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더 많은 인생 선배님들께 조언을 구하고자 게시판의 성격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올리는점 사과드립니다.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 글이라 많이 길어질것 같습니다. 지루하시더라도 그저 한 어린아이의 투정이다 생각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안된 스무살 여학생입니다.
대학에 와서 만난 많은 친구들은 제가 남부럽지 않은 집에서 귀하게 사랑받으며 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사하게도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부모님께는 많이 사랑받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을 제외한 집안 어른분들께서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분들이셨죠.
그놈의 장남, 장손이 뭔지... 저는 대대로 집안의 장남을 이어오셨던 저희 아버지의 첫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 부모님께서는 집안의 가장 큰어른이신 증조할머니를 부양하고 계셨는데, 집안의 첫째가 딸로 태어났다는 소리를 들으신 집안 어르신들께서 저와 힘들게 저를 낳으신 어머니를 냉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태어난지 2년만에 집안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장손인 제 남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워낙 어린시절부터 '남동생에게 양보가 당연한 누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어렸을때는 '가지고 싶다'라는게 어떤 감정인지도, 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도 모르며 컸습니다.
제 인생의 첫 기억도 어른들의 귀여움을 받고있는 남동생을 부러워하는 장면이니 그닥 예쁨받던 어린시절은 아니었을겁니다.
나름 저를 예뻐한다고 생각했던 사촌 고모들 마저 제 생일을 축하한다며 오셔서는 어머니께 '언니, 첫째를 딸을 낳으셨으니 얼마나 마음졸이셨어요.'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어쩌면 그게 이 집안에 자연스레 녹아든 사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착한누나'가 아니면 지금 받고 있는 관심마저도 사라질것 같아 스스로 부모님의 손이 많이 가지않는 아이로 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힘으로 버텨내었으니 처음엔 대견하다고 칭찬해주시던 부모님도 점점 저의 그런면을 당연시 하시며 몸도 약하고 어리광이 많은 동생에게로 눈길을 돌리셨습니다.
억울하거나 슬픈 일이있어도 몰래 숨죽여 우는것이 유치원때부터 버릇이 되었으며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라는 프레임에 저를 우겨넣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다른 인복은 많았는지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며 밖에서는 나름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자신감 넘치는 행복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가 마음속 깊은곳까지는 굳세지 못하여 늘 집안 어른들 앞에만 서면 제 의견하나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저를 아는 친한친구들은 제가 20년동안 단 한번도 집안 어른들은 물론 부모님의 의견에 반하는 사소한 행동조차 한적이 없다는것에 여전히 놀랍니다.
그런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자취'였습니다.
집도 학교도 모두 서울에 있어서 자취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나, 저희 과 특성상 2학년때 커리큘럼이 매우 빡빡해져서 통학시간이 1시간 이상 되는 선배들은 보통 자취를 합니다.
내년에 2학년을 마치면 제가 하고싶은 공부를 위해 2년간 휴학을 하고 미국에 머물 계획이 있기때문에 그 전에 미리 혼자 생활하는 연습도 할겸 자취를 하고싶었습니다.
물론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고는 하나 월세와 관련된 문제도 무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대비책도 마련해 두었지요.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제가 타고난 인복이 있었는지 복이 많아 학생때부터 조금씩 모아온 돈으로 시작한 작은 사업이 안정적으로 흘러가 어느정도 월세나 생활비를 충당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 일이 제가 정말 하고싶어하는 일이고 이 일을 위해 미국에서의 공부를 생각하고 있고요.
저는 어느정도 스스로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치 못한 복병이 생겼습니다.
바로 '고모부'입니다.
자취와 관련된 이야기는 어머니와 먼저 나누고 있었는데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고모댁에 놀러갔습니다.
저녁을 먹던중 내년의 계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머니께서 무심결에 제 자취 이야기를 흘리셨습니다.
저는 순간 직감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고모부는 그걸 놓치지 않고 끊임었이 저를 쪼아댔습니다.
'집이 멀지 않은데 왜 자취를 하냐'
'자취하면 공부는 안하고 괜히 늦게까지 술만 먹는다'
-요즘애들은 남녀가 같이 동거하는 애들도 많더라'
'그러다가 큰일난다'
'여자애들은 특히 조심해야한다'
등등...
사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던 말들이라 갑작스럽지만 제 나름대로 자취를 하고자 하는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등 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제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너희 아빠도 나처럼 무조건 반대할거다' '다 널 예뻐해서 하는말이다' 라며 무조건 반대만 외치셨습니다.
밖에서는 제 의견을 매번 잘 전달하는데 그때는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불쌍하고 원망스러워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더 듣다가는 정말 소리내서 울것같았는데 마침 어머니께서도 '잠깐 방에 들어가서 쉬다와라' 라고 하셔서 도망치듯 게스트룸에 들어가서 이를 악물고 울었습니다.
고모부는 그런 제가 못마땅했는지 계속 밖에서 들으라는듯이 이야기 하더군요
'요즘 애들은 성관념이 없다'
'나도 학생때 자취해봐서 아는데 스스로 나태해질수밖에 없다'
이런 말들은 그냥 못들은척 넘겼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남동생)였으면 말을 안하는데 여자애는 절대로 자취 안된다'
이 말 한마디에 폭발해버렸습니다.
그길로 고모댁을 뛰쳐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택시 안에서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여자로 태어난게 잘못일까'
'왜 아버지한테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고모부가 먼저 이 일을 알았고 고모부 반대에 내 뜻을 접어야 하나'
'나는 왜 바보같이 밖에서는 잘하다가 집에만 오면 이렇게 되나'
'오히려 동생이 더 약하고 아무것도 모를텐데 어려서부터 사회생활 하면서 야무지게 혼자서 잘 자랐다고 생각하는 나보다 남자로 태어난 동생이 더 유리한건가'
이런 생각들에 어려서부터 조금씩 들던 극단적인 생각까지 격해졌습니다.
스스로를 잘 지키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모든게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랄까 그냥 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밖에서는 자신감 넘치고 자존감 높은척 살아왔지만 사실 어려서부터 스스로가 피해의식에 빠져 살았다는걸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런 저를 고치고싶고 스스로를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은데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조건 착하게 어른들 말에 순응하게 되어버린 스스로가 한심합니다.
감정에 휘둘려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이지만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제발 조언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