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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각나요

나는 어릴적 걸어서 40분 거리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할머니가 키워주셔서 버스를 타는 것은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고 그렇게 방학을 제외한 모든 학교가는 날엔 하교는 시간이 달라 따로 하더라도 등교는 꼭 오빠와 걸어서 함께했다. 그렇게 걷다보면 오빠친구의 부모님, 또는 내친구의 부모님 차가 지나가며 우리가 보이면 가끔 태워주셨고, 마을 어르신 혹은 옆마을 사시는 분들의 트럭이 외출하는 길에 우리를 보면 실어 정자나무가 있는 로터리 앞에 꼭 내려주셨다. 그러면 걸어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오분남짓.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 걷기도 많이 걷고 차를 얻어타기도 수십번. 내가 살던 곳은 그리 크지 않던 시골이었고 정겨웠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오빠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있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그 후로 나의 등교길은 오롯이 혼자걷는 길이 되었다. 그날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고 이른아침이라 안개가 많이 끼어있던걸로 기억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었나. 그건 잘 모르겠다. 혼자 걸어가는 길에 옆에 차 한대가 멈춰섰고 아저씨는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준다고 하였다. 시골은 그랬다. 모르는 분들도 그 위험한 큰길을 어린아이가 걸어가고 있으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려 언제나 차를 태워주는. 그게 시골이라 나는 그 차에 탔다.
아저씨는 학교로 가는길에서 반대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본인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자기가 봐둔곳이 있으니 잠시 가서 네가 모델이 되어달라고.
나는 학교에 늦을 수 있는것에 고민을 하였으나 차는 이미 반대로 가고있었고 아저씨는 늦지 않게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리고 저수지가 있는 근처의 숲길로 차를 몰았다. 차 주위엔 풀들이 가득했고 아저씨는 도착했으니 뒷자리로 가라고했다. 그 차는 앞 두자리만 의자가 있는 차였고 트렁크 문을 열어서 나를 뒤로 태웠다. 거기서부턴 어떤게 더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진짜로 스케치북을 폈나? 연필을 들었나?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사람은 치수를 잴거라며 내 반바지 아래로 손을 넣었고 나를 만졌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한것 같다. 미친듯이 무서웠고 내가 왜 이곳에 있는가 싶었다. 창밖을 보니 온통 초록색이었고 나는 우는 일 밖엔 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그런 나를 보며 울지말라고 했다. 너를 만지는게 이상한일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확실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본인의 것을 같이 만지게끔 내 손을 가져갔다. 본인의 바지를 내려 그것을 만지게하려했다. 나는 하지말라며 학교에 갈거라며 소리지르며 울었다. 계속 그렇게 말한기억이 난다. 저 학교에 가야해요 학교로 데려다주세요.

그리고 이 다음은 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잠깐 비어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사람이 나를 더 만졌던가? 내가 이사람을 만졌던가? 뭐 이런생각들이 드는데.
그사람은 우는 내가 진저리 났던 걸까. 본인도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고 무서웠던 걸까. 나를 차 앞에 다시 태워 로터리 앞에 내려주었다. 나는 계속 울었고 아저씨는 내 손에 천원짜리 몇장을 쥐어주려 했으나 나는 받지 않았다. 그 손을 다시 잡기가 무서워서 그랬다.

그렇게 내려서 학교가 보일때까지 계속 뛰었다. 힘이들었고 그 즈음엔 눈물도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멍했다. 무슨일이었지 이게. 꿈을꿨다 싶었다.

반아이들은 생기가 넘쳤고 나는 그 사이로 들어가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걸까 말하지 못한걸까.
그 당시 난 같은반 여학생의 주도하에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입장이었고 그 모든것이 어려웠다.
나 오는길에 이상한 아저씨를 만났어.
이 이야기를 하는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날 점심시간 이후 고학년들을 모아서 성교육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남자애들이 여자아이들 등을 손으로 만지거든 하지마! 라고 말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께도 오늘 아침의 일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웠던 걸까. 그것을 다시 이야기 해야하는게 무서웠던걸까.

엄마와 살게 된 이후에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나서도.
행복해졌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날의 비슷한 날씨를 느끼면 가끔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안좋은 내용의 뉴스나 기사를 볼때에도.
다행인걸까 다행이지 않은걸까 잘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혼자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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