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년 10월에 아빠 돌아가셨어. 자살했어
회사가 잘 안됐었는데 그거 힘들어하다가 자살했어
아빠는 서류상 이혼을 생각했을 만큼 힘들었나봐
아빠 죽기전엔 나름 작지만 직접 가족이 만든 단독주택 살면서 강이지도 키우고 행복하게 살았어.
주말 아침에는 강아지 산책시키면서 동네 돌아다녔고 주말 저녁마다 마당 나가서 바비큐도 구워먹었었어. 학교 마치고 돌아와서 쉬다가 아빠 오면 아빠가 잔디깎는 소리에 마당에 흔들 그네 타면서 같이 얘기하고 놀고 집이 산속에 있어서 밤마다 별도 되게 잘보였어. 슈퍼문 이런거 뜨는 날이면 비싸진 않지만 동생이 용돈 모아서 산 망원경으로 마당에서 달 보면서 놀았고 여름에는 밤에 더우니까 얼음에 물 담아서 가족끼리 마당에 돗자리 피고 앉아서 놀았어. 겨울에는 눈 올때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짚앞 도로에 눈치우고 엄청 큰 눈사람 만들기도 하고. 친구들 놀러오면 거실에 있었던 빔프로젝트 내려서 같이 영화보고 놀고 그냥 진짜 그 당시에는 별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정말 좋았네.
아빠 회사 어려워지고 아니 아빠가 회사 어려워진걸 우리에게 티를 내기 시작한 후부터 하루하루가 불안했던것 같아. 조금은 자제하자. 라고 아빠가 말했을때까지만 해도 난 우리집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지 몰랐어. 내가 실감했던건 아빠가 나 공부하던 도서관까지 데리러 오셔서 집으로 갈때였는데
그냥 나는 평소처럼 칭얼대면서 이번 겨울방학때 우리가족 일본 가자고 일본가서 놀고싶다고 했는데 아빠가 미안하다면서 여유가 생기면 가자고. 그랬는데 내가 더 찡찡댔어. 아빠가 안가면 나 홈자라도 가고싶다고. 그랬더니 아빠가 알았다고 하더니 나 몰래 운전하면서 울었어. 나도 그냥 못본척 했지만 그냥 아빠가 눈 비비는데 내가 너무 한심하더라.
엄마는 결혼하시고 한번도 직장생활 하신적 없었는데 그때서부터 부업다니기 시작했고 솔직히 조금은 달리진 우리집 모습에 적응 못했어.
그래도 우리는 매주 잘 지냈고 화목했어.
어느날은 엄마가 먼저 밥먹는 자리에서 놀러가자고 하는거야. 나랑 동생은 당연히 좋다고 했지. 아빠도 흔쾌히 허락하더라. 밥 다 먹고 2층방으로 올라가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소리가 다 들렸어
이번 여행 갔다오고 다시 한번 잘해보자고.
이번여행 다녀오고 정신차리고 잘 살아보자고 하는거 듣고나니까 나도 괜히 울컥하더라.
여행도 잘 다녀오고 가족끼리 싸운것도 아니었는데 여행 후에 아빠는 더 우울해졌어
밤에 늦게 들어오는건 물론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아빠는 없었어.
주말출근도 물론이고.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밥먹으면서 꼭 소주를 한병씩 먹었어. 소주를 안먹으면 잠이 안온대.
죽기 이틀전인가? 아빠가 왠일로 소주를 안먹길래 나는 아빠한테 잠이 안오면 asmr 들어보라고 내가 보내주겠다고 하자 아빠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어
당연히 그 다음날에도 일어났을때 아빠는 없었고.
그날을 잘 보내고 잤어. 정말 오랜만에 2층에 내방이 아니라 1층 거실에서 잤는데 그날따라 주말인데도 눈이 일찍 떠지는거야. 눈을 뜨니까 눈앞에 아빠가 있더라 동생이랑 나랑 비몽사몽 한 상태로 주방에있던 엄마랑 마중을 나갔어. 잘 다녀오시라고.
엄마는 신발신는 아빠한테 이번 주말에 같이 찜질방이나 갈까라고 물어봤는데 아빠는 아무 대답이 없더라. 잘다녀오세요 하고 다시 돌아와 잤다가 일어났어. 엄마는 부업하러 사무실로 간 상태였고 시험 하루전이었던 나는 친구를 우리집에 불러서 공부를 했어. 정말 아무렇지 않은 하루였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는거야 엄마한테.
평소에도 엄마랑 연락 많이 하니까 별 의심이나 이상함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울면서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라고 니 아빠가 미쳤나보다 하면서 우는거야.
뭔가 잘못됐구나 하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게 아직은 살아있다는 뜻인가 이 생각 들면서 그니마 안심되더라.
동생은 같은동네 친구랑 놀고 있었는데 나는 그 통화 이후로 친구를 급하게 보내고 동생도 집으로 불렀어. 그 사이에 친할아버지한테도 전화가 와서 니 아빠가 자살을 했단다 하는 소리도 들었어.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게 아니어서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이런 상황을 몇번이고 생각했었어서 나는 생각보다 차분했어.
집이 아빠가 자살한 회사랑 멀었고 엄마가 경찰서에 가서 조사받는 동안 나랑 동생은 아무것도 못했어.
내가 얼마나 침착했냐면 동생이 소식을 듣고 을다 지쳐 쓰러졌을때 죽도 해줬어. 아직 그때까진 안믿겨서 차분했던것 같기도 했고.
사실 정말 지옥같았어. 가족이 죽었는데 보통 영화나 드라마처럼 맨발로 뛰쳐나가지고 못하고 5시간? 6시간을 집에서 기다려야 했어. 엄마는 바쁘니까 연락도 못하고 나는 집에서 그냥 소식 기다렸어.
근데 내가 정말 나빠서 그 시간동안 그런생각도 들더라 차라리 아빠가 교통사고로 죽은거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보험금이라도 나오지 않았을까. 진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어. 사실 그동안 우리집 힘든것도 다 알아서인지 그 당시엔 자살한 아빠가 너무 미웠거든.
그렇게 겨우 동네분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니까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와계시더라.
울면서 우리애들 어떡하냐고. 그제서야 실감이 나서 막 울었는데 엄마랑 동생이 우니까 난 그래도 눈물 꼭 참았어. 내가 장녀인데도 불구하고 상주는 어린 남동생이 하는데 그것도 너무 우울했고 그냥 사고도 아닌 이런 죽음을 내 친구나 누군가에게 알려 위로받기도 힘들었어. 장례 치르는 3일동안 나는 그래도 엄청 울줄 알았는데 또 지내다 보니까 밥도 먹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랬어.
우리 아빠 아는 내 친구들이 날 보러왔을땐 진짜 얼굴만 봤는데 서로 안고 울었어.
3일 지나고 집으로 왔는데 오는 내내 불안했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울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불안했는데 다행히도 동네분들이 먼저 들어가서 밥하고 다 치려놓으셨더라. 그리고 우리 기디려 주셨어.
아빠 죽고 진짜 하루하루가 불안했는데 나는 친구들 시선이 제일 무서웠어. 반에서 왕따도 아니었고 친구가 없는것도 아니었는데 혹시 뒤에서 꺼려할까봐. 근데 내가 반에 들어가자 마자 친구들이 토닥거려주는데 또 눈물나더라. 원래는 국제고 준비했어. 공부를 잘했고 내신 195 이상이었으니까 학교에서도 다 국제고 아니면 자사고 어떠냐고 물어봤어.
근데 아빠가 죽고 나서는 차마 내가 가고싶어도 가겠다고는 못하겠더라. 돈이 많이 드니까.
결국 포기했는데 같은 동네에 고등학교는 아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못가겠더라. 그래서 멀리 떨어진곳으로 이사도 오고 고등학교도 이쪽으로 진학했어.
그러는 와중에 미국에서 잘 산던 큰아빠. 그러니까 아빠 형은 연락 와서는 전재산을 자기한테 맡기래. 엄마가 나중에 말해주길 거의 뺏자는 식이었대.
근데 또 친할아버지는 큰아빠 편을 드는거야.
미국에서 고생하는 애 부탁하나도 못들어주냐고.
그거 때문에 당시에 고모랑 할아버지랑 의절할 정도로 싸우셨대. 미국에 살면서 도움한번 안준게 누구고, 미국 가고 10년 넘게 집안 경조사 다.챙긴것도 누군데 왜 할아버지는 큰아빠 편만 드냐고.
우리는 그냥 나 상관안하고 지금 집에서 살았어.
정말 문득 아빠 생각나는데 나는 우는게 싫어서 울지 않으려고 해. 엄마가 우는걸 보면 너무 우울해서 나까지 울면 정말 집이 무너질것 같아서 참고있어.
사실 납골당 가서 정말 쓰러지게 울고싶은데
엄마랑 가면 엄마가 먼저 훌쩍 거릴때마다 내가 농담 던지면서 우울해지기 싫어서 그렇게 참고 그래
근데 밤이 되면 항상 아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와.
엄마 몰래 그냥 방에서 훌쩍이는건데 지금 훌쩍이는것도 엄마 자는곳까지 안들렸으면 좋겠다.
요즘 더 힘들다 고2되는데 가끔 진짜 힘들때 자살하고 싶다고도 생각해. 힘들다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