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다 쓰는게 처음이라 가독성이 없더라도 양해 부탁 드립니다.
저는 충북 옥천소재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동정을 얻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사과받지도 않을 겁니다.
왜 이제와서 지랄하냐고 묻는다면 느그는 왜 그 때 그 나한테 세상 그리도 지랄 했냐고 반문하겠습니다.
내 인생 망친 인간들 한 번 나같은 기분 십분이라도 느껴보길 바라기에.
(참고로 뒤늦게 공부 시작해서 나름 만족할 만한 직장도 다니고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해왔구요^^)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지냈던 이야기>
#2002년~2003년 / 5학년
때는 초등학교 5학년이였다. 나는 조금 키가 작고 뚱뚱한 체형에 키도 작고 순박한 시골사람이었다. 점심시간 밥을 먹기 위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떤 친구와 둘이 급식소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날라차기가 날라왔다. 손에는 식판과 된장국을 들고 있었고 그대로 된장국은 앞에 서있는 여자아이에게 엎어졌고 급기야 그 여자아이는 울고불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날라차기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도망가고 없었고 나는 그때부터 학교에서 알아주는 왕따가 되었다.
내 초등학교 재학 6년 동안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대부분 기억이 지워져있다.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미쳐버리지 않게 기억을 지워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5학년과 6학년의 괴로웠던 상황들은 지금 재연해보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다.
5학년을 얻어 터지고 빵셔틀을 하면서 6학년이 되었다. 그 당시만해도 왕따를 당하면 담임선생이나 학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촌지가 암암리에 묵인되던 시절이었기에 나의 어머니는 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고 그 당시 6학년 담임에게 찾아가 봉투를 건냈던 기억이 난다. 거절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6학년 당시에 나를 주로 괴롭히던 사람이 있었는데 곽x동 이라는 사람이었다. 당시 WWE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해골무늬, FU** YOU 나 쀍이 프린팅 되어있는 티셔츠를 대부분 입고 다녔던게 기억이 난다. 여튼, 그 곽x동 이라는 사람은 나에게 매일 그 레스링 기술을 걸고 주먹으로 가슴이나 얼굴을 때리고 정강이를 차고 그랬다. 그리고 아버지가 경찰이였는데 아버지한테 듣고 따라했던 건지, 아침에 학교를 등교하면 나를 때리고 나서 "니네 아빠 어제 하수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매? 엄마는 칼에 찔려 죽었다매?" 이런 폐륜아적인 발언들을 했고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지만 체격차이가 너무 나서 용기가 나질않아 반항 한 번 못해보고 당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급우들은 전부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봤던게 기억나고 대부분 나를 똑같이 괴롭혔고 누군가가 나를 도둑으로 몰았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담임선생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던게 기억이 난다.(오해할까봐 그러는데 그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였던 걸로 기억한다.)
#2004년~2006년 / 중학교 입학과 졸업
2층에 있던 1학년 x반. 집에서 걸어서 25분. 3월은 꽤 쌀쌀했던 걸로 기억한다. 없는 형편에 엄마가 쌈짓돈을 모아서 대전 지하상가를 데려가서 패딩을 사줬었다. 당시에 거금 10만원돈을 주고 검은색 패딩. 뭔지도 모르고 그 옷을 입고간게 나의 잘못이었다. 그 옷을 입고 등교를 하니 갑자기 학교 1진이었던 김x훈이 나한테 와서 옷을 달라고 했다. 그게 뭐라고. "니가 감히 노스페이스를 입어? 싸가지 없는 새끼"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노스페이스, 당시 좀 잘나간다는 애들이 다 입고 다니던 옷. 내 옷은 조잡한 짝퉁이었지만 상관이 없어보였다. 그냥 내가 입고 있는게 불만이었던 것 같다. 옷을 뺏기고 벌벌 떨면서 집에 돌아가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 또, 하x용 이라는 사람은 정말 악질적으로 나를 초단위로 괴롭혔다. 의자에 앉기가 무서울 정도로 나를 괴롭혔으며, 매일 돈을 상납하게 하고 일정액수를 못채우면 나에게 기합을 주고 때리고 지랄발광을 하는 싸이코패스 새끼였다. 가끔은 집까지 따라와서 집에있는 물건을 가져가기도 했다. 게임 캐릭터를 키우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밥도 못먹게 하고 아주 악질적으로 괴롭혔다. 김x용이라는 사람은 지금 개명을 해서 김민x으로 살아가고 있다. 임마도 어지간한 싸이코인데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위협을 하고 자기 기분이 좀 안좋은 날이면 불러놓고 사정없이 패던 놈이었다.
아침에 등교하면 반은 몇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수업 열심히 듣는 모범생, 공부고 뭐고 잠만 자고 쉬는 시간에 잠깐 일어나서 동전으로 판치기 하는 애들(주로 일진), 그리고 왕따. 왕따는 나 혼자였다.
쉬는 시간은 학교 1층 중앙에 있는 매점으로 달려가서 1진들의 빵을 사오는게 나의 일상이었다. 곁들여 일진이 아닌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가끔 빵을 사오라고 시켰다. 그래도 걔네들은 돈을 주기에 얼마나 고맙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이 다난다.
담임 선생님은 부임한지 몇년 안된 신임 여선생님이였는데 마음이 여려서 그랬는지 학생들을 컨트롤을 못했다. 수업시간만 되면 수업진행이 안될정도로 악질적으로 선생님을 괴롭혔다. 수업 도중에 이상한 소리를 낸다던지, 테니스공을 던진다던지... 결국 휴직하고 학교에서 보이시지 않게 되었다. 나도 이부분에서 너무나 후회되고 힘든게 1진들이 시켜서 거기에 동참했었다는 사실이다. 내 잘못이다 적어도 남에게는 피해를 줬으면 안됬는데.
매일 누군지도 기억이 안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쉬는 시간만 되면 얻어 터지면서 그렇게 1년이 지나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이 때가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다. 학교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내 적이 되었었다. 그리고 학교를 잘 안나가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파마머리를 한 영어선생이 나를 밀실같은 빛이 안드는 방으로 불러서 정강이를 계속 차고 쌍욕을 하면서 나같은 새끼는 죽어도 싸다고 그러던게 정확히 기억난다. 1진들이 때리는게 무서워 수업을 안들어가고 밖에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니 갑자기 어떤 아이랑 나를 싸움을 붙혔다. 지면 죽인다고 그러기에 죽기살기로 싸워서 이겼는데 그 걸 가지고 선생이 나를 팬것이다. 그렇게 선생이라고 부르기 싫은 인간들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고, 분명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고 힘들다고 피력을 했음에도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을 입으로만 하는게 너무나 역겨워서 학교도 잘 안나가게 되었다.
똑같은 생활은 반복되었고 신이 없다고 느낀게 이 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집은 또 어떤 이유로 많이 기울게 되었다. 밤마다 혼자 겉돌고 가있을 곳은 없고... 매일 독서실 가있는다고 거짓말 하고 정자나 초등학교 계단에 앉아서 라디오를 들었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은 버텼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성적은 인문고는 쳐다도 못보고 상고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성적이 되었다. 1진들이 매번 내 책을 딱지치기 해서 없애버리거나 밖에 버려서 3년 내내 책없이 살았다. 중3담임 강경x 선생은 나를 완전 쓰레기 취급했고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들마다 나를 복도 밖에 있으라고 했고, 어느과목은 수행평가를 해가면 내 수행평가는 받지도 않았고 심지어 무슨 시험이 60점인가 나왔는데 컨닝했다며 따로 교무실을 불러서 솔직히 말하라던 선생도 있었다. 인생이 바닥이었다.
티비에 가끔 나오는 극악무도한 학교폭력이 나한테는 별 거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더 심하게 당했었다.
그래서 아파트 옥상도 올라가보고 손목에 커터칼도 대보기도 했다. 그래도 용기가 안나서 주먹으로 내 머리를 쳐서 죽어볼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내가 내손으로 목을 졸라서 죽어볼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어느 날 용기가 나서 아파트 3층에서 눈감고 뛰어본 적도 있다. 그 때 접지른 발목이 아직도 말썽이다. 내 정강이에는 지금도 수많은 상처들이 남아있고 유모씨가 책상커버 모서리에 내 이마를 찍어눌러 파인 상처도 아직도 남아있다. 김모씨가 손을 라이타로 지져서 생긴 조그마한 화상자국도 아직도 남아있다.
나는 오늘(2018년 4월 23일) 충청북도 교육청과 다니던 중학교에 전화해서 중3 담임 번호를 알아냈고 은퇴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나를 완전 쓰레기라고 설명해놨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여러 루트를 통해서 그 일진들의 행방을 추적해봤다. 잘 살고 있더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행정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글을 써서 알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