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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야 누가 탈출해서 죽으라디?

죄많은인간 |2018.09.19 15:07
조회 47 |추천 1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가 탈출했단다. 기자 네트워크를 가진 사무실 동료는 종종, 언론보도 전 사건사고를 공유해주곤 한다. 카톡으로 툭 날아온 소식에, 나는 왜인지 어리둥절한 퓨마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표정이 귀엽다고 느꼈으며 그 상황은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생각되었다. 고백컨데 그 순간엔 인간의 위험을 떠올리진 못했고, 그랬기에 나는 가볍디 가벼운 말투로 답장을 했다. “곧 마취총 맞고 잡혀올 듯 ㅋㅋㅋ” 그러곤 그 사건은 이내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퇴근길, 한 포털에서 ‘마취총 쏴 포획(1보)’라는 뉴스를 보고 나는 다소 유치한 미소를 지었다. 거봐, 뻔하지 뭐 ㅋㅋ. 딱 이정도 심정이었을까. 대단한 예언이라도 한 양, 나는 그 동료에게 뉴스를 공유했다. 인간은 다치지 않았고 퓨마는 살짝 따끔했으리라. 그렇게 대승적인 안도를 잠깐 하기도 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줄 알았던 그 사건은 한 시간여 뒤 ‘마취총 맞고 쓰러졌다 다시 도주’라는 기사를 공유해 온 동료의 카톡으로 반전을 맞는다. 가죽을 뚫지 못했던 걸까. 마취제 용량이 부족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탈출, 아니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의 귀소본능과 삶에 대한 의지가 그것을 이겨내기라도 했나. 해는 저물었고 시민들은 불안했으며 퓨마와 이해관계로 얽힌 많은 사람들은 조급해졌으리라. 혹시라도 있을 인명피해를 우려했을 테고 여론과 언론의 질타를 떠올리며 괴로워했을 테지. 그리고 그 무렵, 살기로 작정한 퓨마는 어색하고 낯선 밤의 공기 한 가운데에서, 그 누구보다 외로웠고 두려웠으리라.



그저 살고자 했던 몸부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적막했을 밤하늘에 울린 세 발의 총성과 함께 퓨마의 짧은 소풍은 끝이 났다. 설렜을까. 오랜만에 맡아본 진한 흙냄새와 나무껍질의 향기로움과 습기를 머금은 이끼의 부드러움에. 잠시나마 허락된 그 자유에 안도하며 마음을 놓았던 것일까. 그는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가 그의 ‘탈출’을 두려워하는 일이 과연 자연스러운 전개인가. 원형 그대로의 지구에서, 자연에서, 우리의 이런 두려움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 그 전에, ‘탈출’이나 ‘도주’가 그의 행위를 정당하게 온전히 묘사하는 표현이기는 한 것인가. 애초에 갇힐 이유도, 그래서 달아날 이유도 없던 그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그의 ‘탈출’이 영 어색하고 그로 인한 두려움이 왠지 미안하다.



마취총을 쏴 분명히 ‘포획’했다던 1보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포획했다며. ‘포획’ 또한 그에겐 한없이 부당한 처사지만 그럼에도 포획되기를 나는 바랬었나 보다. 그럼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텐데. 그럼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텐데. 그랬다면 그는 주어진 여생을 묵묵히 살아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바꾸기로 했다. 그래, 포획되느니. 콘크리트 바닥을 디뎌 발이 곪느니. 조악한 나무기둥에 하릴없이 몸뚱이를 비벼보느니. 선심 쓰듯 던져주는 생닭을 애처롭게 웅크린 채 핥고 또 핥느니. 초점 잃은 눈동자로 멍하니 어딘가로 눈길을 던지느니. DNA에 각인된 질주와 사냥을 힘겹게 억누르느니. 언젠가 봤던 것도 같은 부모나 형제를 그리워하느니. 마취총에 정신을 놓지 않고 ‘도주’하다가 인간이 쏜 진짜 총알에 ‘사살’되기로 한 건, 혹시 그의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감금’은 죽어야 끝나는 것이란 걸. 이렇게 나는 잠시 목가적인 상상을 해본다. 살기로 결심했던 그가 마음을 고쳐먹었을 지도.



인간은 마침내 그를 ‘사살’해서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너무나도 쉽고 너무나도 간단하게. 인간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동물도 다치지 않길 바란다.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동물을 동원한 서커스나 관광상품, 동물의 가죽을 이용한 제품이 우리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우리 인간은 그들보다 진화한 고등동물로서 그들을 대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 문명화된 종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비와 윤리로 그들과 함께 오래 이 지구에서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실행은 빠를수록 좋다. 인간에게 좋다.

 

P.S. 이 땅에 진정 위해한 건, 그였을까 우리였을까. 무용할 줄 알면서, 헛헛한 마음이나마 그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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