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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이별 1달 후

ㅎㅇ |2019.03.01 00:41
조회 2,410 |추천 14
1살 연하였던 전 남친에게 일방적인 카톡 이별 통보로 차인지 1달째. 상황이 힘들어서 헤어지자는 줄 알았는데 헤어지고 며칠 후 바뀐 네 카톡 프로필을 보고 확신했다.
환승이별이라는 걸.
헤어진지 2주차쯤 또 다시 바뀐 카톡 프로필을 보고 눈이 확 뒤집힌 나는 참다참다 연락을 했다.
머리끝까지 분노가 가득 찬 나에게 너는 그런게 아니라며 헤어지고 그 다음주에 생긴거랬다.
나랑 헤어질 땐 몰랐던 친구이고 헤어짐에 영향을 준 친구도 아니라며. 기가 막혔다. 썸도 없이 나와 헤어진지 일주일만에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내가 병신처럼 믿을거라 생각한건지.
화를 내는 나에게 너는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좋은 남자 만나라고 말했었다.

3년을 연애하며 난 너에게 온 마음을, 온 진심을 다했다.
네가 좋아했던 영화라면 그게 몇 부작 시리즈라도 끝까지 같이 봤고, 야구를 좋아하지도 볼줄도 모르는 내가 너가 좋아하는 팀 경기에 같이 가서 응원복도 사고 응원도 했고 네가 좋아하는 음식, 네가 좋아했던 레고. 네가 좋아하는 건 다 맞춰줬었다. 네가 좋아하면 나도 좋았으니깐.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너와 같이 있는게 너무 좋았다.
네가 있는 곳은 서산, 내가 있는 곳은 서울.
금요일이나 공휴일 전날은 최대한 빨리 너와 만나기 위해 미친듯이 일을 끝내고 칼퇴해서는 짐 싸들고 판교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2시간 30분을 버스를 타고 매번 널 보러 가곤 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는 길이 참 멀게 느껴지고 고단했지만 그저 너랑 있는 시간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올 1월엔 네 근무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한다길래 그 전날 새벽기도 반주 끝나자마자 버스를 타고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너와 둘이서 치우고 버리고 짐을 6박스를 쌌었다.
사실 너무나 피곤했지만 이런 내 헌신을 네가 알아주겠지 싶었고 내 남자친구니까 당연히 도와줘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작년엔 너와 결혼하기 위해 시험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헤어지기 전 주엔 네가 이사한 지역으로 놀러가서 행복하게 웃으며 데이트하고 그렇게 보냈었는데.
내가 집에 가는 마지막 날에는 가지 말라며 안갔으면 좋겠다며 울던 너였는데. 상상도 못했다. 그러고나서 이틀 뒤에 네가 헤어지자고 할줄은.
그것도 여자가 생겨서.


늘 사람을 집안배경, 학벌, 직업으로 평가하던 너.
그 대상은 네 주변에 있는 친한 사람, 내 친구들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됐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깎아내리기 바빴고 그런 곳에서 자존감과 우월감을 느끼던 너였다.
그런 너인 줄 몰랐을 처음에 난 할 줄 아는것도 많고, 재밌고, 말도 잘하고 아는것도 많아보이는, 뭐든지 자신 넘쳐보이는 네가 좋았다.
근데 3년이란 시간동안 너를 만나면 만날수록 네 말이 앞뒤가 안맞는 모순이 참 많다는 걸 느꼈고, 주변에 연락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만날 사람은 왜 없는지 알겠더라.
장교라는,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어디든 내비추고 싶어 안달이고 네가 타는 차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집이 얼만큼 살고 우리 부모님이 어떤 분이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자랑하기 바빴다.
한번은 새로운 근무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희 집에 갑자기 놀러온다고 했더랬다. 이사한지 얼마 안된 집을 치우기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네가 아끼는 여러대의 기타, 드럼, 책 등등을 꺼내놔야한다고 말했었다.
이런 걸 보이는 곳에 내놔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첫인상에 좋게 남을 수 있다며. 이게 다 사회생활이라며.
그 쓸데없는 열정이 참 대단했고 참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넌 내가 궁금해하지도 않는 전 여자친구들과의 얘기도 서슴없이 했었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고까지.
나열해놓고보니 정말 기가 막힌다.
헤어지고나서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니 다들 할말을 잃더라.
그래도 난 너의 이 모든 단점들 마저도 안고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랑하니까. 사랑했으니까.
근데 아니다. 이젠 오히려 고맙다.
헤어져준 너에게. 그리고 너를 데려가준 그 여자에게.
난 너를 만나면서 이미 너무 많이 힘들었다. 많이 울었다.
너희 아버지의 말도 안되는 반대도 한 몫했다.
그래서 그런지 헤어지고나서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더라.
생각보다 밥도 잘 먹히고, 잠도 잘 오더라.
어쩜 내 마음 한구석엔 너랑 결혼하면 진짜 힘들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어서였을까.
헤어지고 며칠간은 그 여자와 행복할 너를 상상하며 괴로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잘 헤어진거더라. 오히려 너와의 헤어짐은 내게 축복이더라.
사람의 진심을 짓밟고 다른 여자 좋다고 동물처럼 환승한, 배려라곤 1도 없는 네가 알아서 떠나준게.
떠날때의 그 모습이 내가 미처 몰랐던 너의 진짜 본모습이었던거다.
이제 나는 너가 어떻게 살든, 누굴 만나든 너는 이제 내 사람이 아니니 신경 끄고 내 갈길 갈거다.
너에게 복수한다는 마음도 아니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고 버렸던 나를 제대로 사랑해주기 위해서.
당장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를 나만큼이나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나의 진가를 알아봐줄 선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너를 만남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하고 만나지 말아야하는 지 알게됐으니까. 며칠 전만해도 후회하길, 연락오길 바랐던 마음도 다 접을거다.
연락이 안왔으면 좋겠다.
잘지내라는 말은 못하겠다. 그냥 원래 몰랐던 사람처럼 아니, 난 네가 죽었다고 생각할거다.
추천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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