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일 게시판만 들락거렸답니다.
모르실거에요.
님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앞으로 열심히 그리고 빨랑빨랑 연재할테니
함께해주세요.
2
다음날 밤벌레는 다른 벌레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않기로 했지만 배고픔은 참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결국 다른 벌레와 마주치게 되었다.
“반가워. 나는 밤벌레야. 너는?” 다른 벌레가 말했다.
“나도 밤벌레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나는 너랑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좋겠어.” 밤벌레가 말했다.
“막 떠는 게 무지 귀엽더라.”
- 귀엽다고? 키가 너 두 배는 되겠던데.
“아니야. 마음이 약한 것 같아. 겉으로 보이는 건 설정일거야.”
- 왜 콩깍지로 억지로 눈을 덮고 그래. 너 아직 젊어.
주리는 완강히 멀대의 귀여움을 부인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는 넌? 정우랑 잘 돼가?”
- 그 날 재미있게 논 것 같은데 어째 연락이 없다. 아무래도 선수인가봐. 내가 먼저 연락하는 건 자존심 상하고.
‘잘 생각했다. 주리야. 너만 마음 정리하면 여러 사람이 편해지는 거야.’
“오늘 멀대 만나기로 했는데.”
- 진짜야? 어째 속도가 빠르다. 잘됐다. 그래야 나도 정우랑 만나지. 다음엔 같이 만나자고 해. 알았지?
“만나서 연락하지 말라고 하게. 자꾸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니까 영 귀찮아. 준비 하고 나가야겠다.”
- 기집애 좋다고 할 때는 언제구? 끝내기는 뭘 끝내? 내 얘기나 잘 해줘.
“늦었다. 끊을께.”
‘어림없는 소리하고 있네. 너랑 바람이 만나는 꼴은 못 본다고. 그나저나 뭘 입지?’
두어시간 꽃단장을 하고 멀대의 동네로 향했다.
정리하는 것이 마음 아프기는 했지만 더 정들기 전에 헤어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멀대를 만나서는 웃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고 나갔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웃음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름대로 신경을 썼던지 머리를 뒤로 전부 넘긴 멀대는 너무나 웃겼다.
“내가 그렇게 좋아? 너무 좋아하네.”
“처음 보는 머리 스타일이네.”
“힘 좀 줬지. 멋지지?”
‘힘을 줘도 좀 과다하게 줬다.’
“키가 더 커 보여서 안 좋아. 난 작은데.”
“그래? 다음에 하지 말까?”
‘우리에게 다음이 있을까?’
올빽맨 멀대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며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 폼이 마치 삐끼 같아 싸늘 컨셉은 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카페로 가는 길에 텔레비전에서 류시원이 나오는 프로그햄을 보게 되었다.
“나 류시원 굉장히 좋아하는데. 예전에 가수로 나왔을 때도 좋아했었어.”
“류시원이 가수?”
“응. 노래했었어. 몰랐구나.”
“말도 안돼. 류시원이 가수면 차태현도 가수냐?”
“차태현도 노래하잖아.”
세상물정 모르는 멀대였다.
“차태현은 본 것도 같은데. 아무튼 류시원은 아니야.”
“너 내기 할래?”
“무슨 내기?”
멀대는 내기라는 말에 눈을 반짝거렸다.
“소원하나 들어주기.”
“그래. 좋아.”
소원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말 것을 말할 생각이었다.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시 후 멀대는 정우에게 욕만 먹고 전화를 끊어야했다.
“언제 노래를 했대? 소원이 뭐야?”
“밥 먹고 말해줄게.”
식전에 말하기는 나에게도 멀대에게도 너무 잔인한 일 같았다.
밥을 다 먹고 카페를 나온 후에도 소원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은 소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원은 주리와 바람이 만나지 않는 것뿐이었다.
“뭔데 말을 못해? 사람 불안하게. 가기 전에는 말해줄 거야?”
“지금 말할게. 실은 소원이라는 게 내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게 무슨 소원이야?”
“아무튼 그게 말이야···.”
그렇게 머뭇거리며 말을 못하고 있던 때였다.
갑자기 현기증 비슷한 것이 느껴지며 어지러웠다.
[저기...봐.... 저기....]
화순이 언니였다.
뭘 보라는 거야?
[저... 남자... 저 남자, 쫓아가... 어서....]
“잠깐만”
멀대에게 말하고는 낯선 남자를 쫓아 뛰어갔다.
“저기여. 아저씨”
뒤돌아본 남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내가 봐도 참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러나 의리가 없고 간사해 보였다.
“화순이 언니 알아요?”
“누구?”
“정화순이요. 5년전쯤 만난”
“글쎄. 그런데 그건 왜?”
“왜 당신이 아직도 살아있는지 언니가 모르겠대요. 죽었는지 알았는데 왜 살아 있는지”
남자의 얼굴은 조금 굳어졌다. 남자는 그제야 언니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너는 그 여자를 어떻게 아니?”
“아, 아는 언니에요.”
“음. 그래. 더 이상 할 말 없다면 가 봐도 될까?”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한테도 전해졌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남자는 이미 뒤돌아 서 성큼성큼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언니 뭐라고 말을 해봐]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큰 분노의 감정만이 전달되고 있었다.
[무서워. 언니 왜 그래?]
분노의 감정은 곧 살기로 바뀌었다.
고정된 채로 떨어지는 종이를 자를만한 날카로운 칼은 근처에만 있어도 무서운 법.
언니의 살기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의 몸이 반응을 했다.
한겨울에 찬 얼음물을 끼얹은 채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그 남자와 나와의 대화를 듣지 않고 멀찍이 듣고 있던 멀대가 말했다.
난 대답도 할 수 없어 간신히 고개만 저었다.
“그럼 날 옆에 두고 다른 놈한테 반해서 헌팅한 거냐?”
하지만 곧 멀대도 농담할 때가 아닌 걸 안 모양이다.
눈치도 빠른 멀대.
“너 왜 이렇게 떨어? 추워?”
“응. 아주 많이. 나 집에 갈께.”
“갑자기 왜 그래?”
집에 가고 싶은데 한걸음도 내 힘으로 걸을 수가 없다.
“부축해줄까?”
“응.”
아예 멀대에게 몸을 맡겨버렸다.
‘몸이 길다란 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길다란 사람 만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어.’
“집에 데려다줄게. 가자.”
그렇게 이상한 이름의 남자애가 두 번이나 집에 데려다 주게 되었다.
아까 너무 매몰차게 한 것이 너무 미안한 걸.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멀대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너무 춥고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품안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그 순간에도 멀대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라는 변명을 해댔다.
“괜찮아? 좀만 가면돼. 병원으로 가야 되는 거 아니야?”
‘믿음직스러운데 자상하기까지 하네. 아깝다.’
고개를 저으며 멀대의 품에 더 꼭 안겼다.
그런데 처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그 날도 멀대는 이렇게 나를 안아줬을까?
‘나중에 10만원 줄게. 꼭.’
2-2
집에 돌아와서 2시간이 지났을까.
휴식을 취하고 몸이 좀 편해지니 화순언니의 일이 궁금해졌다.
언니와 대화하는 게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
“응. 일어났네. 좀 괜찮아 졌니?”
“촛불이랑 정한수 한사발 그리고 술 좀 준비해줘요.”
“술?”
보통의 일이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아서인지 이모도 좀 놀라는 눈치다.
“네가 술이 필요하다면 큰 일인가본데 큰 도사님을 부르는 건 어떨까? 수암선생이라고 안그래도 너한테 소개시켜 줄 분 있는데.”
“아니, 이건 혼자 해결 해야 될 일이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별 일은 없을테니.”
엄마와의 나이 차이 보다 나와의 나이 차이가 더 적은 이모는 나에게 언니와 같았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를 엄마삼아 이모를 언니삼아 살게 되었다.
철없는 이모와는 달리 의젓한 모습만을 보이며 살았기에 이모를 걱정시키고 싶진 않았지만 혼자 해결하고 싶었다.
준비가 되자 정신집중을 하고 화순언니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언니 아까 그 남자 누구야?]
[......]
[화순이 언니. 울고 있는 거야?]
아까의 살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쉽게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언니도 진정할 시간이 필요할테지. 많이 놀라기도 했으니. 기다려야하나?’
“이모 나 술 좀 줘요.”
이모도 걱정스러워했지만 왠지 시간이 내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아까 그 남자 누구야?]
[내가... 내가 사랑한 사람]
역시 한결 편했다.
목소리에서 아직도 남자에게 미련이 남아있음이 전해진다.
[왜 그렇게 놀란 거야?]
[그 사람.... 죽었다고 했는데..... 살아있어]
[사랑한 사람이 살아있다면 좋은 일이잖아.]
[거짓말했어....죽었다고..... 그냥 싫다고 하면 될걸..... 아까 알았어..... 나랑 헤어지려고 거짓말한거......]
나쁜 자식.
그런 거였군.
역시 아까 도망치듯 가는 꼴이 이상했어.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다.
남을 속이며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루에도 20번씩 듣게 된다.
[그럼 언니가 죽은 것도 그 사람 죽은 게 슬퍼서야?]
[나 그 사람이랑.... 같이 갈래..... 혼자는 싫어.....]
[언니 그건 안돼. 그 사람 아직 이 세상 사람이잖아.]
[싫어..... 같이... 갈래....]
[언니 그냥 잊고 가. 내가 편한 데로 보내줄게.]
혼자 가기 싫다고 하는 언니를 말리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 자식 뭐가 좋다고 따라 죽은 거야? 불쌍한 언니.’
[나.... 혼자는 안가. 절대로... 절대로....]
아까 느꼈던 살기보다 몇 배나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너무나 무서워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온 몸이 떨렸다.
[꼭 데리고 가겠어]
마지막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깨어보니 이모가 여지껏 옆에서 간호를 했던 모양이었다.
“몇시야?”
“너 하루종일 잤어. 지금 아침이야.”
몸이 한결 개운했다.
한기도 느껴지지 않고 편안했다.
‘뭔가 이상한데.’
“언니가 없어! 언니가 없다구!”
5년동안 함께해 온 화순언니의 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그 남자한테 복수하러 갔겠지.”
내 생각도 이모의 생각과 같았다.
‘혼자 가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까 그럴 확률이 제일 크겠지. 그렇다면 큰 일인데. 그 남자를 찾아야 할텐데. 그런데 어디서? 이럴 줄 알았다면 이름이라도 물어 보는 건데.’
“이모 나 좀 나갔다 올게.”
“그런 몸으로 어딜 나가? 그 사람 어디 사는지는 알아?”
“몰라.”
“그럼 잡귀한테라도 물어보는 건 어때?”
‘그래야 하는 걸까?’
“아니야. 하급 잡귀들 꼬이는 것도 문제고. 장난치려는 잡귀들 모이면 시간만 더 버릴 거야. 일단은 그 동네로 가봐야겠어.”
“같이 갈까?”
“아니. 부탁할만한 친구가 있어. 다녀 올께.”
“그래. 알았다. 대신 조심해야 돼. 그리고 네가 막을 수 없는 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둘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잊지 마라.”
‘이모도 철이 드는가보네.’
나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 남자가 뿌린 걸 이제야 거두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화순언니는 만나보고 싶었다.
멀대의 동네로 가는 택시를 급히 잡아타고 멀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혜림이. 너 내가 어제 본 그 남자 혹시 아니?”
“아니.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 같기는 해. 왜 그런 거야? 어제도 말 안해주고.”
“나 그 사람 꼭 만나야 돼. 네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초지종을 대략 설명했다.
택시 아저씨가 날 힐끔 쳐다본다.
아침부터 저런 여자를 태웠나 재수없게 하는 눈빛이었다.
예전같으면 아저씨가 뜨끔해 할만한 과거 얘기 하나 해주면서 고소해했을텐데.
아무런 능력이 없으니 그냥 그런 눈빛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멀대만 나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바람과 멀대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들 세명이 더 나와 있었다.
‘친구 덕을 보며 사는 인생답게 친구가 많은가봐.’
모두 급하게 나왔는지 슬리퍼에 편한 옷차림들이였고 바람은 내 쪽은 아예 쳐다보지 않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해댔다.
“몸은 좀 괜찮아? 얼굴이 말이 아니야.”
‘얼굴이 까칠해도 이쁘다고 생각하고 있지? 네 얼굴에 써있구나.’
“괜찮아졌어. 친구들?”
멀대의 뒤편으로 서있는 친구들을 바라봤다.
“응. 아무래도 나 혼자는 힘들 것 같아서 친구들 좀 불렀어.”
“고마워.”
멀대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나름대로 표한다고 눈인사를 하는데 바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직 내가 실수한 거 사과할 시간도 없었지. 그래도 그렇지. 싫어하는 눈빛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보이다니. 쪼잔한 놈.’
저런 눈빛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했기에 견딜 만 했다.
“혜림이 일로 불러낸 거야? 급한 일이라더니. 난 집에 가서 잠이나 더 잘래.”
바람이 말했다.
“너 혜림이 안 좋아하는 거 알아. 이거 혜림이가 너한테 부탁하는 거 아니야. 내가 친구로서 너한테 부탁하는 거라고. 그렇게 알고 잔 말 하지마.”
멀대가 인상을 썼다.
‘인상 쓴 표정은 처음이네. 오호, 나름대로 먹어주는데.’
“혜림아 너는 어차피 그 사람 집도 모르고 이 동네도 모르니까 잠깐 어디 들어가 있어. 찾으면 연락줄께.”
“아니야. 나도...”
“일단 기다려봐. 내가 꼭 찾아줄게.”
아까의 바람처럼 나도 더 이상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왠지 멀대가 꼭 찾아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멀대와 친구들이 가고 나만 혼자 남게 되자 막막함과 허전함이 갑자기 몰려왔다.
‘이상한 능력 내게는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줄곧 했었는데 막상 부러워하던 보통 사람이 되고 보니 참 막막하네. 벌써 익숙해진 걸까?’
이젠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참 허전했다.
주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나 씩씩한 주리.
나의 목소리에 그런 감정들이 묻어 있었을까.
주리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만나자고 했다.
의리없이 남자를 먼저 찾았다는 말과 함께.
그러저럭 혼자의 시간을 PC방에서 때워가고 있을 때쯤 핸드폰이 울렸다.
주리가 벌써 왔나?
멀대였다.
“야! 찾았어. 지금 전화 연락했는데 이쪽으로 나온대. 빨리 와!”
‘생각보다 빨리 찾았네. 정말 다행이다. 언니는 정말 그 남자한테 간 걸까?’
허겁지겁 가방을 둘러메고 PC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