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남자들아
당신이 흙 묻은 전투화를
신고 행군을 나설 때
나는 발을 옥죄는 하이힐을
신어야한다는 알바 규정에
새신을 샀고,
당신이 땀에 젖은 전투복을
입고 연병장을 돌 때
사회가 요구하는 '용모단정'의
기준에 들기 위해
활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가스실에서
숨이 막혀 괴로워할 때
나는 나이트에서든 길에서든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에
세계가 거대한 가스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당신이 철모를 쓰고 목이
터지도록 군가를 부를 때 나는
노래방에서조차 남자들이
여성을 매수한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당신이 위장크림으로
얼굴을 감출 때
화장이 예의라는 사회적
통념 탓에 맨얼굴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개울가에서
수통에 물을 담는 순간 나는
카페 손님의 컵에 든 물을
뒤집어쓰고도 버릇처럼
예쁘게 웃으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기상나팔
소리에 잠을 깰 때까지
나는 불면의 밤을
지새웠고
당신이 군장을 메고
행군을 나설 땐
당연하듯 훑어보며 입맛을
다시던 시선들을 떠올리다
내려앉은 어깨를
더욱 움츠렸습니다.
당신이 샛별을 보며
초소를 나설 때
나는 별이라곤 뜨지 않는
한국의 여성인권에
앞이 캄캄해졌고,
당신이 어머니의 소중함을
알았을 때 나는 이미 '어머니'란
사회가 강제한 역할일 뿐
내 어머니의 본성이 곧
모성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역할을 위해 포기한
어머니 개인의 꿈을
생각하며 죄책감에 허덕였습니다.
당신이 여자와 통화하고
싶어 전화를 걸 때
나는 거절했던 남자의
집요한 전화벨 소리에
떨어야 했고,
당신이 모포를 끌어안으며
그 여자를 생각할 때
어떤 남자의 품도 모포보다
따뜻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조국에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할 때 나는,
이 생이 끝날 때까지
여성이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
조국은 남성의 편이다,
자본주의도 여성혐오도
남성 사회의 소산이다
는 것을 깨닫고
나와 내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와
딸들을 위해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