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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을 저주하며.

네이트 |2019.03.18 12:19
조회 107 |추천 0
새벽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잠들었다.
눈을 감으니 그날의 교실이 보이더라. 연두색 커튼과 갈색 책상. 칠판은 매일 아침마다 주번이 닦아내야만 했던 것. 추억이라는 학창 시절은 내겐 그저 저주스럽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지메를 당한 이유는 안다. 소심하지만 어떻게든 무리에 끼고 싶어서 했던 거짓말. 나는 그 대가를 8년 동안 치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건 잘못이었지. 그런데 내게 꼭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교복을 입는 매일 아침마다 죽고 싶었다. 너희들의 짧은 후회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남았다. 내 가정까지도 나를 괴롭혔으니 살아있는 건 기적이었지.

중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인식이 변했다는 것이 뭔지 알겠더라. ㅅㅇㅈ. 너는 나와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지. 화장실에 가면 너는 왜 얼굴에 그래라면서 한껏 귀여운 척을 하면서 말하더라. 근데 내 친구 중에서 더 예쁜 애가 있어서 좀 개그하는 건가 싶었다. 상처를 주고 싶었다면 그때 시도는 실패였다.ㅇㅇㅇ. 너는 어린 시절에 나와 오랜 친구였다. 부모님끼리도 아는 사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흐려진 우정이었다. 그렇지만 철없던 시절의 기억은 소중한 지라 네가 날 괴롭혔을 때는 괴로웠다. 그시절의 가장 커다란 충격은 너였다. 네가 나에게서 '빌려가고' 다시는 돌려주지 않았던 시계는 네 손목에 꽤 어울렸지.
ㅎㅅㅁ. 너는 네 남자친구 근처를 지나가던 나에게 '왜 이렇게 가슴이 쳐졌어.' 라고 소리쳐서 말하지 않았니. 우연히 유투브에서 네가 춤을 추는 영상을 보고서 헛구역질이 나왔다. 한 순간에 스쳐가면서 느낀 동정과 연민의 시선.

친한 친구의 배신에 나는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가방에 넣어둔 과자가 사라진 날이 있었다. 너희들 중 누군가 가져간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던 이유를 알고 있을까. 그 아래는 칼이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해칠 각오를 하는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손잡이를 쥐는 건 나였을 테지. 중학생 때의 나는 그랬지.매번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서 울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괴로움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인터넷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과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지. 그러면서도 내 고통은 미련하게도 알리지도 못했지. 그사이에 몸에는 병이 생겼다. 그 어린 나이에. 마음의 병은 몸에도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내 손바닥보다 커다란 종양이 있었지. 아프면서도 나는 항상 웃었다. 우울한 사람으로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양호실 신세를 져야 할 때도 웃고, 쓰러질 때도 웃고. 응급실에 실리는 날에서야 담임은 사과를 했더랜다. 나를 형편없는 거짓말쟁이로 생각했다고 했지. 그 사과도 내게 전하는 날은 없었다.
처음으로 수술하는 날에 나는 너희들이 내 사물함과 그 안의 노트를 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고 싶었다. 그 소식을 들려준 애는 그로부터 2년 후 나를 배신한다.
고등학교에 들어선 나는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를 괴롭히는 일에 동조하기도 했다. 못 견디고 사과했을 때 그애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나는 그 다음부터는 누구도 괴롭히지 못했다. 차라리 내가 참아내고야 말지. 이번에도 마음의 병은 심해졌다. 어떻게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했다. 나는 실수가 잦고 둔했다. 과제 파일이 날아가고 말았을 때는 도무지 잊지 못하겠다. 자기 비하의 끝에 달했지. 그래도 그게 내가 고통을 받아야 했던 이유였을까.
나는 체육 시간을 싫어했다. o ㅁㅈ.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반에서 따돌려지던 동급생은 네겐 꽤 마음에 드는 골대였을지도 모르겠다. 농구공을 일부러 힘껏 던졌지. 패스 수업인지라 그런 괴롭힘은 선생님에게서도 가려졌던 터다. 내가 다른 사람과 직전에 자리를 바꾸면 너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살살 해라고 내가 말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 염좌에 걸리고 말았다. 손으로 글을 써야만 하던 나로서는 치명적이었다. 그시기 즈음에 흡연을 시작했다. 나는 그 불씨를 볼 때마다 네 눈깔을 지져버리는 생각을 했다. 밖에서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지?
하나는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촌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었다. 너는 학창시절 동안 나에게 친절한 적이 딱 한 번이었는데. 같이 양치질을 하자고 했다. 너는 나와 짝이 되는 것을 혐오스러워 하던 것이 두드러졌다. 뭣도 모르고서 승낙을 했지. 거울을 보면서 하는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너는 먼저 교실로 들어가겠다고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와보니 내 지갑에서는 8만원이 사라져있었다. 나는 그당시에 뒷문에 가장 가까운 4분단 맨 뒷자리였기에 네가 아니면 내 지갑을 뒤질 사람이 없었다. 너는 아니라고 했지. 그 다음부터는 나도 너를 경멸했다. 앞자리 아이들은 너보다는 좀 더 친절했지만 조용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옆자리인걸 싫어하지. 난 괜찮던데.' 그게 누구 이야기인지는 알잖아. 시간이 지나서 네가 도둑질을 일삼는 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지갑을 털어간 것은 용서한다. 거지에게 적선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속이지는 말았어야지. 내 어린 희망을 배반하지는 말았어야지.
한 번은 출석기록부의 내 사진이 X표로 마구 지워있었다. 나는 그게 누구인지 찾고 싶었다. 정말 찾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 노트에 그 사람이 온갖 욕을 써둔 것 같다며 말했다. 반응이 두드러지던 사람을 찾았다. 너는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누구보다 먼저 말했다. 네가 하지 않았으니 누구보다 먼저 알았겠지. 거짓말쟁이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이다. 나는 그날 난간에 매달렸다.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발각당했기 때문이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고등학교에서 만났던 애들은, 나에겐 지옥같던 애들도 있었지만 중학교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따뜻하게 대해주던 사람도 있었다. 너희들이 보여주었던 한 순간의 다정조차 나에겐 마음 깊이 남아있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따뜻했던 너. 너는 나를 불러내었지. 나는 한달음에 나갔지만 너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이후에 문자로 사과가 왔으나 나는 오히려 너는 믿지 못하겠다고 벽을 쳤다. 그게 아니다. 너는 내 마지막 학창 시절의 구원이었다. 체육시간이면 셋이서 앉아있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런 너에게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가 날 두렵게 했다. 현아가 롤모델이고 누구보다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너. 너는 틀림없이 꿈을 이룰 거야. 그런 이야기는 전하지 못하겠지. 전화번호를 바꿨으니까. 너에게 그런 식으로 마지막을 대했던 것이 내 가장 커다란 아쉬움이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조잡한 어린시절과는 다른 글이다. 내 노트를 까뒤집으며 깔깔거리던 아이들도 내 글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을 쓰면서 이번에는 또다른 꿈에 도전하고 있다.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운동을 다니고 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법을 배웠다. 나은 인생이지. 내 생애에 여자들은 대부분 나를 괴롭게 했음에도 인권에도 힘을 쓰고 있다. 그건 너희를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닌, 또다른 너를 위해서다.

과거를 영원히 놓아버릴 수는 없다. 너희들을 저주하는 것처럼, 너를 여전히 구원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나는 필리핀의 살인청부업 가격이 얼마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너희를 생각한다. 모든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너희이기를 바란다.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이 너희들에게 닥쳐들기를 바란다. 너희들이 가정을 이룰 때면 그의 아내가, 그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낼 것이다. 적어도 나와 같은 시간쯤은 무너져야 수지에 맞다. 나는 오늘도 너희의 안락하지 못한 죽음을 상상하며 기분이 좋아진다.
너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만나지 못해도 괜찮다. 너를 추억하며, 너를 떠올린다. 너를 구원으로 느끼던 학창시절 마지막을 떠올린다. 네가 그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상황에 조금이나마 침착해질 수 있는 지금에서야 너를 그리워한다.
너는 그 누구보다 내게 올바른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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