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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읽어보고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1915189 |2018.01.04 21:16
조회 1,261 |추천 1

삼십줄에 접어든 글쟁이입니다.

10년 간 마음에 담아둔 사람, 내일 5년 만에 만나기로 했네요.

처음 판에다 글을 남깁니다. 그냥 어딘가 하소연 할 곳도, 할 사람도 없어서요.

10년 전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이야기라 장황하고, 또 드문드문 기억이 없기도 합니다.

즉, 굉장히 두서가 없어요.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거라.

 

서론은 짧게, 본론은 길게 가겠습니다.

직업적 신념상 음슴체는 음슴니다.

세종대왕님의 정신을 존경하고 유지하는 것이 문과인의 도리.

그러니까 다나요로- 간간이 죠도 섞어서 가겠습니다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작은 제가 고3, 19살 때입니다.

저는 당시 3년째 알바를 하는 중이었어요.

집이 가난해서 기억날 무렵부터는 거의 반지하-원룸생활의 연속이었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바른 생활이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당시 170 후반의 키에 마스크도 나쁘지 않아서,

부모님의 빚으로 연기학원 다니며-그조차도 연기의 열정은 고사하고 그냥 멋있으니까.-

알바한 돈 반은 부모님, 반은 제가 흥청망청 쓰며 비행 청소년의 길을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건 10년 전,제가 19살일 때 아르바이트 장소였습니다.

신입으로 들어온 저보다 1살 연하의 소녀.

하얀 피부, 커다란 눈에 살짝 연갈색 빛-호박색 눈동자가 인상깊었죠.

당시는 그저 예쁘게 생겼네-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녀는 외관상 약간의 장애가 있었습니다.

훗날 실례인 줄 알면서 물었고, 짧게 화상을 입었었다 얘길 들었죠.

나중에 '우리 형'이라는 영화를 보고 그것이 구순구개열- 언청이라는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로인한 상처가 많았을텐데, 그것을 속도 없이 물었던 걸 여즉 후회하곤 해요.

그래도 그런 것이 전혀 문제로 생각되지 않을만큼 참 예뻤습니다.

 

일하며 깬 접시만 수십장, 오죽하면 '접시 학살자'라고 불리는 사고뭉치에

웃을 때는 -콧물 나와서 못나 보인다고- 코를 막는 버릇이 있고,

자유분방하다 못해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음에도

웃을 때 꽃이 피듯 화사해지는 공기와, 심장을 두드리는 맑은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그저 그랬어요. 약간의 호감. 딱 그 정도.

 

#첫번째 만남

 

빛이 강할수록, 드리워지는 그림자 또한 길고도 짙은가 봅니다.

 

처음 썸을 탄건 제가 20살, 그녀가 19살 때였습니다.

여럿이 있던 자리에서 이야길 하다보면 간혹 서로의 절망들을 자랑하는 순간들이 있죠.

자랑은 이상한 표현이네요. 그냥 누가 누가 더 비참한가,로 분위기를 나락으로 빠트리는.

그녀는 제가 전혀 알지 못했던 (평소의 그녀를 사랑 받으며 참 제멋대로 자랐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신의 드라마 같은 가정사와, 그로 인해 그 어린 나이의 2년째 자취생활을 눈물과 함께 흘렸고,

그런 그녀를 보며 저는 처음으로 '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후로도 2개월간 몇 번을 더 만나다가, 수능을 앞둔 그녀가 연인은 안될 것 같다 하더군요.

그 때까지도 그리 아프진 않았습니다.

~

 

 

저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 썩 상태가 좋지 못했어요.

20대 초중반은 거의 그녀로 인해서 그랬던 것이겠지만, 그녀 때문은 분명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춘기를 겪었겠지만, 제겐 좀 더 격렬하고 좀 더 긴 사춘기였던거죠.

어릴 때 신병이라 할까, 뭐 여기서 말하면 팔만대장경 하나 써야할 일도 겪었었고

또 집안이 참 눈물나게 가난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분명 조현증에 가까운 피해망상, 사고의 양극단을 오가는 괴랄한 성격이었죠.

특수폭력, 음주, 흡연등의 각종 문제에도 인문계를 무사히 졸업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어요

(아직도 동창회는 커녕 당시의 동창들을 마주치는 것이 부끄러워 모교 동네를 못갑니다.)

아마 수능은 핑계였을 뿐. 제 그런 성격이 문제였었겠죠. 

혼란스런 정신, 혹은 의도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해서 그런지 그 당시의 기억은 희미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의 그 2개월도 그리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아요.

단지 그 날의 눈물, 그 모습만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

 

 

#두번째 만남

 

세상에 닳디 닳을 만큼 흔한 것이 거짓말이었는데,

그럼에도 그토록 아파했던 이유는

제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1년 뒤, 제가 21살이고 그녀가 20살이 되던 해에 문자가 왔습니다.

번호가 바뀌었다는 내용이었을 거에요.

그로 인해 다시금 그녀를 만나게 되었죠.

학생 시절의 긴머리는 짧은 단발이 되어 있었습니다.

숨이 막힌다는 표현을 아시나요? 심장이 양쪽 볼 사이-코 뒷편에서 뛰는, 그런 느낌이죠.

눈이 튀어나올 것 같고, 고막이 심장처럼 뛰는 것 같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예쁘고, 귀엽고, 또 아름답더라구요.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햇빛을 바래는 먹구름일 뿐.

분명 1년간 딱히 떠올리지도 않았던 그녀인데, 1년 전의 예감이 다시금 상기되더군요.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겠구나', 라는.

 

저는 아직도 그 날의 온도, 습도와 공기의 냄새까지도 기억합니다.

옅은 안개가 도시를 낮게 그러안은 밤.

차들의 소리도 길거리 주점들의 노랫소리도 모두가 잠들어버린 듯한, 그런 마법에 걸린 밤.

그녀는 제 허세로 엉망이 된 칵테일을 마셨고,

저는 그걸 무마하려 시덥잖은 농담들을 하다 무심결에 그녀에게 좋아한다 말해 버렸어요.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떨어져내리던 단어들, 전 그것들을 잽싸게 주워 담질 못했죠.

'사실은'을 줍기도 전에 '나도'가 떨어졌고, 그 두 단어를 귀에 담아 음미하지도 못했는데

'좋아하고 있었어'가 나풀대며 테이블 위에 내려 앉았습니다.

그 커다란 호박색 눈동자에 비친 제 얼굴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네요.

분명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그런 멍청한 얼굴이 담겨 있었을테죠.

 

부끄러운 과거지만 당시의 저는 화류계에 몸 담고 있었습니다. 선수라고 하죠.

뭐 멍청한 20대는 누구나 있으니까, 라고 위안하기엔 그 뒤의 일들이 도를 넘기에

딱히 당시의 저를 쉴드치고 싶진 않네요. 쉴드로 쳤으면 쳤지.

그녀를 다시금 재회했을 때, 저는 1년 좀 넘게 하던 그 일을 그만두었어요.

지명도 꽤 생기고 이제야 돈 좀 벌린다 했지만 별 후회는 없었습니다.

그녀를 불안에 떨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곤 그녀와 처음 만난 매장에 다시 들어가 낮 알바를 하고,

밤에는 또 조금 떨어진 노래방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저녁 5시부터 8시까지의 토막잠, 아침 5시부터 8시까지의 토막잠을 나눠자면서 말이죠.

제게는 제 소년기에 드리워진 가난이 참 부끄럽고 괴로운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녀에게 모자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그녀가 제게 '오빠, 나 거지 아니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생각해보니 그녀도 오랜 자취 생활로 그런 부분에 상당히 민감했을 터인데,

저는 그 때도 제 생각 밖에 못했었나 봅니다. 진정 배려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겠죠.

그런 저의 이기심, 그리고 배려를 가장한 부담스런 친절이- 그녀를 참 많이 힘들게 했을 겁니다.

단지 그녀가 바라던 것은 기댈 수 있고, 때론 소소한 장난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때의 저는 왜 몰랐을까요.

 

그녀는 바람을 피웠습니다. 만난지 2개월 쯤이었죠. 후술하지만, 그 2개월이 문제입니다.

어린 날 앓았던 열병의 뒤늦은 후유증인지, 끔찍한 현실에 맞춤형 피해망상을 가진 덕인지

알 수도 알 리도 없는 상황에서 저는 그것을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흔히들 직감이라 말하나요? 그것보단 확신에 더 가까운. 말로 표현하기는 너무 어렵네요. 

확실한 건, 저는 그 때부터 '불특정한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는' 사람이 되었어요.

뭔가 봉인해제-! 라던지, 각성 아수라 같은 느낌이랄까.

마크 2로 버전 업을 겪었습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보다, 몰라야 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찌나 아프던지, 그 비오던 건물 옥상에서 그녀에게 하염없이 절규했었어요.

그 날은 여즉까지도 빈번히, 너무도 생생한 꿈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온통 흑백-잿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그 눈물들만은 빗방울과 확실히 구분되는 호박색.

온 세상은 삼류 영화관의 영사기 마냥 노이즈로 가득해요.

그 꿈을 꾸는 순간은-정말 재미없는 B급 블랙 코미디 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저는 지옥 밑바닥에서 긁어 모은 온갖 절망을 보기도- 듣기도 흉하게 소리치고,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는 또 호박빛 눈물방울을 떨구며 가없이 '미안해'라고만 하죠.

저는 그 날 하늘을 밟겠다 결심했었습니다.

 

그녀를 뿌리치고 계단을 뛰어 내려와 어딘지도 모를 건물까지 내달렸어요.

편의점에서 소주 3병을 사들고 편의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쉬지 않고 다 비워냈죠.

그리곤 핸드폰에 있는 모든 연락처에 유서를 돌렸습니다.

죽겠다는 다짐이 혹여 흔들릴까, 보다 확실히 죽어야 할 이유를 만든 거예요.

그리고는 그녀의 이름과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을 고래고래 소리치고는

담을 넘듯 제 가슴 아래께 높이의 벽을 뛰어 넘었습니다.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9층 발코니 화단에 엉켜있더군요.

온 몸이 긁혔었고, 나중에 알고보니 다리 뼈도 한군데 금이 갔었죠.

알고 보니 그 건물이 2층 간격으로 계단처럼 옆으로 조금씩 더 튀어 나오는 구조더라구요.

산을 오를 때는 산을 보고 올라야한다, 듣기에만 멋있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옳은 말이죠.

제가 그 날, 편의점을 나와 한 번이라도 하늘을 봤다면 저는 이세상 사람이 아닐거에요.

아니, 최소한 옥상에서 방지벽 너머 아래를 한 번만 봤더라도.

그래도 지금은 살아있어서 행복합니다. 알 이즈 웰.

 

너무 아프고, 술도 깨지 않아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 내가 죽지 못했구나!' 였습니다.

가족, 친구들, 지인들과 별로 친하지 않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을 말하고는

저는 결국 죽지도 못했어요.

그 후로 이틀을 건물 지하, 화장실과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잠들고 울다가

어느 곳에 버려진 전선으로 비상계단 철문에 감아 앉아서 목을 매다는 등,

별 짓을 다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들어갔더라구요, 염치없이.

집에서도 아버지의 당뇨병 약-혈압약, 혈당약등을 잡히는 데로 털어 넣었습니다.

50알 정도? 한 3번 나눠 먹었었죠.

죽지는 않았지만, 그때 간과 심장에 들어간 데미지가 여즉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첫번째 재회는 끝이 났습니다.

보통이라면 그것이 마지막이었을텐데, 왜 그러지 못했던 건지요.

~

 

 

태생부터 제 뇌에서 숫자를 담당하는 부분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인지,

저는 지금도 오래 전에 바뀌었던 어머니와 동생의 번호를 혼동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문과를 나온거겠죠. - 이과 다 죽었으면.

그 자살소동 이후에도 간혹 술을 마시거나, 쏟아지는 기억에 밤이 너무도 무거울 때면

그녀에게 간간히 문자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 때 그녀의 번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거든요.

이것도 제가 그녀를 사랑한다-라고 확신했던 이유 중 하나였죠.

답이 없거나, 짧게 대화가 오가다 일방적으로 단절되거나.

그 또한 제가 너무 비참하고 우스워 언젠가부터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번호라고 하니 생각나네요. 자살 소동하고 300명 정도 있던 주소록에 20명 남더군요.

그래도 그 지x을 하고 20명이나 남기다니, 헛산 인생은 아니었나봐요.

 

 

2년 뒤,

23살의 저는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어느 웨스턴 바 브랜드의 바텐더로 일하게 됐습니다.

두 해 전 화류계에서 일한 것도 '바텐더'라는 꿈을 가져서 였거든요.

(그곳에 그런 바텐더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구인은 '바텐더 구한다'고 하더군요.)

각설하고,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제가 마스크가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키도 있고, 어른들한테 '그 놈 참 제비같이도 생겼다' 라는 말도 꽤 들었죠.

나중에 타인의 말로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우스갯 소리에서 저 말이 극찬이라 하더군요.공부 잘하게 생겼네-공부라도 잘 해야 여자 만나지, 뭐 그런 소리 적어 놓은 농담들 있잖아요.

이 얘기를 꺼낸 건, 제가 그녀에게만 매달릴 정도로 연애 사정이 나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냥 되는 데로 만나고-아니 닥치는 데로 만났습니다.

지금은 제 이름 석자대면 저희 동네에 '신의 글라스' 말고 '개새x'라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을껄요.

('신의 글라스'라 부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그냥 착시현상입니다.)

자랑은 아닙니다. 그녀를 잊으려고, 아니 잊는 건 싫었고 그냥 그녀의 부재가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 그 자리를 완벽하게 메꿀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 잠시라도 채워줬으면 했어요.

그냥 하룻밤이라던지, 1년쯤이라던지.

 

근데 진짜 그 때 인기 많았어요. 다 걸고.

 

 

 

#3

 

단 하루만 살아도 좋으니,

단 하루만 함께 하게 해달라고.

제 좁다란 방 낡은 이불을 성전 삼아

얼마나 많은 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날들을

울고 몸부림치며 애원했었는지

'잘 지낸다'

그 한마디로 얻은 위안이란,

마치 새벽의 별들에게로 중얼대던 바람을

달을 베어 먹던 악마가 들어준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 또 흘러 가더군요.

제가 23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일하고 있는 와중에 낯익은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뭐하고 있어, 잘지내? 비가 오길래 오빠 생각나서 연락했어.'

 

누가 알았나요. 그 말이 이후 비가 오늘 날마다 제 기분을

기간틱 타이푼으로 나락에 꽂아버리는 저주랄까, 뭐 그런 것이 될 줄이야.

 

그냥 그 때는 2년 만에 그녀 목소리를 들으니까 현기증이 나더군요.

정말 미친듯이 기뻤습니다. 그녀의 외도에 대한 서운한 기억같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그녀가 절 찾았다는 것이 기뻐 그녀에게 지금 당장 가겠노라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랬지만, 그녀가 찾는다면 일도 약속도 팽개치고 그녀에게 갔으니까요.

그 날은 그녀가 제가 있던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옛날의 실수(어줍잖은 칵테일 지식으로 진토닉에 우유를 섞어 버렸거든요)를 만회하려

영혼을 담은 칵테일을 만들어 주었죠. 'xx(언급할 수 없는 지명) 신의 글라스'가 바로 접니다.

나중에 말하길, 제가 칵테일 만드는 모습이 꽤 섹시했었대요.

맛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그냥 맛있다? 정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때 그 말이 좀 뿌듯하긴 한데, 뭘까요 이 병x 같은 기분은.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2년 전과는 다른 사람이었죠.

알고도 만났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고도 결국 만날 사람이라면,

더이상 그런 건 중요해지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은, 내가 망가졌다는 증거가 되죠.

 

신기하게도 그녀와 무엇을 먹으러 가면 정말 맛이 없는 음식점, 카페였고

그녀와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대개 '있어서는 안되는' 사고들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온 세상이 '너희는 함께 하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그래도 저는 그 모든 것들이 좋았습니다.

별로인 음식을 먹고, 길을 몰라 한시간을 헤매도

그녀와 함께였으니까요.

 

있어서는 안되는 사고들 중 그나마 양호한 사건이,

술 마시고 그녀를 데려다준 후 이야기하다가 잠시 뒤돌았는데, 그녀가 사라져 버렸길래

순식간에 납치당한 줄 알고 경찰에 신고한 것일 겁니다.

그 당시 저희 동네에 회색 봉고차 괴담이 한창 돌고 있을 때였거든요.

당연히 제가 취해있었던 것이고, 그녀는 집에 무사히 들어가 현관 앞에 쓰러져 잠들어 있었죠.

출동한 경찰에게 집 주소를 알아내려는 스토커로 몰려 호되게 혼이 났었습니다.

건물은 알고 있었는데 호수를 몰라서 몇층 사는 누구가 납치됬다고-뭐 그랬었나봐요. 

근데 이게 첫번째 재회 때였는지, 2번째 재회 때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아마 2번째 재회의 끝-바로 이어서 이야기 할 홍대 사건의 직전일겁니다.

쓰다보니 참...저 죄가 많은 사람이네요. 이렇게 될 법도 한 것 같아요.

 

홍대였나요, 그녀와 예x밤이라는 술을 마셨죠.

양주는 자신 있었어요, 저는 신의 글라스였으니까요.

그런데 몇 잔 마시던 그녀가 심장이 아프다고 하더라구요.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한 것이, 에너지 음료와 섞어 먹는 술로 죽은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 즈음 언젠가 뉴스에도 나왔던 일이었죠.

('밤-bomb'이란 단어 들어가는 칵테일 치고 멀쩡한 게 없답니다.)

단번에 그녀를 끌고는 세x란스로 응급실로 달려갔죠.

그녀는 한사코 곧 괜찮아질 것이라 말했지만-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 저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마치 무언가를 숭배하는 그런 것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 모든 행동들은 너를 위하여, 그러니 너도 내게 그래주었으면. 아니, 꼭 그래라.

라는 식의 이기적인 생각의 숭배 말이에요.

 

후회하는 것이 두가지 있다면,

꽤나 나온 병원비를 제가 내지 않은 것.

그리고 그녀가 단순히 가슴이 아픈 이유만으로 자리를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생각보다 빨리 멀쩡해진 그녀가 말하더군요.

할 얘기가 있어 남친이 집 앞에 와있다고. 만나고 들어 가야겠다고.

저는 그녀에게 헤어지고 나와 만나자, 전과 같은 실수는 없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꽤 냉전이었고, 비열하게도 그게 제겐 기회라 생각했죠.

어쩌면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실수하기 전에는.

 

다음날 그녀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가 핸드폰을 잃어버려 그녀 아버지 핸드폰으로 제게 연락했었거든요.

그녀를 위해선 다 해줄 수 있었으니까, 당연히 잃어버린 핸드폰도 제가 찾았죠.

홍대에서 만나, 건네주기 전까지 그녀 아버지 핸드폰으로 연락했었기에

그 때 남은 번호로 연락하셨나 보더군요.

어제 그녀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남의 귀한 딸이랑 어디서 뭘하고 있느냐고.

 

눈치 챘겠지만 그녀와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들 말이죠, 그거 대부분 제가 일으킨 거에요.

위의 납치사건도 제가 술에 취해서 그랬던 것이었구요.

끝났을거라 생각한 제 사춘기는 끝나지 않았고, 그때까지도 제 광증은 살아있었던 겁니다.

비오던 그 날의 옥상에서, 그녀에게 발악하던 그 모습 그대로.

 

저는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가 어제 밤에 데려다 주었고, 그녀는 집 앞에서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병x처럼 다 얘기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녀를 위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건 저를 위한 일이었죠. 그 때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요, 간혹 그녀가 누군가와 함께 밤을 지새는 망상에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걸 제가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라 그랬을 겁니다.

아니, 가슴이 아파 병원까지 다녀온 사람이라 더 화가 났습니다.

그게 거짓이었는지, 아니면 그런 사람과 밤을 함께 할 정도로 배려없는 남자를 만나는지.

어떤 이유였건 저를 화나게 만들 이유 밖에 선택지가 없었어요.

훗날 알게 된 것은 후자였지만.

근데 정말 2번째 재회의 끝은 바로 그로부터 며칠 후 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저는 또 그녀를 만났어요.

누가 저한테 이런 얘기하면 전 진짜 그 사람 면전에다가 '너 또라x지'라고 하는데

항상 그럴 때마다 좀 가슴이 콕콕 쑤시긴 합니다.

콕콕, 은 좀 귀엽네요. 푹푹-이라던지 콱콱- 정도.

 

저는 도저히 안되겠다 생각했고, 그녀와 어떤 마무리를 짓고 싶었습니다.

저와의 만남이건, 평생의 이별이건 말이죠.

그래서 다시 한 번 만났고, 그녀는 제게 술 한 잔하며 이야기하자 그러더군요.

그 말에 다시금 무언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신이시여 이 새x가 또...)

그녀와 술집을 향하던 길에, 그 길에 무려 남자친구를 만나고야 맙니다.

있어서는 안될 일의 끝판왕이었죠.

당황하던 그녀는 분노한 저와, 똑같이 분노한 남자친구를 두고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만약 그 남자친구가 그런 개xx인걸 그 때 알았다면 그곳에서 한군데는 평생 못쓰게 만들었을텐데.

그 때는 그냥 그녀에게 더 밉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 말만 몇마디 하고 갔어요.

그리고 다음날, 버려진 저를 보았죠.

그게 2번째 재회의 끝이었습니다.

~

 

그 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연락을 또 하고야 말았지만,

언젠가 그녀가 번호를 바꾸었더군요. 한 편으로는 참 고마웠어요.

제가 어찌 제발 번호를 바꿔달라 사정할 수 있었을까요.

기억해버린 것도 저고, 연락하게 될만큼 형편없는 의지를 가진 것도 저였는데.

 

생각해보니 그녀를 만났을 때 참 많은 거짓말을 했더군요.

가령, 총 맞고 전역했다던지. 이게 무슨 허센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그 당시의 저를 만나 뚜껑을 한 번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아버지 아프셔서 의가사로 제대했어요. 얼마 뒤 타계하셨고.

이 얘길 왜 하냐면, 제가 그 남자친구한테 소리칠 때 총 맞아봤냐 그랬던 거 같아요.

난 총 맞았을 때도 그녀만 생각했다고.

으휴, 병x. 정말 구제불능이네요. 진짜 총 맞고 죽었어야 됬는데.

근데 그 말 듣고 또 쫄아서 대답도 못하는 그 남자친구놈도 참 x신이었네요.

이번 생은 답이 없나봅니다. 아마 너도 없을꺼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개x끼야.

 

그녀와 하나가 될 기회는 있었습니다.

제가 술에 취해서 그녀에게 말한 적도, 그녀가 취해서 제게 말한 적도 있었죠.

불행이라면 둘 다 취한 적이 없었네요. 아쉬운 건지 뭔지...

그래도 그냥 그녀를 아껴주고 싶었달까요.

뭔가 제가 그녀에게 주는 사랑의 십분지 일이라도 그녀가 제게 준다고 느끼면 그러고 싶었죠.

나름 순수하게 사랑했달까, 아니면 더 멍청하게 사랑했달까.

그 때 필살기라도 보여줬다면 그녀가 절 버리진 않았을까요.

아, 이건 농담입니다.

 

저 같이 병x 같은 놈이라도 신념이란 건 있습니다.

제가 입에 담기 무거운 단어들은 쉬이 말했던 적이 없어요.

가령, 사랑이라던지-영원이라던지. 영원히 사랑할게, 이건 저한텐 볼드모트 같은 단어죠.

솔직히 저걸 입에 담으면 서로의 손발에 버터 발라야 될거에요.

첫번째는, 당연히 그녀입니다. 어느 콘크리트 숲에서-되게 낭만 없이 얘기했던 첫번째였죠.

어..생각해보니 이게 그 납치 사건일 때 같네요. 이 얘기하고 창피해서 고개를 돌렸는데,

대답 기다리다가 다시 돌아봤더니 사라져 있었죠.

빛의 속도로 도망갈만큼 싫었던 건지, 아니면 제가 하염 없이 대답을 기다렸던 건지.

 

3번째 재회 당시, 저는 1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1년이 특별한 게, 저한텐 가장 오래 연애한 시간이에요.

그리고 그 여자친구에게 태어나 가족이 아닌 여자에게 두번째로 사랑한다 말했었죠.

제 주변 모두가 말하길, 너는 평생 그런 사람은 앞으로 못 만날 것이라 할만큼

저를 많이 사랑해 주었어요. 마치 제가 그녀에게 그랬듯, 늘 제가 우선인 사람이었죠.

그런데 저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을 때도 그녀가 찾는다면,

심지어 그런 여자친구와의 약속조차 파하고 그녀를 찾아 갔거든요.

그녀를 만날 돈이 없어 여자친구에게 사촌 동생이 와서 밥을 사줘야 한다며 돈을 빌렸을 때,

제가 얼마나 비참하고 경멸스러운, 그리고 한심한 인간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 비참하고 경멸스러워지기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졌죠.

붙잡아주길 원하는 여자친구를 보내주었습니다.

제겐 그럴 자격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때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울게 만든 사람들이- 사실은 제가 그녀를 사랑하듯,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잠재적으로, 절 죽이고 싶을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방향 없는 원한을 사고 있었죠.

그 뒤로 전 제가 살아 있다는 소식조차 알려지지 않게 지방살이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 밖에 없었거든요. 같은 동네다 보니.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연애같은 연애는 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사람이 되고 사랑을 하자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가끔 썸이라던지, 애정 없는 합체라던지..그런 것이 없다고 하진 못하겠습니다만.

생각해보니..순애보까지는 아니네요. 10년 간 할 것은 다 하고 살았네요.

그래도 단 한 번도, 사랑이란 단어는 감히 입에 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이게 과거의 일, 제가 기억하는 일들이네요.

누락된 일도 몇 있겠지만, 뭐 결국 다 쓰고 돌이켜보니 제가 총체적 난국이었군요.

아마 그 총체적 난국에 국자 하나 더 끼얹을 사건들이 몇 개 더 있을 거에요.

저는 기억하지 못하고, 그녀는 기억할 법한.

 

과거의 모든 일들을 제가 납득하고 자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귓방망이 200대쯤 때려주고 비트코인 사놓으라고 경고할 거에요.

하지만 그녀를 만나지 말라...라고는 못하겠네요. 참 이상하죠.

 

이거 뭐 다 적고 보니 거의 단편 소설이네요.

그리고 정말 정신없군요.

여기까지 읽고 의식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셨다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어나 국가론, 단테의 신곡 같은 것도 쉽게 읽으실 거에요.

써 놓은 저도 뭐라고 쓴건지 모르겠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런 그녀를 내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놈의 카카x톡이 뭔지, 추천 친구에 뜨더라구요.

아예 지워버리려 했건만 참...미련인지 뭔지 모를 섧은 감정에 연락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23살 이후, 해가 바뀌었으니 7년 만이군요.

그 7년 동안에도 제 가슴 속에는 마지막 보았던 그녀가 늘 저와 함께 했습니다.

비가 오면 내리 저를 괴롭게 만들고-언젠가 장마철엔 3달 내리 우울증 약을 먹기도 했을만큼-

누군가와 무언가 제대로 된 관계라도 맺을까, 하면 제가 했었던 과오들을 머릿 속에 던지더군요.

그리고 제게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괴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또...너무나도 찬란한 날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어떤 의도로 그녀를 만나려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30대가 되었으니 제 20대의 전반을 지배했던 악몽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제 마음 속에 있는 그녀와 현실의 그녀는 7년의 시간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보려는 것인지..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저는 사랑했고, 또 사랑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녀는 지금도 남자친구가 있어요.

분명 이건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겠죠, 저도-그녀도.

그녀가 내일 절 보지 않겠다고 연락했으면 좋겠어요.

그녀라도 올바른 사람이 되었다고 위안이 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게 된다면, 저는 그 카카오x 아이디마저 지울까 합니다.

언젠가 또 혼자가 된 그녀가 저를 찾지 않을까-

올해 장마가 온다면, 내년 장마가 온다면.

그런 기대로 살아갈 수 있게 말이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종종 기대하곤 했습니다.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한다면, 세상에 그녀와 저 단 둘만 남게 된다면,

저는 그녀 외에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이런 망상조차도 저는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 외에 무엇이 사랑이기에.

 

 

p.s

만나서 할 이야기란 것은 이런 것들이었지.

7년을 담고 살아온 이야기들.

처음도, 두번째 버림받았던 날들도

난 단 한 번도 너를 원망치 않았었다.

사랑한 내가 죄지, 사랑한 내 잘못이지.

3번이나 기회가 있음에도 네 외로움을 이해하지도 감싸주지도 못한

그런 내 잘못이지.

내가 너무도 뒤틀린 인간이었고, 너 또한 망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이제는 내 뒤틀림과 너의 뒤틀림이 맞을까.

서로 망가진 부분의 아귀가 맞는다면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너는 그런 기대였었나, 나는 그런 기대인건가.

하지만 단 하나는 그렇다.

꼭 그 얘기만은 내가 영원히 이 땅에서 떠나기 전에 전하고 싶다.

 

나는 너로 인해, 세상 모든 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추천수1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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