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 새벽에 갑자기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누구한테든 얘기를 해야 속이 좀 시원할 것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여러분은 만약 늦은 시간 길거리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여자와
그를 부축하며 그 사람의 가랑이 사이와 허벅지, 가슴 등을 만지는 남자를 본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러분 중에는 가만히 안 있을 거라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봤던 사람들은 전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무리지어 있던 남자들 다 놔두고 혼자있는 여자인 저 혼자 그 상황을 촬영하고
정신을 잃은 여자 몸을 더듬던 그 남자에게 지금 뭐하는 거냐고 따지다가 얻어맞을 뻔 했어요
다행히 도망쳐서 얻어맞진 않았지만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덜덜 떨리고 너무 무서워서 신고하기가 힘들 정도로 힘들었어요
나 아니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다, 나 아니면 저 여자분 정말 큰 일 난다는 생각으로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경찰에 신고를 해서
약 6-7분 후 남경 둘이 경찰차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말이 6-7분이지 정말 무슨 일 날까봐, 그 사이에 남자가 여자 끌고 사라질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에 왜 이렇게 안 오냐는 생각만 백번은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쓰러져있는 여자분과, 올라간 치마 아래를 더듬고 있던 남자를 목격한 남경들이 남자를 제지하면서 신분증 보여달라고 하고(남자는 폰만 꺼낼 뿐 신분증 보여주기는 거부하고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여자분께 정신 좀 차려보시라고, 폰 있으시냐고, 꺼내보시라고, 서로 아는 사이인지 확인하게 남자한테 전화해보라고 시켰습니다
여자분은 정신이 혼미해서 시키는 대로 하기가 힘든지
5분 넘게 여기 전화했다가 그 번호 아니라고 끊고, 또 저기 전화했다가 그 번호 아니라고 끊고,
패턴 잠금을 풀었다가 다시 전원 버튼을 눌러서 잠금시키고 패턴도 계속 헤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보다못한 남경들이 남자에게 여자분 번호로 전화해 보라고 시켰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남경들에게 쌍욕을 하면서 꺼져라, 가라, 봐줘라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실랑이 끝에 여자분이 어떤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그 번호가 남자 번호가 맞았는지
남경들은 “두 분이 친구 사이인 거 알았으니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두 분이 같이 가시든 각자 가시든 알아서 귀가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와서 자기들은 그만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여자분이 스스로 그 남자와 십년지기 친구다, 이십년지기 친구다 라고 주장하며 남경들더러 그냥 가도 된다고 했다는 겁니다
제 상식으로는 정신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져서 남자가 자기 몸을 만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서,
그리고 여자분의 폰 바탕화면을 보니 아기의 얼굴 사진이었는데(아마도 여자분의 아이일 것으로 추정됨)
몸을 더듬던 남자는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신미약 상태의 여자분을 맡길 수 있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설령 서로 마음이 맞아 만났다고 해도
심신미약 상태인 여자분의 몸을 길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더듬는 것은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성범죄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저는 절대 남경들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여자분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경들은 답답해하며 여자분 본인이 괜찮다고 하시는데 어쩌라는 거냐,
폰 바탕화면 속 아기가 여자분의 아기이고 그 아이의 아버지이자 여자분의 남편이 저 남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건 남의 가정사인데 당신이 왜 신경쓰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설령 그 두 사람이 정신이 명료할 때는 마음이 맞아 만났더라도
정신을 잃은 심신미약자의 몸을 일방적으로 더듬는 것은 상황이 달라진, 전혀 다른 문제고
절대 남의 가정사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범죄잖아요
그런데 최소한 저보다는 도덕적이고, 범죄에 예민하고, 시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남경들이 남의 가정사 운운하며
아무 문제 없다고, 개인사에 신경쓰지 말라고, 두 분을 알아서 가시게 놔두고 그만 가보겠다고 하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경들의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저한테 잘못한 것보다는 심신미약 상태의 여자분을 더듬던 남자에게 여자분을 맡기고 자리를 뜨고,
성추행을 참견해선 안 될 남의 가정사로 자의적 정의를 내린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 그에 대해서만 언급했습니다
가장 바로서야할 경찰부터가 남성중심적 사고, 가해자 중심적 사고를 하고 시민의 위험을 방치하는데 어떻게 이 나라에서 안심하고 살 수가 있을까요
전 사실 따지고 보면 제 일도 아니지만 양심상 범죄를 보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는 없어서 신고를 한 거였는데
신고하면 경찰들이 사리에 맞게 피해자 입장에서 처리를 해줄거라 믿었는데
남경들이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아무 범죄도 아니라는 듯이 취급하고
저를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는 사람쯤으로 취급하는 것에 너무 충격받고 스트레스 받았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해도 똑같겠구나 싶어 분노가 일기도 했고요
세상에 정신 잃고 길거리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 사람이 쓰러져있는 동안 뒤집어진 치마 아래를 더듬던 남자의 성추행 행각을 남의 가정사로 취급하는 게 바로 대한민국 경찰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 잠도 못 자고 이런 장문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고 서글픕니다
저는 대단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경찰들이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사리분별 잘하고,
지금 이 사람이 정상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
이게 참견해선 안 될 남의 가정사인지 성추행인지 정도는 분간을 해주길 바랐을 뿐인데
이게 한국에서는 그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솔직히 제 말을 굉장히 답답해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남경들의 모습에 절망감까지 느꼈어요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다가 얻어맞을 뻔하기까지 한 사람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언제 또 그 남자가 덤벼들지 모른다는 공포를 이겨내고 간신히 신고한 건데
저에게 자기들이 답답함과 불쾌함을 느꼈다고 고스란히 티를 내면서 “그래서 지금 저희한테 뭘 원하시는 거예요?”라고 따지는 남경들의 모습에서
저런 경찰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보고도 못 본 척 무관심했구나, 그냥 그렇게 지나갔구나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저는 다음에 또 범죄를 목격하게 되면 신고할 것 같습니다
피해자분이 요청한다면 도망가지 않고 증언해드릴 거고요
제가 신고하는 건 그 결과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쨌거나 법치주의 국가의 시민이 믿을 건 경찰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도 이번엔 경찰이 제 할 일을 다 해줄 거라 믿고
내 작은 행동이 꼭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에 신고하는 것 같습니다
아예 안 봤으면 모를까
봤는데 양심상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회의감과 압박감이 너무 심해서 내가 잘한 걸까 자신이 없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된 것 같네요
쓰기 시작할 때는 그냥 답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쓴 거였는데 쓰다보니 생각이 정리됐어요...
제 의식의 흐름을 여러분도 느끼셨나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장문의 글이라 읽기 힘드셨을 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제 얘기는 여기서 마칠게요
의견 있으시다면 댓글로 써주시면 제 생각 정리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제 판단을 지지해주신다면 제가 좀더 확신을 갖고 행동할 수 있을 것 같고
비판하신다면 제가 놓친 게 뭘지 고민하고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진짜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