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 ㅣ 임근호기자] 1991년. 그가 총을 쏘면 수많은 여자들이 자지러졌다. 한때 유행하던 '사랑의 총알'과는 비교가 안되는 위력. "♬~ 그대여 그 마음속에 이대로 나를 담아둘 수 없는가 ~♪ 오직 하나뿐인 그대." 90년대 최고 인기가수 심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권총춤요? 즉흥적인 제스츄어였죠. 간주 나올 때 가만히 서 있기 그래서…. 그냥 리듬에 맞춰 손을 흔들었는데 그게 유행이 됐어요. 그러고 보면 모든 게 우연같아요. 선글라스만 해도 그렇죠. 시선을 어디에 둬야 될지 몰라서 쓴건데. 그게 트레이드 마크가 됐죠." 심신이 돌아왔다. 6년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다시 팬들 곁으로 왔다. 지난 1일 강남에 위치한 한 라이브 카페에서 가수 심신을 만났다. 왜 이렇게 오래 쉬었냐는 질문에 그는 단 한번도 무대를 떠난 적이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방송활동을 안했을 뿐입니다. 무대를 통해 꾸준히 팬들과 만났어요. 15명이든 150명이든 관객이 있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죠. 음악은 제 인생입니다. 아니 운명이죠. 죽는 날까지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을 겁니다." 데뷔▶ 90년대를 살았다면 심신을 모를 수 없다.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오직 하나 뿐인 그대', '욕심쟁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공백 탓일까. 그의 컴백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도대체 심신이 누구에요?" 심신▷ 고등학교 1학년때 부터 밴드 생활을 했어요. '버닝 스톤즈'라는 고교밴드였죠. 음악활동은 졸업 후에도 이어졌어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 퇴근 후 클럽에서 일하며 밴드를 계속 했고요. 그때 소방차, 조용필, 남진씨 등을 프로모션했던 분을 만나 음반제의를 받고 제대 후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무명▶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도 몰라줄 때가 있다. 바로 무명시절이다. 그러고 보면 무명시절을 거치지 않은 스타는 없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더라'고 전설처럼 이야기하지만 알고보면 십중팔구는 춥고 배고픈 무명시절을 거쳤다. 심신은 어땠을까. 심신▷ 고등학교 시절을 합하면 거의 6~7년을 무명으로 지냈다 할까요. 제대 후 앨범이 나오기까지 2년을 준비했고, 앨범이 나온 뒤로 1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때는 무작정 앨범들고 라디오 방송국 다니는 게 일이었어요. 제 노래가 전파를 탈 때까지 스튜디오에 앉아 무작정 기다리는거죠. 그때만 해도 pr 매니저가 없었어요. 직접 몸으로 뛰고 부딪히며 홍보를 했습니다.
스타덤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심신도 마찬가지 아닐까.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심신의 노래는 방송은 물론 길거리, 노래방, 나이트 클럽 등 스피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심신▷ 발라드곡인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로 데뷔했습니다. 1년 정도 지났는데 별로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다 댄스곡인 '오직 하나뿐인 그대'가 뜨기 시작했죠. 후배인 김혜림을 만났는데 그녀 왈(曰) 부산에서 지금 제 노래가 난리라는 겁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부산에서 광주, 서울로 타고 올라와 전국적인 히트가 됐죠. 슬럼프 ▶ 심신은 91년 서울가요대상을 비롯해 그해 골든 디스크상을 거머 쥐었다. 어디 그 뿐인가. kbs 신인상과 가요대상을 수상했고, mbc 10대 가수상을 손에 넣었다. 그런 그가 93년 이후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3집 앨범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예전만 못했다. 심신▷ 슬럼프 원인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그 중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을 빼 놓을 수 없네요. 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이후 음악 유행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랩음악이 대세로 떠올랐죠. 물론 제 잘못이 크죠. 새로운 시도를 했어야 했는데 '록음악'은 왜 안되냐고 애꿎은 '유행'만 원망했죠. 유학 ▶ 슬럼프는 계속 됐다. 98년 4집 '데자부'(deja-vu)와 2001년 5집 '리베로'를 발표하며 재기를 시도했지만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에 심신은 유학을 결심했다. 2003년 드라마 '보디가드' 삽입곡 '쿨하게'를 녹음한 뒤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심신▷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건 제가 부족해서 생긴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 앉을 수는 없었어요. 독하게 마음 먹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 다짐했죠. 그래서 늦은 나이에 미국행을 택한 겁니다. 미국에 있는 음악학교에 1학년으로 들어가 소리를 연구했습니다. 제가 들려줄 수 있는 소리를….
여행 ▶ 그래서 심신이 택한 방법은 음악여행이다. 시간이 나는대로 50여개주를 돌며 자신의 숨은 소리를 끄집어 냈다. 심신에 따르면 미국에서의 생활은 학비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연주여행을 다닌 까닭은 왜일까? 심신▷ 15명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앞에 있다 생각하고 노래를 했죠. 자존심요? 그런거 없었어요. 전 평생 노래를 부를 사람입니다. 보다 나은 가수가 되기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죠. 공연이 끝난 뒤 한 외국인이 그러더군요. '유 해브 어 소울(soul)'.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음악 ▶ 누구에게나 가야할 길이 있다. 심신에게는 그 길이 음악이다. 심신이 들려준 일화 하나. 노래 한곡을 부르기 위해 동부에서 서부까지 기타 하나 메고 20시간을 넘게 달린 적이 있단다. 이유는 하나. 음악은 평생해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란다. 심신▷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해요. 그래서 천상 가수죠. 남은 인생도 노래하는 일에만 전념할 겁니다. 소리는 누구나 낼 수 있어요. 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영혼을 전달하기란 어렵죠. 유명해지는 것과 실력을 갖추는 것은 달라요. 저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낼 겁니다. 영혼이 담긴 소리요. 계획 ▶요즘 심신은 행복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 신곡을 기다리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기쁘다. 심신은 오는 3월 싱글앨범을 시작으로 다시 무대에 설 예정이다. 록장르의 '네버 리멤버'와 '지워요' 등 신곡은 벌써부터 반응이 좋다. 마지막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심신▷ 음악을 앞으로도 10~15년은 더 할 계획입니다. 여러가지 앨범에 대한 기획안이 있어요. 일단은 심신만의 록음악을 선보일 겁니다. 다음으로 리메이크 앨범도 기획하고 있어요. 40~50년대 한국음악이 일제문화를 거치면서 변형돼 자리잡았죠. 제대로된 편곡기술을 통해 한국 전통음악을 재조명할 예정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빅밴드 음악을 한국적 재즈와 접목시켜 발표하고도 싶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5년전 심신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였다. 10년전 심신은 소외된 가수였다. 5년전 심신은 잊혀진 가수였다. 지금 심신은 돌아온 가수다. 5년 뒤 심신은…. 다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