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누나가 취업하고 뷔페에서 밥을 사주면서 '넌 친구들이랑 이런 데 와서 당황하지 마'라고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어릴 적, 처음 조식 뷔페에 갔을 때가 떠오르면서 격하게 공감이 되더군요.
다른 음식들은 손님이 직접 떠 먹는데, 유독 달걀만큼은 요리사가 직접 만들어 주길래 줄 서서 기다렸더니
"달걀은 어떻게 요리 해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벙쪄있다가 간신히 "맛있게 해주세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이라면 "달걀 두 개 짜리 오믈렛에 치즈 넣어서 하나 주시구요, 다른 하나는 소프트 보일드에 파슬리 좀 뿌려주세요"라고 주문해서 맨날 호텔 조식 뷔페 오는 사람인 척 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생각 난 김에 만들어 보는, 호텔 조식 스타일 달걀 요리법 여덟 가지 입니다.
달걀은 별도의 그릇에 따로 깨서 준비하고, 테프론 코팅팬에 기름을 살짝 뿌려 예열합니다.
원래는 달걀을 그냥 바로 팬에 깨 넣었는데, 수업 시간에 "프라이를 할 때는 달걀이 바로 익어버리니 껍질이 들어가도 알아채기 쉽지 않다. 꼭 그릇에 깨 넣은 다음 팬에 부어라."라고 배운 후로는 항상 그릇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친구가 "셰프, 전 지금까지 달걀을 수 백 번 깨봤지만 껍질이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라니까 셰프가 "그 행운은 네가 가장 중요한 손님에게 달걀 프라이를 서빙하는 날 없어진단다. 그러니 안전한 다리를 놔두고 굳이 모험을 하지 마라."라고 답변했지요.
가장 기본은 달걀 프라이. 그 중에서도 써니 사이드 업입니다.
달걀 노른자가 가운데 둥둥 떠 있는 것이 햇님처럼 보여서 써니 사이드 업이라고 하지요.
노른자 부분에 기름을 몇 방울 살짝 뿌리거나, 뚜껑을 덮어서 익히는 듯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지만
기본은 노른자 주변의 흰자를 다 익히는 겁니다.
예열된 팬에 달걀을 붓고, 가급적 노른자가 가운데 가도록 팬을 기울여가며 요리합니다.
입맛에 맞게 소금이나 후추를 살짝 뿌려 간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써니 사이드 업은 밥이나 고기 위에 얹어 먹기 좋습니다.
써니사이드 업에서 한 번 살짝 뒤집으면 플립 오버라고 합니다.
플립 오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노른자를 익히지 않는 오버 이지와 노른자를 완전히 익히는 오버 하드로 나뉩니다.
요리 배우면서 느끼는 건데, 서양애들은 왠지 노른자 덜 익혀먹는 게 습관인 듯 하더라구요.
저는 차라리 써니사이드 업을 해먹으면 해먹었지, 오버 이지는 잘 안 해먹게 되는데 말이지요.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샌드위치에 끼워 먹을 달걀 요리를 할 때 입니다.
써니 사이드업은 빵을 덮는 순간 텨져버리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반으로 갈랐을 때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연출을 하기에는 오버 이지가 딱입니다.
달걀을 뒤집기 전에 노른자를 톡 터뜨려서 뒤집은 후 완전히 익히면 오버 하드가 됩니다.
동영상 찍는다고 익숙하지도 않은 휴대용 버너에서 구웠더니만 프라이는 다들 오버쿡이 되어버렸네요.
제대로 만든 달걀 프라이는 흰자가 갈색으로 변한 부분 없이 하얗게 조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달걀 프라이 만들기는 쉬워도 제대로 된 달걀 프라이 만들기는 쉽지 않지요.
요리 수업을 할 때, 소스와 채소 요리만 주구장창 배우다가 고기와 생선 요리를 배우기 전에 가장 먼저 접하는 단백질 재료가 바로 달걀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나마 오버 하드는 좀 쉬운 편입니다. 일단 만들어 놓으면 보관하기도 어렵지 않아서 저렴한 백반집이나 급식실에서 이 오버 하드를 잔뜩 만들어놓고 하나씩 나눠주는 모습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서양에서는 덜 익힌 노른자를 좋아해서인지 따로 주문 넣지 않는 이상 만나기 힘든 요리이기도 합니다.
풀어 볶은 달걀, 스크램블드 에그.
달걀을 두 개에서 세 개 정도 그릇에 까 넣고, 거품기로 잘 저어서 섞어줍니다.
이렇게 해야 노란색과 흰색이 얼룩덜룩한 달걀 요리가 아니라 고운 연노랑색이 나오니까요.
스크램블드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오버쿡하는 메뉴라고도 합니다.
원래는 촉촉한 느낌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아차 하는 사이에 다 익어버리기 십상이거든요.
스크램블드 특유의 포슬포슬하면서도 촉촉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메뉴인데, 왠지 모르게 많이 먹게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달걀 프라이를 세 개 먹거나, 달걀 세 개 짜리 오믈렛을 먹으면 '아, 달걀 많이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에
스크램블드는 세 개를 볶아 먹어도 별로 많이 먹은 것 같지가 않더라구요.
우리 나라 한정으로 굉장히 가혹한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오믈렛입니다.
양식 조리사 시험에 등장하는 기준이 "타원형(럭비공 모양), 갈색으로 타지 말아야 하고, 주름이나 갈라진 부분이 없어야 한다"인데, 이게 어쩌다보니 평상시에 주문을 할 때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오믈렛의 기본 요건처럼 되는 바람에 요리사들이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외국의 유명한 요리사들이 오믈렛 만드는 것을 보면 타원형은 커녕, 달걀말이 처럼 둘둘 말거나 심지어는 대충 반으로 접어 만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주름이나 갈라진 부분은 말할 것도 없구요.
결국 세심한 불 조절 기술을 보는 자격증 시험과는 달리, 실전에서는 맛에 크게 상관이 없다면 다른 쪽에 더 신경을 쓰는 요리사들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요.
중간 단계까지는 스크램블드와 똑같지만, 다 익을 때까지 휘저어주는 스크램블드와는 달리 어느 정도 익으면 팬을 기울여 달걀을 말아주면서 모양을 만들어 익혀야 하기 때문에 좀 더 난이도가 있습니다.
둘둘 말기 전에 치즈나 햄 등을 넣어서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손도 많이 가는 주제에 특출난 건 별로 없어서 자주 해먹지는 않는 메뉴입니다.
이왕 번거로움을 감수할 거라면 수란에 홀랜다이즈 소스 만들어서 에그 베네딕트를 만들어 먹는 편이 더 좋으니까요.
미국 오기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프트 보일드 에그입니다.
번역하자면 달걀 반숙인데, 우리나라식 반숙보다도 훨씬 덜 익혀서 노른자 부분은 줄줄 흘러내리는 게 특징입니다.
간혹 서양 이야기책의 삽화에서 달걀을 이상한 모양의 그릇에 끼워놓고 먹는 것을 보며 '왜 삶은 달걀을 불편하게 저런 용기에 끼워넣고 먹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소프트 보일드 에그라면 그렇게 먹을 수 밖에 없겠더라구요.
전용 용기에 담아놓고 칼로 툭툭 쳐서 위쪽 껍질을 깬 후, 뚜껑을 열고 소금과 허브를 뿌려서 스푼으로 떠 먹거나 브레드 스틱을 찍어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삶을 때는 물을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로 채운 후에 끓여서 증기로 요리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소프트 보일드는 6분, 하드 보일드는 8분. 물에서 꺼낸 후에 익는 것을 막기 위해 얼음물에 30초 정도 넣어줘야 하구요.
가장 친숙한 달걀 완숙, 하드 보일드 에그입니다. 동영상 찍느라 바빠서 조금 일찍 꺼냈더니 가운데 부분은 아직 살짝 주황색 기운이 남아있네요.
그래도 삶은 달걀을 요리하면서 살짝 덜 익은 것과 살짝 더 익은 것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걀은 너무 오래 삶으면 노른자와 흰자 경계선 부분이 녹색으로 변하는데, 흰자의 황 성분과 노른자의 철 성분이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결과물입니다. 이른바 '군내'라고 하는, 약간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는 원인이기도 하지요.
마지막은 허망하게 정복당한 인생의 적수, 수란입니다. 포치드 에그(Poached egg)라고도 하지요.
처음 수란 만들 때는 정말 무슨 수를 써도 계란탕이 되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물을 팔팔 끓여도 계란탕, 물을 약하게 끓여도 계란탕, 식초를 넣으면 신 맛 나는 계란탕, 국자에 담아서 끓는 물에 담그면 된다는 말을 듣고 시도했더니 국자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다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바람에 다시 계란탕... 결국에는 수비드로 수란을 만들어 먹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수업 시간에 셰프 시범 한 번 보고 감을 잡으니까 그 뒤로는 그냥 맹물에 대충 던져넣어도 수란이 되더군요.
신기한 노릇입니다.
홀랜다이즈 소스 만드는 법도 제대로 배운 덕에 에그 베네딕트는 원없이 해 먹을 수 있네요.
이렇게 여덟 가지가 가장 기본적인 달걀 요리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 요리사가 달걀 주문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다면 어지간한 경우에는 팬에 굽는 다섯 종류는 주문이 가능하고
좀 더 고급스러운 곳이라면 끓는 물에 조리하는 나머지 세 가지로 주문할 수 있지요.
이제 남은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달걀 요리들... 이걸 언제 다 먹나 싶네요.
그래도 ASMR이라고 하나요, 듣기 좋은 요리 동영상은 건졌으니 이득입니다.
달걀 요리만 했을 뿐인데도 지글거리는 소리, 보글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니까요.
달걀 ASMR 링크: https://tv.naver.com/v/4499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