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인 성격 탓에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다보니 그 나이가 되도록 연애 한 번을 못해봤었다. 20살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 내 번호를 받아간 남자와 2주 정도 연락하고 몇 번 만나다가 통보 없는 연락두절을 당한 뒤로 연애가 겁이 나기도 했다. 눈에 띄게 예뻐 번호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면 몰라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라 외모를 보고 다가온 사람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나에게서 여자친구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 가뭄에 콩 나듯 나에게 번호를 묻는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만 말해왔다. 그렇게 대학 시절을 보내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사람들과 만날 일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애를 생각하지 않았다.
26살 여름, 첫 직장을 가졌다. 내 인생 첫 직장은 직원이 대표자를 포함해 3명뿐인 작은 곳이었다. 그곳에 출근한지 2개월쯤 되었을 때 같은 협회 소속 기관들의 직원 모임이 있어 인사를 할 겸 참석했었다. 20명 남짓 모인 자리에는 여자가 대부분, 그 중 20대 여자는 나를 포함해 4~5명 정도였던 것 같다.
모임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모르는 이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자신을 어디 소속 누구라고 소개했다. 나를 어떻게 아냐고 물으니 그 모임에서 보았다며 자신을 모르겠냐고 되묻는다. 나는 그곳에 있는 몇몇 기관 대표님들, 그리고 또래 같아 보이는 직원들과만 인사를 나누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사람이 없는데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는지 물으니 사실 모임 열흘 전 있었던 교육 장소에서 봤는데 연락처를 물어보지 못했고 그 뒤 모임에서 참석자 명단에 함께 적는 연락처를 저장해두었다고 하였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기분이 묘했다. 나는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데 상대방은 나를 두 번이나 보고 내 얼굴을 알고 있다. 연락처를 나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 편법으로 알아내어 연락을 했다. 그 사람은 친해지고 싶어 연락을 하게 되었다며 불편하냐고 물었다. 불편해야 맞는 상황일 테지만, 나는 첫 사회생활에서 여러 사람을 알아두어야 했고,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이 고마울 정도의 성격이라 괜찮다고, 오히려 신참이라 먼저 인사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얼굴보고 친해질 겸 밥 한번 먹잔다. 알겠다고 하였고 며칠 뒤 만났다.
당연히 어색했다. 만나는 것부터가 나는 상대방을 모르고 상대방만 나를 알아보는 상태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친해지기 전까지는 말을 적게 하는 성격이지만 사회생활에서 그러면 안될 것 같아 많은 말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첫 만남을 끝냈다.
그 뒤 연락에서 그 사람은 사실 내가 마음에 들어 연락한 것이라고 하였다. 교육이나 모임 때 내가 뭘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뭐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냐고 하니 차분하게 앉아서 작게 웃는 모습이 착해보였단다.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자신의 감이 틀지 않았다고 한다. 괜찮으면 나와 만나보고 싶단다.
그 당시에도 나의 연애에 대한 자신감은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연애를 겁내는 것은 내 미래를 생각해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많이 노력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첫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연락처를 몰래 알아냈다는 것이 걸리긴 했지만 직접 물어보기 부끄러웠다고 하니 이해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실 문제 된 것은 나이었다. 남자친구는 자신을 32살이라고 이야기하였다. 혹시 나이가 많아 싫으냐고 묻긴 했는데 나는 내 나이도 적은 편이 아니고 나이 차이나는 연애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괜찮다고 하였다. 사귄지 얼마 지나고야 알았지만 남자친구는 나에게 나이를 한 살 낮춰 말하였다. 어떻게 된거냐 하니 서류상 실수라고 둘러댄다. 사실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정황에 근거해 눈치 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것에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나를 좋다고 할 때마다 고맙다고 답해주었다. 나를 좋아해주는 만큼 나도 상대방에게 이해와 믿음으로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신뢰는 여러 차례에 걸쳐 깨지고 말았다.
사귀기로 했을 때 나는 남자친구에게 담배 피우는 사람이 제일 싫으니 절대 그러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남자친구는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걱정 말라고 하였다.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약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입고 있던 집업 자켓을 벗어 주었다. 자켓으로 머리를 덮고 내 차(남자친구는 차가 없어 만날 때 항상 내 차를 이용했다.)로 가 탔다. 남자친구가 운전을 하는 동안 옆에 앉아 자켓을 손에 쥐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뭔가 느껴졌다. 설마 하는 생각에 남자친구 몰래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담배였다. 3개비가 비워진. 내가 담배를 꺼내는 것을 보고는 남자친구가 당황해했다. 변명을 시작했다. 직장 대표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니 내가 이렇게 상대방을 몰아붙여도 되나 싶었다. 주머니를 뒤져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목캔디를 먹겠다며 집에 가는 길에 사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헤어지고 집에 도착해서 내가 목캔디를 샀는지 물으니 샀다며 지금도 먹었단다. 사진을 보내보라고 하니 보내주었다. 그런데 사진이 이상하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의심이 갔다. 내 의심은 금방 밝혀졌다. 검색창에 목캔디를 검색하니 그 사진이 바로 나왔다. 이걸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말하기로 했다. 의심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남자친구도 미안하다고 했다.
이런 일 말고도 내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말한 일을 남자친구는 그러겠다고 말해놓고 바로 잊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결혼에 대한 언급을 간혹 했다. 흘리는 말처럼 자신의 재산을 이야기하기도 했고,(사실 자랑할 만한 재산은 아닌 것이 우리 집 형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길에서 예쁜 집을 보면 저런 집에 살게 해주겠다고 하는 등 대답을 못하게 하는 말을 하였다. 나중에 나는 아직 결혼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 그런 언급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간혹 입에서 나오나 보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으로 스킨십...... 그는 나를 만나고 헤어질 때면 어김없이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나를 만졌다. 위를 만지길래 위를 막으면 아래로 손을 옮겼다. 완력 때문에 완전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막아 그 이상은 그도 하지 못했고 내가 고개를 돌리면 끝내었다. 헤어지고 나서 카톡으로 그러는 거 싫다고 하지 말아달라고 하면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고민하고 싫음을 이야기했는데 받아들여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나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눈을 본다. 남자친구와 대화할 때도 나는 남자친구의 눈을 보았다. 얼마 후에 놀러가서 마주보는 컨셉으로 사진을 찍는데 남자친구가 나와 눈 마주치니 상당히 민망한 듯한 표정을 하였다. 그리고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 때 알았다. 그는 나와 만나고 대화하는 동안 내 눈을 보지 않았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 가거나 입장료를 내는 곳에 가면 나도 어느 정도는 부담을 했다. 식사를 내가 계산할 때도 많았고, 식사를 남자친구가 사면 카페는 내가 선수쳐서 계산하는 식으로. 가끔은 저녁식사 이후 시간에 만날 때 아예 대놓고 먹을 것을 사달라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도 별 생각 없이 사주었기 때문에 나는 데이트 비용에 대해서 남자친구에게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헤어지기 며칠 전에 저녁 식사를 함께 했었다. 내가 추천하는 레스토랑에 데려간 것이라 얼마가 나오든 당연히 내가 계산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세트 메뉴로 메뉴 선정도 내가 했다. 식사 내내 남자 친구가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기는 했다. 메뉴판을 보고부터 그런 것을 보니 가격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상황에 계산 이야기를 꺼내면 실례인 것 같아 그냥 두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는데 평소에는 그러지 않던 남자친구가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바로 화장실로 가버렸다.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내가 계산할 것이었기 때문에 카운터로 갔다. 내 카드를 종업원께 주었는데 정지된 카드란다. 당황해서는 계속 시도해달라고 했는데 소용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로 발급받은 카드 때문에 기존 카드가 정지된 것이었다. 그때는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그러고 있는데 그제서야 화장실에 있던 남자친구가 나왔다. 무슨 문제냐고 하더니 이야기를 듣고 제 카드를 내민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계속해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내가 사려고 했는데...왜 카드가 정지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말하기는 하는데 그의 표정과 화장실로 가버린 행동에서 그의 생각이 느껴졌다. 그날의 저녁식사는 대체로 꽝이었다.
사귀는 동안은 간절기여서 내가 감기에 자주 걸렸다. 내가 감기 몸살로 아파서 집에 누워만 했다고 하면 그는 카톡으로 아프지 말라고 답을 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나도 지금 병원이야.’ 또는 ‘나도 지금 병원에 가고 있어.’ 나는 왜 그러냐, 어디 아프냐를 물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말. ‘어머니(아버지) 다리 아프시다고 해서.’ 김이 빠졌다. 그렇게 내 아픔에 대한 대화는 끝이 났다. 헤어짐을 고민하던 때에도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그날 퇴근하고 만나기로 한 것을 취소했다. 많이 아프지 않아 생활에 지장이 없었지만 헤어짐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루종일 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가 오후에야 아파서 집에 가야겠으니 못 만나겠다고 하자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럼 언제 만나?’ 그러고 나서 3분 정도 뒤에야 ‘많이 아파?’ 그에게는 내가 아픈 것 보다 만나지 못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나는 그날 이 연애는 끝이라고 결정지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남자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에서 시작했고 많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단점 발견에 지쳐 좋아하는 감정이 전혀 들지 않는 상황에까지 달았다. 분명한 것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에 결혼할 여자가 필요했고 욕정을 해소할 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결혼 상대 여자를 만나고 싶었지 나와 연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끝내기로 하고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문자메시지로 통보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만남의 의미가 없기에 그렇게 했다. 간단하게 그만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헤어지는 게 맞다고 판단한 이유도 밝혔다. 70일정도. 실질적으로는 2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연애는 이렇게 끝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나에게 전화와 문자를 수십 차례 보냈다. 추운 날씨에 산책을 했던 공원에서 나올 때 까지 기다리겠다며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는 둥, 내일도 나오겠다는 둥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다. 처음엔 협박 비슷하게도 했다. 술에 감기약을 타서 죽어버리겠다고도 하고 사랑이 장난같냐고 화를 내는 문자도 보냈다. 그는 내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만나는 날 밖에 있길래 추운데 왜 그러고 있냐고 걱정을 해주던 나에게서 자신이 그렇게 문자를 보내면 안쓰러워서라도 내가 헤어짐을 무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연락이 왔고 나는 무시했다. 헤어짐을 통보한 게 12월인데 12월 말에는 마지막 인사를 하겠다고 만나자는 문자가 왔다. 당연히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해가 넘고도 가끔 만나자느니 어디냐느니 하는 문자가 오고 전화도 계속 되자 안되겠다 싶어 번호 차단을 했다. 차단을 한 게 2월 초. 이후엔 아무 생각 없이 후련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통화기록을 보다가 기겁을 했다. 4월 중순까지 1~2주일에 한번 꼴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왜 그럴까....ㄷㄷㄷ
지금은 내가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상태라 교육이나 직원 모임을 통해서 그를 만날 일은 없다지만 헤어지고 그렇게 연락이 오던 때에는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나의 직장도 집도 알고 있는 그가 혹시나 찾아오지는 않을까 해서... 직장은 차를 주차하는 곳이 환하지 않은 골목 이라 퇴근할 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려하던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다시 또 연애 기회가 오면 내가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시 그 협회 소속 직장에 취직하는 것도 당분간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