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일기에도 적지 못한, 생각만 해오던 이 글을
술의 힘을 빌려서 적으려고 해.
너는 판이라는 것 자체도 모를 뿐더러 SNS도 잘 하지 않아서
이 글을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사실 보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여기서 끄적이는 이 글은 그저 내 생각이고, 내 미련이고, 내 후회이니까.
우리는 오랜 시간을 친구로써 함께 지냈고 짧은 시간을 연인으로써 함께 했지.
내가 너와의 친구 사이를 포기하고 너와의 연애를 선택한 이유는
난 그 때 다른 사람 때문에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넌 그 때 내 손을 잡아줬으니까.
내가 너와 긴 시간을 지내면서 한번도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나는 나와 웃음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 좋았고, 나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좋았고,
남들에겐 깔끔해보이는 나지만 사실 너무 부족한 내 모습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좋았어.
넌 항상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고, 연애를 하는 너의 모습도 기대가 되었으니까,
친구 그 이상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너와의 연애를 선택했어.
나는 항상 즐거웠고 항상 행복했어.
낮에 만나서 저녁에 들어갈 때면 늘 지쳐서 들어갔던 기억이 나.
너랑 있으면 웃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나에게 늘 좋은 말로 나를 받쳐주던 너는 나에게 정말 큰 존재였어.
무엇보다 너에게서 내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그래서 네가 너무 좋았어.
너와 헤어지고 난 뒤 일주일은 동네 어디도 다니질 못했어.
동네 어딜가도 나와 함께 다니고 웃었던 네가 보였거든.
자꾸 네가 보여서 지칠 정도로 울고 다녔었거든.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길에서도, 걸어서 잠깐 커피사러 가는 그 길에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흘리고 다녔다는 걸 너는 알까.
진짜 개같은게, 10분만 걸어가면 늘 보던 네 집 앞인데 그 거리를 아직도 가지 못하겠어.
오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중에 서로의 연애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너의 이야기를 조금 떠들었어.
문득 얘기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니
나는 너와의 관계가 끝이 났어도 아직 친구들에게 네 자랑을 하고 있더라.
생각을 안하려고 하는데도 자꾸 좋았던 기억이 나서 나도 모르게 네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더라.
그제야 새삼 다시 깨닫게 되더라.
나는 아직 너를 좋아하는구나.
네가 우리의 관계를 끝이라고 정의했을 때
나는 왜 그냥 네가 하고싶은데로 하자고 했을까.
나는 왜 너의 의견을 존중만 했을까.
나는 왜 아직 너를 놓지 못한다고 하지 못했을까.
너와 지냈던 그 짧은 시간이 너무 좋았던 탓일까,
마지막에 내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치지 못했던 탓일까,
나는 우리의 연애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어.
나는 아직 너를 좋아해.
이제서야, 그 것도 네가 보지 못할 이 글에서라도 내 감정에 솔직하고 싶어.
너는 우리 사이를 정리했겠지만 나는 아직 네가 준 인형 하나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어.
너랑 찍었던 사진들, 다 지웠다고 했지만 사실 한장도 못 지우고 내 앨범에 남아있어.
얼마 끼고 다니지 못했던, 이제는 더 이상 낄 수 없는 그 반지를 나는 매일 들고다녀.
언젠가 너와 마주치는 그 순간에 네 손에 그 반지를 쥐어주는 상상을 해.
그럼 난 뒤돌아가는 길에 또 다시 울고 있겠지.
그 때가 되어서는 나도 끝이 날 수 있을까.
넌 어떨까.
넌 후련해할까. 자유롭다고 느낄까.
내가 자신의 기준이고 점이고 선이자 배경이며
또 다른 모든 것이라고 했던 그 날이 너는 기억이나 날까.
난 네가 더 힘들었으면 좋겠어.
살아가는 일상 속 자신만을 위해 응원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어.
이젠 공원을 걸으며 날씨 좋은 날 놀러가자는 약속도
술에 취해 정신 못 차릴 때 옆에서 타박하며 걱정할 일도
미래를 생각하며 서로를 안심시킬 일도
아무것도 이젠 못하겠지.
난 우리의 추억이, 또한 기억이 예쁘게 소중하게 남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둘 다 서로를 잊어갈 때쯤 불현듯 생각 나서
서로에게 후회가 되는 추억이고 기억이었으면 좋겠어.
너는 그 때 왜 손을 놓았을까 후회하고,
나는 놓는 그 손을 왜 다시 잡으려하지 않았을까 후회했으면 해.
그리고 그 후회가 계속 되어 미련이 되면,
그래서 우리가 늘 그랬던 것 처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그 후회와 미련을 이유로 서로를 마주했으면 좋겠어.
하루는, 책상정리를 하다가 너에게 쓰려고 연습처럼 써봤던 편지를 찾았어.
그 편지 속 나는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
너를 뭐라고 부를까, 쓰다 지우다 고민한 흔적도
나를 뭐라고 적을까, 적은 글씨 위에 덮어 쓴 흔적도
늘 그렇듯이 우리의 장난끼 많던 농담들도
너무 행복해보여서 나는 또 그 편지를 보고 한참을 서있었어.
그리고 마지막엔,
너를 사랑했던 소소한 이유들과 참고 참던 나를 결국 울게 만든,
그리고 지금도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적혀 있었어.
이 말을 끝으로 이만 말 줄일게.
매일매일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줘서 고마웠어.
P.S.
네가 이 글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아.
그치만 만약에, 네가 이 글을 본다면
왜 이런 글을 썼냐고 화를 내도 좋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욕을 해도 좋으니까
먼저 연락해줬으면 해.
나는 지금처럼 기약없이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