좀 막혀있었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니더라.
내가 그날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어서 머리카락에 가려져 그렇게 느껴졌었나봐.


바로 앞은 아파트 주차장,
그 앞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또 그 앞은 창문이 훤한 아파트.
나를 구해주지 않았던 사람이 그 당시 나를 본 아줌마 뿐만이 아닐거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절망스러워서 눈물도 나오지 않더라.


내가 믿는 신은 그 순간 어디에 있었던걸까?
슬프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될정도로 많이 씨름하고 원망하고 분노했어.


대구에서 중학생이 집단폭행으로 자살했을 때 사람들은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주목하기 시작했고, 교육을 시작했어.
우리학교에도 그런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을 했지. 난 그때마다 책상에 엎드리고 울었어. 저딴 건 아무 소용도 없다고. 왜 이제서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걸까 하고.


이렇게 집단폭행이라는 사건이 또 올라오면서 그때 기억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어.
나는 이럴바에 차라리 죽어버리고싶고, 너넬 죽여버리고싶고, 망했으면 좋겠고, 나중에 너희 아이들이 똑같은 일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거의 저주 하다시피했었는데...


기사들을 보며 나보다 훨씬 심한 상처를 안고 험한 길을 걸어갈 이름 모를 그 아이를 생각하니까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더라. 미칠 것 같더라.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고 더 잘지내는 활개치는 이 세상이 너무나 싫더라.


그 상처는, 이 상처는 앞으로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거야.
난 대학교에 와서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제대로 된 상담을 받으면서 이 사건을 천천히 마주하고 인정하게 됐어. 여전히 지금 그런 과정에 있고, 쉽지 않아.


아직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고, 가끔은 가만히 있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심할 땐 죽을것만같은 과호흡도 겪어.
그렇게 8년동안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나는 뒤늦은 통곡과 슬픔을 길게 하고있어. 앞으로도 계속 하겠지?


이 어려운 여정들을 이어가면서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는데 참 오래걸렸단다.


당시에 그 학교에 계시던 선생님을 올초에 뵈었었는데, 나한테 그러시더라.


아마 그 상처가 치유되는게 오래걸릴거라고.
남이 나한테 말로 욕만 해도 그게 얼마나 기억에 남고 아프냐고-
시간이 오래 걸릴거란 사실을 인정하는게 좋다고.정말 따뜻한 위로였었어.


가끔은 절망돼. 마음이 급해.
이 끔찍한 현실에서 얼른 벗어나고싶으니까.
계속 걸어가도 걸어가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은땐
너무 지쳐 정말 다 그만둬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


하지만 오래 걸려도, 자유해지고싶어.
오래 걸려도 나중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슬퍼해주고싶어.


처음이야.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너희는 아직도 꿈에 나와서 나를 괴롭게 해. 하지만 그런 나는 꿈에서조차 너희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


너희가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기억하면 좋겠다.
아니, 이 글을 읽게 됐으면 좋겠다.
너희의 그 행동들로 인해 내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아플지.
적어도 그걸 생각한다면 평생 뉘우치면 좋겠다.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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