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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과 방시혁] 인터뷰...흠.

오랑고 |2004.10.01 00:00
조회 1,776 |추천 0



“‘안티’팬의 질책은 새겨 들어야할 충고 ”

미국 진출한 박진영의 음악, 인생, 미래…심층인터뷰  

미디어다음/ 심규진 기자, 사진=김준진 기자  

  
미국 진출에 성공한 음반 프로듀서 박진영과 방시혁.  

“아직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신인 선수일 뿐 홈런도 타점도 올린 게 없어요. 그냥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것 뿐이죠. 그래도 전에는 아무도 우리의 음악을 들어줄 생각도 안 했는데 이제는 들려줄 기회가 생겼으니까 실패하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죠.”

당당, 파격, 달변, 솔직, 용기, 승부 근성…. 1년 동안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박진영은 비닐 옷을 입고 대중 앞에 등장했던 10년 전 이미지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비, 지오디 등 톱스타들을 이끌며 박진영 사단으로 일가를 이룬 그가 자신이 국내에서 쌓아온 명성을 뒤로 하고 미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박진영은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그 누구도 알 리 없는 신인일 뿐이었다.

“제 곡 좀 들어주세요”

1년 동안 300개도 넘는 음반사를 순례했다.
수도 없이 문전박대를 당하는 시행 착오 끝에 이번에 비로소 싹을 틔웠다. 유명 흑인가수 메이스의 앨범에 박진영과 방시혁이 공동 작곡한 ‘더 러브 유 니드(the love you need)’가 수록된 것이다. 메이스의 음반은 현재 빌보드 차트 4위에 올라있다.

미디어다음이 박진영을 만나 미국 진출과 관련된 에피소드들, 최근의 벅스 뮤직 사태에 대한 견해까지 음악과 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들어봤다. 섹스 코드로 화제를 모으는 선정적인 가수, 돈 밝히는 음반 제작자, 운 좋게 성공한 엘리트 가수라는 시샘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향한 세상의 비난과 편견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은 듯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조심스레 던진 기자의 질문에도 두서너 단계를 훌쩍 건너뛰며 예의 박진영식 화법으로 수위를 높였다.  


”미국 시장 진출은 오기와 재미로 시작한 일”

미국 음악 시장에의 도전은 거창한 계획 없이 '재미’로 시작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메이스’의 앨범에 자신의 곡이 수록된 게 그는 마냥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듯 했다. 마치 처음 음반을 낸 신인 가수처럼.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년 동안 수도 없이 문전박대를 당했고, 심지어는 로비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한국에서야 곡을 달라는 가수들이 줄을 서는 그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법도 하지만 그때 생긴 오기와 자극은 그에겐 오히려 힘이 됐다.

“자존심 같은 것은 하나도 안 상해요. 오히려 무시 당할 때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는 거죠.”

미국 체류 기간의 성과를 자평한다면요?

“아직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신인 선수일 뿐 홈런도 타점도 올린 게 없어요. 그냥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것 뿐이죠. 그래도 전에는 아무도 우리의 음악을 들어줄 생각도 안 했는데 이제는 들려줄 기회가 생겼으니까 실패하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죠.”

서양 음악을 수입한 우리 나라 대중 예술인들 입장에서는 서양 음악계에 대한 부채 의식 같은 게 있죠. 우리 나라 대중들도 ‘과연 우리 나라 음악인이 본토에서 통할 수 있을까’ 하는 패배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직접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음악과 미국 음악의 수준 차이 같은 것이 느껴졌나요?

“처음엔 몰랐는데 듣다 보니 그런 변방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서양의 음악과 우리 음악의 차이를 우월의 개념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흑인들한테 r&b는 우리의 국악과 마찬가지에요. 우리보다 더 잘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경기 종목이 그들의 음악인 것 뿐이에요. 흑인이 우리 나라 국악을 못한다고 해서 콤플렉스를 느낄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어쨌든 겨우 벽을 뚫고 진입한 것에 불과한데 미국 진출이라는 타이틀로 언론에 거창하게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은가요?

“미국 진출에 우여곡절이 많다 보니 아예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조용히 작업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언론에 좋은 소식을 알리는 이유는 가장 먼저 기쁨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팬들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팬들의 사랑도 저에겐 중요하지만 안티들의 질책도 저한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넷 상에 일고 있는 자신에 대한 비난들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박진영이 먼저 ‘안티’ 얘기를 꺼냈다.


”안티들의 이야기 인정할 부분 많아”

  
안티들의 이야기에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가요?

“그럼요.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을 전 악착같이 챙겨서 봐요. 보면서 많이 아파요. 어떤 것은 ‘정말 저건 아닌데’ 하는 것도 있고, 가서 직접 해명하고 싶은 것들도 있고 정말 새겨들어야 할 충고나 비난도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직접 이메일도 써요. 평론가가 제 메일에 답장을 보내왔는데 ‘가수들이 이런 글도 보나요?’ 하더군요.”

박진영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외국 음악을 짜집기한다, 따라한다 등의 지적인데요.

“그 점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아요. 고백을 하자면 저와 방시혁씨가 너무 많은 곡들을 작곡해야 했고, 따라서 기발한 음악,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는 거에요. 사실 저는 요즘 미국에 가 있었으니까 억지로 음악을 찍어내야 하는 부담은 없었죠. 근데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사이, 방시혁씨가 모든 짐을 떠맡으면서 많은 비난을 받게 됐어요.”

이 때 박진영과 함께 ‘더 러브 유 니드’를 공동 작곡한 프로듀서 방시혁이 한 마디 거든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차이점을 잘 인식하는데 자신들이 낯 선 음악에 대해서는 스타일이 같으면 다 똑같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멜로디 중심의 작곡가들에게는 표절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안 나오거든요. 네 마디 같다가 한 두 마디가 다르면 다르구나라고 생각하죠. 반면 새로운 스타일 자체가 낯설면 다 유사하게 들린다는 거에요. 저처럼 미국 음악의 원류를 따라가고 싶은 사람도 있는 건데. 미국스러운 음악을 하면 스타일적인 유사함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듣기에는 빌보드 1위부터 10위까지 유사한 음악들로 채워지는 경우도 있어요.”


”기발한 음악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하겠다”

다시 박진영이 말을 받는다.

“곡을 많이 만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하면 ‘박진영 너 돈에 환장했냐’고들 해요. 그런데 정말 돈 때문에 곡을 많이 만드는 게 아니에요. 지오디, 노을, 비 이런 가수들의 공백이 너무 크면 안 되잖아요. 연말 시상식 때문에 스케줄도 맞춰야 하고. 인간적인 것 때문에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고 가수들이나 매니저들이 절 너무 괴롭혀요. 비정상적인 숫자의 곡을 만들다 보니 기존 스타일의 곡을 반복하게 되는 거에요.”


”뮤지션으로 따지면 나는 얕은 사람일 수도”

  
안티들의 비판도 인정한다는 얘기로군요.

“인정이 아니라 고백이죠. 문제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어떻게 고칠지 대안을 생각해 보겠다는 거에요. 작곡자 3명을 새로 계약했어요. 저나 방시혁씨의 부담을 줄일 생각이에요.

또 한 가지 기발한 음악이 나오지 못한 이유는 우리 나라에서는 기발한 음악이 잘 안 먹혀요.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 중에 실험적인 음악이 얼마나 되죠? 기발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많은데 기발한 것을 했을 때 잘했다는 칭찬은 없어요. 나 혼자 독특한 장난을 쳤을 때는 대중들이 철저히 외면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지오디랑 영화 챔피언 주제곡을 만들었을 때가 가장 뿌듯했어요. 여러 장르를 섞어서 실험적으로 만들어봤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게 대중음악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었나요? 대중들은 쉬운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 이런 것들을 좋아해요. 그런데 멜로디에다가 기발한 것들을 붙이기는 너무 힘들어요.”

대중들이 실험적인 코드는 외면하고 귀에 익숙한 상업적인 노래들만 좋아한다는 분석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일단 뮤지션으로서의 창조적 고집 보다는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 아닌가요?

그가 흥분된 어조로 반박한다.

“저는 한 번도 창조적이고 기발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음악한 적이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뮤지션으로서 저는 굉장히 얕은 사람이죠. 음악을 만드는 목적 자체가 남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게 현실 순응적인가요?”

그렇다면 남들이 좋아한다는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상업적인 성공인가요?

“상업적인 것하고는 달라요. 좋아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마음의 강도, 그리고 음악과 가사에 대한 공감. 그런 것들이 절 행복하게 하죠. 미국에서 제가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것은 미국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고요. 제가 기발하지 못하다고 비난하시는 분들은 제가 미국에 판 음악들을 들어봐 주세요.”

예술가로서 어떤 원형이나 스타일을 창조하겠다는 생각은 없나요?

“그런 욕구 당연히 있죠. 그런데 스타일은 창조하는 게 아니라 하다 보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향한 상반된 비판이 뭐냐면, 하나는 ‘스타일이 없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 스타일만 한다’에요. 도대체 뭐가 진실이죠? 어떤 사람은 지 스타일도 없이 미국 것을 흉내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우리 소속사 가수들까지 내 스타일로 만든다고 해요. 저는 스타일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박진영 사단의 가수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인가요?

“비의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를 제가 부른다면 어떨까요? 반대로 비가 ‘허니’를 부르는 게 상상이 되세요? 글쎄… 물론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겠지만 그 안에서는 다 틀려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내 스타일이지만 그걸 뚫고 나오지 못하면 가수의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죠. 가수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 하다가 망하면 대책 마련해줄까?
대중과 정부, 음악계 내부에 모두 실망”

가요계가 불황이라서 가수들이 음악에 집중하기 보다는 연기나 광고로 눈길을 돌리고 있죠. 박진영씨 개인은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어요. 열심히 하다가 걸리는 거 있으면 풀어보려고 노력할 뿐이고요. 음악만 해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어쩔 수 없는 현상인거죠. 우리 회사를 비롯해서 모든 음반사들이 연기자 매니지먼트 등을 하고 있어요. 음반 시장이 완전 붕괴됐어요. 음악하다가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정말 웃을 일이 아니에요”

  

mp3로 인한 음악계 붕괴에 위기의식을 많이 느끼나요?

“싸워봤는데 안되더라고요. 설마 사람들이 음악을 버리겠어요? 망하면 뭔가 대책을 세워주겠지… 그런 생각이에요. mp3 토론회 나갔을 때 대중들에게 욕을 가장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돈 밖에 모르는 인간이라고. 대중들에게 회의가 들더군요.

정부 대책에 기가 막히고, 이창동 전 문광부 장관에게도 너무 많이 실망했고, 마지막으로 음악계 내부에 실망했어요. 대책 회의하는데 전부 벅스 뮤직 욕을 하면서 ‘누가 토론회 나갈래? 진영이가 나가는 게 좋겠다’ 그러는 거에요. 그 때부터 저한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이런 얘기 해라, 저런 얘기해라’ 시키는 거에요.

저는 토론회 나가서 그 말을 다 했어요. 그런데 저한테 그렇게 하도록 시킨 많은 음악계 분들은 마이크를 갖다 대니까 ‘네티즌들하고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야죠’ 그러는 거에요. 나한테는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벅스 뮤직과 네티즌들을 싸잡아 비난하라고 하더니 고작하는 말은 선심성 발언 뿐이더라고요. 타협점을 찾아 보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죠.

그러니까 관두자, 음악이나 하자, 이렇게 되는 거죠.“


”나는 섹스에 관해 보수적인 사람”

  
박진영 하면 ‘섹스’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독 섹스를 다룬 노래로 많은 화제가 됐고 종교 단체와 분쟁도 있었잖아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의도된 행동을 한다거나 일부러 화제를 만들려고 한다는 시선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요.

“섹스는 제 노래 테마 중 일부분일 뿐이에요. 제가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지오디의 길, 어머님께, 그녀는 예뻤다, 허니, 그런 노래들이에요. 섹스와 전혀 무관하죠. 우리 나라에서 저처럼 성을 떠들고 얘기하면 변태라고 하는데 사실 전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라는 얘기를 들어요. 아마 제가 지금까지 성 관계한 여성의 수를 알게 되면 모두들 깜짝 놀랄 걸요. 30대 남자 중에 저처럼 섹스 파트너가 적었던 사람도 없을 거에요. 전 사랑없는 섹스가 싫어요. ‘얼마나 성을 즐기고 얘기하느냐’의 기준으로 보면 전 매우 개방적인 사람이 맞아요. 그런데 사랑없는 사람과 잘 수 있는 게 개방적이라면 전 극우 보수에요. 도대체 뭐가 개방적인 거고 뭐가 보수적인 거죠?”


”결혼은 여성의 사유 재산화 제도"
사회운동가는 아니지만 신념 자꾸 바꾸는 사람도 아니야”

결혼 제도를 비판하면서 제도와 타협한 박진영씨의 발언을 두고 진정성이 없다, 공허하다고들 해요. 말과 행동이 다른 박진영씨의 모습에 지지자들이 실망하고 상처 받을 수도 있지요.

“사실 전 제 행동의 일관성에 자신이 있어요. 내 느낌대로 말했으니까. 왔다 갔다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10년 후에 평가해달라고 하는 거에요. 전 항상 단체보다는 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경제적으로는 성장보다는 분배가 좋아요. 표현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것, 위선적인 것을 싫어했어요.

내가 싫어하는 것은 항상 같았거든요. 제가 얼마나 무책임했을까요? 얼마나 왔다 갔다 했을까요? 거창하게 얘기하기는 싫어요. 공부도 충분히 안 했고요. 다만 일한 만큼 나눠 갖는 게 좋아요. 상속세 100% 하는 것도 찬성이에요. 경쟁은 좋은데 공정한 경쟁이 좋고 아이들이 똑같은 스타트 라인에 섰으면 좋겠어요.“

사실 대중들이 박진영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기득권자, 무한 경쟁에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것들인데 정작 본인은 사민주의자 내지는 사회주의자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나는 무한 경쟁이 좋고 재미있어요. 그런데 전제는 공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여자들이 깨어나서 나랑 붙었으면 좋겠다는 거고요. 나는 비교적 환경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항상 내 능력에 대해 반문하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해요. 내가 불공평하게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꾸 나를 잡아 당겨요.“

그렇다면 ‘실패했다’, ‘이건 정말 졌다’ 그런 느낌 받은 적은 있었나요?

“한 번도 없어요.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요.”


"’아픔’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박진영은 가장 힘들고 처절했던 데뷔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대중들은 그에게서 ‘좋은 집안에서 자란 명문대생이 취미 삼아 음악 한다고 기웃거리다가 운 좋게 스타가 됐다’는 스토리를 떠올리지만 그의 데뷔에 얽힌 사연은 여느 신인 가수 못지 않게 눈물 겨운 것이었다.

“’날 떠나지마’라는 데모 테잎을 들고 이수만씨 찾아갔는데 딱지 맞았어요. 그 후 김창환씨한테 찾아가서 1년동안 죽어라고 고생했죠. 판 내달라고. 김건모 백댄서, 노이즈 백댄서, 신승훈 백댄서까지 10원 한 장 안 받고 했어요. 그런데도 딱지 맞았어요.

벽이 보였죠. 정말 끝. 보통 속상할 때는 술을 안 먹는데 정말 해결책이 안 보이는 거에요.
그 때 처음으로 술을 마셨죠. 그리고 동네 슈퍼마켓 셔터를 손이 다 까질 정도로 쳤던 기억이 나요. 제 아버지가 부자는 아니시고, 평범한 월급쟁이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모아둔 큰 돈을 빌렸는데 다 날렸고, 당시 학점은 1.9로 취직하기도 글렀죠. 여자친구와 친구들한테 믿어달라고 했었는데… 그 당시 누가 나더러 부산까지 뛰어가면 판을 내주겠다고 하면 두 말 않고 뛰었을 거에요.“

혹독한 밑바닥 생활과 도제 수업을 거치면서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다. 그 때 쌓인 내공이 그를 강하게 만든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누가 나보고 좌절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그때 힘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실패가 없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실패를 모르는 철부지’라고들 해요. 근데 ‘당신들이 말하는 실패담을 들어보면 그건 해 본 적이 있지’ 그래요. 그걸 좌절이나 실패로 생각 안 하는 것 뿐이죠.”


”내가 들으면서 울고 웃는 그런 음악 하고 싶어”

연예계 데뷔 후 돈은 많이 벌었나요?

“사람들은 제가 돈 욕심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정반대에요. 미국에서도 아는 형 집 이층에 방 한 칸 얻어서 6개월을 살았어요. 회사 차리는 데 돈을 다 쏟아 부었거든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음악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쓸 돈이 없었어요. 건물 지을 때 빌린 은행 빚도 아직 다 갚지 못했고요. 저는 지금까지 음악 외에 주식, 부동산 같은 것을 해 본 적 없어요. 벤처 거품이 일 때도 주식 하나 받지 않았어요. 제 회사 월급이 300만원이에요. 제가 무슨 돈 욕심이 많다는 거죠?“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그냥 음악하는 환경을 좋게 만들려고 다른 것도 많이 하게 됐어요. 매니저, 홍보, 미디어 이런 것들에 신경쓰고 싸우고 하는 게 지겨워서 직접 다 하게 됐어요. 그런데 반대로 그런 일들이 날 잡아 먹어서 요즘은 음악을 할 시간이 없어요.

제 음악에 대한 평가는 3년 후부터 내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때가 되면 회사도 방시혁씨한테 넘기고 작곡가도 늘리고 그냥 전 손떼고 제 음악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서태지씨가 정말 부러웠거든요. 자기 음악에만 치중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 같은 것들 말이에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요. 12시간 동안 음악만 하고 싶어요. 제가 들으면서 슬퍼서 울고, 흥겨워서 마구 춤을 출 수 있는 그런 음악 말이죠.”

박진영이라는 뮤지션은 자신의 단점과 부족함을 파악하고 인정하며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고 겸손했다. 반면 자신이 확신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주저함도 없다. 그는 욕심이 많고, 완벽주의자이며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이룬 것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시스템에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문득 떠오른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박진영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다치고 아플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도전거리를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그의 패기와 치열함, 그리고 강인함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그의 지지자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재미’만을 추구하는 한 그의 자유와 권력, 그리고 도발적 언행에 대한 세상의 구속과 비난은 계속될 것 같다.

안티들의 비난을 에너지로 전환하며 자신이 만든 음악에 눈물 짓고 흥겨워 하는 지금처럼,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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