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어느 봄. 한 여인이 초등학교 앞을 서성인다. 긴 생머리에 트렌지 코트 그리고 입에 걸려 있는 붉은 마스크… 학교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재잘거리며 뛰어나온다. 여인은 그중 한 아이를 따라 걷는다. 이윽고 아이가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접어들자 여인은 아이를 불러 세운다.
“얘… 나 예쁘니?”
아이는 겁에 질려 울먹인다. 하지만 여인은 계속해서 아이를 재촉한다.
“빨리 말해 봐. 나 예뻐?”
“흑..흑.. 예뻐…요..”
그러자 여인은 마스크를 서서히 벗었다. 놀랍게도 마스크 속 여인의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그래? 그럼 너도 나처럼 만들어 줄게…. 으히히히!!”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아이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치… 유치해, 이거 나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빨간 ‘마스크 여인’ 아냐? 뭐 다른 괜찮은 것 없어?”
종합편성채널 CVN의 강한나 PD는 올여름 납량특집으로 방송할 ‘도시괴담 미스터리’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기획 회의를 진행했다.
“그래도 PD님, 아직까지 빨간 마스크가 도시괴담 중 대세예요. 제 동생이 초등학생인데요… 요즘 초등학생들한테도 아직까지 빨간 마스크가 먹혀 준대요.”
올 봄 새로 입사한 막내 작가 은솔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은솔씨? 우리 도시괴담 미스터리 편성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아?”
그러자 무엇인가 깨달은 은솔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23시요…”
“그럼 주 시청 타깃은 누구일까? 엄마 말 안 듣고 밤 11시까지 잠 안자며 TV를 보는 초등학생들일까? 아니면 늦게까지 자유롭게 TV 보는 성인들일까?”
“성인들이요. 하지만…”
“하지만 뭐?”
“아..아닙니다.”
사실 은솔이 재방송은 주말 낮에 하지 않냐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주위 눈치를 보니 자기가 그 소리를 했다가 저 마녀 PD한테 살아남지 않을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빨간 마스크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괴담도 아니야. 정확히는 1979년경 일본 기후현에서 생성된 ‘입 찢어진 여인’이라는 괴담이 시초거든. 교육열이 강한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 학원을 못 가게 방해하려고 유포했다는 설과 원한의 주술을 시행하는 여인의 물고 있던 당근을 본 아이가 입이 찢어진 것으로 착각했다는 설이 있어. 은솔씨... 내가 자료 조사 준비해오랬더니 너무 대충 한 거 아냐? 여름 성경학교 캠핑 왔어?”
강한나 PD의 독설에 은솔은 얼굴이 빨개졌다.
“혜선 작가. 준비한 것 말해 봐.”
강한나 PD는 은솔 옆자리에 앉아있던 혜선에게 질문 했다. 하지만 혜선 역시 은솔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괴담이었다.
“저… 저는 영화촬영장 괴담을 준비 했습니다.”
“영화촬영장 괴담? 혹시 영화배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기 끌려고 툭하면 이야기하는 그 괴담은 아니겠지? 자기들 영화 홍보도 하면서…”
“그이... 이야기 맞습니다.”
“쾅!!!”
그러자 강한나PD는 들고 있던 수첩으로 소리 나게 책상을 내려 쳤다.
“이봐! 당신들… 진짜 일 이따위로 할 꺼야!? 내가 자료 조사 준비해오랬지 인터넷 검색만 하면 나오는 괴담 들려 달라고 했어?! 돈 벌기 참 쉽지? 그리고 영화촬영장 괴담은 우리가 2년 전에 방송했던 주제 아냐?”
“…….”
강한나 PD의 고성에 사무실은 참을 수 없는 적막과 고요가 흘렀다.
“아직도 퇴근들 안하고 기획회의 중이야?”
그때 문을 열고 박한 CP (Chief Producer)가 회의실에 들어왔다. 그제야 회의실 사람들은 참았던 숨을 간신히 내쉴 수 있었다. 강한나PD는 회의 테이블 상석자리를 박한 CP에게 넘겨주며 묵례를 했다.
“그래… 어떻게 주제들은 정했나?”
“아직 쓸만한 것들이 없네요.”
“그래? 어떤 것들 나왔는데?”
“네, 빨간 마스크여인과 택시괴담, 그리고 영화촬영장 괴담 입니다.”
“빨간 마스크는 내가 알고… 영화촬영장 괴담은 우리가 2년 전에 한 거잖아. 아마 그때 무당이랑 영능력자 데리고 청평 스튜디오서 촬영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택시 괴담은 뭐야?”
“그… 한 밤중에 여자를 태우고 목적지에 내려주자 돈 가져 올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아… 그 집에 여자 영정사진 올려놓고 제사인가 뭐 그거 아냐?”
“네.. 맞습니다.”
그러자 박한 CP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강 PD… 그래도 저녁 먹으면서 쉬엄쉬엄 해. 닦달 한다고 일이 풀리는 게 아니니까.”
“네…”
“그리고 나도 고민해봤는데 그거 어때? 요즘 인터넷에 한참 떠들썩한 자유로 뭐였는데.…”
“자유로 귀신이요?”
“응 맞아. 요즘 한창 유명한 아이돌 가수도 얼마 전에 자유로에서 귀신 봤다고 난리였지 아마? 연예인들이 이슈 몰이한 주제이니 시청률 기본은 먹고 들어갈 것이고..”
“아, 그런데 박한 CP님. 아까 강 PD님이 영화배우들이 예능 나와서 인기 끌려고 하는 주제는 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막내 작가인 은솔이 눈치 없이 박한 CP의 말을 중간에서 끊으며 말하는 것에 강한나 PD는 순간 눈이 찌푸려졌다. 자기가 방송국에 가장 존경하며 두려워하는 사람이 눈앞에 박한 CP였다. 그런데 막내인 은솔이 감히 박한 CP의 말을 끊으며 자기를 고자질하듯이 말하다니… 하지만 박한 CP는 괘의치 않는 듯 말했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연예인 외에 자유로에서 귀신 본 목격담이 꽤 있는 것 같더라고…. 어때? 나는 자유로 귀신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지…”
강한나 PD는 박한 CP가 저렇게 말하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은솔을 향한 알 수 없는 분노가 그녀 모르게 꿈틀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납량특집 ‘도시괴담 미스터리’는 자유로 귀신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좋았어. 그럼 오늘 프로그램 주제를 정한 기념으로 다 같이 회식이나 하지. 내가 쏠게!”
자정이 넘은 시각 회식이 끝나고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차 때문에 술을 먹지 않았던 강한나 PD가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왔다. 그때 저 멀리서 은솔이 택시를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순간 강한나 PD의 입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은솔 씨… 집이 일산 백석이라고 했지? 내가 정발산 갈 일이 있으니 태워 줄게…”
“정말요? 그런데 강 PD님 술 드시지 않았어요?”
“응, 약속 있어서 음료수만 마셨어. 같이 가면서 자유로 귀신이야기 좀 해줄 수 있어? 내가 그 이야기를 잘 모르거든…”
사실 강한나 PD는 자유로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자료 조사에 철저한 그녀가 자유로 귀신이야기 또한 빼먹지 않고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어머, 강 PD님 자유로 귀신이야기 모르세요? 그거 엄청 유명한 이야기라 저는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모르시는구나…”
비꼬는듯한 은솔의 말에 또 한 번 강한나 PD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하지만 그녀는 태연한 척…
“어... 내가 자유로 귀신을 미처 준비 못 했네… 그럼 차 타고 가면서 들려주지 않겠어?”
은솔을 태운 강한나 PD가 성산대교를 넘어 자유로에 들어서자 거칠게 차를 몰았다. 은솔은 창 밖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본인의 사명을 깨달은 듯 말을 했다.
“그럼 자유로 귀신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자유로 귀신이 처음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2005년 경에 개그우먼 박희진씨가 예능프로에서 자유로 귀신 목격담을 이야기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돼요.”
“그래? 그렇게 오래 전부터 자유로 귀신이 유명했었어?”
“네! 그럼요.. 그럼 이야기 계속 들려 드릴게요. 한 밤중에 박희진 씨가 매니저와 함께 자유로를 타고 가다가 행주대교 부근을 지나는데 한 여자가 히치하이킹을 하더래요. 아시다시피 이곳 자유로는 근처에 민가나 버스정류장도 없고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잖아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매니저보고 차를 세우라고 했대요. 혹시 못 된 일을 당한 여자일 수도 있으니… 그런데 매니저가 속도를 줄이고 차를 세우며 박희진 씨 보고 ‘누나 저 여자 한밤중인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네요?’ 이랬대요. 그래서 박희진 씨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여자를 자세히 봤다네요. 그리고 그 순간....”
“선글라스가 아니라 눈 부분이 검게 뚫려있는 여성의 모습이었지?”
“어…? 강 PD님 알고 계셨네요. 그런데 왜 모른 척하신 거래요? ”
강한나 PD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윽고 차량은 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 인천공항으로 연결되는 방화대교 부근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강한나 PD는 차량을 갓길로 멈춰 세웠다.
“강 PD님 왜 여기서 차를…”
은솔 작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표정으로 강 PD에게 물었다.
“응… 사전 답사 좀 하려고… 조사에 의하면 자유로 귀신이 가장 많이 목격된 곳이 이곳 방화대교랑 행주대교 사이라네… 은솔씨 내려서 핸드폰으로 사진 간단하게 몇 컷 찍고 와.”
“힝… 무서운데… 강PD님이 사진 찍고 저는 차 안에 있으면 안 돼요?”
순간 강한나 PD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은솔 작가! PD인 내가 자료조사까지 해야겠어? 당신이 우리 프로그램 작가 아니야?”
강한나 PD의 고함에 은솔은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곳 저곳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강한나 PD는 차를 몰고 그대로 출발 했다. 룸미러로 당황한 은솔이 놀라서 소리치는 것을 보니 너무도 통쾌했다.
“자유로 귀신 소문 때문에 여기서 다른 차 얻어 타려면 고생 좀 할 거다.”
강한나 PD의 목적은 차를 몰고 십 여분쯤 돌다가 다시 은솔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를 태우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은솔은 자정이 넘은 자유로에서 꽤 고생 좀 하겠지만…
십 분 정도 지나자 강한나 PD는 다시금 차를 몰고 은솔을 내려준 방화대교 부근으로 향했다. 그때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아마도 은솔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려 했으나 예상외로 박한 CP였다.
“네, CP님!”
“어.. 강 PD. 늦은 시간 미안한데 잠시 통화가 되나?”
“네, 말씀하세요.”
“사실… 이런 얘기를 강 PD에게 먼저 말을 해야 했는데…”
박한 CP는 그답지 않게 웬일인지 뜸을 들였다. 강한나 PD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사실…. 거기 막내가작인 박은솔이라고 있지?”
그때 저 멀리서 흐느껴 울고 서 있는 은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애가… 우리 형님 딸이거든. 다시 말해 내 친조카야. 그래서 말인데... 세상 물정을 좀 몰라도 강 PD가 잘 좀 캐어 해주게...”
강한나 PD는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서둘러 저 앞에서 울고 있는 은솔을 태우고 달래야 했다. 강 PD는 급히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떨며 울고 있는 은솔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때 수화기 너머로…
“PD님… 저 막내 작가 은솔이예요. 제가 아까 버릇없이 굴었다고 작은아버지한테 혼났어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다음부터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강한나 PD는 뜻밖의 목소리에 달리다가 멈췄다.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또 다른 은솔을 몇 미터 앞에 두고…
“은솔씨…가 거기 왜….”
“사실 우리 집이 지방이라 작은아버지 댁에서 같이 살고 있거든요…. 이번 자유로 귀신 특집은 제가 자료 철저히 준비해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사를 했는데요. 최근 자유로 귀신을 목격한 곳이 방화대교 부근이라고…”
강한나 PD는 착각했다.
눈앞에 있는 은솔은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킥킥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은솔이라 생각했던 여인은 강한나 PD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여인의 두 눈은 주먹크기로 뻥 뚫려 있었고 그 뒤로 어두운 자유로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