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환은 단잠을 자고 겨우 일어났다.사방은 조용했고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겨우 시녀 춘행을 불러 물을 들이켰다.춘행 말로는 아까 호소용이 찾아왔었다고 했다.소용 호영매는 일전부터 견환을 질투하며 시비를 걸었다.호씨 가문의 딸인 영매가 보기에 견환은 자신보다 신분도 직첩도 낮은 별거아닌 계집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당나라 덕종은 막 입궁한 첩여 견환을 매우 아끼고 총애했다.끝내 공주를 낳고 그뒤 남녀 쌍둥이까지 낳은 그녀는 숙비의 지위에 올랐다.그러고 나서 부덕한 황후 백매설을 폐위시키는 데 성공했다.황제는 견환을 귀비로 올리고 황후의 권한까지 주었다.
진정한 후궁의 수장은 견환이었고 때문에 그녀에게 대적할 자는 없었다.헌데 영매는 아직까지 박탈감과 분함,시기심을 가지며 싫어하는 티를 내는 것이었다.백매설도 제거한 암투의 최고봉 견귀비가 무엇이 두려우랴.그녀는 그런 영매가 가소로워 그냥 내버려 두었지만,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예전 순진한 소녀였을 때도 견환은 영매의 시비에 지지 않고 대들었다.그런 견환에게 영매는 도리어 당황을 하곤 했었다.
춘행: 꼬투리 잡아 벌을 주세요.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다니 너무합니다.
견환: 폐하께서 나를 만나기 전 호소용에게 약조를 했다지.평생 아끼겠다고 말이야.허나 그 약속은 깨어졌고 폐하는 그게 미안해서 쳐내지 못 하시는 거다.
춘행: 호소용과 그 집안은 폐하가 왕야 시절 어려울 때 외면했어요.폐하는 왜 그 정을 끊지 못하실까요?
견환: 그분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
춘행: 참,영서 공주께서 접으신 꽃이에요.어리신데 마마를 닮아 벌써 재주가 뛰어나시네요.
견환: (흐뭇)
멋모르고 영매에게 아부하는 이들은 존재했으나 차츰 사라져 갔다.그녀는 실상 총애도 별로 없고 가문도 예전만 못하며 자식도 없기 때문이었다.결국 그녀는 지나가던 미인 진추낭의 뒷담화로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진미인은 호소용이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다른 후궁들에게 떠들어 댔다.
추낭: 입궁은 견귀비와 같은데 아직도 소용이잖아요.자식이 없어서 그런가?
소주아: 진미인,누가 듣겠어요.
추낭: 소재인은 담이 작군.뭐 어때서?다 맞는 말이잖아.
곽부: 호씨 가문도 예전의 그 호가가 아닐세.자네들 못 들었나?아직까지 호가를 이을 만한 인재도 없어.마땅한 후계자가 없다고.
추낭: 곽충원도 들으셨군요,그게 사실인가 봐요?
곽부: 우리 곽가가 잘나갔음 잘나갔지 호가는 한물간지 오래야.
영매: ...
추낭의 말보다 더 심한 건 곽부의 말이었다.곽부의 아버지는 곽정으로 최근에 큰 공을 세웠다.그 장녀인 곽부 역시 총명하다는 평을 들으며 충원에 봉해졌다.영매는 어쩌다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됐는지 서글퍼졌다.추낭이 얼마나 입을 털고 다녔으면 이 이야기가 견환에게도 들렸다.견환은 비웃으며 궁중에선 자기 주제 파악이 곧 살길이라는 말을 했다.춘행은 지금쯤 그녀가 깨달았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견환: 진미인은 그렇다 치는데 곽충원이야말로 한 성격 하는군.무인 집안의 딸이라 그런가?
춘행: 곽씨가 요즘 떠오르는 중이지요.곽정 대인이요.
견환: 늘 해와 달은 뜨고 진다.놀라울 것도 없다.
춘행: 우유 넣은 제비집 가져다 드릴게요.
견환: 잠깐.기다려라.그걸 본궁에게 주지 말고 호영매에게 갖다 줘라.몸에 좋은 보양식이니 그걸 먹고 기분 풀라는 말도 꼭 하고.
견환의 은근한 조롱에 영매는 상에 제비집을 놓은 채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춘행이 나가자 씨근덕댔다.그녀가 제비집을 발로 차 버리려 하자 시녀 월여가 막았다.월여는 이걸 가지고 트집을 잡으려는 걸 수도 있다며 조심하라고 충고했다.영매는 폐하의 반려자리를 뺏은 견환을 용서할 수 없다며 손수건을 대신 집어던졌다.
과연 당궁의 미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