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애의 예배로 돌아가기
주품이
|2018.10.2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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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15 ~19
{인애의 예배로 돌아가기}
주품이 큐티 ^ ^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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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 성전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은 뭐하는 사람인가요 그것은 멀리서 양과 소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멀리서 자기 짐승을 데려올 수 없는 자는 성전에서 구매를 하여 제사를 드리곤 하였다 합니다. 근데 제사장들이 비판을 받는 것은 그들이 강도짓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려하면 제사장은 일부러 짐승에 흠을 찾아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제사장들과 사기 협약을 맺은 매매하는 자에게 짐승을 사라합니다. 그렇게 장사관계가 이어져 제사장은 뒷돈의 폭리를 취하였다 합니다.
도둑은 몰래 훔치는 자요 강도는 강제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진노는 바로 이것입니다. 강제로 제물의 흠을 찾아 모멸감을 주고 강제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사게해서 강매로 살아가는 강도같은 제사장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나오는 녹이 부족해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분명 욕심을 내어 거룩한 성전의 예배를 이용해 탈취하는 것을 봅니다. 이외에도 제사장의 위법은 이방인의 기도처를 탈취한 죄명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매매하는 가운데 그들은 폭리를 취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강도라 하셨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중한 원인을 이 시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매매 가운데 폭리를 취한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바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큰 치명적 잘못은 그들이 매매하는 곳이 이방인의 뜰 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를 그들이 힘을 이용하여 갈취 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인용과 같이 만민은 남녀노소 이방인 유대인 모두를 포함 합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장소 중 제일 안쪽이 아닌 제일 바깥쪽은 이방인이 주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선민사상으로 그들을 내쫓아 버리고 도적하여 빼앗아 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강도라 하시고 다시 성전의 본 모습을 회복하시기 위해 진노하신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기득권을 내려 놓지 못해 생긴 불상사입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호6 4~11
이방인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은 배려하는 사랑이 더 중한 것입니다. 주님은 제사장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방인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쫓아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랑보다 제물제사에만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한지를 모르는 남을 왕따 시키는 미움 뿐만 아니고 돈만을 더 중요시하는 욕심을 범하는 것을 봅니다. 제사장은 미움과 욕심의 제사를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입니다.
16절, 성전은 말씀과 기도만이 충만하여야 합니다. 만일 동물과 매매와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시끄러워서 말씀과 기도의 예배가 방해가 되어질 수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예수님의 권능에 의해 그 주위 사람들은 기가 늘려 이에 순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 건장한 제자들도 그들이 주위에 매매를 위한 가구와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막았을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들의 욕심과 미움의 제사가 망하는 것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17절, 지금까지 이 구절을 대충 읽을 때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이기에 정결히 하셨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구절설교를 통해 자세히 보니 만민이라는 말씀에 주목을 해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기도하는 처소가 아닌 이방인과 이스라엘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떼를 찾으시는 수고는 이스라엘만이 아닌 이방인 또한 간절히 찾고 계시는 증거가 됩니다. 양떼를 찾고 이끄시고 그 처소를 예비하시는 목자장의 권위와 인애를 보게 됩니다.
18절, 제사장의 미움과 욕심이 탄로나는 시간입니다. 제사장이 강도라는 것은 속여 강매로 폭리를 취하는 것이요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라 하시는 것은 이방인을 향한 제사장의 미움이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너무나 정확하게 제사장의 죄악을 지적하시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회개는커녕 자신의 죄악을 반성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심과 미움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예수님을 살해하려 합니다. 호세아의 예언과 일치합니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호6 9
19절, 예수님이라는 권위에 성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할 처소를 왜 준비하지를 않을까요 추측이겠지만 성은 기득권층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제사장의 병정과 제사장과 사기를 처서 졸부가된 매매 상인의 기득권인 부유층들이 사는 곳입니다. 밤새 무순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까요 이미 18절에 제사장은 예수님을 향한 살기가 등등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처소 거룩한 처소 예루살렘은 마치 뱀이 주리를 뜬 타락의 도시로 변질이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후에 로마 디투스 장군의 멸망 시킴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일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예배는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우리의 예배는 순수해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고 미움을 발산하는 예배 정죄하는 예배 남을 왕따 시키는 예배 욕심을 위한 예배 모두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오늘 본문과 같이 타락한 예배는 차라리 드리지 않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마치 예루살렘의 2000년간의 멸망과 같이요 우리 한국과 세계의 모든 예배과 하나님을 아는 예배 하나님을 공부하는 예배 하나님 중심의 예배 하나님과 이웃 중심의 예배 말씀으로 깊이 들어가는 살아 있는 말씀의 중심이 진정 들어 가있는 예배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을 향해 성장하는 사랑 중심의 예배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는 아담의 타락한 본성으로 미움과 욕심의 기득권 중심의 타락한 예배로 돌아 가고맙니다. 잡아 주시고 돌이켜 살아 있는 예배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