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품이 큐티 ^ ^
{마가복음 3:13~19}
[능력을 받고 세상에 보냄 받는 제자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원어 사전:
산:o[ro"(3735, 오로스)
mountain, 산맥 혹은 산악지방 mountain chain or region.
(c) 산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삭을 산에서 바치도록 하셨고, 하나님은 그 때 거기에 나타나셨다(창 22:2).
모세는 아말렉족과 전쟁하는 동안 산꼭대기에서 기도하였다(출 17:9이하).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기도하러 올라갔다(왕상 18:42). 축복과 저주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선포되었다(신 11:29 신 27:12이하; 수 8:33). 이스라엘 사람들의 할례는 할례산(Haaraloth)에서 거행되었다(수 5:3).
법궤는 산에 안치되었다(삼상 7:1 삼하 6:3).
시몬 Simon(인):Sivmwn(4613, 시몬)
시몬은 히브리어 쉼몬(들음)의 음역이며, 신약성경에 나오는 몇몇 사람의 이름이다.
세베대 Zebedee(인): Zebedai'o"(2199, 제베다이오스)
제베다이오스는 히브리어 즈밧야(2069)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께서 주셨다'를 의미한다.
요한 John.: !Iwavnnh"(2491, 이오안네스)
이오안네스는 히브리 이름으로 요하난 또는 예호하난이며 그 의미는 '그에게 여호와는 은혜롭다'를 뜻하며, 혹자들은 '그를 여호와가 은혜롭게 주셨다'를 뜻한다고 한다.
Boanergev"(993, 보아네르게스)
보아너게 Boanerges
보아너게: 보아네르게스는 '우뢰의 아들'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붙여 주신 별명이다(막 3:17). 이 명칭은 뇌우에 비견될 수 있는 격렬하고 파괴적인 열심을 나타내는 것 같으며, 그들의 성격을 적절하게 반영해 준다(막 16:35-막 16:39 참조: 눅 9:54). 제롬(Jerome)은 그것을 그들의 불을 뿜는 듯한 열변과 관련하여 생각했으나 혹자는 그것을 그들의 불같은 성격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열 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으며, 요한은 가장 오래 살았다. 혹자는 그들이 한 때 열심당원이나 혁명 당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 성질은 야고보의 죽음의 원인이었을 것이고(행 12:2), 요한의 기록들에서 하늘의 소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드레 Andrew.: !Andreva"(406, 안드레아스)
안드레아스는 아네르(ajnhvr, 435)에서 유래했으며, '남자다운'을 의미하며, 한글 개역에서 '안드레'로 음역하였다
빌립 philip: Fivlippo"(5376, 필립포스)
필립포스는 '말(horse)을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 37회 나오며, 세 사람이 이 이름으로 나타난다. (사도 빌립과 전도자 빌립은 다른 인물인거 같습니다.)
바돌로매 Bartholomew(인): Barqolomai'o"(918, 바르돌로마이오스)
바르돌로마이오스는 아람어 바르탈메(탈메의 아들)의 음역이며, 신약성경에서 '바돌로매'로 음역했다.
바돌로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마 10:3 막 3:18 눅 6:14 행 1:13). 신약성경에서 그에 대한 언급은 그 이상 없다. 모든 명단에 빌립과 함께 그의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9세기 이후부터 많은 독자들은 그가 빌립의 친구 가나의 '나다나엘'(참조: 요 1:6 이하; 요 21:2)과 동일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불확실하다.
12제자의 계보(E. A. Wallis Budge, Comtenclings of the Apostles)에 의하면 '바돌로매는 납달리 가문에 속했다. 그의 이름이 원래는 요한이었으나 우리 주님께서 세베대의 아들인 그의 사랑하는 요한 때문에 바돌로매로 개명했다'고 한다. '바돌로매의 복음서'는 제롬(Jerome)에 의해 언급되었으며, 유세비우스는 바돌로매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히브리어로 된 마태복음을 인도에 전하고 마침내 물에 빠뜨림을 당하는 죽음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도마 Thomas(인): Qwma'"(2381, 도마스)
도마스는 아람어 테옴(쌍둥이)에서 유래했으며, 한글개역 성경에서 '도마'로 음역했다.
(c) 도마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의 전도 활동에 관한 미심쩍은 전승들이 있다. 유세비우스에 의해 인용된 오리겐의 말에 의하면(Hist. III. 1), 도마는 파르티아에서 사역했다고 한다. 도마행전(2세기)은 제비를 뽑아서 세계를 제자들의 선교 지역으로 분할하였다고 한다. 이 외경의 모순되는 기록은 도마의 선교 지역은 제비에 의해 인도로 정해져서, 그 곳에서 많은 시련을 겪고 순교하여 그가 개종시킨 자들에 의해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Stromateis, Bk. 4)에 의하면 도마는 순교한 것이 아니라 자연사 했다 한다. 그의 유골로 생각되는 것이 16세기 경까지 그곳에 전시되었다. 다른 진기한 이야기들이 외경의 "성 도마의 설교"와 "성 도마의 인도에서의 순교"에 기록되어 있다. 현대 인도의 성 도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이들 문서들에 근거하여 자신들은 이 선교의 아버지의 영적 혈통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한다. 다른 전승은 그의 유골이 메소포타미아의 에뎃사로 옮겨져서 십자군 기간 중에 그 곳에서 이탈리아의 오로토나로 옮겨졌다고 말한다.
다대오 Thaddaeus(인): Qaddai'o"(2280, 닷다이오스)
닷다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열 두 제자 중에 한사람이다(마 10:3 막 3:18). KJV의 마 10:3에는 "다대오라는 별명을 가진 렙베오"라고 되어 있다. 눅 6:14-눅 6:16과 행 1:13에는 이 이름이 빠져 있고 대신에 야고보의 "아들"(RSV) 혹은 "형제"(KJV) 유다가 들어가 있다. 누가는 아마도 진짜 이름을 기록한 것 같다. 다대오(아람어 "가슴" breast-nipple?)와 렙베오(아람어 "심장" heart)는 아마 배신자 가룟 유다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복음서에 소개되어 쓰여진 유다의 호칭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라는 그의 이름은 오명에 따라 붙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요 14:22의 유다(가룟인 아닌)는 아마도 이 제자일 것이다.
가나안인 Canaanite.: Kananai'o"(2581, 카나나이오스)
카나나이오스는 아람어 칸안에서 유래했으며, 호 젤로테스와 같은 뜻으로 '열심당, 열심 있는'을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 단어는 '가나안인'으로 음역했다.
카나나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 10:4과 병행구 막 3:18에만 사용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로 가나안인 시몬이다. 그가 가나안인이라는 것은 가나안 태생이나 가나(Cana)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셀롯당(젤로테스) '열심당'인 점에 있다.
눅 6:15과 행 1:13에 보면, 그는 셀롯당이었다. 이들은 민족주의자들로 팔레스틴 지방을 다스리던 로마 정권에 반대하여 싸웠다. 그러나 이 시몬은 진짜 열심당원이 아니라 그의 성품으로 인하여 예수님이나 그의 동료들로부터 이 별명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가룟, 이스카리옷: !Iskariwvth"(2469, 이스카리오테스)
이스카리오테스 또는 이스카리오드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의 별명이다. 혹자는 '가리옷' 사람이라고 해석하고, 혹자는 시카리오스(sikavrio": 자객, 비적)와 관계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 어느 설교와 덕담 속에 아프리카 주민이 수십키로 이동하여 물을 퍼오는 예화가 나오는데요 그들은 그렇케 오래 걸려 물을 퍼오지만 발명품을 그들에게 안겨주어 더 많은 물을 퍼오도록 돕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재능을 통해 남에게 유익을 주는 도구로서 잘 쓰임 받도록 해야 겠습니다. 받으신 하나님의 직분은 교회와 세상의 빛이 되도록 직분을 받습니다. 그것이 세상에 유익이 되도록 하여 더욱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화롭게 하도록 쓰임을 받아야겠습니다.
이제 본문 성경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산에 올라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산은 어떠한 곳이기에 여기서 제자를 부르실까요 좀더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 또 먼곳을 바라보며 비젼을 꿈꿀 수 있는 곳이라 여겨집니다. 조용한 곳에서 제자를 양육하고 능력을 부여하고 비젼의 땅을 바라보며 사명을 부여하는 곳, 매우 적합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교회에 또는 성도의 거룩한 성회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사명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됩니다. ‘나’ 라는 정체성을 부여 받게 됩니다. 성도는 모임을 통해 능력과 성령 충만을 받고 세상에 나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이 모임은 사실 능력을 받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받기 위해 우리는 교회에 모이고 여기서 말씀을 나누는 것일 것입니다.
그 중에는 각종 모난 자들이 처움에 모입니다. 시몬같이 우직하고 급하고 쓸모 없어 보이나 그 우직함이 빠르게 교회의 기초를 다지는 열심을 내게 되고 우레의 아들같은 요한이란 자는 화가 나서 저주하는 사람이었으나 다듬어져 온유한 사랑의 사도로 쓰임을 받게 되며 의심 많은 도마도 예수님의 못 자국을 보며 확신의 사람이 되어 순교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도의 모임은 도자기의 연단같이 쓸모없는 진흙 덩어리가 다듬어지고 불의 연단 후 빛나는 도자기와 같이 여러 개의 흙자기가 같이 모아지고 훈련되어지어 세상을 빛나게 하는 자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성회와 교회의 공동체는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같은 교회의 빛은 밝아져야 하며 별같은 성도들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끝없이 날아 오르는 연어와 같이 빠르게 거세지는 세상의 물결을 이겨내야 합니다.
14, 15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시며 전도도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려 한다 합니다.
직분자들은 함께 하여 모이기를 힘쓰는 자들을 의미 할 것입니다. 같이 모여 힘을 모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더 큰 사회의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각자가 가진 재능과 능력을 연합하여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한다고요 그것으로 전도활동을 하고 악령을 내쫓아서 지역사회에 유익을 주는 직분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초기 한국교회 선교사와 같이 학교와 병원을 세워 복음을 전하고 문맹을 퇴치하고 병을 치유하고 지역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우는 사명을 완수하는 그와 같이 사회에 공헌 이바지하는 일을 감당 해야 겠습니다. 각교회에서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든 환란 날에 있는 자들을 돌보는 일도 있을 것이며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인 구원 영생안에 거하도록 하는 일을 병행하여야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가 아닌 직장인 일하는 큰교회에는 부설학원으로 기독유아원과 태권도를 운영합니다. 불교신자든 기독신자든 무신론자든 아이들을 그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들에게 복음을 직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을 교육하고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곳에는 각종 강사가 있어 아이들에게 여러 좋은 것들을 가르칩니다. 그 큰교회 담임 목사님은 우리 교회 목사님 모두 총신대를 나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순기능을 위해 주님은 제자들을 세우시고 일꾼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본문 마지막 그런 자들 중에 배신의 열 제 5열(군대는 보통 4열을 갖춤)같은 존재가 보입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제자 가룟 유다 입니다. 가룟은 지역명으로 유다의 남쪽 지방이라 합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생명의 갈릴리에 사는 것에 비해 가룟유다는 죽음의 바다 사해에 가까운 유다 지방에 거주합니다. 갈릴리는 받고 주는 생명의 바다이지만 사해는 받기만하고 주지 않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사해의 소금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노폐물이 많이 섞여 짜지 않는 쓸모없는 소금이 나오기도 한다 합니다. 아무래도 일반바다에서 나오는 소금 보다는 내륙의 바다이기에 품질이 떨어지겠지요 가룟유다의 심령이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예수님께 받은 능력과 생명의 말씀을 듣기만하고 전하지 않는 모습, 귀는 열리고 입은 닫혀져 버리는 심령 혹은 우리의 나약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좋은 지식, 좋은 능력, 풍성한 물질, 성령의 충만 받은 것이 있습니까 이웃에게 흘려 보내야 합니다. 지식을 나누고 능력을 베풀고 물질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착한 선을 받고 선한 것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지식, 능력, 물질을 항상 양육 받고 이것을 세상에 나누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는 부르시는 제자도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설교중에 300만원의 자본금으로 1억 몇천을 번 분이 계시더랍니다. 십일조도 내고 감사 헌금도 내고 더 내고 싶어서 그는 목사님께 아뢰었는데 목사님은 더 내지 말라고 하셨다 합니다. 그러자 그 성도는 시험에 들었고 목사님은 다시 그에게 허락하여 더 헌금을 내게 되었다 합니다. 나누어 주는 자는 더 풍성히 주님의 부어 주심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또 한주도 깊어가는 가을 건강 유의하시고 저녁에는 보일러도 트시고 따뜻하고 건강한 주간이 되시며 하나님의 보호 속에 더욱 평강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속에 우리 하나님 품에 있게하옵시고 내 꿈이 아닌 주님의 꿈을 이루도록 우리를 항상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게 사용하여 주옵시고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옵소서 주님의 가까운 제자로 부름 받든 성도로 부름을 받든 각자 주어진 일들이 있습니다. 다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건강을 주옵시고 환경을 주시어서 일을 하다가 실족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항상 기뻐 감사하는 맘을 주셔 우울하기 쉬워하는 세상 속에 승리할 수 있게 하옵시며 차량등을 안전하게 운행하여 항상 사고 나지 않도록 건강과 심령을 지켜 주시옵소서 주고 받는 갈리리 바다와 같은 심령을 주셔서 받기만 하여 썩은 심령되지 않케 하옵시며 풍성히 주님 우리에게 모든 선한 것을 안겨 주셔서 남들과 나누고 우리도 저축하기에 부족하지 않케 축복하여 주옵소서 낙심한자 가룟인 같이 시험에 든자 모두 기도하오니 주님의 품으로 다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간절히 돌아와 이전보다 더 나은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만유의 품으로 항상 용서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