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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애들이 불쌍하다고 한다

|2019.02.28 23:54
조회 4,339 |추천 5
아이가 둘 있다
4살 5살 연년생 여자아이들
사람들은 그래도 여자애들 둘이라서 편하겠다고 한다
작년 12월에 이사했고 남편 직장 특성상 미리 이사갈 지역을 알아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사왔더니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이 한 군데도 없었다

요 며칠 미세먼지때문에 아이들은 어디도 못나가고 집에만 있다
미세먼지가 아니어도 데리고 다니는 일이 엄두가 안나 잘 안나가긴 하지만

아침부터 뭘 해먹여야 하는지 고민하다
있는 반찬에 계란에 햄에 국을 해줬더니 죄다 남겼다
점심은 뭘해주지 고민하다 볶음밥을 나름 괜찮게 해줬는데
두신간동안 식탁머리에서 장난만하다가 또 다 남겼다

전쟁같은 식사시간이다
앉으라고 타일러도 보고 다그쳐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숟가락을 던지고 일어나서 뛰어다니고
내가 뭘 질못 가르쳤을까 한숨만 푹푹 쉬다가
그래 먹기싫으면 말아라.. 하고 점심시간이 지났다
애들을 먹이고 나니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애들 줄 것만 하고 내 것은 하지도 않았다
식빵 한 쪽 물고,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 사는 걸 구경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가지고 놀은 장난감들은 거실에 널렸고
매트리스에 둘째가 쉬를 해서 방금 빨래를 한가득 돌렸는데
이불로 빨래통이 바로 한가득 찼다

아이들은 침대에서 바닥 매트리스로 뛰어내리며 논다
위험하니까 하지 말자는 내 말이
아이들 비명소리에 묻힌다

거실에는 아이들의 미끄럼틀이 있다
잘 노는 편인데 쿵쾅거리는 소리가 좀 나서
충간소음때문에 해떨어지면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물론 잠깐 한눈팔면 올라가있고 한눈팔면 쿵쾅거린다
몇댓번 아랫집 어른들과 층간소음문제로 얼굴을 봤고
경비실로 민원넣으신 날은 죄송하다고 내려가서 허리를 몇번 굽혔다

아이들은 자주 물을 달라고 한다
다 마시면 좋은데
꼭 러그 위로 가서 쏟았다고 하고
침대 위에 쏟았다고 하고
왜 한 눈 잠깐 팔면 꼭 가서 쏟는 건지
난 왜 아이들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지 못하는지
쏟을거면 물 마시지 말라고 다그쳐버렸다

뒷발을 들고 조심조심 걸으라고
뛰어다니면 안된다고
물 쏟으면 안된다고
장난감 제자리에서만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둘이 때리고 싸우지 말라고
침대에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온 종일 아이들에게 하지마라, 위험하다. 그러지마라...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제대로 훈육도 못하는 내가 싫었다

저녁 8시쯤 남편이 왔다
배고프다기에 야식을 시켜먹었고,
다 먹은 남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일 좀 하고 운동 다녀올까봐~
라고 한다

야식 먹은 걸 치우려 하니 아이들을 씻겨야 할 일이 태산같았다
부랴부랴 화장실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씻기려는데
둘째가 사라지고
둘째를 데리고 오면 첫 째가 사라지고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버럭버럭 노래를 부른다
지금 시간이 늦었고 화장실에서 소리지르면 안돼
오늘은 수십번은 그 얘길 한 것 같다
양치에 가글까지 다 시키고 아이들 팬티랑 작은 옷가지 손빨래하고 나오니 허리가 찌릿하고 뒷목이 땡겼다.
정말.. 손이 네개면 좋겠다
누구 한 사람만 도와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쉬며 거실에 나오니
웬 한숨이냐고 남편이 방에서 이야기 한다

옷 겨우 입혀서 방에 눕히고 이제 자자, 하니
둘 째는 책을 발 위에 올려서 돌리고
첫 째는 계속 말을 건다
그래 어짜피 바로 안자겠지 싶어서
인터넷으로 장을 보다
이제 자자, 달래다가 다그치다가 사랑한다 안아주고
자야하는 이유를 설명 하다가
누운지 1시간쯤 지났다

둘 째는 하지 말라는 말은 무시하고 여전히 책을 돌리고
뺐으면 울고 주면 또 돌리고.. 울고
첫 째는 자기 싫다고 물달라고 한다
둘 째가 돌리는 책에 두어번 얻어맞으니 뒷목이 당겨왔다
그래 나가서 알아서 물 마시고 와

첫 째는 자기 싫다며 논다고 나가버렸고
둘 째는 옆에와서 책을 조물조물 하며 잘 것 같았다
한 10분 지나니 첫 째가 아빠랑 소란스레 들어오고
그 소리에 둘째는 정신이 번쩍 들은 듯 하더니
다시 책을 발로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첫째가 대뜸 나를 안재워줬다며 삐졌다는 투로 투덜거린다
나도 모르게 니가 안잔다고 했잖아라고 언성을 높였다
둘 째가 책으로 또 내 얼굴을 찍었고
나는 책을 공기청정기 쪽으로 들어 던졌다

둘 째가 울기 시작하고
남편이 핸드폰 후레쉬를 켜서 우리 얼굴로 비추며
뭐야 애한테 던졌어??? 라고 다소 황당한듯 묻는다
불빛이 밝았고, 애한테 던졌냐는 말이 너무 어이가 없어
그 불 좀 끄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왜 나한테 짜증이냐고 남편이 대답한다
왜 저러는 거야? 애들이 불쌍하다

애들이 불쌍하다. 애들이 불쌍하다

그 말에 화가났다
그렇게 애가 불쌍하면 지가 보던가
라고 중얼거렸더니
애들 듣는데 욕하고 난리났네 진짜 애들이 불쌍하다
라고 한마디 또 한다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뭐가 애들이 불쌍하냐고 뭔 소리냐고
애가 책가지고 놀지 말라 말라 몇십분째 그짓거리 하다가
말도 안듣고 안자고 해서 책 던졌다고
나한테 애들이 불쌍하다가 할 말이냐고 했더니

니 그런 소리 할 것 같아서 지금 녹음하고 있다
남편이 한마디 했다

녹음...? 저게 무슨 말인가 한참을 생각하다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무슨 애들이 불쌍하다는 소리를 하냐
씻기는데도 말 안듣고 계속 소리지르고
그 난리를 치다가 재우려니 잠도 안자고 난리였다
애들이 불쌍하다니 그게 할 말이니

남편은 조용했다
조용하더니

00야 00야 잘자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달래듯 밤 인사를 건넨 뒤 잠들었다

엄마 잘못만나 불쌍한 딱한 우리 애기들
난 이렇게 들렸다

한참을 울었다
뭐가 그렇게 눈물날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 편히 잠든 소리에 한참을 소리도 못내고 울었다
첫째는 눈치를 챘는지 내 등에 손을 얹고
쓰다듬고, 안아주고 하다 잠이 들었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났다
애들이 불쌍하다
애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엄마
남편의 한 마디로 내 하루는 그저 그게 됐다

나는 역시 잘못하고 있는 거구나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바르게 될까
되긴 할까

남편은 나의 하루를 알까
그냥 집에서 애들만 보고있는게
마냥 평안하고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걸까

새근새근 잠든 사람 깨워서 따져봐야
어짜피 벽 보고 이야기 하는 것 같을 것이고
속은 답답하고 해서 푸념 좀 했습니다
깝깝한 하루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들이 불쌍하다... 참 비수같은 말이네요
추천수5
반대수14
베플ㅇㅇ|2019.03.01 00:07
엄마힘들게 뭐하는거야? 엄마힘들게하면 아빠한테 혼나! 오늘은 늦었어 얼른자 너희들이 자야 엄마도쉴수있어! 이렇게 해라 남편×아 오늘도 수고했어 여보 조금만 더 힘내자 그래도 우리애들 이쁘지? 이렇게 말로만 해줘도 되는걸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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