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잠에서 깨면 재빨리 일어나야하지만 쩝쩝대며 핸드폰을 더듬어 카톡창을 확인한다.
부재중 메시지는 없다.
혹시나 싶어 sns를 확인하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은 없다.
힘들게 일어나 고민한다. 오늘은 좀 꾸며볼까? 말까?
잡지와 주변 지인들,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 저가 화장품들의 유통기한이 임박해오고 있지만 건너 뛴다.
저 화장품들을 순서대로 찍어바르고 두드리고 흡수시키고의 반복은 공복에 하기엔 너무나 중노동이다.
요즘은 한 듯 안 한 듯 네츄럴한게 먹어준다지
세일기간에 산 이니스프리 cc크림을 치덕치덕 바른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자외선 차단만 꾸준히 해줘도 꿀피부가 된댔어
요즘 cc크림은 왜 이렇게 용량이 작은지 모르겠다. 좀 대용량으로 팔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은 또 라면이다. 나를 위해 열심히 요리하고 싶지만 라면보다 맛있는 아침은 없다.
진짬뽕 두개를 끓여서 호로록 먹고 3초간 망설이다 밥을 말아버렸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면을 따로 삶고 국물과 합치는 등 칼로리를 줄이기 위한 발악을 했지만 이미 난 라면 단계에서 글러먹었다.
밥 한공기 만다고 내가 갑자기 코끼리가 되는건 아니니까.
자기 최면에 가까운 변명을 늘어놓지만 죄책감은 무겁다.
그냥 굶을껄... 이 돼지야 그걸 못참고 또 끓여처먹었니. 넌 대체 사람이니 지방이니. 지방이 인형은 귀엽기라도 하지 니년은 하마도 피해갈 초 슈퍼 울트라 비만인간이야.... 등등
죄책감을 억지로 집어삼키고 압박타이즈에 다리를 구겨넣는다. 조금이라도 말라보이려면 타이즈에 짧은 하의가 최고다. 그 위에는 대체 왜 루즈핏인지 모르겠지만 루즈핏 셔츠를 입어준다. 짧은 하의를 루즈핏이 덮어주어 얼핏 원피스 느낌이 난다.
cc밖에 안발랐지만 화장을 공들여한 티를 내기 위해 입술을 유행하는 오렌지 색으로 칠하고 아이라인도 그린다.
화장을 대충했으니까 향수로 어필해야지.... 랜덤박스 구매한 향수를 찍어바른다.
문을 열고 거리를 나서니 다들 나보다 작은거 같다. 내가 너무 거대한건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후려치면 날라갈 것 같은 남중딩 세명이서 나를 씹는다.
우와 고래다 고래. 어떻게 저렇게까지 살이 찌지...
애써 무시하고 도착한 버스에 탑승했다.
내가 좋아하는 출구 앞자리가 비어있다.
냉큼 달려가 앉으려는데 핑크색 자리에 앉아있던 훈남오빠가 미소지으며 일어난다.
애기 엄마 여기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세요
핑크 좌석은 대체 어떤 새끼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 새끼를 안다면 찾아가 죽여버리고 싶다.
아니라고 말 할 자신이 없어서 빨개진 얼굴로 임산부 배려석에 착석했다.
한 순간 버스의 모든 승객이 나를 위아래로 스캔한다. 아직까지 순결한 자궁인데.... 임산부로 오해받는 상황이 기분 나쁠 만도 하건만 이때가 아니면 나를 스캔해주는 시선 따윈 없기에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삐빅
알람이 울린다. 출근까지 20분이 남았다.
버스가 서면 뛰어가야 할 것 같다. 젠장. 내 딴에는 뛰는 거지만 속도는 일반인이 걸어가는 것과 진배 없다.
이제 여름이나 다름 없는 오월말의 아침햇살과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숨이 턱까지 차고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이 몸뚱이에 때려넣은 음식들을 사기 위해선 일을 해야한다.
뛴다.
뛴다.
뛴다.
가까스로 출근시간에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했다.
탈모가 오고있는 과장이 눈살을 찌뿌리며 나를 쳐다본다.
***씨, 좀 일찍 일찍 다녀. 매일 그렇게 뛰어다니다 죽을꺼 같다.
별꼴이야. 지 머리나 걱정하지 왜 남걱정인지 모르겠다.
출근 카드를 찍고 컴퓨터를 켠 뒤 탕비실로 간다. 아직도 숨이 차다.
물 한잔 먹으려는데 내가 사서 쟁여둔 선식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거 다이어트 식품이지.
집에서 라면을 먹었지만 저칼로리 선식은 괜찮을꺼야. 결국 선식을 물에 타버리고 말았다.
괜찮아. 회사사람들은 이게 내 아침인 줄 알꺼야.
꿀떡꿀떡 선식을 마시고 있는데 이쑤시개 후임년이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걸어들어온다.
저년 지각인데.... 난 지각도 안했는데 지적질 하던 과장은 좋은아침~ 이라며 천연덕스럽게 이쑤시개 후임에게 인사를 한다.
젠장.
관심 1도 없는 탈모과장이지만 부럽다.
이쑤시개가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어머 언니 일찍 나오셨네요. 오는 길에 도넛 사왔는데 좀 드실래요?
오라질년.
도넛을 사오다니
너무나 고맙다.
한개가 빠진 크리스피 한더즌이다. 너무나 달콤하다.
***씨 항상 복스럽게 먹어. 보기 좋네
나보다 2년차가 높은 선배새끼가 흐뭇하게 말한다.
호빗주제에.... 어딜 넘보는지 모르겠다.
입가에 묻은 설탕을 닦아내며 도도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제 업무를 시작해야지.
삐빅
타임세일이다. 육포 20개들이가 23900원 밖에 안하다니
이건 질러줘야한다.
그러니까 오늘 발주는.... 이거고..... 육포는.... 맛있고...
아니다 난 여성이다. 살을 빼야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11시 반이 가까워온다.
이쑤시개에게 눈짓을 한다. 이쑤시__은 눈웃음을 치면서 얘기한다.
다들 점심식사 맛있게 하세요.
내가하면 어딜 12시 전에 일어나냐고 으름장이지만 이쑤시개는 먹힌다.
기분 좋음과 질투가 동시에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건 스피드다.
오전 업무 중에 8가지 선택지 중 결정된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향한다.
난 곱빼기, 이쑤시개는 새우쌀국수.
이쑤시개는 면만 건져먹더니 배부르다고 한다. 가소로운것. 이정도로 배가 부르다니
고마워하며 이쑤시개의 국물까지 처먹고 나니 1시가 가까워온다.
커피를 사기 위해 조금 서둘러 일어선다.
오늘은 내 계획보다 많이 먹었으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이쑤시개는 휘핑 올린 캬라멜 마끼아또다. 나도 먹고 싶지만 저것까지 먹으면 정말 돼지가 될 것 같다.
베트남 쌀국수의 죄책감이 밀려온다.
대체 왜 곱빼기를 먹은거지
왜 이쑤시개의 국물까지 처먹은걸까....
고민하다 오후 업무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이어트 정보를 검색하느라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팥차? 팥차가 다이어트에 좋다고??? 좋아 팥차를 주문해야겠다.
한달 전 끊었지만 두번 밖에 안간 헬스장도 오늘은 가야겠다.
업무시간 종료만을 기다린다. 어차피 오늘은 일이 안되는 날이야.
업무시간이 끝나고 헐레벌떡 인사를 한 뒤 헬스장으로 향한다.
머슬 코치님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활짝 웃는다.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헬스의 시작은 러닝머신이다.
러닝머신의 친구는 무한도전이지. 종영했어도 이런 프로가 다시 나오기 힘든거 같다. 종영에 가까운 편들은 대체적으로 좀 재미가 없지만....
속보 정도의 속도로 해놓고 집중해서 무한도전을 시청하다가 힘들어서 속도를 더 줄인다.
무한도전이 끝났다.
갑자기 걱정이 된다. 이러다 다리에 알이배기고 다리만 근육질이 되면 어쩌지.
뚱뚱한 것 보다 근육질 여자가 더 징그러울 것 같다.
냉큼 알빼기 기계로 가서 다리의 알을 빼준다.
다리의 알을 다 빼고 나니 시간상으로는 헬스를 두시간이나 했다.
뿌듯하다.
오늘 하루 처먹은 칼로리가 모두 소모된 것 같다.
그래 이 정도로 운동했으면 먹어줘도 괜찮다.
치킨이 너무나 먹고 싶다.
하지만 살이 찔테니까 굽네치킨을 시켜야지.
볼케이노가 좋을 것 같다.
볼케이노만 먹으면 아쉬우니까 필라이트 여섯캔 묶음을 산다.
치킨이 도착하려면 4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시간을 떼울 때는 역시 쇼핑이 최고다.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올 여름 트랜드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코디를 살펴본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게 없다.
대한민국은 왜 통통녀들을 위한 옷을 만들지 않는 걸까. 이렇게 니즈가 있는데 말이지.
초인종이 울리고 치킨 배달부가 볼케이노를 건낸다.
지 방에서 가만있던 남동생 새끼가 욕을 한다
야이 하마년아 작작 좀 처먹어 어제도 탕수육 먹었잖아.
개같은 새끼.
열이 받을대로 받아 검색창에 남동생 아작내는 법을 검색한다.
이상한 사이트가 나온다.
여기가 어디지?
음
워마드?
들어가봐야겠다.
글 한개만 읽고 나온다는게 볼케이노를 다 먹을 동안 사이트를 탐독하게 됐다.
그래
모든 것은
한남충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