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범했어요....
너무 슬펐고 나도 평범하다는 사실에 너무 와닿아서 펑펑 울었어요..
사실 이글에 사이다는 없네요.. 쭉 써보고 나니..
아직 이야기의 끝은 아니지만..
자취를 시작하고 그 후로도 마치 제 스스로 집에대한 과거의 감정을 지울려는 듯이
오히려 사람을 많이 대하는 서비스 직종의 알바도 많이 하고
자취하고 1년은 학교니 알바니 하며 정신없이 지낸 거 같아요.
사실 사회 초년생이기도 하고 올바른 가정환경에서 자라진 못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다른 사람들과 정말 잘어울린다는 든지 하진 못해도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든 끼어있는 내 모습이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딱 1년 째가 되는 날 다시 한번 자취방에서 펑펑 울었던 거 같아요.
자취를 시작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 부터 남들이 웃고 얘기하고 떠들고
즐기는 감정을 저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요..
저는 울고 소리지르는 괴물도 아니였고
평범한 감정을 공유하고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아니였어요.
저도 아직은 남들처럼 하나하나 세심하게 감정을 바로 캐치하고 하기에는 둔하지만
평범히 기분좋은 일에는 기분 좋고 슬퍼하는 일에는 평범히 슬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가슴이 복차올랐고 눈물이 났어요.
할머니는 아직도 싫어요... 슬슬 독립해서 1년이 되어서 가족들을 돌이켜보니
아직도 그 과거는 지울 수 없고 돌이킬수도 없고 나에게 했던 비이상했던 점들을
나 스스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젠 넘어가고 싶었어요.
왜냐면 생각보다 나는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였고
너무나 성격이 완만히 좋은 사람이였고
나는 너무나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물론 그러고도 악몽을 종종 꿨어요.. 지금은 아주 뜸해지긴 했는 데
기억이 안나더라도 나스스로 욕을 하면서 내 욕에 놀래서 깨거나
그 안좋았던 과거들을 꿈을 꿨죠
할머니는 이제 용서할 수 없게 미웠지만 더이상 나의 현재에 가둬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나 나를 때렸던 아빠도..
그냥 그 상황을 묵인하고 꾹꾹 넘어갔던 엄마도..
그리고 이 글이 고구마인게 사실 자취를 시작하고 난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 전부터 30 전에는 꼭 자살해서 죽어야지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 때 쯤 엄마가 암에 걸려서 수술을 하게 됬어요.
보호자가 필요했는 데
할머니는 엄마도 싫어서 안편한거 같고 지도 올생각도 안한거 같지만
아빠는 마침 출장이 잡혔고
언니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남동생은 철딱서니 없었고 고등학생이였고
과거로 덮어 둔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가족에 대한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엄마가 암 수술을 한다는 데 너무나 슬픈 마음으로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제가 보호자가 됬어요.
입원수속을 밟고 병실이 정해지고 그날 밤 의사에게 불려가 보호자 동의서를 작성하고
아무도 연락오지도 아무도 방문하지도 않은 그 병실에서
저는 불편한 병실에서 쪽잠을 청하며 거의 밤을 새다 싶이 했고
다음날 암수술을 하기 위해 엄마를 수술실로 떠나보내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다들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다리고 있는 반면에 어린 나이의 여자애가 혼자
보호자로 왔냐며 수근 수근 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계속 눈물 흘리며 수술의 4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만 잘 수술 끝나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엄마를 용서하겠다고
엄마랑 잘지내 보겠다고 펑펑 울었던거 같아요.
그 후로 2틀 이라는 시간 동안에 엄마의 마취를 억지로 흔들어 깨우며
엄마의 대소변을 받고 어떻게든 무슨 말이든 하며 한 줄기의 밧줄 잡는 심정으로
억지로 엄마 앞에 웃으며 힘내라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어요.
앞으론... 나의 엄마로 대하겠다고 명심하며...
수술하다가 혹시라도 무슨일이 잘못 됬을 때 사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그 수술자 보호자 동의서에 내가 살인자인 마냥 작성했던 그 기분을 잊지 않겠다며..
다른 가족들은 뭐했냐면
할머니는 4일만에 겨우 집에 돌아가보니 어떤 모르는 할아버지 데리고 와서 데이트 하고 있었고
아빠는 출장은 끝났다던데 스크린 골프장에 있다 했고
언니는 저 대신 간호하러 가고
남동생은 별생각 없이 학교가고 지낸거 같아요
아빠는 여전히 보기 불편했지만 그 후로...
그래도 엄마가 아빠 죽으면 슬퍼하니까 라는 심정으로 억지로 억지로
얼굴 본거 같아요..
할머니는 이미 내 속에 암으로 존재해서 마침 할머니도 타 동네에 살기 시작하면서
종종 본집에 오긴 했지만 그 때마다 나는 5분도 채안되서 집에 나왔고
그렇게 엄마는 나의 엄마가 되어 웃으며... 언니는 타지에서 공부하게 되고
아빠나 남동생이나 둘중에 누가 엄마의 마음을 같이 이해해주겠어요.
그런 엄마의 상황에 불쌍한 마음을 가지며
나는 집에서 엄마를 위해 존재하는 광대인 마냥
또 내가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로 선택한 방법으로
너무나 지옥같았던 집이었지만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을 뒤로 집으로 돌아와
언제나 숨어서 뒤에 있었던 나의 모습과는 반대로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말하고 더 크게 농담하고
더 크게 리액션하고 그렇게... 엄마를 위해서 지냈던거 같아요..
또 나를 위해서..
그렇게 엄마를 위해 나의 성격과 반대로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농담하다보니
나를 아프게 했던 아빠도 한순간 한순간 소름끼치는 감정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없으면 엄마가 힘드니까..
둘이 같이 있기에는 마음이 너무 불편하지만 그렇게 엄마랑 다 같이 어울리기에는
무더졌던거 같아요.
뭐 어떻게 그 후로는 어떻게 살아왔는 지 모르겠네요..
딱히 아빠가 그러다 보니 남자랑 정말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도 별로 없는 거 같아요.
그냥 내 돈 벌고 알바도 하고 알바도 한 부수입에서
엄마 맛있는거 사주고 옷도 사주고 웃으며 장난도 많이 걸고
그냥 엄마의 기분 좋아하는 낙으로 살아온거 같아요..
남동생이 저를 무시하는 눈빛이 있긴 했지만 할머니만 없으면
이제 저의 중심으로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고 물론 나의 광대같은 모습이긴 했지만
아빠랑은 그냥 엄마를 거쳐서 이렇게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만족하며 지낸다고
해도 불만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 했는 데
그렇게 몇년이 흘렀는 데..
20대 후반이 된 지금 몇 번의 아빠의 예전같은 모습을 봤지만
이번에 또다시 아빠의 예전을 모습을 보게 되네요..
제가 집에서 큰소리로 웃고 호탕한듯이 얘기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불안한 마음을 아예 없앨 수는 없어요
그래서 사실 식탁에서 밥먹을 때도 구석진 자리에 앉아야 안심이 되는 데
맨날 제가 거기 앉았었는 데 남동생이 거기 앉아있는 거에요.
그래서 비켜라고 막 그랬는 데
아씌 !! 하면서 밥숟가락을 쾅 놓고 지 방으로 가버렸는 데
아빠가 이제는 예전처럼 씩씩 거리면서 때릴려고 하지는 않지만
니가 그냥 앉았으면 됬지 니때문에 밥안먹는다잖아 라고 화를 내는걸 보고
이 때까지 내가 집에 어떤 심정으로 웃고 했는 지...
모든게 산산 조각 나는 기분이네요.
별 일 아닌 일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밥숟가락을 그렇게 던져놓는 남동생 보고 화를 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렇게 까지 남동생이 밥숟가락을 던지고 갈만큼
제가 화를 내면서 비키라고 하다던가 억지로 계속 그런다던가 그런 느낌은 없었거든요
조금 조르는 거 같긴 해도 비키라고 몇번 말 안했어요..
그런데도 때리지는 않지만 표정싹 변하며 저에게 화를 내네요..
나는 충분히 변했다고 생각했는 데 내가 변했기 때문에
아빠도 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 데..
변하지 않나봐요.. 사람이란게..
아빠 엄마를 미워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미 늙어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 싫기도 하고
더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그냥 엄마만 한번씩 보며... 가족들이랑은 연을 끊을려고 해요.
......우리 가족은 불쌍해요..
이상한데 다들 이상한지 모르고 살았잖아요...
비이상적이였잖아요..
나는 변해서 다가가는 데 그런 나조차 잘라버리잖아요..
+ 지금은 최근에 알았지만 다른데 아파서 병원가서 씨티 찍다가 알았는 데
아빠한테 맞아서 수술한 머리 밑에 머리 뼈속에 커다란 혹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요.
꽤 커서 원래는 뇌졸증이 올만한 사이즈지만
너무 오래 되 보이고 이미 굳어버려서 머리를 굳이 개복할 필요는 없다고 해요.
다만 나중에라도 뇌졸증이 올 수 있으니 미리 알고 있으라고 하더라구요..
점점 커지지만 않는 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