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겠지요,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의 ○○○ 사장님.
저는 김○○ 과장의 안사람 되는 사람입니다. 전부터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그러지 못했는데요. 오늘은 비록 보내지 못하는 편지일지라도 할 말은 좀 해야겠습니다.
아 참,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릴게요.
제 남편이 그 (빌어먹을) 회사를 다닌 지도 만 9년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적은 월급이지만 밀린 적 없이 지급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또 저희 결혼식 때 축의도 많이 해주시고, 달러로 바꿔서 신혼여행 때 쓰라고 거금 50만원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 때 저희 신랑이 많이 놀랐나 봐요. 사장님이 자기를 그 정도로 생각해 주시는 줄 몰랐대요. 평소에 많이 혼나고, 욕먹어서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도 사장님이 주신 축의금과 신혼여행 여비가 꽤 유용했던 게, 결혼 후 4년 동안 사장님과의 관계로 힘들어 할 때마다 제가 그 얘기를 꺼내며 사장님이 생각보다 자기를 의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격려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몇 달에 한 번 꼴로 퇴근하는 그 사람의 얼굴이 많이 어두웠었는데 가장이라는 이유로,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받으려고 참았나 봐요. 그 때 그냥 그만두게 했으면 이렇게까지 상처받진 않았을 텐데…….
사장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많이 힘들어 합니다. 사장님한테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일개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에요. 회사에서 그 사람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제가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4년간 살며 본 바로는 특별히 사장님께 욕먹을 만한 일을 할 것 같진 않습니다. 물론 사람이니 실수도 하고, 때론 멍청한 일을 할 때도 있겠지요. 그래도 성품이 바르고, 다방면에 지식이 많으며, 누구보다 성실하므로 전반적인 업무처리 능력에 있어 다른 직원들보다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도대체 그 사람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사장님께 배터지게 욕먹고 어깨가 축 쳐져 들어오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듭니다.
사장님, 두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월급, 많이 안 주셔도 돼요. (이미 많이 안 주시고 있지만) 다만, 직원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세요. 누군가의 소중한 남편이고, 아들입니다. 사장님 굉장히 애처가시고 좋은 아빠라고 들었습니다. 사모님께 그렇게 잘 하시고, 매번 따님들과 좋은 곳 여행 가시고, 좋은 차 타고, 좋은 것 드시죠? 직원들은 사장님·사모님 월급의 10분의 1도 못 받아서 그렇게는 못 살지만, 물질적으론 풍족하지 않아도 마음만은 풍족하게 살고 싶습니다. 자존감을, 인격을 짓밟지 말아주세요. 업무적으로 실수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제발 그 점에 대해서만 혼내 주세요.
또 한 가지는, (이게 오늘 제가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인데요. 서론이 많이 길었죠? 제가 이렇게나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았답니다.) 직원들 복지 좀 생각해 주세요. ‘복지’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가죠. 연차 보장, 칼퇴근, 업무 환경 개선……. *****은 계속 소기업으로만 남으실 계획인가요? 회사 매출은 매년 오르고(그런데도 성과급은 매년 오르지 않는 게 미스테리지만), 직원 수는 제 신랑 입사 때보다 3배가 늘었는데, 아직도 연차가 전혀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일 년 중 휴가라고는 꼴랑 여름휴가 3일(주말 붙여 5일-_-), 한 달에 한 번은 토요일 근무, ***대회나 회사 단합대회 필참.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저는 바보 같을 정도로 대단한 참을성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렇겠지요.
2018년 5월 1일, 저희 부부에게는 정말 역사적인 날입니다. 왜냐하면 4년 만에 처음으로 저는 출근하고 그 사람은 집에 있었거든요. 근로자의 날이라고 처음으로 쉰 것입니다. 결혼 후 총 3번의 근로자의 날에는 출근을 하거나, 5월에 있는 다른 대체공휴일에 쉬기 위해 근로자의 날에 일을 했습니다. 대체 왜 그래야 하나요? ‘근로자’라서 근로자의 날에 쉬는 것이고, ‘국가’가 대체공휴일로 정했는데 왜 둘 중 하루를 골라야 하나요? 전부터 정말 따져묻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처음으로 그런 얘기가 없어서 너무 좋았어요. 5월 1일에도 쉴 수 있고, 7일에도 쉴 수 있다기에 ‘아, 이제야 회사가 인간답게 돌아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뭐, 직원들 하루 쉰 것이 많이 분하셨는지 2일날 출근하자마자 눈치 주신 건 생략할게요. 그런데 2일날 갑자기 7
일날 쉬는 게 조건부인 것처럼 얘기하셨다면서요? 일이 쌓이지 않으면 쉬자고요. 그래서 직원들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당근’을 앞에 둔 망아지처럼요. 그런데 오늘 그러셨다면서요? “급한 일이 다 끝나서 창고가 비었으니, 월요일(7일. 대체공휴일)에 대청소하자.”고요.
사장님, 제가 감히 예언하자면(악담 아님) *****은 더 크고 좋은 회사가 되진 못할 것 같아요. 사장님 마인드 때문에….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인적 자원’ 아닌가요? 회사를 부강하게 할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려면 분명한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대기업이 사람 피를 말리고 기를 빨아먹어도 사람들이 버티는 건 5,000만원 이상의 연봉과 열흘 이상의 연차가 보장되기 때문이죠. *****이 더 크고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김○○ 과장 자리를 메우게 될 다음 사람에게는(구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대우를 부탁드려요. 그래야 오래 사장님 곁에서 돈 벌어드리지 않겠어요?
사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사장님이 주신 월급 덕분에 4년간 빚도 많이 갚고,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으며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람 좀 쉬게 해 주려고요. 저, 비록 아직은 쥐꼬리만 한 월급이지만 제 월급으로 알뜰하게 살며 제 남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 시켜주고 싶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걱정하지도 않겠지만) 무슨 일을 하든 저 굶기지 않을 사람이란 거 알거든요. 최저임금 받는 일을 하더라도 저 사람이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그리고 남들처럼 ‘저녁이 있는 삶’ 좀 살아보려 합니다. 저는 5시 퇴근이라 늘 저녁이(어떨 때는 점심도) 있는 삶을 사는데, *****의 김○○ 과장으로 살려면 앞으로도 매일 7시 퇴근이 당연하고(그것도 칼퇴라고 눈치보고), 야근 수당도 못 받고, 저녁도 못 얻어먹고 와야 하잖아요. 저희 부부, 좀 가난하더라도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살게요.
너무 고깝게 읽지는 않으셨으면 하는데, 많이 고까우시죠? 사람마다 각자의 입장이 있다 보니 사장님도 화가 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억울하다 하시지는 못할 거예요. 편지 내용이 버릇없긴 하지만 틀린 말은 없을 테니까요.
그럼 건강하십시오. 회사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사장님이 건강하시기 바라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건강하셔서 앞으로는 ‘직원들이 행복해 하는 회사’를 경영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사장님 곁에 있는 직원들의 마음 상태를 한번 점검해 보세요. 아마 많이들 멍들어 있을 겁니다. 나이도 어리고, 견식도 짧은 제가 이런 편지를 쓴 걸 용서하세요. 남편을 지키고 싶은 사랑의 용기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8.5.4. 황금연휴를 앞두고 펑펑 울면서 김○○과장의 아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