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전...
29살에 33살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결혼을 위한 결혼이었습니다.
소개로 만나 8개월만에 결혼했지요.
나는 명문여대졸업했고 남자는 고졸이었습니다.
그당시 나는 도피처가 필요했어요.
친정엄마는 매일 히스테리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치매가 그렇게 시작이 되었나봅니다.
다섯남매의 막내라 이미 엄마의 나이는 63세였어요.
워낙 까칠하고 예민하고 막말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엄마라 위의 네명의 형제들은 다들 집을 떠났고, 명절에만 형식적인 방문이 있었고, 엄마는 마지막 남은 나를 시집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엄마가 무서웠고, 말대꾸조차 해본적이 없고, 그저 죽으라면 죽는시늉을 해야 집안이 조용했으니까요.
엄마는 조현병이 있었던것같아요.
어느날 갑자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워낙 성질이 까칠하고 그랬으니까요.
예를들자면..내 큰오빠가 8살때 숙제할땐데..글씨를 막 쓴다고 손등을 연필깎는 칼로 찍어버린적이 있었습니다.
암튼..늘 집안은 무거운 공기였던것같고, 다들 조용히 공부만 했었지요.
엄마는 늘 소리지르고, 과거를 되뇌이며 아버지를 공격했고, 아버지는 대꾸도 없이 이 방, 저 방, 화장실등으로 피해다니고 저녁만 되면 늘..거의 매일 지긋지긋했어요.
아버지가 방문을 걸어잠그니까 부엌칼로 방문을 뚫어버린적도 있어요.
나는 연애고자였는지..이렇다할 연애한번 못해보고 나이만 먹었고, 팔자가 쎄려는 암시인지 27살땐 계단에서 넘어져서 고관절이 골절되어 철심박는 수술도 했어요.
철심 박고, 1년반 뒤 철심빼는 수술 두차례의 수술로 직장다니며 모아놓은 돈도 많이 쓰게되었고요.
직장에서 집으로 오면 쉬는게 아니라 엄마의 푸닥거리를 봐야만하는 매일이 끔찍했어요.
벌써 26년전이라 현재의 사고방식으로는 분명 이해못할 일이라 할겁니다.
왜? 원룸이라도 얻어 독립을 하지?
그 당시엔 여자혼자 자취하는건 술집여자나 하는거였어요.
그 당시엔 여자는 시집가면 직장도 그만두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었죠.
나는 도피처가 필요했어요.
여기서 내가 한 첫 실수가 있는데, 남자를 볼 때 미래를 봤어야했지만, 변명컨데 나는 너무 지쳐있었어요.
그저 쉬고 싶었고 좀..도망가고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집에서~~또한 직장에서....
고졸이지만 시집에서 아파트를 해줬다는 남자를 소개받았어요.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성격도 순한것같고 치명적인 단점만 없다면 언능 결혼해서 집으로부터 피해나가고싶었어요.
후~~~그런말이 있죠?
쓰레기차 피하다가 똥차에 받힌다고!!
아이가 태어나기전 일년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결혼하고 바로 나는 집에서 홈스쿨로 미술렛슨을 했고, 그당시 백만원 넘게 벌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고, 집에서 했던 미술렛슨의 수입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 집에 와서는 통장을 보여줍디다.
"이거 엄마가 줬다~~~ 근데 아무도 모르게 갖고있으랬어!! 너한테도 말하지말랬어!!"
천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이었어요.
(그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뺏을걸!!~)
냉장고에서 오이하나 썩어나가도 뭐라하고, 아주 조잡스럽게 굴어서 알뜰한 성격인가해서 잘 갖고있겠지..하고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돌잔치를 해야할 때가 왔고,
"돌잔치하게 어머니가 주신 통장에서 조금만 쓰자~~"라고 했더니 없다는 거예요.
그때만해도 안 믿었어요.
그런데...유독 외박이 잦아지고, 전화도 안 받고..그랬지만 나는 아이키우느라 정신도 없고 별 생각이 없었는지, 세월이 지나 잊었는지, 그 다음의 일들이 하도 스펙타클해서 묻힌건지....
아이가 세돌이 지나고 어느날 집을 팔겠다고 하더라고요.
집을 팔자, 청구서를 내미는데 헐..카드깡으로 쓴 돈을 갚아야한다고...
이렇게 시작이 되었고, 결국 돈을 몽땅 다 까먹을때까지 아니, 이젠 빚까지 졌네요.
너무너무 사연이 길어서..어떻게 다 적겠습니까?
얼마나 노름을 좋아하는지 언제는 집에 낯선 남자 둘을 데리고와서 밤새도록 말 한마디없이 화토만 치고, 아침상을 차려주니 밥을 쳐먹고나선 상을 쓱~밀더니 또 치려고해서 소리질러 내쫓기도했지요.
친구들이 아니었어요..밤새 말 한마디들 없이 땅바닥에 등 한번 대지않고, 방에 아기가 있는데도 너구리굴을 만들며 홧토만 치던 세 남자!!
외박이 잦았어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분해하던 날들..
대낮에 씨뻘건 눈으로 기어들어와서 선풍기를 발로 짓밟아 부시던 놈...그 길로 시어머닐 모시고와서 이 꼴을 보시라고 하니 오히려 아들편을 들던 시모...
집 판 돈을 어디에 어떻게 왜 쓰는지 난 모르겠더라고요.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라며 악쓰던 놈..
제발 정신좀 차리라고 울며 빌어보기도 했고, 못마시는 술을 코앞에서 병나발을 불며 통곡도 해봤고, 초등생이었던 시조카를 집에 데리고도 있어봤어요..혹시 아이 보기 쪽팔릴까해서..
급기야..나는..아이는 하나만 키울거란 당초계획을 엎고 아이를 또 갖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면 책임감에 정신좀 차릴까해서...
그렇게 난 이 가정을 지키고싶었습니다.
남편은 고졸이라 기술도 없고 열정도 없고 그저 조그만 제조업체 회사에서 물건 납품하는 일을 했고 월급도 뻔 했습니다만, 남들 집장만 하느라 대출비 내는 생활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해서 별 불만도 없었어요.
애시당초 다 알고 시작한건데요.
둘째가 돌이 지나고, 매일 지지고볶다보니 초등1학년인 큰애가 어느날 울며 "내가 불안해서 못 살겠어~~"라며 통곡을 하더라고요.
나는 남편을 내쫓았어요.
남편은 마마보이라 옳다꾸나 시모한테 갔어요.
나는 기저귀찬 둘째와 초딩인 큰애랑 남았어요.
생활비는 십원도 안 보냅디다.
당장 돈을 벌어야했어요.
시간적으로 널널한 정수기필터 갈러다니는걸 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년쯤뒤에 다시 합쳤어요.
대오각성을 했을거란 기대로....ㅜㅜ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고..명언이 있지요??
합치고 1년쯤 뒤, 일요일인데..느닷없이 아침에 "이따가 엄마가 온대!!" 그래서 "왜??"라고 물으니 묵묵부답..
그러더니..세상에..복도식 아파트였는데, 복도에서부터 시끌벅적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온 시모가 들고 온 장우산 (그 날 비가왔음)을 내게 들이밀며.."이 신발년아!!!현금써비스로 생활비를 쓰는 년이 어딨어??!!!!!!"라고 악을쓰며 별의 별 욕을 하는겁니다.
헐!!!!!!!!!!!!
다시합친 뒤, 남편은 내게 월급을 어떻게 줬냐면, 회사가 힘들다며 30만원 주고, 보름있다가 20만원 주고..이렇게 찔끔찔끔 매달 8~9십만원을 줬네요.
그게 현금써비스인줄은 몰랐네요!!
거기 있던 사람들, 남편, 시모, 남편누나 그리고 나..중에 누가 제일 놀랐을까요??
멘붕이란 단어가 그 때 있었다면 바로 오리지널 멘붕이었어요.
시모는 악을 쓰며,
"__아!! 여기올때 보니, 버스기사가 여자더라!!! 내아들 무능하면 니년이라도 나가서 버스라도 몰아!!"
나는
"나는 여기서 이렇게 욕듣고 있을 필요가 없네요!!!"라고 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피해나왔어요.
누나가 따라나오면서 얘기를 하잡니다.
아이들을 플레이타임에 맡기고 한참 얘기를 했는데, 남편놈..정말 쓰레기더라고요.
모든걸 내탓으로 돌려놓았더라고요.
내가 다단계에 빠져 돈을 날리고..
그리고 그와중에 얼척없는 얘기를 누나가 합니다.
몇년전 시댁살이 하던 누나가 분가를 헀을때, 누구보다 축하하며 분가 할 집에 커튼을 만들어줬던적이 있었어요.
미싱까지 사고, 동대문시장가서 천 끊고, 몇날며칠 미싱밟아가며 방 두개, 거실, 다용도실의 커튼을 만들어줬거든요.
그런데 누나가 대뜸..
"나 무지 서운했어!! 그렇게 후진 집에서 어떻게 살아?"라고 했다며..."
이건또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남편놈이...그렇게 말하더랍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헐..
내 성정에 그런 말 했을리 없을뿐만 아니라, 그래..1퍼넨트라도 비슷하게 얘기했다칩시다...그걸 전하는 놈은 대체 뭐란말인지...
모두 보낸 뒤 아이들찾아 들어가니 컴컴한 거실에 앉아있는 놈..
내쫓고 2년만에 합치고 1년이 지났지만 하나도 변하지않은!!!!!
다시합친이유가 궁금하지요?
초딩인 큰애가 의기소침하더란말입니다.
대오각성을 했을거란 생각에 다시합친건데..그리고 내 자신도 이혼녀가 되기싫었고..
남편한테 택시라도 몰라고 했어요.
바로 깨갱하고 택시일을 시작하더라고요.
처음 몇년은 좀 하더라고요..
그런데..헐..
몇년이 지나니까 사납금을 월급으로 채우고 일하러 나가지를 않는겁니다.
어느 달은 내게 생활비라고 5만원을 줍디다.
50만원도 아니고 5만원!!!
50만원도 주는 달, 10만원만 주는 달, 헐...
그리고는 한달에 절반은 안 나가고 죙일 자는겁니다.
그당시 나는 친정에 들어왔어요..
이 귀신소굴같은 곳을 떠나기 위해 아무나 붙잡아 결혼하여 볼 꼴 못 볼꼴..시모한테 신발년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했던 삶인데 결국 들어왔네요.
거기다가 고1짜리 큰애와 초딩인 둘째와 무능작렬인 놈까지 달고!!!!
친정엄마는 치매가 중증이 되었고, 아버지는 대장암 수술을 받아야했어요.
위로 네명의 형제들은 죄다 "내 알 바야? 집 팔아서 사람 쓰라고 해!!!"라며 콧빼기도 안 피칩디다
정말이지 못 된인간들입니다
남편이 속썩일때 오빠가 셋인데 누구하나라도 쳐들어와서 바로잡아줬더라면 이 지경까지 왔을까도 싶네요
그들은 그저 어릴때 할 수없이 같이 자란 사람들뿐입디다..
나는 철저히 고아였어요.
아기를 낳을 때에도 엄마는 안 왔구요..
둘째를 낳으러 갈땐 나 혼자 운전하고 가서, 혼자서 수술대에 올라갔지요.
남편 내쫓고 기저귀찬 아기와 초딩큰애 데리고 살때엔...친정에선 명절에 오지도 말라고도 했었지요
서러움!!!!!
서러움이 뭔가를 나는 이번 생에서 처절히 배웠어요.
고아인 나를 남편이나 시모나 우습게 보는건 당연한거게지요
동남아시아 신부들..한국에 시집와서 받는 서러움? 볼때마다 오바랩이 됩니다.
돈을 다 까쳐먹고 우리식구는 원룸살이를 했어요
그 때 아버지는 대장암 수술을 해야했고, 치매엄마까지 돌봐야했어요
그래서 이 집에 들어왔어요
남들은 그러겠지요..
"흥!!!!네가 잘살았다면 들어갔겠니??어차피 너네..원룸살았자나~~"
엄마똥수발로 밤에 잠 못자고 헤롱거릴때....내 형제들에게 힘듦을 토로할수도 없었네요
"하기싫으면 하지마!! 누가 하래???"
이 말은.."네가 좋아서~" 또는 "너네 어차피 갈데없자나...."
이 집에 들어온지 9년이네요.
엄마는 5년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93세입니다.
남편놈...처음엔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이 집에 들어와서 잘 하더라고요
아버지한테도 싹싹하게 굴고..
이 집에 들어오는걸 적극적으로 군게 남편이었어요.
두 노인네 얼마 안 가 죽으면 이 집이 떨어진다~~~~라는 생각이었겠죠
아주 김칫국물 마시면서..."이 집 팔면 나한테 일억 줘~~"라고 하던 놈...
일 이년만에 결판이 날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다보니...빡이 친건지 택시하러 나가지도 않고 잠만 자고...돈도 제대로 안 주고...
아버지는 이 집을 금융공사에 맡기고 연금 받아요.
남편놈은 어느새 이 집이 자기꺼란 착각을 하고는..노인네가 오래 살수록 남을게 없다는 생각에 빡이 지대로 친거겠지요
택시관두고 아는사람 형이 하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월급이 180만원인데 (이것도 내가 동사무소에 가서 알게된겁니다) 생활비로 매달 80만원씩 줍니다.
처음 일년은 50만원주더니 3년째 80만원 줍니다
아버지를 보면 쌩까는 패륜짓거리를 합니다
큰아이는 전문대 나와서 직장다니고 둘째는 고딩인데 학비가 매년 백만원 (실업계라 수업료없음)들고 차비에 용돈이 드는데 일절 없어요
딱..지놈 하숙비만 냅니다.
우린 대화 일절 안합니다
저녁밥은 차려줍니다.
언젠가 내가 "80만원 주지말고 나가!!!"
이혼 안 해주면 어쩌죠?
이혼하고싶어요..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