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평범하지만 그냥 전해주고 싶어서 적어보는 우리 엄마 이야기야.
우선 우리 엄마는 중국인이야 헌데 중국어랑 한국어 둘 다 능통하셔 왜나면 할머니는 남한인이시고 할아버지는 북한인이시거든 6.25때 중국으로 넘어가셨다가 만나서 결혼하시게 되셨다고 해.
그래서 엄마도 피는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셔서 20년 넘게 사셨기때문에 국적이 중국이야.
중국 북경 쪽에서 더 들어가면 조선족들이 사는 시골마을이 있어. 정확한 지역은 말하지 않을게 엄마는 오남맨데 할머니 할아버지, 양쪽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세분 포함 10식구가 그 집에 사셨다고 해. 근데 엄마가 조금 막둥이거든 그래서 첫째 외삼촌이랑 14살 차이가 나셔. 그때는 결혼도 다들 일찍 할 시기잖아. 엄마가 9살때 외삼촌이 결혼 하셔서 외숙모랑 같이 살게 되셨대
여담이지만 외숙모가 내 사촌오빠를 낳으시고 산후조리를 하는데 시골 화장실은 보통 밖에 있잖아. 밖에 나가시질 못하니까 볼일을 방 안 요강에서 보시고 할머니가 치우셨다고 해ㅠㅠ
아무튼 엄마는 열한살때부터 매번 학교 갔다 오시면 강에서 조카 귀저귀를 빨고 밭에가서 농사를 도우셨다고 해.
그런데 엄마가 중학교에 들어가시면서 부터 집 안의 경제권을 외삼촌 부부가 가지게 되셨대. 알다시피 중학교에 들어가면 돈 들어갈때가 많잖아 엄마도 그러셨는데 매번 올케언니한테 돈 달라고 하는 게 쉽지 않으셨대 눈치도 주시고 하니까..
집 식구는 많지, 돈은 없지, 학비로 나가는 돈은 많지. 이런 상황속에서 엄마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신 채 대충 짐을 싸들고 시내로 나가셔서 식당일을 하게 되셨다고 해
엄마는 다른 식구들과 달리 한족학교를 가서 중국어 실력이 좋았거든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고 밖에선 중국어를 쓰니까 언어에는 자신이 있으셨던 거지 이 점을 이용해서 회사도 다니셨는데 이건 좀 더 후의 이야기.
아무튼 오전에는 식당일을 하시고 밤에는 식당에 테이블을 붙여서 그 위에서 잠을 자셨다고 해.. 그렇게 몇년을 지내시다 어떤 할머니께서 하시는 하숙집에 들어가서 사시게 되시는데 좁은 방에서 여러명이 붙어 잤지만 식당에서 자는 것 보다는 편하셨다고 하시더라.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엄만 부엌일을 도우셨다고 해.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음식조리법을 배워야 겠다고 판단하시고 보조주방장으로 일하셨는데 매번 생 돼지를 잡아서 도축하고 조리하고 하다보니 너무 힘드셨던 것 같아 몇달을 버텨보다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사장님께서 젊고 이쁘장 하니 홀서빙을 맡으라 하셔서 홀서빙 일을 하시다 식당에서 손님으로 만난 분의 소개로 조그마한 회사에 들어가시게 돼
엄마는 몇년동안 일하시면서 할머니께 돈을 보냈는데 농사 짓는 사람들은 소득이 가을에만 있잖아.
할머니께서 매달 엄마에게 돈을 받다보니 저축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때마다 엄마 돈을 쓰게 되시는거야 그래서 할머니는 엄마한테 이제 돈 보내지말고 스스로 저축을 하라고 하셔서 스무살 경 부터 엄마는 수중에 돈을 모으시게 돼.
외삼촌네 부부는 시내에서 야채 파는 일을 시작하셨는데 외숙모의 여동생이 잠깐동안 그 일을 도와서 일년동안 셋이서 일을 하셨어 그런데 일년이 지나니 여동생은 그만두고 일손이 부족하게 된거야..
외숙모는 할머니께 친정에서도 동생이 일을 도와주는 시댁에서는 손도 안빌려주냐고, 우리 엄마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니 도와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할아버지께서 우리 엄마한테 전화하셔서 염치 없지만 도와줄 수 없겠냐고 하셨다고 해ㅠㅠ
그래서 엄마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시고 외숙모네 일을 돕게 됐지. 엄마는 처음부터 일년 반 정도만 돕겠다고 하셨는데 일 하는 동안은 알았다 알았다 하시더니 막상 때 돼서 그만 두려고 하니 서운해 하셨다고 해 .. 그래도 그만두셨지.
엄마는 중국지사 한국회사에 취직하게 되셨는데 그 쪽에 기술직 한국청년들이 많이 넘어왔다고 해.
평일엔 사무직겸 통역일을 하시고 주말엔 한국 청년분이랑 시내에서 필요한 통역을 해주면서 같이 다니셨대
그렇게 스물 여섯의 설이 됐는데 다른 한국청년들은 다 한국으로 고향방문하러 넘어갔지만 한 청년은 가지 않으셨고 엄마는 장난 삼아 그럼 우리 시골이라도 같이 갈래? 하셨는데 청년이 좋다고 하셔서 얼떨결에 같이 시골에 내려가시게 됐대
사전에 할머니께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인데 시골구경을 하고 싶어 해서 데려간다 했더니 그 좁은 시골 마을에서 엄마가 남자친구를 데려온다고 소문이 난거야 그렇게 설을 지내고 나니 엄마는 그 청년분과 진짜 사귀게 되셨다고 해 ㅋㅋㅋ
당시 엄마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셨었대
근데 그 당시에 중국인들이 한국에 넘어가는 일은 정말 어려웠대 그래서 엄마는 그 청년분과 혼인신고를 해서 부부라는 법적신분을 이용해 한국에 넘어 올 수 있게 되셨어
외삼촌 부부는 우리 엄마의 부모로 호적을 올려서 (이 부분은 정확히 못 들었는데 이 당시엔 법적 1촌 가족은 국적나라의 입국이 더 쉬웠나봐. 그래서 엄마랑 부모라는 1촌관계를 형성 한건가 싶은데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ㅠㅠㅠ) 한국에 같이 들어오셨대
아무튼 엄마는 한국에 넘어오시게 됐는데 그 청년 분의 가족이 반대가 심하셨나봐 .. 그래서 이혼을 하게 되셔 ..
그리고 그 청년분은 중국에 일을 하러가시고 엄마는 한국에 계속 머무르셨어 중국보다는 한국에서의 소득이 더 좋으셨다고 해
그렇게 한국에서 식당일을 하시던 엄마는 한국에 살고 계시던 이모할머니의 주선으로 지금의 아빠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이의 엄마는 한국에 있는데 둘째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장례식도 못가셨다고 해 ..
당시에 엄마가 남편이 필요했던건 할머니를 한국으로 부르기 위해서라고 해. 국적이 한국인 남자의 도움?이 있어야 할머니가 한국으로 넘어 올 수 있으셨나봐 그래서 엄마는 선 자리에서 아빠가 특별히 맘에 들진 않았지만 할머니를 불러주신다기에 결혼을 결정하게 돼
조금 살다 이혼을 생각하셨다지만 생각지 않게 언니를 임신하게 되셨고 곧이어 연년생인 나도 임신하게 되어서 이혼은 물건너 갔지 ..
엄마의 시집살이도 평탄치는 않았지만 너무 기니 각설할게
지금은 아빠 쪽 집안과는 교류없이 지내고 있고 엄마 쪽 집안과는 사이 좋아. 비록 다 중국에 있긴 하지만 ㅠ (재작년에 상해쪽에 사업하러 친척 전부가 들어가셨는데 꽤 잘되고 있다나봐) 할머니는 엄마가 부양하셔서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계셔 외숙모는 한국에 계심에도 명절 때 얼굴 못본지 오래 됐다 ㅠㅠ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조금 버라이어티한 삶을 사신 것 같아서 그냥 들어봐주십사 하고 끄적여 봤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